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44화 (444/561)

#45. 도쿄대공습 (1)

콜리어의 영혼을 파괴한 후 본신으로 돌아와 눈을 뜬 나는, 일단 굶주린 아기들이 내 본신을 뜯어먹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쿨럭…….”

현실로 돌아온 직후의 몸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엘의 별이 원래 이런 식으로 쓰라고 만든 술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래대로라면 그냥 버려져야 했을 본래의 육체로 돌아왔으니 후유증이 아예 없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육체적인 후유증 이상으로 엄청난 것이 정신적인 상실감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신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말이지.’

거의 무한한 힘을 품고서 무엇이든 될 수 있었던 존재로부터, 대마법사라고는 하나 한낱 인간일 뿐인 불완전한 몸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로부터 기인하는 상실감이란, 이전까지는 이런 감정이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낯선 유형의 실존적 위기였다.

나는 필설로는 형언하지 못할 우울감으로 멍하게 표백되어가는 정신을 가까스로 부여잡았다.

콜리어를 쫓는 시간이 더 길어졌으면 아주 위험할 뻔했다. 그런 초월적인 전능감에 중독될 경우, 나라는 인간의 정신은 반드시 변질되고 말 테니까.

당장은 해야 할 일에 하나씩 집중하는 게 최선일 것이다. 육체를 회복시키고, 영혼과 육체의 결합을 재점검하며, 두 생체전투함에 대한 지배력을 굳히는 동시에 아직 숨이 붙어있는 기사들과 영국군 승조원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등.

바깥의 상황에 대응하는 것도 당장 해야 할 일의 하나다.

「퍼엉! 퍼퍼펑! 슈르르르르-」

두 생체전투함이 한 덩어리로 내려앉은 철도차량기지 주변 상공에서 다수의 조명탄이 광채를 터트렸다. 낙하산에 매달린 채 연기를 끌며 하강하는 강렬한 빛의 덩어리들. 낙하산의 크기와 빛의 밝기를 보건대 155밀리 곡사포로 발사한 조명탄이었다.

이는 곧 중포로 무장한 규모미상의 특과대(포병)가 이곳을 조준하고 있다는 뜻.

설마 일본 정부가 외교·군사적 부담을 접어두고서 과감한 대응을 결심하기라도 한 것일까? 나는 아직 둔한 감이 남아있는 머리를 굴려 도쿄에 배치된 포병화력을 떠올려보았다.

이런 상황에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한 부대는 1사단 예하부대들밖에 없다.

1사단 포병연대(제1특과대)는 본디 도쿄 시내에 주둔하는 보병연대와 달리 도쿄 광역권 서쪽의 기타후지(北富士)에 따로 주둔하고 있었지만, 고래사냥에 앞서 도쿄 만 일대의 지상화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요코하마와 가와사키, 그리고 도쿄의 항만지대에 각 대대별로 분산 배치되었다고 알고 있다.

‘개중에서 한 개 대대…… 아니, 한 개 포대만 재배치되었어도 좀 곤란한데.’

생체전투함들은 어느 쪽이든 보수와 안정화를 서둘러야 할 상황이었다. 아비터는 교전이 진행되는 내내 응급수리만 하면서 혹사를 버텨왔고, 트라운서는 윌리엄의 역병에 감염된 채 방치되어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포격이 쏟아지면 속수무책으로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다.

이곳을 조준하고 있는 자위대의 포병화력이 단 한 개 포대에 불과하다고 해도 중포가 여섯 문이었다. 급속사격으로 화력을 집중하기라도 했다간 내가 전투함의 영육을 수리하는 속도보다 박살나는 속도가 더 빠를 게 뻔했다.

하물며 상대가 포병대대라면 그냥 일찌감치 배를 버리는 편이 나을 터. 제1특과대가 쓰는 중포는 하나같이 구식 견인포(FH70)들이지만, 견인포이기에 오히려 공중수송엔 더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 도쿄 광역권의 주요 도로들이 거의 다 마비상태인 지금, 포병을 신속하게 재배치할 방법은 공중수송이 유일하다.

