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도쿄대공습 (5)
이제 와서 고래의 방어를 모방하려는 건 아니었다.
물론 모방 자체는 가능하다. 내게는 물에 대한 지배력을 발휘하는 거인의 술식이 있으니까.
순수하게 연비만을 따지면 고래의 능력이 전율하는 거인의 지혜보다도 윗줄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 차이가 딱히 대단한 것은 아니며, 그 정도의 차이는 마력회로와 운용능력의 우월함으로 만회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고래를 모방한 방어를 완성할 즈음이면 그땐 벌써 날아올 미사일이 다 날아온 다음이리라는 점.
성난 고래는 처음부터 방어를 완성한 채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철도차량기지에 내려앉아있던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지하수를 끌어올리고 수도관을 깨서 그 짓을 하려면 걸리는 시간이 한세월이다. 필시 유의미한 방어력이 형성되기도 전에 불벼락을 맞을 게 뻔하잖은가. 거기에 회로점유율을 할당하는 동안 다른 방어들이 어중간해질 것을 감안하면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한 짓이었다.
더 빠르게 방어를 갖추려면 강이나 바다로 가야 한다. 하지만 깊이가 얕고 유속이 느린 시내의 강은 지하수보다는 나은 수원(水源)일 뿐 만족스러운 대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결국 남는 답은 바다 하나인데, 내가 바다로 기수를 돌릴 경우 자위대 사령부는 발작을 일으킬 것이다. 그들의 눈엔 공중전투함이 왕립해군과 합류를 기도하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지금이야 내가 수직으로만 상승했으니 절반의 경고를 담아 드문드문 쏘아대는 것이지, 왕립해군과 합류할 기미를 보이면 그 즉시 가용 미사일 전탄을 한꺼번에 퍼부을 게 분명하다.
내가 주목한 것은 앞서 충분한 양을 만들어 깔아놓은 안개였다.
「솨아아아-!」
광범위하게 퍼져있던 지상의 안개가 내 부름에 응해 여러 줄기의 용오름처럼 솟구친다. 마법의 힘에 끌려 올라온 대량의 안개는 생체전투함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구름의 덩어리를 형성했다. 이미 있는 안개를 활용하는 것이라 이보다 더 빠를 수가 없었다.
그득하던 안개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지상에선, 모두가 혼비백산하여 달아날 때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지 못한 낙오자들이 하늘을 보며 들리지 않는 비명들을 질러댔다. 하나같이 혼이 빠진 듯한 표정들이다.
하기야,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새로운 차원의 공포일 것 같기도 했다. 겉보기만으로는 수십 갈래의 가늘고 긴 소용돌이들을 촉수처럼 뻗어 내린 초자연적 존재의 형상일 테니까.
「쌔애애애애액-!」
두꺼운 구름층을 가르고 지나가는 극초음속 탄두 한 발. 약간의 시차를 두고 쌔색 쌕 소리를 내며 두 발의 탄두가 더 지나갔다. 세 발 모두 지나간 궤적과 소음으로만 그 존재를 알 수 있는 엄청난 속도였다.
공중전투함이 정지 상태에 돌입하자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일본 방공세력이, 갑작스럽고 급격한 상황변화에 당황하여 미사일을 퍼붓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부 빗나갔다.
‘계산이 맞았나?’
오늘 하루 몇 번째인지 모를 피곤한 안도감이 밀려든다.
사실 안개를 모아 만든 구름만으로는 일본 방공세력의 레이더 탐지를 차단하기 어렵다. 고성능 합성개구 레이더는 위성궤도에서조차 삼사십 미터 깊이의 바다 속을 들여다보는 투과력을 자랑하며, 다수의 이지스 레이더가 연결된 데이터링크는 그 이상의 악천후 투과력을 보여주는 까닭이다.
그러나 두꺼운 안개의 벽 안에 환시장막까지 전개된 상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환시장막만으로는 불완전했던 전파교란을 안개의 벽이 강화해주는 셈이니까.
