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41화 (441/561)

#44. 진노의 날 (16)

경착륙의 충격은 콜리어보다 내가 더 강하게 받았다. 비록 감속을 했다고는 하나, 내려앉는 순간까지도 아비터가 하방을 점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착륙의 충격이 가신 뒤에도, 위에서 짓누르는 트라운서의 질량만으로 상당한 부하가 발생했다.

그러나 트라운서의 위에는 격노를 담아 진동 충격파를 난사해대는 혹등고래 각성체가 떠있었다.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파동 폭격을 받아내는 건 오롯이 트라운서와 콜리어의 몫이었다.

「쿠구궁! 쿠구구구구궁!」

폭발적으로 발생한 먼지구름이 화산에서 이는 쇄설류처럼 한밤의 철도차량기지와 인근의 주택가를 집어삼켰다.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통상시야로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투명함 속에서, 파동 폭격의 굉음과 통제를 벗어난 일부 조립식 아기들의 커다란 울음소리들, 그리고 낮은 하늘에 떠있는 거대 구형(球形) 폭포의 물소리가 다른 모든 소리들을 지워버린 상황.

가까운 건물들은 폭격의 진동만으로도 지진이 발생한 것처럼 금이 가는 중이었다. 건물 안에 웅크린 채 패닉에 빠져 울부짖는 민간인들이 보인다.

죽음을 각오하고 분노를 노래하는 고래의 공격은 그 자체로 국지적인 자연재해나 마찬가지였다.

콜리어가 고래에게 두들겨 맞느라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아비터의 피해를 수습한 나는 트라운서의 회로 내에서 수월하게 내 지배력을 넓혀갔다. 그에 따라, 겹겹이 중첩된 고밀도 마력회로에 가려져 시각적 해상도가 높지 않았던 트라운서 내부의 상황을 파악하기가 갈수록 더 용이해졌다.

트라운서 안쪽에 조립식 아기들의 귀를 열자 숨 가쁜 외침과 절규들이 귀에 들어왔다. 영국군 승조원들은 거의 다 자기가 타고 있는 배에 대한 공포와 급강하 및 경착륙의 충격으로 맛이 가버린 상태. 그러나 콜리어의 기사들은 전투력을 보존하고 있었다.

“도선(渡船) 전투 준비! 도선 전투 준비!”

콜리어의 기사들에겐 상황을 파악하고 최악의 사태에 대비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다. 갑작스럽게 날벼락을 맞은 섀빙턴의 기사들과는 사정이 달랐던 셈.

“서둘러라! 장약 분배는 다 끝났나?! 도선 경로 확보는?!”

1차로 아비터에 진입할 것처럼 보이는 하급 기사들은 저마다 폭탄이나 전열화학포의 장약(裝藥)으로 가득 채운 군장을 하나씩 메고 있었다. 언제든 스스로의 「발화」로 터트릴 수 있고, 어딘가에 설치한 후 시간을 장입할 수 있게끔 시한신관도 달아놓았다.

“가능하다면 폭탄을 설치하고 빠지는 게 이상적이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자폭도 불사한다! 알겠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적에게 타격을 줘야 한단 말이다!”

기사 사령관이 비장한 표정으로 내리는 지시. 이북 빨갱이들이 그토록 노래를 부르는 총폭탄 정신의 살아있는 교과서들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예상한 일이다.

기사들에게도 마력장이 있고, 나와 콜리어의 회로 지배력이 경합을 벌이는 경계선상에 머물고 있는 만큼, 당장은 폭탄에 내가 장난을 치기가 곤란하다. 나는 마력회로 낭비를 최소화하며 기사들을 무력화할 방법을 찾다가 트라운서의 스프링클러 배관 시스템에 주목했다.

전투함의 모든 갑판에 걸쳐 존재하는 배관 시스템은 손상된 부분들이 꽤 많았다. 원인은 윌리엄의 역병으로 부어오른 생체조직들. 선체 자체가 우그러지고 우둘투둘 변형되는 마당에 배관이 멀쩡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휘거나 깨진 곳이 많다 한들, 일부 구획에 한해서는 아직 쓸 만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오히려 드문드문 존재하는 파열된 부분들이 내 수고를 덜어주었다.

나는 관이 깨진 곳 다섯 개소에 조립식 아기들의 입을 물려놓고, 입과 위장 연결망을 잇는 생체 관을 통해 아기들의 위산(胃酸)을 모아 고압으로 주입했다. 생체강화 조율로 분비량을 늘린 후 물에 대한 지배력으로 수분 함량을 조절하여 농축시킨 강산(强酸)이었다.

배관의 재질은 열간 압연강이었으며, 거기에 아연 코팅이 되어있었다. 위산과 접촉한 아연이 반응하면서 다량의 수소 기체가 발생했다.

내가 딱히 불장난을 치거나 경보장치를 건드릴 것도 없이, 배관 내부의 압력 상승만으로 스프링클러들이 탁탁 터지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악!”

