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45화 (445/561)

#45. 도쿄대공습 (2)

가만히 생각하던 나는 파괴적인 사고의 흐름에 제동을 걸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 내 판단력은 과연 온전한 상태인가?

답은 “아니다.”였다.

생사의 경계에서 내 능력을 바닥까지 긁어 쓰며 가혹한 연전(連戰)을 치렀고, 혐오스러운 영생의 별이 깨지면서 남은 상실감도 내 정신에 여전히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휴식이 절실한 상태에서 억지로 머리를 굴리다 보니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충동이 엄습해오는 상황.

이런 상황에선 나 자신을 평소만큼 신뢰하기 어렵다. 이 순간 내 머리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사고엔 무언가 하자가 있으리라 가정하는 편이 현명할 터였다.

자기 점검이 여기에 이르자 또다시 경태와 수연 두 녀석의 부재가 체감되었다. 나 자신에 대한 객관화를 도와주는 참모들은 균형 잡힌 판단을 내리는 데 있어 몹시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그 둘에게 연락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연락수단 자체는 가지고 있으되, 엉망진창이 된 생체전투함 내부에선 전파가 터지지 않고, 터진다 한들 이 위치에서 전파를 내보내는 건 제발 추적해달라고 고사를 지내는 꼴이니까.

내가 두 녀석에게 연락을 시도할 마지막 기회는 자위관 후지이의 제트 바이크를 강탈하여 포경비행선 쇼난마루에 침투하기 전까지였다.

지금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판단력에만 의지해서 이 밤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이제껏 거둔 승리가 워낙에 압도적이니, 마무리가 다소 엉성하더라도 아쉬운 대로 받아들일 만한 결과일 것이다.

화생방 정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어느덧 아비터와 트라운서의 지척까지 다가왔다.

「이제 우리 대원들이 들어갑니다! 대원들은 여러분을 도와주려는 것이니 절대로 저항하지 마십시오! 반복합니다! 절대로 저항하지 마십시오! 부상자가 있다면 치료를 제공할 것이며,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식사와 안전한 숙소가 주어질 것입니다!」

일본 입장에서, 살아있는 승조원들은 많이 확보할수록 좋다. 공중전투함에 대한 기술적인 분석은 물론이고, 영국과의 협상 테이블에서도 유용한 카드가 되어줄 터이므로. 생존 승조원들에게서 일본에 유리한 진술을 뽑아낼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유익하기도 어렵다.

지휘관의 온건함과 친절함엔 다 이유가 있는 셈이었다.

마침내 자위대 수색조가 거대 인간혼합물의 내부로 들어왔다.

“으……아…….”

선두로 진입한 자위대원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다.

한 덩어리로 뭉친 생체전투함의 내부는 외견 이상으로 흉물스러웠다. 조립식 아기들에게 잡아먹힌 영국군 상사의 말마따나, 사탄의 찢어진 창자처럼 생겨먹은 공간.

불빛이 닿는 곳마다 진피(眞皮)와 장기의 색채를 띠고서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통로의 모습은 중무장한 일본인 각성능력자들을 붙박이로 만들어버렸다.

“누, 눈들이 우리를 보고 있어…….”

“이거…… 설마 사람…… 사람으로 만든 거야?”

“우욱……!”

“토하지 마, 병신아! 그대로 다시 삼켜! 방독면 벗으면 쳐 죽여 버린다!”

콜리어와 결전을 치르기에 앞서 아비터에 진입했던 트라운서의 수색대와 마찬가지로, 자위대 수색조 또한 함선 내부에서의 통신을 위해 통신선을 끌고 온 참이었다. 바깥에 배치된 방차통 하나면 1.6킬로미터까지 유선접촉을 유지할 수 있다.

「이 나약한 버러지들(弱虫/겁쟁이)이! 뭘 겁을 먹고 와들와들하고 있는 거냐! 잘 들어라! 너희들의 어깨에 조국의 운명이 걸려있다! 거기서 뭔가를 건져내지 못하면 안 돼!」

바디캠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지휘부가 닦달을 하자, 자위대원들은 보이지 않는 손에 떠밀리듯 무거운 발걸음을 떼었다. 내딛는 걸음걸음마다 쩌억 쩍 들러붙는 소리가 났다.

내가 영적 다형성 군체의 구조와 기능을 복원하고 재구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혐오스러운 유동(流動)은 자위대원들의 전진을 한없이 더디게 만들었다.

「쾅쾅쾅!」

중기관총탄을 쓰는 돌격소총에서 3점사가 터지는 소리. 적막하던 통로 내에선 거의 폭음에 가까운 굉음이어서, 잔뜩 긴장해있던 수색조원들은 거의 경기를 일으키다시피 총구와 시선을 돌려댔다.

“뭐야?! 대체 무슨 일이야?! 적습인가?!”

아무것도 찾지 못한 수색조장이 발포한 대원을 힐끔 곁눈질한다.

“대답해! 뭘 보고 쏜 거야?!”

