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진노의 날 (14)
유인용 비행선의 선회와 가속은 제트 바이크 편대 다수의 보조를 받고 있었다. 계류용 밧줄을 엮는 고리마다 견인 와이어를 걸어 제트 바이크들의 추력을 추가로 전달받는 방식.
여기에 더해, 비행선 내부에 배치된 염동능력자들이 합을 맞춰 선체에 힘을 싣는 모습도 보였다. 힘의 균형을 정확하게 맞추기가 어려운 방식이긴 하나, 거대한 비행선은 방향전환을 할 때를 제외하면 그런대로 안정감 있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중이었다.
‘고래를 이쪽으로 던지고 갈 셈인가?’
지금 자위대와 일본 정부는 영국 공중전투함들의 폭주로 인해 속이 아주 부글부글 끓고 있을 게 분명하다.
민주주의 정부의 특성상, 국가 대 국가의 차원에서 대응방안을 결정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러나 성난 고래를 이곳으로 유도해서 이독제독을 시도하는 것쯤은 지금도 충분히 시도할 법했다.
제트 바이크 편대들이 달라붙어 추력을 보태고, 그보다 더 많은 제트 바이크들 및 항공자위대 세력이 엄호를 제공하는 비행선의 모습은 일본식 축제(마츠리/祭り)의 거대 가마(산샤/山車) 행진을 연상케 했다.
마츠리는 본디 신령을 초대하여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며, 산샤는 불러낸 신령을 모시기 위한 움직이는 제단이다. 그러니 바다의 신이라 불리는 고래를 끌고 오는 지금 이 상황과 통하는 부분이 있긴 있었다.
식어가던 머리와 심장이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한편으로는, 팽팽한 긴장상태와 급격한 감정적 등락이 계속되면서 정신과 육체 모두 지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피로감을 다잡으려 애쓰며, 나는 본능적으로 시간을 벌어야겠다고 판단했다. 단 몇 초만이라도 좋다. 콜리어가 고래의 접근을 알아차리는 시점을 단 몇 초만이라도 더 늦출 수 있다면, 이번 사냥은 뜻밖의 국면으로 접어들지도 모른다.
그럼 우선 상대의 관심을 붙잡아놔야겠지.
더 깊게. 더 강하게.
“콜리어 경. 그대는 내가 왜 원탁을 등졌는지 아는가?”
항복요구에 대한 즉답을 피하면서 던지는 질문. 내 예상대로, 사냥감은 강경한 투항권고를 이어가는 대신 크로우허스트가 배신을 결심한 경위에 흥미를 드러냈다.
「어째서였나?」
“간단하네. 그때의 내겐 그대와 같은 마음이 있었지. 이렇게 한심한 새끼들하고는 승천의 대업을 함께할 수 없다는 혐오감이.”
콜리어는 먼저와 같은 날카로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거 웃기는 말이로군! 설마 나도 그 한심한 새끼들의 하나였나?」
“정말로 솔직히 말하면, 경을 내 아래로 본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나를 제외한 나머지 대의원들 중에서 지혜로는 그대가 내 다음이라고 여겼네.”
「어이없는 내용과는 별개로, 내가 아는 크로우허스트 경이 할 말은 아닌데. 설마 벌써부터 아첨을 하려는 건가? 기왕 하려면 자존심을 더 내려놓고 좀 제대로 해보지 그러나?」
“아첨이 아니라 사실이 그래. 그대도 생각을 해보게. 그대를 섀빙턴처럼 못난 놈과 같은 선에 두는 건 객관적으로 봐도 못할 짓이지 않나?”
콜리어는 예로부터 섀빙턴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원탁내각이 섀빙턴을 콜리어의 안전장치로 삼은 걸 보면, 또 조금 전의 대화에서 콜리어가 섀빙턴을 두고 광명의 탐구자가 아닌 추잡한 배설물 애호가라고 지칭한 걸 보면, 크로우허스트가 원탁을 떠난 이후로도 두 사람 사이에 딱히 관계개선이 이루어진 것 같진 않았다.
「그 인간과 나를 비교하는 건 단순한 모욕 이상 이하도 아니야!」
역시나 콜리어는 죽은 섀빙턴과의 비교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로더필드는 하다못해 용맹과 전장에서의 관록이 남다르기라도 했지! 대마법사로서의 지혜도 변변치 않은 주제에 연구에 집중할 생각은 않고! 제 가솔들에게 똥오줌 퍼먹이는 일에만 쓸데없이 공을 들이는 얼간이를 어찌 나와 동격으로 볼 수 있단 말인가!」
콜리어의 반응은 거의 화를 내는 수준에 가까웠다. 나는 도구적인 공감을 표해주었다.
