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46화 (446/561)

#45. 도쿄대공습 (3)

새로운 전향자들이 콜리어의 유해와 함께 가져온 전 주인의 유산들 중에는 확장회로의 원형이라고 봐도 무방할 장기(臟器) 보관함이 포함되어 있었다.

내게 이 보관함을 바친 3등위 기사장교는 낮게 엎드려 이것의 이름을 고했다.

“저희가 어리석음으로 섬겼던 자는 이 궤(櫃/Ark)를 「정결한 자들의 집」, 혹은 마도서(Grimoire) 「버금가는 고결함의 봉쇄수도원」이라고 불렀습니다.”

봉쇄수도원이라는 작명은 내용물에 비추어 볼 때 굉장히 어울리는 것이었다. 왜냐면 궤의 내용물이 가장 열성적인 추종자들의 살아있는 뇌였기 때문이다.

“감각을 버리고 오직 의식만을 남겨, 빛도 소리도 없는 세계에서 끝없이 기도를 바치며, 주의 말씀이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고 그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삶……. 이 궤 안에 들어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섬김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인 수도기사들의 뇌입니다.”

가로 길이는 두 규빗 반(112.5cm)이고 세로 길이는 한 규빗 반(67.5cm)이며 높이가 다시 한 규빗 반인 궤 형태의 생체마도서 봉쇄수도원은 여호와가 모세에게 일러 만들게 했던 언약의 궤와 정확하게 크기가 같았다.

금으로 감싸고 금테를 한 번 더 둘러놓은 궤의 겉면엔 시편 105장의 변형된 글귀들이 각인되어 있었다.

「사람의 아들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이 알게 할지어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말할지어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주님께 언약을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우리로다. 주님과 주님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주님의 존귀한 본질을 항상 그릴지어다.」

「그는 콜리어 우리의 구세주이시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으며 그는 그의 언약 곧 천만 년간 잊혀졌던 진리의 말씀을 영원토록 기억하셨으니……」

이러한 궤 안엔 뇌수가 가득 차있었고, 뇌수 안엔 저마다 뇌막(腦膜)에 감싸인 105개의 뇌가 무중력 속에 떠있기라도 한 것처럼 미세한 움직임으로 둥실거렸다. 각각의 뇌가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평범한 성인 남성이라면 한 사람도 구겨 넣기 어려운 공간에 백 명이 넘는 인간들이 들어있는 셈이었다.

105개의 뇌는 서로 신경다발이 연결되어 있었다. 모두가 마법사의 뇌이기에, 궤짝만으로는 채우지 못할 두개골의 부재를 대신하는 것은 상시 활성화되어있는 약간의 염동력이었다.

나는 이 뇌의 주인들이 독립된 자아의 경계조차 희미해진 상태이리라 짐작했다. 마법사로서의 능력 일부와 인간으로서의 사고력 일부, 그리고 주인을 숭배하는 마음만이 남아있는 의식들의 연결망인 것이다.

처음부터 조립식으로 만들어진 영혼들은 아닌지라 하나하나의 뇌는 독립된 마력회로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장기간의 동조를 거쳐 개개인의 구분이 희미해진 의식들의 회로 운용은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일사불란할 가능성이 높았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이런 도구가 있으니 그런 터무니없는 짓이 가능했겠지.’

트라운서에 대한 지배력을 다툴 때, 콜리어가 신경계 장악으로 내 회로장악에 맞설 수 있었던 배경이 이제야 겨우 이해가 갔다.

궤짝의 화려한 덮개(속죄소/Atonement cover)엔 신경망과 연결 가능한 접속단자 같은 것이 존재했다. 전향자들은 이 마도서를 확보할 당시, 마도서가 죽은 주인과 마찬가지로 생체전투함과 신경이 연결되어 있었노라 증언했다. 거대 인간혼합물의 신경중추를 매개로 주인의 지시를 하달받아 함선 운용을 보조하는 자율제어 시스템 역할을 했던 게 아닐까?