발포한 대원은 반동제어 실패로 엉덩방아를 찧은 상태였다. 생체전투함의 마력장에 짓눌려 본래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상태에서, 반동이 강한 각성능력자용 자동화기를 3점사로 갈겨버린 탓. 피와 고름이 사방으로 튀어 동료 대원들의 방호복을 더럽혔다.

“대답하라니까!”

조장의 독촉에, 발포한 대원은 자신이 쏜 지점을 바라보며 눈을 깜박였다. 그러고 나서는 자신 없는 태도와 목소리로 웅얼거리듯이 말했다.

“분명히…… 뭔가를 봤는데…….”

“그러니까 그게 뭔데!”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침묵하던 조장은 잠시 후 깊은 한숨과 함께 이마를 짚어 보였다.

“젠장. 헛것을 본 거였냐고.”

그러고는 낮은 소리로 버럭 화를 냈다.

“이 바보 녀석이! 한 사람이라도 더 생존자를 확보해야 하는데, 사람 같다고 대뜸 총질을 해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네가 지금 제정신이냐?!”

사실을 말하자면 헛것을 본 게 맞았다. 영국군 수색대를 상대로 시간을 끌 때와 비슷한 귀신놀음을 염두에 두고는 있었으되, 이들은 그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더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었다가 조용히 죽여 소식을 끊을 참이었다. 수색대에게 시간제한을 걸었던 트라운서의 지휘부와 달리,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일본정부는 첫 수색이 실패하더라도 계속해서 새로운 수색조들을 편성하여 진입시킬 테니까.

「스르르륵-」

총탄이 박힌 자리는 금세 출혈이 멎었다. 수색조가 벌어주는 시간을 감안하면 이 정도 손상쯤은 너그럽게 봐줄 수 있었다. 때가 되면 일부 대원들은 조립식 아기들에게 영양을 제공해줄 것이기도 했고.

생체전투함의 상처가 고속으로 아무는 것을 본 자위대원들은 다시 한 번 그 자리에 두려움으로 못 박혔다. 이들은 수십 초가 지나서야 간신히 수색을 재개했다.

내 입장에선 참으로 기특한 놈들이었다. 가끔 꺾인 모퉁이 너머의 아기 입으로 소리를 질러주기만 해도 자지러지듯 놀라 시간을 지체하는 모습들이 어찌 기특하지 않을 수가 있나.

두 생체전투함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가 되어갔다.

아비터와 트라운서가 서로 별개의 함선으로 건조되었다고는 해도, 확장회로를 구성하는 조립식 아기들은 본디 같은 공정에서 같은 목적 아래 생산된 것. 원래부터 상호 결합을 전제로 만들어진 동일 공정의 영혼들은 내 실력으로 충분히 재구축이 가능한 대상들이었다.

아비터도, 트라운서도 각각의 회로에 치명적인 결손이 발생한 상태였으되,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서 안정성을 회복했다.

물론 급하게 재구축을 진행한 만큼 회로구조는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를 순 없는 법. 이 밤을 넘기고 나서 추가적인 최적화를 진행하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트라운서의 하부갑판 통로에 돋아난 귀들을 통해, 수색조장과 지휘부가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현재까지 생존자는 발견하지 못한 건가?」

“예. 전혀…….”

「하……. 아까 비명소리가 들렸다며? 그때 바로 뛰어갔어야 할 거 아냐! 겁을 먹고 움츠리고만 있으니까 잡을 수 있는 사냥감도 놓치지! 그러고도 너희가 1사단의 정예냐?!」

“……송구합니다.”

「시체를 단 한 구도 보지 못했다고 했지? 그렇다면 다들 어딘가에 숨어있다는 이야기야! 반드시, 반드시 찾아내서 끌고 나와야 한다! 최대한 많이 붙잡아야 해!」

“이해했습니다(了解).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움츠리지 말라고! 거기서 아무것도 찾지 못하면 그땐 더 무섭고 끔찍한 일들을 겪게 될 테니까! 총리께서도 이쪽 현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계신다!」

자위대가 찾아 헤매는 생존자들은 모두 내 수중에 있었다. 승조원들은 담당 직무의 전문성에 따라 가치를 산정하여 생사를 나누었고, 콜리어의 기사들에 대해서는 섀빙턴의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회유를 시도했다.

회유 과정에선 이미 전향한 기사들의 존재가 도움이 되었다. 비록 싸움이 한창일 땐 전향자들을 전력으로 활용하지 못했으나, 섀빙턴과 콜리어가 둘 다 죽어버린 지금이라면 비전투임무 정도는 맡겨도 무방했다.

전향자들과 대면한 콜리어의 기사들은 스승새끼를 흉내내는 내 유혹에 강하게 저항하지 못했다. 더러 자살자가 나오는 것까진 어쩔 수 없었지만, 처음 섀빙턴의 기사들을 상대할 때보다는 훨씬 더 수월하게 저항의지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마음이 꺾인 원탁의 기사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무릎을 꿇고 새로운 신앙을 간증하며 자비를 구했다.