“놈이 세운 가규(家規)가 다소 고약하긴 했지.”
「다소? 다아아아소?!」
“실천방식이야 어쨌든, 교리 해석 자체는 틀린 구석이 없었잖나?”
「교리 해석의 옳고 그름을 떠난 문제지! 다른 좋은 전례(典禮)들을 다 내버려두고 왜 하필 그딴 더러운 전례를 가규로 세운단 말인가! 세상에 기름부음을 제 분변으로 해주는 메시아가 어디 있냔 말이야! 전례의식이 필요하다면 향유를 쓰라고, 향유를!」
콜리어가 노호하는 대로, 섀빙턴은 자신의 배설물에 대한 도착적인 애호가 있었던 인간이다. 강대한 사냥감의 격앙된 반응은 내게 흡족함을 선사했다.
‘화제를 아주 잘 골랐어.’
섀빙턴의 분변 애호는 지독한 나르시시즘과 자기 자신에 대한 극한의 우상화, 그리고 원탁이 왜곡한 기독교 교리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탄생한 결과물이었다.
창세기의 5장은 인간의 탄생을 이렇게 설명한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지어내시던 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빚으셨다.(In die qua creavit Deus homi nem, ad similitudinem Dei fecit illum.)」
인간은 신이 자신의 모습대로 빚어낸 것이므로, 인간은 곧 신의 형상(이마고 데이)이며, 따라서 인간에게 있는 것은 신에게도 있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그렇기에 「조물주와 구세주의 배설물」은 오랜 세월 첨예하면서도 불편한 신학적 논쟁의 대상이었다. 그 존재를 함부로 부정할 수는 없으나, 그 존재를 인정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섀빙턴은 메시아의 운명을 받은 자신에게 생리적인 불결함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용납하기 힘들어했다. 황금기의 눈으로 황금기의 정수를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황금기를 살았던 인류가 배변활동을 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종교적이고도 정신적인 차원의 결벽증을 앓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섀빙턴은 여호와와 예수 그리스도의 배설물에 대한 옛 신학자들의 논증들 가운데에서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취사선택하여 원탁의 교리에 끼워 맞췄다.
「신이 자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빚었을지라도, 신과 인간 사이엔 무한한 우열의 격차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신의 배설물과 인간의 배설물 사이에도 똑같이 무한한 우열의 격차가 존재한다고 보아야 합당하지 않은가? 신의 배설물은 인간의 그것과 형상만 같을 뿐 본질적으로는 한없이 우월한 관념적 실재다. 메시아의 그것 역시 그러함이라.」
이 논리엔 다른 대마법사들도 동의했다. 자신의 필멸자적인 부분들을 부정하는 것은 대마법사들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었으므로.
하지만 섀빙턴에겐 이게 끝이 아니었다. 자신이 발굴하고 재구축한 논리에 깊게 심취한 섀빙턴은, 예의 결벽증이 남긴 정신적 반동을 이상한 방식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들어라, 나의 백성들아. 내 몸에서 나오는 가장 하찮고 더러운 것조차 너희 몸의 가장 귀하고 깨끗한 것보다 아득하게 더 값지며 고귀하다.」
「그런즉 내게서 나는 것을 구분 없이 귀하게 여기지 않는 자는 참된 믿음으로 나를 받들어 섬기는 신실한 백성이 아닐지라.」
「너희는 나를 이루거나 내게서 나는 모든 것들을 한결같은 기쁨으로 떠받들지어다.」
섀빙턴 가문의 전례에서 기름부음에 가주의 분변을 쓰기 시작한 게 바로 이 무렵부터였다.
내 스승새끼의 유해에도 그와 관련된 강렬한 기억이 하나 남아있다.
섀빙턴 가문 기사단의 서품식에 초대를 받아 갔다가, 주인의 대변을 얼굴에 바르거나 소변을 맞으면서 황홀해하는 기사들의 모습을 보고는 진저리를 치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던 크로우허스트의 기억이.
의외로, 다른 대마법사들은 눈살을 찌푸릴 뿐 섀빙턴의 행동을 성토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교리적으로 틀리지 않았고, 논리 자체는 마음에 들었으며, 어차피 자기 가문 안에서만 하는 짓이니 간섭할 바가 아니라고 여긴 까닭.
가문 내의 행사는 오롯이 가주의 권리이며 가주 개인의 사생활이다. 거기에 간섭한다 함은 자신의 사생활과 자신의 가문에 대해서도 같은 간섭을 각오해야 한다는 뜻.
