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49화 (449/561)

#45. 도쿄대공습 (6)

가을의 도쿄에 부는 바람은 북풍과 북동풍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가끔 도쿄 앞바다에서 남미 카르텔 식으로 화물을 물에 띄워놓을 땐 다소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평범한 부유물처럼 위장한 화물 컨테이너엔 주기적으로 위치신호를 발산하는 비컨이 내장되어있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화물이 너무 멀리 표류하여 말썽이 빚어지는 까닭이었다. 보통은 수취인 쪽에서 늑장을 부려 발생하는 말썽이었지만.

지금도 도쿄엔 미묘하게 비뚤어진 북풍이 부는 중이었다. 멀지 않은 공원의 호수에 이는 물결, 조경수의 이파리와 가지들의 흔들림, 그리고 내게만 보이는 공기의 흐름을 보건대 풍속은 대략 시속 30km 언저리일 것이다.

고래가 흩뿌리는 유독성 호우는 고도와 바람에 힘입어 넓게 확산되었다. 게다가 생의 마지막 시간들을 불사르는 고래의 이동속도는 제트 기류에 올라탄 태풍만큼이나 빨랐으므로, 인간 이외의 생물이 인간들을 상대로 행하는 전대미문의 화학전은 처음부터 굉장히 우수한 효율을 보여주고 있었다.

「휘우우우- 휘잇- 휘잇-」

노래하며 하늘을 유영하는 바다의 신(와다츠미)은 더 이상 일본인들의 마츠리에 어울려주지 않았다. 산샤(山車)를 대신하는 초대형 비행선들이 재앙신의 주의를 끌고자 애썼으나, 마른 도시에 비를 뿌리는 고래는 그저 자신이 끝내야 할 최후의 과업에만 집중할 따름이었다.

지금 저 광경을 실시간을 지켜보고 있을 일본 각료들은 과연 어떤 심정일까. 조국을 사랑하는 자라면 미쳐버렸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알고 보면 유독성 강우가 일본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 독성 물질이 잔뜩 녹아있는 비가 페스트 오염지대를 효과적으로 멸균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까지 같이 죽일 기세여서 문제이긴 해도.

‘덕분에 태우는 수고를 꽤 덜겠군.’

이 밤, 저 놀라운 고래로부터 몇 번이나 도움을 받는지 모르겠다. 당혹스럽게도, 내 심저(心底)에 애정 비슷한 게 싹틀 지경이었다.

「긴급경고! 긴급경고! 지금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지 마십시오! 그것은 평범한 비가 아닙니다! 실외에 계신 모든 분들께서는 실내와 차내(車內)로 신속히 대피하여 주십시오! 반복합니다! 지금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지 마십시오!」

이 도시의 사이렌과 재난경보는 끊어질 줄을 몰랐다. 다만 스피커로부터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처음과 같지 않았다. 잔뜩 쉬어있었고,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울음을 억지로 참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피난 차량들로 꽉 막힌 도로들로부터는 운전자들이 패닉에 빠져 눌러대는 경적 소리들이 아스라이 올라왔다. 차량 안에 머물고 있으면 고래가 뿌리는 비로부터는 안전한 편이지만, 운전자와 그 가족들을 위협하는 게 단지 유독성의 호우만은 아니었던 까닭이다.

간헐적으로 떨어지는 미사일 파편들은 수량이 그렇게까지 많지 않다.

그러나 도시의 음지에서 바퀴벌레와 비슷한 위생 상태로 기어 나오는 부랑자 무리들은 이야기가 달랐다.

일본 정부가 내놓는 공식통계에서는 언제나 없는 사람들 취급을 받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이 거대한 광역권에서 보이지 않는 삶을 이어가고 있는 자들. 그렇게 버려진 자들에게도 재난경고방송을 들을 귀가 있고, 죽음의 공포에 떠밀려 다급해질 마음도 있다.

여기에 사회의 가장 낮은 바닥에서 숙성되기 마련인 고독(蠱毒)의 독기가 더해지면 정확히 지금 내가 보는 광경이 완성된다.

부랑자들은 멈춰선 차량들을 에워싸고 창과 문을 두드리며 무언가 소리를 질러댔다.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지는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열어달라고, 같이 살자고, 왜 너희만 살려고 하느냐고 외치는 중이겠지.

「빠앙-! 빠바아아앙-!」

전투함 외부에 돋은 아기들의 귀가 경적들의 불협화음을 잡아낸다. 여기에 섞이는 쾅쾅 부서지는 소리는 부랑자 무리에 섞인 각성능력자들이 힘을 쓰면서 생기는 것이었다.