두 공중전투함이 멀쩡한 상태였으면 포병대대가 아니라 포병연대가 몰려와서 화력을 집중해도 모조리 요격이 가능했겠지. 그러나 레이더가 다 박살난 지금은 레이저 포대를 가동시켜봤자 목측사격으로만 쓸 수 있을 따름이다.

내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지치고 피곤한 와중에 또다시 긴장감이 밀려드니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공중전투함들의 영육을 보수하며 외부의 동태를 예의주시하고 있으려니, 주변 도로와 철길을 따라 화생방 방호복 차림의 각성능력자 자위대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철도기지와 인접한 초등학교의 운동장으로는 6륜 화학방호차(化学防護車) 두 대와 8륜 화생방 정찰차(NBC 偵察車) 한 대의 공중수송이 이루어졌다. 헬기로 실어 나르기엔 다소 무거운 차량들이어서, 수송을 맡은 것은 발화능력자들이 탑승한 수직이착륙 제트엔진 화물기였다.

「콰아아아-! 콰쾃-! 콰아앗-!」

네모난 프레임의 각 귀퉁이마다 추진 노즐이 달린 특수 화물기는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착륙하여 차량들을 내려놓았다. 각 차량들은 방독면을 쓴 자위대원들의 엄호를 받으며 골목길을 돌아 나왔다.

차량들은 저마다 적색 경광등과 사이렌을 하나씩 달고 있었다. 경광등 불빛을 번쩍이며 다가온 차량들은 대략 80미터 거리에서 정지하여 이쪽으로 방송을 실시했다. 일본식 억양이 묻어나는 영어로 된 방송이었다.

「훅-! 훅-! 영국 왕립공군 초계함 HMS 아-비타와 HMS 토라운사의 승조원들에게 알립니다! 우리는 일본 육상자위대 소속 제1화생방방어부대(1st NBC Weapon Defense Unit/第1特殊武器防護隊)와 제1정찰전투대대의 대원들입니다!」

마이크를 붙잡은 지휘관의 목소리는 적잖이 떨리고 있었다. 동반한 자위관들 또한 한 덩어리로 뭉친 두 생체전투함의 모습을 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거나, 군홧발 아래 끈적하게 들러붙는 피고름과 배설물에 몸서리를 치거나 하고 있었다. 벌써부터 속옷에 조금 실례를 해버린 자마저 눈에 띈다.

「현재 여러분에게는 일본의 영토를 불법적으로 공격하고,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혐의가 걸려있습니다! 이는 국제법상 명백한 테러 행위로서 결코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에 우리 일본정부는!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위적인 대응조치를 취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강력한 경고였다. 지휘관의 말에 따르면, 이 철도기지를 조준하고 있는 포병화력의 규모는 무려 세 개 대대에 달했다.

그밖에도 전투함이 이륙을 시도할 경우 직사 공격을 가할 수 있는 고사포(87式)와 기갑차량들(16式)이 사거리 내에서 대기 중이며, 유사시엔 포격과 함께 전파교란이 이루어지리라는 내용도 경고에 포함되었다. 공중전투함의 레이저 포대로도 방어가 불가능할 공격이니 만에 하나라도 허튼짓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온건한 어조에 어울리지 않는 경고 다음엔 투항 권유가 뒤따랐다.

「다만! 지금까지 관측된 여러 정황들에 비추어볼 때! 여러분이 의도적으로 우리 일본국에 대한 적대행위를 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됩니다! 따라서 우리 대원들에게 평화롭게 투항하여 이후의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이야말로 여러분들 자신을 위한 최선의 선택임을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상세한 조사를 통해 아-비타와 토라운사 양함(兩艦)에 중대한 기술적 장애가 발생했음이 확인된다면! 여러분은 불운한 사고에 휘말린 피해자로서 테러에 관한 모든 혐의를 벗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깨달았다. 이것들이 지금 공중전투함의 기술을 탐내고 있구나.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했음을 증명하라는 것은 당연히 기술적인 영역을 조사하겠다는 의미.