추가로 나는 전파의 진행과 굴절특성을 고려하여 안개의 덩어리에 서로 밀도가 다른 층들을 수십 겹으로 삽입했다. 각 레이어의 굴절 형태를 달리했음은 물론이다. 이는 자연적인 구름이나 안개에선 절대로 나타나지 않는 특성. 그러니 기존의 AI 데이터 분석으로는 오차를 보정하지 못할 것이다.
허상의 피탄 면적을 무지막지하게 늘려놓은 셈이었다.
또 다른 극초음속의 궤적과 굉음들이 줄줄이 날아들어 구름을 관통했다. 그러나 명중탄은커녕 스쳐 가는 탄두 하나조차 없었다.
“……이렇게 간단한 걸.”
나는 본신의 관자놀이를 누르며 스스로의 아둔함에 쓴웃음을 머금었다. 안개 덩어리의 레이어 구분은 머리가 아픈 와중에 감으로 조율한 작업이어서 잘 될까 싶었는데, 기대했던 그대로의 결과물이 나온 듯하다.
잠시 후,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날아오는 미사일들의 수가 앞서 예상했던 한계치를 순식간에 넘어섰기 때문에.
「쿠우우우우-」
극초음속 질량탄이 연달아 지나가고 난 자리엔 기이하게 울렁이는 울림들이 남았다. 내가 쌓아놓은 구름층들이 전파만 굴절시키는 게 아니었던 탓이다.
충격파를 맞아 갈라지고 흩어졌던 구름들은 몇 호흡 만에 원상태로 돌아갔다. 고속으로 아무는 상처들과 같이. 따라서 미사일의 수량이 많다고 딱히 위협이 되는 건 아니었으되, 지금의 대책을 취하지 않았다면 내가 감수했어야 할 위험의 강도는 예상보다 큰 것이었을 터였다.
이해와 깨달음은 약간의 지연을 두고 찾아왔다.
‘이것들이 영국과 미국을 속였구나.’
지금 일본이 쏴대는 미사일들의 핵심기술은 본디 중국을 겨냥해 개발하던 고속활공탄(高速滑空弾)에서 나온 것이다. 어디까지나 이름만 대공미사일일 뿐, 지상과 해상의 표적을 두루 노릴 수 있는 고성능 무기체계라는 의미.
내가 천안문 광장에서 무더기로 터트렸던 중국의 자랑 둥펑-17(东风-17)이 바로 이런 유형에 속하는 미사일이었다.
이 같은 최첨단 미사일은 당연히 한두 푼 하는 물건이 아니다. 그런데 일본이 쥐어짠 재정엔 우방국들로부터 조건부로 조달한 차관이 포함되어있고, 따라서 일본의 재정 운용은 돈을 빌려준 채권국들의 등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채무자의 파산을 우려해 돈을 빌려준 채권자들이 채무자의 ‘방만한’ 씀씀이를 방관할 리가 있나. 망하지 말라고 빌려준 돈으로 전략무기를 쟁여두는 것부터가 아니꼬운 일이거니와, 재정운용의 합리성을 빌미로 일본의 미래를 제약할 기회를 다른 나라들이 낭비할 이유도 없다.
반대로 일본은, 채권국들이 기존에 빌려준 돈을 날리기 싫어서라도 어쩔 수 없이 돈을 더 빌려줘야 하는 상황에서 최대한 국가의 미래를 챙겨두고 싶었겠지.
사정거리가 500km에 달하는 극초음속 미사일은 고래사냥 이후의 일본이 우수한 가성비로 군사적 억지력을 유지할 수단이며, 미래의 기술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투자 우선순위를 높게 매겨야 하는 무기체계다.
그렇다면 내가 회피한 극초음속 탄두들 중엔 시민들과 우방국들에게 존재를 알리지 않은 폭발성 탄두가 포함되어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안개를 끌어올리지 않았다면 내게 아주 해로운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던 사실이었다.