기습적인 강산 분사를 맞은 기사들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운이 좋은 자들은 피부에 국소적인 화상을 입는 선에서 그쳤으나, 운이 나쁜 자들은 눈에 강산이 들어가 즉각적으로 시력을 상실했다.

등위가 낮은 기사들의 「생명」으로는 실명을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아예 불가능하진 않을지라도 시일이 다소 소요되고, 그렇게 회복하고 나서도 초점이 정확히 맞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앞이, 앞이 보이지 않아!”

동공이 녹거나 혼탁해진 기사들이 고통에 겨운 소리들을 지르며 엎드려 허우적댔다. 바닥에 흐르던 피와 고름이 사방으로 요란하게 튀어 올랐다. 시력을 온존한 기사들은 위산 분사를 피하느라 급급하여 조직력을 유지하지 못했다. 덩달아 분무에 휘말린 영국군 승조원들의 존재가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나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중무장한 시체인형들을 도선시켰다.

「죽인다! 죽인다! 찢고 죽인다!」

고장난 녹음기처럼 임무를 되뇌며, 트라운서 선체의 균열을 찾아 뛰어드는 인형들.

내가 신선한 영국군 승조원들을 재료로 빚은 이 전투인형들은 뼈가 두꺼워지고 근육이 잔뜩 붙어 더 이상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전완부의 두께만 해도 어지간한 운동선수의 허벅지만큼이나 굵다. 목소리도 더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곳마다 살갗에 눌어붙어 고정된 방탄 플레이트들이 방어력을 보강해주었다.

이런 생체병기들이 손에는 각성능력자용 중화기를 들고 등에는 폭탄 배낭을 멘 채로 돌입한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기사들은 무너진 조직력을 회복할 틈도 없이 근거리에서 각개전투로 인형들에게 맞서야 했다.

「우어어어어! 여왕이여! 장수하소서!」

생전엔 충성스러운 애국자였을 한 시체인형의 입에선 상황에 맞지 않는 축수(祝壽)가 튀어나왔다. 나는 원탁의 대마법사를 상대로 권능을 겨루는 와중에도 어이없음을 느꼈다.

‘그 여자는 이제 그만 장수해도 되지 않나?’

희극적인 전투함성과는 별개로, 인형이 갈겨대는 대구경 철갑탄들의 위력은 갑주를 착용한 원탁의 기사들에게도 위협적이었다.

따로 염동방어를 전개할 수 있다면 모를까, 왕립조병창의 그리니치 갑주만으로는 복합장갑이 들어간 바이탈 파트조차도 관통만 간신히 막아내는 수준이다. 총탄이 꽂히는 자리마다 퍽퍽 찌그러지는 갑주는 착용자에게 숨 막히는 충격을 전달했다.

방탄복만을 입고 있었던 기사들과 영국군 승조원들은 사지가 끊어지고 머리가 터져나갔다. 떨어져나간 팔다리들이 피와 고름의 물결을 따라 흔들거렸다.

인형들이 화력을 퍼부은 공간 내에선 더는 두 발로 서있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철컥-!」

대구경 탄약은 휴대량이 많을 수가 없다. 시체인형들은 근소한 시차를 두고 탄약을 전량 소진했다.

단시간에 모든 화력을 퍼부음으로써 그나마 전투력과 판단력이 남아있는 기사들에게 은엄폐를 강요한 시체인형들은, 이제 중화기를 둔기로 삼아 육탄돌격을 감행했다. 인형들의 머리로 실행 가능한 가장 복잡한 전술행동이었다.

잠시 후,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영국군과 원탁의 하수인들을 쳐 죽이며 전진한 인형들은 저마다 자폭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콰콰콰쾅!」

파괴적인 진동이 내 위치에까지 강하게 전해져 온다. 자폭에 실패한 인형들이 몇 기 있긴 했으나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콜리어의 기사들이 지고 있던 폭탄배낭들이 연쇄폭발을 일으키면서 피해가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군용 플라스틱 폭약 및 전열화학포의 장약은 불을 붙여도, 총탄을 갈겨대도 쉬이 터지지 않는 둔감성을 지녔지만, 이만큼의 폭발에 휘말리면 둔감성이고 뭐고 의미가 없어진다.

전투함 바깥에서는 아스라한 사이렌과 경고방송의 소리가 돌아왔다.

조립식 아기들의 울음소리를 뚫고 바깥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은, 성난 고래의 파동 폭격이 잦아들었음을 의미했다.

「도쿄시 비상재해대책본부에서 알려드립니다! 현재 키요우타마히코는 시나가와구 히로마치(広町) 상공으로부터 북북서 방향으로 이동 중입니다! 목표는 동일본 관동병원과 도쿄대 의과연구소 부속병원으로 예상되오니, 고래의 이동 경로에 계신 모든 분들은 시급히 안전한 곳으로 피난하여 주십시오!」

이제껏 지상에서 공격한 모든 대상에게 그러했듯이, 시각과 청각이 차단된 고래는 이쪽이 땅에 눌어붙은 채로 움직임이 없자 파동 폭격을 중단했다. 이쪽이 무력화되었거나 전의를 상실했다고 판단한 모양.