「콜리어가 제작한 마도서는 이게 전부인가?」

아기들의 입을 빌린 내 물음에, 엎드린 기사장교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봉쇄수도원의 수는 모두 합쳐 12궤입니다. 콜리어…… 으음, 콜리어는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제1궤만을 가져왔고, 나머지 11궤는 본령(本領)을 지키고 가문의 적자(嫡子)를 단련시키기 위해 남겨두고 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기사는 아직 전 주인의 이름을 입에 담기 힘들어했다. 기사의 이마는 식은땀에 젖어 번들거렸다. 나는 모르는 척 질문을 이어갔다.

「가장 강력한 1궤인데 이름은 왜 ‘버금가는 고결함’의 수도원이지?」

“으뜸으로 고결한 것은 마도서의 주인인 콜리어 자신이었으니까요. 그 수도원에 들어간 자들이 콜리어 자신의 다음으로 고결하다는 의미라, 그를 섬겼던 저희들의 입장에선 더없는 총애의 표현이었습니다.”

「나머지 11궤와 이 마도서 사이의 격차가 어느 정도인지는 아나?」

“굉장히 큽니다. 봉쇄수도원에 들어가는 영광……이 흔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수도원들에 들어가 있는 수도기사들의 수를 다 더해야 비로소 버금가는 고결함의 봉쇄수도원보다 조금 더 많아질 것입니다.”

듣고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열두 개의 궤에 각각 105개의 뇌를 넣는다 치면 필요한 뇌의 숫자는 자그마치 1,260개에 달한다.

평범한 인간 실험체의 뇌라면 모를까, 추종자들의 뇌만 뽑아서 그 숫자를 채우는 건 이만저만 무리가 아니다. 그 무리를 해서 만들어놓아도 유지관리에 다시 무시 못 할 품이 들겠지.

‘요컨대 이건 가주의 신물 같은 것인가.’

나는 궤짝 속 뇌 연결망에 흐르는 불안과 초조함의 색채를 읽어냈다. 특이한 건 그 색채가 그렇게까지 강하진 않다는 점. 아무래도 콜리어의 영혼과 의식을 고립시킨 별의 결계로 말미암아 주인의 죽음을 감지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갑작스럽게 주인의 존재감이 사라졌으면 이보다 더 불안해해야 정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납득했다.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이 가장 복된 법이다. 누구보다 믿음이 강한 추종자들을 모아 뇌를 적출했을 테니, 이 생체마도서의 구성요소들에겐 주인이 죽거나 패배할 가능성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더없이 불경스러운 일일 터였다.

믿음이 맹목적인 만큼 불안은 약해진다.

나는 궤짝 안의 뇌들을 당장은 속이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만전의 상태로 도전해도 성공을 장담하지 못할 과제다.

잘못 건드렸다간 105개의 뇌들이 일제히 절망으로 쪼그라들며 자기파괴를 감행하는 모습을 보게 되지 않을는지.

“…….”

다행히 서두를 필요는 없어 보인다. 뇌들의 감정은 그럭저럭 안정되어있고, 덮개에 붙은 인공심장과 투석장치, 비경구 영양공급장치도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중이다. 앞으로 네다섯 시간 가량은 내버려두어도 무방하겠다 싶었다. 그 후로도 영양만 계속 공급해준다면 망가질 일은 없을 테고.

나는 전향자들의 정신에 쐐기를 박은 후 이들을 다시 함선 곳곳으로 흩어놓았다. 기사들의 정신은 아까보다 많이 안정되어 있었다. 다른 전향자들과 대면함으로써, 자기 혼자만 주인을 바꾼 게 아님을 알게 된 까닭이 클 것이었다.

원탁의 기사들도 결국은 인간이고, 인간은 누구나 군중심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제 기사들은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 속에서 자기방어기제의 작용을 더해 새로운 믿음의 성을 쌓기 시작할 것이다.

영적 자살의 우려가 없는 생존 승조원들의 경우, 당장은 그저 조용한 곳에 가둬두기만 해도 충분했다. 이들은 더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정적이 계속됨에 따라 조금씩 침착함을 회복하는 중이었다.

