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도쿄대공습 (4)
흐린 달빛이 내려앉은 철도차량기지 주변엔 어느덧 두 개 중대 규모의 자위대 병력이 증원 배치된 상태였다.
그 외에도 화생방 방호차량들을 공수했던 학교 운동장엔 81mm 박격포들이, 서쪽으로 1km 이상 이격된 또 다른 학교 운동장엔 각성능력자들이 도수 운반으로 가져온 120mm 중박격포들이 깔려있었다.
당장 내 눈에 보이는 것들만 해도 이 정도인즉, 보이지 않는 거리엔 더 많은 병력과 화력이 배치되고 있을 게 뻔했다. 「환시」를 내장했다고는 해도, 인형들이 뚫고 나가기엔 과하게 두꺼운 병력과 화력의 장벽이다.
대마법사가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얼마든지 많았다.
나는 우선 물안개를 불러오는 것부터 시작했다.
애써 지저의 물을 끌어올릴 것도 없이, 생체전투함의 마력장이 닿는 범위 내엔 세타가야, 메구로, 시나가와 3개 구(区)를 가로지르는 메구로(目黒) 강이 흐르고 있었다. 현 위치로부터 가까운 물굽이까지의 거리는 고작 7백 미터 가량에 불과했다.
바람의 방향이 조금 아쉽긴 하다. 그러나 이건 물에 대한 지배력으로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였다. 자위대가 바람과 안개의 흐름 사이의 불일치를 알아차리려면 다소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끝까지 알아차리지 못할지도 모르고.
「솨아아아-」
북쪽 물굽이로부터 짙고 차가운 안개가 스멀스멀 밀려 내려오자, 견고한 봉쇄망을 구축해두었던 자위대는 급격한 혼란에 빠져들었다.
그렇잖아도 괴기스러운 생체전투함이 선사하는 공포를 애써 억누르고 있었던 자위대원들이다. 실시간으로 감소하는 가시거리는 자위대원들의 극기력을 무너뜨렸다.
이제 대부분의 자위대원들은 억지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인 겁먹은 개개인들로 변모했다. 나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인형들을 풀어주었다.
“나아아아아! 돌아갈래애애애애!”
시체인형들은 쩌렁쩌렁하게 소리를 지르며 안개 속으로 달려 나갔다. 인형들이 일본어로 내지르는 소리들은 바깥을 포위하고 있던 자위대원들을 더더욱 당황하게 만들었다.
“어어어어머니이이이이(おかああああさああああん!)”
봉쇄선의 자위관들 입장에선 아무 소리도 없이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편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의미가 성립하는 일본어로 고함을 질러 미리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달려 나갔으니, 상대가 사람이라고 판단한 자위대원들의 대응은 다소 신중하고 소극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흡음결계를 펼쳐 봉쇄선의 자위대원들을 청각적으로 교란했다. 시체인형들의 소리가 엉뚱한 방향에서 엉뚱한 거리감으로 들리도록 손을 쓴 것이다.
덕분에 양측의 상호 인지는 고작 20미터도 안 되는 간격을 두고 기습적으로 이루어졌다. 전투인형들의 마력장을 감지하고서야 뒤늦게 시선과 총구를 돌린 자위대원들은, 일렁이는 안개 속에서 깜빡이고 이지러지며 달려오는 인형들을 보고는 소스라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카카카캉!」
동료들이 죄 도망치거나 얼어붙거나 주저앉거나 실신하거나 하며 온통 패닉에 빠져있는 가운데, 어느 자위관이 비명인지 함성인지 모를 소리를 지르며 발작적으로 갈긴 연사가 인형들을 자극했다.
그러나 명중탄은 단 한 발도 나오지 않았다. 환시의 영향에 엉망인 조준이 더해진 결과였다.
“쐈어?! 쐈어?! 쐈어?! 쐈어?! 쐈어?!”
“왜?! 왜?! 왜?! 왜?! 왜?!”
“퇴에에에그으으은! 아빠? 아빠? 아빠가 간다아아아아!”
내가 인형들에게 내린 명령은 「방해되는 것들을 모조리 죽이고 파괴해라.」였다. 분노한 인형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질러대며 사나운 응사를 개시했다. 환시의 왜곡은 일방으로만 작용하는 까닭에 인형들의 조준을 방해하지 않았다.