‘일본 혼자서 내린 결단은 아닐 테고.’

군함은 국제법상 소속국가의 영토로 간주된다. 설령 그게 침몰한 군함이라 할지라도, 다른 나라는 함부로 타국의 군함을 건드리지 못한다. 술타나 같은 인양업자들이야 국제법이고 뭐고 개의치 않으나, 일본정부의 지위를 일개 범죄조직과 비교할 순 없는 노릇.

한낱 침몰선조차 그럴진대, 그 대상이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공중전투함이라면 어떻겠는가.

불사암 정형화 제어 기술의 산물로 알려진 생체 비행모듈부터 시작해서, 미국이 추후 비행모듈 제공을 약속받고 팔아넘긴 것으로 추정되는 최신형 이지스 레이더(AN/SPY-6), 그리고 고출력 레이저 포대와 세계 최초의 전열화학포에 이르기까지, 타국이 욕심을 낼 만한 기술적 성과들이 무더기로 들어있는 보물 상자가 바로 룰러 급 공중우세 초계함이었다.

내밀한 사정을 모르는 관찰자들의 입장에서는 내가 선보였던 환시 장막이나 단거리 공간도약마저 공중전투함 본연의 능력으로 보였을 것이다.

일본이 아무리 일방적으로 피해를 본 처지라 해도, 또 아무리 좋은 명분이 있다고 해도, 이런 배에 함부로 발을 들이는 건 그냥 전쟁을 하자는 소리다. 이는 일본 입장에선 몹시 부담스러울 일이다. 당장 도쿄 인근 해역에 핵무기를 보유한 영국 항모전단이 떠있는 상황이니까.

영국이 자위대의 공중초계함 진입 및 영국군 승조원들의 신병확보에 동의했을 가능성은 무한히 제로에 수렴한다. 수색을 할 때 하더라도 최소한 영국군의 입회와 감시 아래에서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가능성은 둘 중 하나.

‘갈등하는 일본의 등을 중국이나 미국이 나서서 밀어주었거나, 혹은 일본정부가 이익을 미끼로 다른 여러 나라들의 지지 약속을 받아낸 후 일을 벌인 것이거나.’

어느 쪽이든 가능성은 충분하다.

내 워프 돌격을 관측한 모든 나라들은 지금 눈이 뒤집어진 상태일 게 뻔했다. 공간왜곡 기술을 얻을 수만 있다면 막대한 투자와 희생을 감수할 각오들이 되어있겠지.

내가 본 작금의 일본정부는 무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즉 타국에 떠밀리기보다 능동적으로 외교적 수완을 발휘했을 확률이 더 높을 듯하다. 공중전투함을 조사하여 획득할 기술들, 그리고 그 기술들을 지렛대 삼아 얻어낼 거액의 차관들은, 이 나라가 오늘의 재앙을 딛고 재기를 꾀할 발판이 되어줄 테니까.

적어도 일본정부의 절박한 기대는 그러할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진입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대원들에게 위협을 느끼도록 만드는 행위는 그게 무엇이든 조사와 재판에 불리하게 작용하리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우리 일본국은 어디까지나 이번 사태의 평화로운 해결을 희망할 뿐입니다!」

자위대 지휘관의 외침은 내게 깊은 안도감을 선사했다. 저들이 이제 와서 갑자기 눈이 뒤집어져 포격을 퍼붓거나 하진 않을 테니, 내게는 두 전투함의 영육을 기워 하나의 전리품으로 재탄생시킬 시간이 주어진 셈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속으로 나 자신이 조금 우스워졌다.

‘사람 욕심이라는 게 참 끝이 없군.’