이들은 유리를 깨부수는 정도가 아니라 문짝을 찌그러뜨리거나 통째로 뜯어내는 수준으로 힘을 써댔다. 문을 열어주지 않을 거라면 차라리 같이 죽어보자는 광기였다.

각성능력자가 오갈 데 없는 노숙자 생활을 하고 있다면 거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불균형한 생체강화로 말미암아 강화 그 자체가 저주가 되어버린 경우. 혹은, 마력회로 결함으로 불사암에 걸려, 능력을 써서 버는 돈보다 의료비 지출이 더 많아진 경우.

고로 이들이 각성자로서의 힘을 쓴다는 건 보통 이상의 광기일 수밖에 없다. 힘 한 번 쓰고 고통스럽게 나뒹구는 놈들의 존재는 그러한 광기의 증명이었다.

그러나 이런 광란의 무리도 귀신의 공포를 견디지는 못했다.

「-!」

내가 만들어 내보낸 깜박이 전투인형들 가운데 하나가 어느 차량 위로 뛰어올라 포효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차량과 인파로 꽉 막힌 도로를 ‘방해’라고 받아들인 모양인지, 죽은 자위대원은 눈에 보이는 모든 인간들에게 사나운 공격성을 드러냈다.

그 일대의 부랑자들이 도망치고, 차 안에 있던 자들 역시 점멸하는 인형을 피해 차를 버린 채로 달아난다.

나는 흩어지는 부랑자들에게서 역병의 색채를 보았다. 내가 퍼트린 페스트가 벌써부터 발병을 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이 도시에서 산발적으로 유행한다는 소문이 돌았던 수인성 전염병들의 색채였다.

마츠오를 구할 적에 보았던 오다이바의 똥물이 보여주듯, 도쿄 광역권의 공공위생은 수용한계를 넘어선 인구 유입으로 말미암아 하루하루 저점을 갱신하는 상태였다.

시궁창 같은 환경에서 사는 자들이 병에 걸리지 않기를 바라는 건 무리다. 일본의 불행을 시청률로 바꾸고자 찾아온 해외의 언론들은, 허기에 굴복하여 쥐와 벌레까지 잡아먹는 가난한 부랑자들의 모습을 자극적인 다큐멘터리로 편성하여 내보낸 바 있다. 도쿄의 길고양이들은 각성체들만을 남기고 진즉에 다 잡아먹혔다.

이미 이런 무대가 조성되어있기에 내가 지금부터 할 일에도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우우웅-」

레이저 포대에 전력이 공급되기 시작했다. 아비터와 트라운서를 합쳐 총 열여섯 문이 탑재되어있었던 레이저 포대들 중에서 내가 기능을 되살릴 수 있었던 건 고작 세 문이 전부였다. 그나마 셋 중 하나는 커패시터의 부분 손상으로 최대출력을 낼 수 없는 상태.

그러나 출력이 감소한 포대조차도 지금 도쿄 상공에 그어지는 다른 어떤 광선들보다 더 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적으로 불태워야 할 것은 내가 두 번에 걸쳐 착륙했던 지점들과 그 주변의 주요 길목들이었다.

두 생체전투함이 하늘에서 뿌린 역병의 비는 고래가 뿌리는 유독성 호우에 중화되리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착륙한 상태에서 거의 냇물을 이룰 정도로 흘려보낸 피와 고름, 그리고 오염된 배설물들은 스치듯 지나가는 호우만 가지고는 유의미한 살균을 기대하기 어려울 만큼 양이 많다.

‘의외로 하수도나 배수 터널로 흘러들어간 양이 적단 말이지…….’

배수로가 아무리 잘 깔려있어도 배수구 관리가 부실하면 소용이 없다.

일본식 통계로만 6백만의 부랑자가 존재하는 대도시에서 길가가 쓰레기로 뒤덮이지 않기를 바라기는 무리였다. 무엇보다, 지금의 일본은 환경미화 예산조차 지속적으로 삭감을 거듭해와야만 했던 나라다. 부족한 예산은 부촌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지역에 집중되었다.

생체전투함에서 흘러나온 역겨운 액체들이 도로와 골목을 따라 계곡물처럼 흐른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각 포대의 사선을 따라 안개의 성채에 포혈(砲穴)을 낸 후, 각각의 구멍을 통해 세 줄기의 고열 광선을 발사했다.

자동화된 사격통제장치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태였으므로, 나는 우선 낮은 출력으로 광선을 발사한 후 조준점을 잡고 출력을 올리는 식으로 포대들을 운용했다.

광선들이 닿는 곳마다 강렬한 열파가 터져 나왔다. 복사열과 주변 대기의 팽창만으로도 국소적인 화염 폭풍이 발생할 정도였다.