「카카캉! 카캉! 카카카캉!」
연쇄적인 총성들이 터져 나왔다. 지능이 다소 저하되었어도 몸에 제2의 본능처럼 새긴 전투기술은 남아있다. 사람을 죽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는 인형들이라는 뜻이다. 재료가 자위대의 정예여서 좋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인형들은 노리쇠가 빈 약실을 칠 때마다 거친 동작으로나마 재장전을 해내었고, 개중 하나는 놀랍게도 방금 사살한 자위대원들의 시체에서 수류탄과 탄창을 챙기는 모습마저 보여주었다.
간단히 승리를 거둔 인형들은 다시 제각각의 소리를 지르며 안개 속으로 달려 나갔다.
“마유키이이이이! 금방 돌아갈게에에에에! 사랑해애애애애!”
질주하는 인형들은 나로부터 마소 과급(過給)을 받는 중이었다. 생체전투함의 마력장으로 인해 마소 장악력이 저하되어있는 자위대 각성능력자들보다 비교우위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사망한 자위대원들의 시체는 더 이상 고유한 마력장의 보호를 받고 있지 못했다.
나는 이 시체들 가운데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것들을 골라 「소생」으로 일으켜 세웠다. 영혼이 흩어진 다음이라 교토의 대호에게 그러했듯 가짜 영혼을 빚어 부어야 했고, 원격으로 쓰는 「소생」이어서 한층 더 투박함이 더해졌으되, 혼란을 확산시키기 위한 소모품으로서는 충분히 쓸모가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시체인형들의 사리에 맞지 않는 언행은 공포에 미쳐버린 사람을 아주 많이 닮아있지 않은가?
이런 인형들을 꾸준히 늘려가며 봉쇄선을 압박하면, 자위대 입장에선 정신이 나간 채로 도움을 청하는 처참한 몰골의 동료 자위관들이 무더기로 밀려드는 꼴이다. 외면할 수도 없고, 감당하기는 어렵고, 군중심리에 의한 공포는 갈수록 더해지는 상황이 조성되는 것.
불빛을 깜빡거리며 낮은 고도를 비행하는 드론으로부터 신경질적인 고함이 터져 나왔다.
「모두 제자리를 지켜라! 정해진 위치를 벗어나지 말란 말이다!」
나는 봉쇄선의 자위대원들이 가지고 있던 무전기를 염동력으로 노획했다.
다소 볼품없는 모양새지만, 아비터와 트라운서의 통신계통이 복원되지 않은 지금으로선 함체 외벽에 무전기를 고정시켜 놓고 귀를 만들어 엿듣는 정도가 최선이었다. 함선 안쪽으로는 외부전파가 닿지 않으니까.
지휘부는 당혹감과 분노를 함께 드러내고 있었다.
「이 겁쟁이들! 뭐가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개라는 거냐! 도망치고 싶어서 핑계를 대고 있을 뿐인 주제에!」
내가 불러들인 안개는 통상시야의 가시거리가 20미터 안팎에 머물 만큼 농밀했다. 그러나 수직적인 깊이는 그 절반인 10미터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즉 전장을 수평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자위대원들의 시야와, 드론을 통해 내려다보는 지휘부의 시야는 투명도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서 관측하는 전장은, 처음보다 조금 부옇게 흐려지긴 했을지언정 전장파악엔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이다. 내가 다른 방법을 다 미뤄두고 안개부터 불러들인 이유였다.
차단선의 자위대원들에게도 수색조원들과 같은 네트워크 연동 바디캠이 있었다면 사정이 달랐을 터. 그러나 일반 보통과(보병) 대원들에겐 그런 장비가 보급되지 않았고, 시스템도 마련되어있지 않았다.
미군의 돈지랄은 아무나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따라서 생체전투함은 얌전히 있는데 자위대원들이 발작을 일으킨다고 믿는 지휘부는 계속해서 헛발질을 해댔다.