원탁의 권위와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 승천의 언약으로 맺어진 주인과 종복들 사이의 관계는 신성불가침이어야만 한다는 게 원탁의 규율이었다. 가문 바깥인 원탁내각의 대회의장에까지 알몸으로 출석하곤 했던 로더필드와는 경우가 다르다.
고로 콜리어가 드러내는 경멸감은 그 이전부터 좋지 않았던 두 사람의 관계가 영향을 미친 것이었다.
싫은 놈은 뭘 해도 밉게 보이는데, 가문 내의 일이라지만 가솔들에게 그토록 비위생적인 짓을 하고 있음에야.
「음?」
내가 적절하게 넣어주는 추임새에 맞춰 죽은 앙숙을 헐뜯던 콜리어는, 유인용 비행선과 고래의 마력장이 트라운서가 지닌 마력장의 바깥 경계를 지그시 일그러뜨릴 즈음에야 비로소 후방으로부터 다가오는 위협을 인지했다.
「이게 무슨?!」
내가 함선 중추의 기능까지 꿰뚫어볼 순 없어서 확신까지는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저가 쓰는 회선 이외의 모든 통신을 봉쇄했다는 말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아니었다면 일찌감치 조기경보기나 수상함대로부터 전해지는 경고를 수신했을 테니까.
나와의 대화를 노출시키지 않기 위한 조치였다곤 해도, 통신 차단은 지나치게 눈앞의 상황에만 매몰된 결정이었다.
유사 이래 모든 전쟁은 잘 싸우는 자가 아니라 헛짓거리를 덜 하는 자가 승리했다.
달리 말하면-
‘헛짓거리를 덜 하는 게 곧 잘 싸우는 거지.’
내 눈에 보이는 트라운서의 승조원들은 아까부터 불미스러운 사태에 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전원과 배선이 독립되어있는 경보장치를 작동시키고, 함내 교전 발생에 대비해 화기와 탄약을 불출하며, 지정된 장소에 무장인원들을 집결시켜 전투제대를 편성하는 등. 일부 기술직군은 탄약고 폭파 시퀀스를 점검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대마법사에 의한 외부와의 통신 단절은 자칫 대마법사의 이반까지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영국정부에 충성하는 애국자들 입장에선 당연한 대응조치였다.
그렇기에 고래의 접근을 발견하는 시점이 더욱 늦어졌다.
레이더를 포함한 탐지수단들이 내 레이저 공격을 받아 많이 파괴되었다곤 해도, 육안관측을 맡은 견시수들만 정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면 비행선과 고래를 상대로 이만큼이나 접근을 허용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외부 관측 카메라들 또한 여전히 작동하는 것들이 있기도 했고.
「주제를 모르는 동양 유인원들이 감히 원탁의 대마법사에게 위험을 몰고 오려 들다니! 크로우허스트! 일단 저것들부터 먼저-」
노여움을 터트리던 콜리어가 말끝을 흐렸다.
「잠깐, 잠깐……! 황금기의 눈을 쓰는 그대에게 저것들이 보이지 않았을 리가-」
나는 대꾸도 않고 아비터를 전속력으로 상승·전진시켰다. 콜리어가 즉시 트라운서를 움직이며 분개하여 외쳤다.
「속였구나, 크로우허스트!」
속는 놈이 병신이지. 살짝 옆으로 돌아가 있던 트라운서 측 전열화학포와 레이저 포대들이 다시금 이쪽을 겨냥하는 모습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콰쾅! 쾅!」
아비터의 선체에 철갑유탄이 작렬했다. 나는 고도를 높여 사각이 확보된 즉시 대응포격와 레이저 공격을 가하며 트라운서를 뒤쫓았다.
우려했던 대로, 트라운서의 기동성은 아비터를 능가했다. 그럼에도 아비터와 트라운서 사이의 거리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트라운서가 나와 고래를 동시에 회피하려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에서는 내가, 뒤에서는 고래가 육박해오고 있으니 트라운서로서는 측면으로 회피기동을 시도하는 수밖에.
그러나 그래서는 어느 쪽도 확실하게 피하지 못한다. 이 순간만큼은 상대속도가 거의 반토막이 나버린 셈이니까.
비행선이 목숨을 걸고 끌고 온 고래는, 이제 자신을 빛과 열로 고통스럽게 했던 존재의 독특한 마력장을 분명하게 인식했다. 전과는 달리, 자신이 접근하고 있음에도 뒤로 빠지는 게 아니라 옆으로 움직이는 마력장을.
그렇다면 전처럼 공격을 단념할 이유가 없다.
「히우우우우-!」
키요우타마히코의 포효가 밤하늘을 가로지른다.
나는 마력회로를 과부하의 빛으로 불태우며 돌진해 들어오는 고래에게 뜨거운 환호와 갈채를 보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