“저희는 그저…… 존귀하신 주의 자비를 구할 뿐입니다. 저희들의 몸과 마음과 영혼 모두를 새롭게 씻어 당신께 바치나니, 거, 거짓…… 거짓 선지자……들을 좇아 참된 주……에게 대적했던 저희들의 어리석음을 당신의 무한한 자비로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전향한 기사들의 부상을 치료해준 후, 그들로 하여금 섀빙턴과 콜리어의 사체를 내 앞으로 가져오도록 했다. 기사들에게 옛 주인의 죽음을 확실히 각인시키기 위해서였다. 기사들은 혼이 나간 얼굴로, 혹은 눈물에 젖은 얼굴로 죽은 대마법사들의 유해를 가져왔다.

운구 동선은 당연히 자위대 수색조와 겹치지 않게끔 했다, 확장회로에 대한 정교한 지배는 오직 대마법사에게만 가능한 일. 생체전투함이 스스로 길을 열어주는 광경을 본 기사들은 마른침을 삼키거나 잠시 호흡이 거칠어지거나 하는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그러한 인도를 따라, 마침내 나와 대면한 기사들은 한결같은 경악을 드러냈다.

“유, 유색인종?”

예상한 반응이었다. 나는 서늘한 시선을 던지며, 스승새끼의 근엄한 억양으로, 통로 전체에 가득한 조립식 아기들의 입을 통해 목소리를 내어 물었다.

「너희가 또 나를 부정하려느냐?」

기사들은 황급히 시선을 내리깔며 무릎을 꿇었다. 몇몇은 입술을 달싹였으나 무언가 말을 내뱉지는 못했다. 창백한 낯짝을 보건대 경악과 공포가 뒤섞여 사고가 마비된 기색이었다.

어쨌든 보이지 않는 인도를 따라온 끝에 대면한 것이 나이고, 신경다발로 전투함과 연결되어있는 모습을 보았으며, 조립식 아기들의 입으로 나오는 목소리까지 들었으니 내가 자신들을 이끈 새로운 주임을 부정할 순 없다.

「다시 묻겠다. 너희 중에 나를 부정할 자가 있느냐?」

기사들을 오시하며 던지는 두 번째의 물음. 비로소 정신이 좀 돌아온 기사들은 저마다 떨리는 음성으로 새로운 신앙을 재확인했다. 그 두서없는, 그러나 갈수록 필사적으로 변해가는 말들을 충분히 들은 뒤에, 나는 기사들을 제지했다.

「그만.」

단숨에 정적이 찾아온다. 두려움과 긴장의 색채에 젖은 기사들은, 감히 고개를 들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불안한 침묵을 지켰다.

「나 크로우허스트는 어떤 모습으로도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불멸의 정신이자 영혼이다. 한낱 허물에 흔들리는 믿음이 우상을 숭배하는 마음과 무엇이 다르랴? 그러니 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우상숭배자가 있다면 얼마든지 말하라. 내 그자의 영혼을 질그릇처럼 깨고 빈 육체를 취하여 남은 자들에 대한 자비로운 교훈으로 삼으리라.」

혼란의 색채가 점점 가라앉는 가운데, 굳게 닫힌 입들은 어느 것 하나 열릴 생각을 않았다. 생체신호를 읽어가며 을러댄 말이긴 하나, 예상외로 나서는 놈이 있다면 귀찮았을 것이다. 나는 피로한 만족감을 담아 쐐기를 박았다.

「불멸자의 계획은 필멸자의 이해 너머에 존재하는 것. 너희는 내 계획을 이해하려 하지 마라. 다만 따르라. 몸과 마음을 다해 순명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은 태양의 주위를 순행하는 행성들과 같이 나 크로우허스트의 빛과 진리에 속하여 구원받으리라.」

신의 계획을 인간이 이해할 수 없다는 건 원탁의 교리에서도 당연한 상식이다. 이에 따르면 내가 취한 모습 또한 추종자들의 이해를 벗어난 거룩한 계획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기사들은 이제야 겨우 입을 열어 내 자비에 감사를 표했다.

나는 기사들로 하여금 옛 주인의 시체에 한 번씩 칼침을 놓도록 지시했다. 심적으로 소모된 기사들은 핏기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얼굴로 명령을 이행했다.

너덜너덜하게 변한 섀빙턴과 콜리어의 시신은 전향자들이 보는 앞에서 생체전투함을 위한 바이오 연료로 변했다. 소화흡수가 빠르도록 곤죽을 만들어서 잘 익혔으니 이유식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다만 둘 모두 머리통만큼은 따로 보존해놓았다. 영혼이 부서지면서 신경망도 망가지긴 했으나, 그래도 대마법사들의 수급은 그레이스의 호의를 깊게 해줄 터였다.

로더필드는 모둠구이로 만들어 라일라에게 주었고, 섀빙턴과 콜리어는 이유식으로 바꾸어 조립식 아기들에게 먹였다.

나는 이 승리가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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