「특수무기방호대는 안개에 환각 성분이 포함되어있는지 확인해볼 것! 자위관들이 일으키는 집단 착란엔 고래를 노려 뿌린 독성물질의 영향이 있을지도 모른다! 각급 제대 지휘관들은 대원들의 정화통 교체를 감독하라!」
군용 방독면의 정화통은 생각보다 유효 방호시간이 짧은 물건이다. 걸러야 할 화학작용제의 종류에 따라서는 불과 5~6분 만에 완전방호능력을 상실하기도 한다. 지휘부가 안개의 성분을 의심하는 데엔 나름 타당한 근거가 있는 셈이었다.
「뭐? 아무 이상도 없다고? 그럴 리가! 다시 확인해!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발생해서 낮게 깔리는 안개가 보통의 안개일 리 없잖아! 비중(比重)만 봐도 분명히 뭔가가 있어!」
수색조원들의 시체인형에 심어놓은 환시는 전방위적인 것이 아니다. 따라서 지휘부는 일선에서 빗발치는 ‘깜빡이 귀신’에 대한 목격보고들도 그저 착란의 결과물이라고만 판단했다. 그렇잖아도 도쿄 광역권 전체에서 항명과 집단 도주 보고들이 줄을 잇고 있을 테니, 확증편향에 사로잡히기도 그만큼 쉬울 터였다.
안개가 생체전투함에서 흘러나온 게 아니라 멀찍이 떨어진 강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도 지휘부의 오판을 깊게 만들었다. 강에 대량으로 유출된 모종의 화학물질이 물과 반응을 일으켜 비정상적인 안개가 발생했으리라 의심하고 있는 것이었다.
일본 정부는 앞서 고래가 도쿄 만 입구에 도달할 즈음부터 항만지대에서 온갖 종류의 독성물질을 퍼부어댔다.
오가는 교신을 가만히 들어보건대, 아무래도 그 생화학 공격 작전의 거점들 중 하나가 여기서 동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모양이다. 어쩐지 고래에게 독을 뿌리는 소방헬기들이 가까운 항만지대를 꾸준히 들락거린다 했다.
해당 거점으로 이동하던 중 도로 사정으로 버려진 화학물질 탱커가 있었고, 그 탱커가 말썽을 일으켰다고 가정하면 지금 이 상황도 쉽게 설명이 된다.
이럴 때일수록 경계해야 마땅한 쉬운 설명의 함정이었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생체전투함 가까이에 버려진 화생방 정찰차에서 공허한 사이렌 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나는 원격으로 스위치를 조작하여 소음을 제거했다. 시끄러운 소음이 사라지자 먼 곳의 소란과 비명들이 더 분명하게 귀에 들어온다.
현장과 후방의 괴리가 누적되는 사이, 공포의 확산은 점점 더 돌이키기 어려운 흐름이 되어갔다.
나는 이산화탄소와 일산화탄소 등을 모아 뭉친 질식성 기체의 덩어리를 이용해 자위대 시체인형들의 수를 더욱 빠르게 늘려가는 한편, 아직까지도 차량이나 건물 안에 버티고 있던 민간인들마저 호흡곤란을 느끼며 길거리로 뛰쳐나오도록 만들었다.
갈수록 숫자가 많아지는 자위대 시체인형들과 겁에 질린 민간인들이 뒤섞인 인의 물결이 귀신 소동과 맞물려 상승효과를 일으켰다.
‘그래. 다 도망쳐라.’
전방이 뚫리면 후방에 배치된 병력들 역시 자리를 지킬 재간이 없다. 내 눈을 벗어난 위치의 특과(포병)와 고사특과(방공) 세력들은 지금 두려움에 젖어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중일 것이다. 어쩌면 연대나 사단 본부의 구성원들까지도.
지상의 혼돈이 기하급수적으로 부풀어 오르는 가운데, 그리 멀지 않은 하늘에서는 왕립공군과 항공자위대의 신경전이 한창이었다. 제트 엔진의 불빛들이 서로를 위협하는 비행을 이어간다. 제트 엔진의 배기음들이 여기까지 닿는다.
당장은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동체충돌의 위협을 가할 뿐이지만, 언제 우발적인 교전이 시작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위태로운 형세였다.
점멸하는 인형들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마침내 아비터-트라운서 융합체를 이륙시켰다.
「-」
환시 장막과 염동방어를 두른 생체전투함의 수직 상승은 어떠한 소음도 없이, 부자연스러울 정도의 고요함을 유지하며 이루어졌다. 안정을 회복한 조립식 아기들에겐 더 이상 울기 위한 입들이 필요하지 않았다.