「퍼펑! 쿠르르릉!」
어두운 도쿄 상공 곳곳에서 산발적인 폭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정황상, 영국 왕립해군이 공중전투함을 지키기 위해 발사한 방공 미사일들을 해상자위대 호위함들과 육상자위대 고사특과가 격추시키면서 발생하는 섬광과 폭음들이었다. 파괴된 방공 미사일들의 잔해가 시가지와 피난민들의 머리 위로 어지러이 떨어져 내렸다.
통상시야를 벗어난 적외선 영역에선 수십 줄기의 레이저 광선들이 쉴 새 없이 뒤얽히고 있었다. 쭉쭉 그어지고 미끄러지다가 사라지기를 거듭하는 광선들이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현란한 빛의 향연을 벌인다.
공중전투함의 정신 나간 레이저 공격에 비하면 수십 분의 일에 불과할 출력의 광선들이지만, 현시대 기준으로는 딱 이 정도가 군용 레이저의 평균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항공기나 미사일을 파괴하기엔 이 정도의 출력으로 충분했다.
바다 방향에서 뻗어와 도시 상공을 가로지르는 광선들은 대부분 왕립해군 함선들이 발사한 것들이었다. 이 광선들은 자위대가 발사하는 모든 종류의 미사일들을 노렸다.
반대로, 같은 바다에서 발사되었어도 보다 커다란 사각(射角)으로 더 높은 하늘을 향해 그어지는 광선들과 육상에서 발사되는 광선들은 왕립해군이 발사하는 요격 미사일들을 노렸다.
「우르릉-!」
천둥을 닮은 잔향이 계속해서 울려 퍼진다. 광선의 그물에 걸리는 미사일들은 여지없이 노을빛으로 번뜩이는 화구가 되어 사라졌다.
지금 내가 보는 이 광경은 방전능력자들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레이저 병기의 도입이 빨라진 결과물이었다.
이토록 요란한 난리가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일 양국은 아직까지 본격적인 전쟁을 개시한 것이 아니었다. 양측이 오로지 ‘방어적인’ 조치들만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공중전투함을 보호하려는 것이고, 일본은 공중전투함으로부터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려는 것일 뿐. 양쪽 모두 서로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은 하지 않고 있다. 레이저 광선들이 천구(天球)를 난도질하고 온갖 미사일들이 숱하게 터져 떨어지는 와중에도, 서로에게 격추당한 항공기는 양측 다 전무하다는 게 그 증거였다.
공중전투함이 두른 안개구름의 덩어리가 또다시 쭉쭉 찢어졌다. 스물세 번째와 스물네 번째 극초음속 미사일이 빗나가며 남긴 날카로운 상흔이었다.
거대한 안개 덩어리를 끌고 다니는 한 고속기동은 무리다. 나는 느긋하게 고도를 높이며 여유를 가지고 시야를 넓혔다.
「우우- 흐우우우우-!」
청각을 조율해야 간신히 들리는 고래의 노랫소리는 아까에 비해 음계가 다소 낮아진 상태였다. 사람으로 치면 지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실제로 고래의 마력회로를 불태우던 과부하의 빛은 처음만큼 강렬하지 않았다. 물의 회전구체는 딱히 줄어든 느낌이 없었으나, 구체 밖에서 염동력으로 빚어 투사하는 파동폭격은 콜리어를 두들겨 팰 때보다 확연하게 약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놀랍도록 오래 버티긴 했지.’
고래가 과부하를 버틴 시간은 과부하의 강도를 감안하면 경악스러운 수준이었다. 나로서도 대체 저게 어떻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도시의 파괴는 정체되어있었다.