이러는 동안 확장회로 재구축과 전투함 수리도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자위대를 상대로 시간을 벌기가 너무 쉬워서 눈꺼풀이 자꾸만 무거워지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조장.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통신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통신 담당 대원의 말에 수색조장이 주먹을 움켜쥔다. 화가 나서가 아니라, 깊어지는 두려움에 따른 반사적인 반응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거냐?”

반문을 들은 통신 담당은 어물어물하며 답했다.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어쩌면 여기서 돌아가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고…….”

“돌아가면? 수색은 어쩌고?”

“이럴 땐 원래 사람보다 로봇을 먼저 넣는 게…… 맞는 순서 아니었습니까?”

“이 바보가……. 유선연결로도 통신이 점점 어려워지는데 로봇은 어떻게 조종하게?”

“어, 그, 인공지능 자율탐색 모드로…… 한 번 돌려서…… 원점으로 나오게 하면…….”

고뇌하던 조장은 통신 담당의 말대로 통신선 저편의 지휘관에게 건의를 전달했다. 실시간 영상 송수신이 어려워짐에 따라 현장파악에 있어 음성통신에 의지하는 비중이 높아진 지휘부는, 조장의 건의를 듣고 불같이 화를 냈다.

「웃기지 마라! 꼴사납게 징징대는 것도 정도가 있지! 너희들 지금 이동거리가 채 백 미터도 안 된단 말이다!」

수색조의 이동거리는 방차통이 얼마나 풀렸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조장은 진심으로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그, 그것밖에 안 됩니까? 굉장히 깊게 들어온 것 같습니다만.”

「애새끼처럼 겁에 질려있으니까 그렇겠지! 게다가 로봇이 오려면 시간이 걸리고, 로봇 탐색 결과를 기다리려면 추가로 시간이 걸리잖아! 로봇이 뭔가를 찾아내더라도 그걸 다시 사람이 확보하러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또 어떻고?! 그 사이에 중대한 손실이 발생하면 네가 다 책임질 거냐?! 엉?!」

“…….”

「머저리 같은 놈들! 닥치고 수색을 속행해! 이건 명령이다!」

수색조는 몹시도 무거운 걸음걸이로 탐색을 재개했다. 때로는 앞에서, 때로는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조립식 아기들의 비명과 흐느낌이 자위대원들의 심지를 꾸준하게 깎아나갔다. 초상적인 공포에 가장 취약해 보이는 통신 담당 대원은 이빨을 따닥따닥 부딪치며 공간도약, 지옥, 살아있는 배 같은 단어들을 듬성듬성 중얼거렸다.

섬나라 애국자를 재료로 쓴 시체인형이 여왕의 장수를 기원했던 것처럼, 「소생」을 통한 시체인형 제작은 재료가 되는 인간의 생전 심리상태에도 영향을 받는다.

나는 이들의 공포가 무르익기를 기다려 이들의 목숨을 수확했다.

제압은 순식간이었다. 바로 발밑에서 올라온 조립식 아기들의 혀들이 발목을 붙잡고, 마찬가지로 천장에서 길게 내려온 혀들이 교수대의 밧줄처럼 목을 휘감아 사형수들을 들어올렸다.

“컥- 커걱-!”

목이 매달린 채 버둥대던 대원들은 이내 목구멍으로 들어온 혀와 체내에서 가해진 방전에 의해 심정지 상태로 전락했다. 나는 조장과 통신 담당만을 인형으로 변환하고, 나머지는 전부 생체전투함의 신선한 연료로 바꾸었다.

조금 아쉬운 점은 열량이었다. 자위대원들은 몸이 잘 단련되어 있었지만, 영국군의 정예에 비하면 아무래도 열량이 모자란 편이었다.

조장과 통신 담당의 시체인형은, 내 의지를 받아 생전과 같은 목소리로 현장 지휘소에 통신을 보내었다. 지휘소가 질색을 하는 ‘징징거림’이었다.

“돌아가게…… 해주세요……. 부탁입니다…….”