나는 아쉬움을 느꼈다.

‘조금만 더 두들겨주면 좋을 것을.’

그래도 다른 공격 대상들보다 더 길게 폭격을 가하긴 했다. 이쪽의 마력장 특성이 단순히 크립 밸러스트들을 모아놓은 것과는 많이 다르고, 마력장의 규모 면에서도 위협적이며, 하늘로 날아오르기 전 고열 광선에 지져진 분노가 남아있었던 덕분일 것이다.

내게 뜻밖의 도움을 준 고래는 물의 구체 속에서 느리게 꼬리를 흔들며 멀어져갔다.

고래에겐 아직도 부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고래가 떠나간 자리엔 계속해서 여운과도 같은 경고방송이 들려왔다.

「……피난이 어려운 경우 무리하지 마시고 최대한 견고한 건물을 찾아 옥내로 피신하십시오! 소방청과 자위대가 고래 저지를 위해 화학물질을 살포하고 있사오니, 독성 기체가 고이기 쉬운 지하실로의 피신을 삼가주시고 창문과 문을 최대한 빈틈없이 막아주시기 바랍니다!」

소방용 항공기들이 살포한 독성물질은 생체전투함의 근간인 조립식 아기들에게도 유해한 것이었다. 전투함이 멀쩡할 때라면 독성물질이 함선 내부까지 침투하는 일 자체가 없었을 테고, 침투하더라도 화생방 방호 및 제염 시스템이 작동했겠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고래의 충격파 공격이 사라지자, 하늘로부터 짧은 시간 불길한 가랑비가 쏟아져 내렸다.

독성물질의 가랑비를 더 많이 맞은 건 당연히 트라운서 쪽이었다. 아무리 상태가 안 좋다고 해도 거대한 생체전투함에게 치명적인 수준은 아니었으되, 콜리어의 대응역량을 조금이라도 더 분산시키는 효과는 있었다.

트라운서의 상태 악화를 깨달은 콜리어는 뒤늦게 염동 충격파를 빚어 터트렸다.

「쿠우우우우-!」

이미 맞은 비를 떨쳐내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고래가 일으켜놓은 먼지구름이 인공강우와 만나면서 생성된 국지적 스모그를 사방으로 흩어버리는 건 가능했다. 그렇잖아도 고래가 가한 폭격의 여파로 창문이 다 깨져있던 가정집들은 콜리어가 밀어낸 독기를 고스란히 뒤집어쓰게 되었다.

독기에 노출된 민간인들이 고통과 그 이상의 공포로 몸부림치는 사이, 내게는 이 밤의 완전한 승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회로 장악력의 우열이 더는 돌이키지 못할 선까지 벌어지는 시점이 찾아온 것이다.

‘음?’

이대로 조금만 더- 라고 생각하던 나는, 트라운서의 마력회로에 대한 콜리어의 지배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군대로 치면 무질서한 패주가 아니라 질서정연한 철수에 가까운 감각이었다.

완만하게 내려가던 경계심이 단숨에 다시 치솟는다.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으나, 예감이 좋지 않았다.

다음 순간, 트라운서의 조립식 아기들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커다란 울음들의 합창을 터트렸다. 극심한 통제 불능의 징후였다. 나는 내가 트라운서의 회로를 완전히 장악했음에도 불구하고 트라운서에 대한 내 통제력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마력회로는 분명 내 지배하에 있다. 그러나 조립식 아기들의 신경계가 내 의지에 순종하지 않았다. 사람으로 치면 영혼과 육체가 각기 다른 주인에게 종속된 상황이었다.

불완전한 통제력과는 별개로 조립식 아기들의 감각에 접속하는 건 가능했다. 나는 트라운서의 내부에 제멋대로 생성된 눈과 귀들 가운데 콜리어와 가까운 것들을 찾아냈다.

귀가 열리고 시야가 트인다.

황금기의 눈으로만 볼 때보다 상(像)이 선명해진 콜리어는 동공이 크게 벌어진 채로 가쁜 숨을 헐떡이는 중이었다. 거의 탈진에 가깝게 소모된 사람의 모습이다.

“이게…… 되네?”

멍하니 중얼거린 콜리어가 이내 주먹을 불끈 쥐고 미친 사람처럼 눈물과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머리로부터 피와 고름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흐흐…… 흐으흐하하하! 크로우허스트 이 미친 괴물 새끼야! 나도 대마법사다! 나도 대마법사야! 감각과 의식을 다루는 마법의 거장 콜리어가 지금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경지에 올라섰노라!”

나는 몹시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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