팽팽하게 당겨졌던 신경이 슬며시 이완되자, 머리가 아픈 와중에도 눈꺼풀이 잔뜩 무거워졌다. 잠깐이라도 좋으니 눈을 붙이고 싶었다.

지금이라면 마법적인 수면유도를 쓰지 않아도 금방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악몽을 꾸지 않으리라는 보장까진 없을지라도.

여전히 경광등을 번쩍이며 신중하게 다가오는 수색조와 별개로, 화학방호차 뒤쪽에선 몇몇 자위대원들이 여기저기서 반쯤 굳은 피고름의 샘플을 긁어 채취하는 모습이 보였다.

“-! ---!”

회색 바탕에 굵고 검은 선 한 줄이 들어가 있는, 한국군 기준으로는 일개 이등병으로 오인당하기 쉬운 계급장을 단 육자대 준위(准陸尉)가 무언가를 외치며 바쁜 손짓을 해 보였다. 신속하게 모인 샘플들은 고속으로 날아온 드론 바이크 편에 실려 어딘가로 배송되었다.

그러고 보면 페스트에 대해서도 손을 쓰긴 해야 할 텐데…….

생체전투함을 상대로 최대의 타격을 가하고자 대장균 대신 페스트가 들어간 역병 코드를 쓴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여기서 페스트가 너무 말도 안 되는 속도와 규모로 유행해버리면 영국과 원탁이 이게 결코 자연적인 유행이 아님을 깨닫고 대비책을 마련할 공산이 컸다.

그건 달갑지 않은 일이다. 가능하다면 그렇게 될 확률을 줄여놓고 싶다.

우선 오늘 당장 정보가 새어나가는 건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가뜩이나 도쿄 광역권이 막대한 피해를 입은 마당에, 흑사병 대유행이 우려된다는 사실마저 알려지면 일본은 문자 그대로 통제 불능의 혼란에 빠져들 터.

도쿄 광역권의 5천만 인구 중 6백만 가량이 제대로 된 거처가 없는 노숙자와 이재민들로 추정되는 마당이다. 오늘 이후로는 그 숫자가 얼마까지 늘어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한 번 폭동이 일어나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영국에 청구서를 들이미는 것도 좋지만,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가 붕괴해버리면 보상 요구고 나발이고 의미를 잃어버리지 않겠나.

그때 가서 단순히 영국을 탓하는 정도로는 혼란을 막기 역부족이겠지.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을 때’는 열심히 찾아서 죽창으로 찔러 죽일 조선인들이 가까운 곳에 2백만이나 있었지만, 지금은 분노의 희생양이 되어줄 열도 내 영국인들의 숫자가 너무나 적지 않은가. 이 밤이 지나고 나면 더더욱 적어질 것이고.

게다가 영국인들이 폭도들에게 떼죽음을 당하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된다. 피해보상 요구는 물 건너가고 마는 것이다.

결국 일본정부는 최소한의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서라도 당분간 역병에 관한 정보를 비밀로 붙일 필요성이 있다. 적어도 감염확산을 차단하고 혼란을 줄일 최소한의 대책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나는 일본의 정보 은폐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그 후처리를 통해 단련된 일본정부와 공무원들은 반드시 내 기대에 부응해줄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곤란하다.

다만, 현재의 일본정부가 감염확산 대응책을 마련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과제로 보인다는 게 문제.

「우우- 히우우우우-」

조립식 아기들의 귀를 가만히 기울여보면, 고래가 노래하는 분노는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었다. 노래가 들려오는 방향은 북쪽. 같은 방향에서 사나운 땅울림이 함께 전해져왔다. 이 순간에도 시가지가 파동폭격을 받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고래가 이토록 오랫동안 과부하를 견뎌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고래가 주요 대형병원들을 줄줄이 반파시켜놓고 있으니, 이 나라 정부가 아무리 노력을 한들 흑사병 대유행을 ‘자연스러운 수준’으로 억제할 수 있을 리가 있나.

나는 일본정부를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도쿄를 조금 불태워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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