「쐐애애애액-!」

안개를 뚫는 궤적과 굉음이 짧은 시차를 두고 겹쳐진다. 스물다섯 번째와 스물여섯 번째로 쇄도한 극초음속 탄두였다.

뒤이어 터보팬 엔진이 달린 대함·대지 순항미사일들이 3~4초 간격으로 다섯 발이나 날아와서는 순차적으로 안개구름을 꿰뚫었다. 그저 1회에 그치는 관통이 아니라, 사전에 입력된 경로에 따라 뫼비우스의 띠를 닮은 궤적을 그리며 반복적으로 안개구름 덩어리를 관통하게끔 설정해놓은 미사일들이었다.

이쪽이 레이저를 쏘는 걸 보고서도 순항미사일을 날렸다면, 자위대는 지금 공중전투함의 탐색능력과 사격통제시스템에 이상이 생겼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기야, 두 공중전투함이 엉망진창이 되어 불시착하는 모습을 목격하고서도 그런 가능성을 떠올리지 못했다면-

‘그건 그냥 병신이지.’

순항미사일들이 왕립해군의 레이저 그물을 피해 날아올 수 있었던 건, 일본의 각종 군용기들과 공중기병 헌터들이 도쿄 만 상공에 대량으로 살포하는 채프(Chaff/레이더 교란 수단) 덕분이었다.

알루미늄 박막을 입힌 유리섬유 가루들은 비틀린 북풍을 타고 비산하여 광범위한 전파 음영지대를 만들어냈다. 레이더 화면으로 보면 거대한 노이즈 덩어리가 범람하는 것처럼 보일 터.

자위대가 내 공중전투함과 가까운 공역에 채프를 뿌려대지 않는 건, 이쪽의 관측능력에 대한 의문과 더불어 자신들의 관측능력을 보존하기 위함일 것이다.

「콰쾅! 콰콰쾅!」

나는 얄팍한 염동장막을 펼쳐 순항미사일들을 한꺼번에 잡아냈다. 극초음속이 아닌 미사일 따윈 아주 간단히 방어해낼 수 있다.

그러나 자위대의 노림수는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순항미사일로 내 주의를 분산시킨 항공자위대는 그 틈에 1개 편대의 5세대 스텔스 전술기(F-35)들을 전투공역으로 진입시킨 참이었다.

스텔스 전술기들은 저마다 무장창을 열고 공중폭발 열압력탄들을 투하했다. 투하라고는 해도 기수를 들어 올리며 토스하듯 던지는 방식(Toss Bombing)이라, 높은 고도와 빠른 속도가 더해지면 제법 먼 거리에서 던지고 도망가는 게 가능했다.

이런 종류의 폭탄은 사람이 발사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파일럿이 기수를 올리기만 하면, 컴퓨터가 속도와 고도와 각도를 토대로 투하시점(릴리즈 포인트)을 계산하여 자동으로 폭탄을 놓아주는 방식이지.

탄도곡선을 그리며 고요하게 날아든 항공폭탄 네 발은, 생체전투함의 마력장이 닿지 않는 곳에서 깨지며 가연성의 백색 운무(雲霧)를 연달아 방출했다.

그 직후, 서로 다른 운무의 중심에서 샛노란 불티가 튀었다.

「쿠르르르르릉!」

로더필드와 싸울 때처럼 발화억제로 폭발 자체를 막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불가능했으므로, 나는 두터운 안개구체에 대한 구속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려 안개 자체를 물리적인 완충재로 삼아버렸다. 염동결계를 치는 것보다 이러는 편이 효율이 좋으리라는 판단 하에.

내가 생체전투함의 힘을 써서 발휘하는 강한 구속력에도 불구하고, 고열의 충격파를 맞은 안개구름은 바깥에서부터 훅 깎이며 날아가 버렸다. 깎여나간 두께가 거의 20미터에 달할 지경.

그러나 흩어진 수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내가 지배하는 마력장의 범위를 이탈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다시 끌어다 안개구름을 복원할 수 있다.

자위대는 내가 두른 안개를 일격에 흩어버릴 작정이었겠지. 기계적으로 착착 맞아떨어지는 공격이 훌륭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내가 잃어버린 수증기의 양은 대단치 않은 수준이었다. 그나마도 지표에서 더 끌어올리는 물로 보충이 가능하다.

나는 잠깐 멈추었던 레이저 공격을 재개했다. 아직 불태워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빛의 속도로 이루어지는 방화는 무척이나 효율적이었다. 조립식 아기들의 피와 고름이 흘렀던 거리들이 세찬 불길에 타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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