“엄마…… 보고 싶습니다……. 아내…… 보고 싶습니다…….”

당연히 지휘소는 격노했다. 이미 죽은 자위관들을 상대로 힐난과 명령을 쏟아내는 지휘소는 내게 더 많은 여유를 선물해주었다.

시간이 흐르자 추가 조사대가 들어왔다.

이즈음엔 두 전투함을 하나로 재구축하는 작업이 일단락되어, 자위대가 가할 공격을 다 막아내거나 교란하거나 함체로 받아내며 이륙할 준비를 마친 참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내 집중력이 온전치 못하고 생체전투함의 연료도 부족한 관계로, 이륙 과정에서 쏟아질 화력은 적을수록 유익하다. 이 시점에 이르러서는 과히 서두를 이유도 없는지라, 나는 시체인형들을 활용하여 자위대의 대응능력에 과부하를 걸어보기로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이쪽이 공격을 가한다거나, 극도로 치명적인 통제 불능 사태가 발생했다거나 하는 인상을 주어선 곤란하다.

‘그건 최고결정권자의 결단을 강요하는 길일 테니.’

일본은 악명 높은 매뉴얼의 나라다. 상세하게 규정된 업무처리절차와 책임소재의 안정감이 뼛속까지 배어있을 자위관 및 관료들은, 그러한 안정감을 박탈당한 지금 난리 한복판에 알몸으로 내팽개쳐진 듯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생각하기로는, 전혀 상정하지 못한, 하지만 극도의 위기까지는 아닌 사태를 추가로 얹어주는 것만으로도 업무책임 미루기의 도미노와 보고체계의 마비 및 의사결정과정의 경색을 유발할 수 있을 공산이 컸다. 거기에 정신이 팔려있으면 가장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도 기민한 대응이 어려워지겠지.

한 가지 더 꾀하는 바가 있다면, 현장과 후방의 괴리를 키우는 것.

후방에서는 현장에서 체감하는 공포를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 탁상머리에 앉아 보고를 받기엔 그렇게까지 큰일이 아닌데, 현장에서는 더는 견디지 못할 끔찍한 공포인 그런 상황을 만들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

황금기의 눈으로 보기에, 생체전투함을 응시하는 자위대원들의 공포는 이미 한계수위 직전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규율과 인내의 둑은 한 줌의 공포를 더 뿌리는 것만으로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

……일이 생각처럼 흐르지 않으면 별수 없다. 그냥 이륙을 강행하는 수밖에. 들이는 품이 가벼우니 밑져도 그만이다. 잠시 숨을 돌린 것으로 치면 된다.

다만 한 가지 확신해도 좋은 것은, 일본 정부와 자위대 관계자들의 심신은 나 이상으로 소모된 상태이리라는 점.

나는 원래 있던 시체인형들에 더해 새로 들어온 조사대를 추가로 인형화했다. 그리고 개별 인형들의 근육을 가볍게 10킬로그램 정도씩 늘려주는 한편, 인형들의 회로에는 「환시」의 코드를 삽입했다. 이는 인형 윌리엄의 내부에 역병의 코드를 심어 넣었던 웨스트버튼의 기술을 모방한 것이었다.

물론 인형에 들어간 환시는 몹시 불안정하게 작동했다. 설령 웨스트버튼이 되살아난다 하더라도 이토록 짧은 시간에 상등품을 빚어낼 순 없었다.

그러나 당장은 고장난 형광등처럼 불규칙하게 깜박거리거나, 가시광선-적외선 영역의 형상이 볼록렌즈를 끼고 보는 신기루처럼 마구 흩어지고 일그러지는 수준의 환시만으로도 충분했다. 무리한 코드 삽입으로 인형의 수명이 크게 줄어든 것 또한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깜박깜박 점멸하며 악몽처럼 이지러지는 중무장 시체인형 자위대원들을 도쿄의 남쪽 시가지에 풀어주었다.

인형들에게 내린 명령은 간단했다.

그리운 집으로,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로 돌아가라.

그리고, 그에 방해가 되는 것들은 모조리 죽이고 파괴해 버려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