이는 목숨을 걸고 고래를 유인하는 비행선들 덕분이었다. 숫자가 다섯으로 늘어난 유인용 비행선들은 외부 환경에 대한 시각적·청각적 관측이 불가능한 고래를 이미 파괴된 시가지 위에서만 움직이도록 유도했다. 그 근방에 추락한 비행선의 잔해와 박살난 크립 밸러스트들이 눈에 띄는 걸 보니, 적어도 한 척의 비행선은 고래의 분노를 피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어쨌든, 애국자들의 필사적인 헌신과 희생 덕분에, 고래의 진격은 도쿄타워 근방에서 아슬아슬하게 저지되었다. 도쿄의 심장이라고 해도 좋을 지요다구(千代田区)가 참화를 피한 것이다. 도쿄도에 속한 항만지대도 절반 이상이 온전하게 살아남았다.
물의 회전구체에 독성물질을 쏟아붓는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는 중이었다.
고래가 두른 해수는 심각하게 오염되어있었다. 나조차 이토록 복합적인 오염의 색채를 본 적이 없을 지경.
이러한 오염의 독성을 고래가 견뎌내고 있는 건 인간과는 격이 다른 생체강화에 더해 수중호흡을 하지 않는 특성, 그리고 고래종 특유의 두꺼운 외피와 우월한 외피재생능력 덕분인 것 같았지만, 이대로 간다면 고래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두 가지,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첫째. 아무리 유인을 당하고 있다 하나, 지구 자기장을 감지하여 방향을 잡는 고래라면 자신이 같은 자리를 빙빙 돌고 있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어야 정상이다. 자기장을 느끼는 동물들의 생체강화는 자기장에 대한 민감도도 함께 높여주니까.
단순히 분노로 판단력이 흐려졌다고 단정짓기엔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고래는 이미 자신이 따라잡기 어렵겠다고 판단한 사냥감을 오래 쫓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다음으로, 간과하기 쉽지만, 지금의 고래에게는 마력장을 느끼는 감각 외에도 제한적으로나마 외부환경을 파악할 수단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물의 흐름을 다스리는 원시마법.
전율하는 거인의 지혜가 그러하듯이, 물의 흐름을 다스리는 힘은 물의 존재를 느끼게 해주는 힘이기도 하다. 그러니 고래는 시내의 강으로부터든 가까운 항만의 내륙수로부터든 새로운 물을 끌어올려 방어수단의 수질 개선을 시도할 수 있었다.
그러니 점점 더 강해져만 가는 독기를 묵묵히 참아내는 모습이 의아할 수밖에.
마치 멀리서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양, 고래는 비행경로를 바꾸며 행동으로 답을 보여주었다.
「우우우우-!」
신화적인 바다괴물은 마력회로의 손상으로 위력이 감소한 파동폭격을 중단했다. 대신, 파동폭격에 쓰던 힘을 자신이 두른 물의 회전구체에 집중시켰다.
「쿠구구구구!」
구체의 회전이 가속을 더해가며 격렬해짐에 따라, 거대한 폭포의 그것을 닮은 물 흐르는 소리는 급격히 가청거리를 늘려갔다. 그러다가 결국, 구체 표면에 작용하는 원심력이 물을 붙잡아두는 원시마법의 구속력을 능가하는 시점이 찾아왔다.
쉽게 말해, 물의 회전구체가 바깥 표면부터 얇게 깎여나가며 세찬 장대비를 뿌리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에게 해로울 유독성의 호우(豪雨)를.
전쟁과 복수의 노래를 부르며 고도를 높여가는 고래를 보고 있으려니, 머리가 아프고 피로가 쌓인 와중에도 헛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하…….”
그런가. 자신의 힘이 다해간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파동폭격을 대신할 최후의 공격수단을 준비한 것이었나.
내 짐작이 옳다면 고래는 지금껏 인간들을 기만해온 것이다. 그저 소방헬기들이 오가는 화학무기 거점과 가까워, 구체의 독성이 더 빠르게 강해지는 공역을 맴돌았을 뿐. 헬기들을 포착할 능력은 없을지라도 독성물질이 유입되는 주기를 느낄 수는 있었겠지.
나는 고래가 대체 얼마나 깊은 한과 분노를 쌓아두었던 것인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