고도계는 아비터와 트라운서 양쪽에서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몇 안 되는 계기들 중 하나였다. 상승속도는 초당 10피트 언저리에서 시작하여 초당 70피트까지 빠르게 증가했다.
그리하여 함선의 고도가 5백 피트에 도달할 때까지도 자위대로부터의 공격은 전무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와중에도 가벼운 만족감을 느끼는 찰나, 대기를 찢어발기며 날아든 엄청난 고속의 무언가가 염동방어를 뚫고 들어와 함체 상단까지 관통했다.
「투쿵-!」
관통에 따른 충격이 먼저 느껴진 연후에 비로소 바람 찢어지는 굉음이 선체를 후려친다. 워낙 순식간에 이루어진 관통이라 진동은 몹시도 짧고 강렬했다.
무엇에 맞은 것인지는 딱히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일본이 파도 위로 비상하는 고래를 죽이고자 준비한 초고속 고중량의 금속작살, 극초음속 운동에너지 탄두 대공미사일이었다.
일본 정부가 국민들을 안심시키고자 적극적으로 홍보한 이 미사일의 속도는 마하 15. 시속으로는 18,360km, 초속으로는 5,100미터에 달한다.
이건 내 상태가 멀쩡했어도 눈으로 보고 대응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며, 막는다고 막아질 위력도 아니었다. 이 미사일의 관통력은 콜리어가 전자기 가속을 걸어 강화한 전열화학포의 철갑탄 포격조차 압도한다.
그래서 나는 아예 함체로 받아낼 것을 염두에 두고 염동방어의 강도를 설정해놓았다. 기왕 맞을 거라면, 전열화학포에 맞을 때 그러했듯 깔끔하게 관통당하는 편이 나은 까닭이다.
다만 내 주변에 한해서는 두터운 염동방어를 둘러놓았다. 최소한 파편에 맞아 죽을 일은 없게끔.
「쐐애애애애액!」
함선 안쪽까지 파고드는 날카로운 굉음. 두 번째의 극초음속 작살이 가까운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이렇게 빗나가는 걸 보면 환시장막은 제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게 맞다. 다만 환시장막의 스텔스 성능이 불완전한 게 아쉬울 따름.
흐린 상(像)에 대고 쏘더라도 여러 발을 쏘면 명중탄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일본은 다수의 이지스 레이더와 합성개구 레이더들을 보유한 상대이지 않나.
나는 혀를 한 번 차고서 피곤한 한숨을 내쉬었다.
위험부담은 아비터만을 장악한 채 트라운서와 포격전을 벌이던 때와 같다. 눈먼 관통탄에 내가 직격당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확률을 따지면 높게 잡아도 천분의 일 이하가 되지 않을는지.
그러나 바꿔 말하면, 맞을 확률이 아무리 희박하다 한들 결국은 생사를 또다시 운에 걸어야 한다는 뜻. 예상도 했고 각오도 했지만 불쾌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긍정적인 요소는 일본의 극초음속 대공미사일 보유량이 많지 않다는 점. 일본은 벼랑 끝의 재정을 쥐어짜 간신히 2개 고사군 8개 포대를 편성했을 뿐이다. 일본이 공유한 정보가 정확하다면, 1개 포대당 미사일 보유량은 단 두 발이었다.
고래를 잡으려고 준비한 미사일을 내게 다 퍼부을 순 없는 노릇이고, 벌써 두 발이 날아왔으므로, 앞으로 날아들 미사일의 숫자는 최대로 잡아도 십여 발 정도가 한계일 것이다. 트라운서를 상대로 치른 포격전에 비하면 이 정도는 잠깐의 고비에 불과했다.
‘불태우는 방역’이 아니더라도, 생체전투함을 가지고 전장을 이탈하려면 어차피 감내해야만 하는 부담이다. 이딴 작은 위험 때문에 포기하기엔 전리품으로서의 생체전투함이 너무나 가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저 멀리서 유인용 비행선의 움직임을 따라 방향을 바꾸는 고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내가 왜 이 간단한 생각을 못 했을까. 지금 내 상태가 많이 안 좋기는 한 모양이다.
고래가 두른 물의 구체는 내게 좋은 영감 하나를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