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진노의 날 (11)
내가 초탄을 철갑탄으로 쏜 것은 확실한 관통이 필요했던 까닭이었다. 고폭탄이나 철갑유탄을 쐈다면, 선체에 가하는 피해는 훨씬 더 커졌을지라도, 제트 엔진의 연소실까지는 포탄이 닿지 않았을 것이다.
전열화학포의 155mm 철갑탄은 내 기대에 부응해주었다. 눈대중으로 겨냥해 쏜 초탄이 바로 연소실을 관통해버린 건 놀라운 행운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진한 아쉬움을 느꼈다.
‘이쪽의 제트 엔진이 살아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섀빙턴과 지배권 다툼을 하는 사이, 아비터의 제트 엔진엔 응급수리만으론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의 구조적 손상이 발생했다. ‘윌리엄 역병’으로 인한 생체조직들의 팽창이 기관을 손상시킨 것이다.
수리가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 능력만으로 온전하게 복구를 해내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상태로 엔진을 가동했다간 엔진 곳곳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나가는 꼴을 보게 될 터.
일단 달라붙기만 하면 승부수를 띄울 수 있는 상황에서, 이쪽의 제트 추진계통이 망가져있다는 건 정말로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아쉬움을 억누르며, 나는 트라운서 방향의 중첩 환시장막을 걷어냈다.
「우우우우웅-!」
사각(射角)이 열린 레이저 포대 두 문이 최대출력의 광선을 내뿜었다. 노리는 건 트라운서의 전열화학포 포탑 하나. 함선간 교전에서 가장 치명적인 무기 체계부터 날려버려야 한다.
트라운서의 장갑판 표면에서 찬란한 빛과 강한 열파가 터져 나왔다. 내 눈엔 광란을 일으키는 열의 격류가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순전히 내 눈과 감각으로만 조준해야 하는 레이저는 표적에서 각기 수 미터씩 빗나갔다.
나는 신속하게 조준점을 수정했으나, 이쪽의 레이저가 미끄러지는 것과 동시에 저쪽의 함포와 레이저도 조건반사처럼 반응하여 이쪽의 무기체계를 노렸다. 내게는 저쪽의 사격레이더 전파가 반사되는 지점이 보였다.
「콰우-웅!」
한 덩어리로 뭉쳐 울리는 두 개의 포성. 늦지 않게 환시장막을 치고 회피기동에 돌입한 덕에, 적의 포격은 이번에도 이쪽의 가용 화력을 파괴하지 못했다. 급소를 피해 아비터를 관통한 철갑탄 한 쌍은 포물선을 그리며 요코하마 시가지에 착탄했다. 물수제비처럼 튀어 오르는 포탄들은 남은 위력만으로도 아홉 채의 주택을 반파시켰다.
내가 노렸던 전열화학포 포탑엔 검게 그을리고 눌어붙은 상흔만이 남았다. 포탑의 기능 자체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바이탈 파트를 보호하는 강화 장갑판을 관통하기엔 레이저를 조사(照射)한 시간이 너무 짧았던 것이다.
「쾅!」
아비터의 선체가 진동한다. 내가 가한 전열화학포 대응사격은 레이저와는 차원이 다른 관통력으로 장갑판을 파괴하고 들어가 폭발했다.
내부에서 작렬한 포탄은 사람 하나를 찢어죽이고 폭압으로 다수의 부상자들을 양산했다. 화재경보가 점등되고 스프링클러가 물을 터트리는 광경이 보인다.
「츠츠츠츠츳!」
냉각을 거친 트라운서의 레이저 포대들이 다시금 네 줄기의 광선을 쏘아 보냈다.
차고 거친 바람에 노출되어있던 인간혼합물의 외피가 광선의 질주를 따라 순식간에 불이 붙고 탄화되어간다. 물을 방출하여 방어하기 전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아비터의 생체조직 표면엔 길이 10미터가 넘는 중증 화상 네 줄기가 새겨졌다.
화상 회복엔 다량의 연료가 들어갔다. 회복의 여지도 없이 탄화된 덩어리들이 바스러지며 밀려나가고, 빠르게 돋아난 새살이 빈자리를 메웠다. 연료공급관과 연결된 조립식 아기들이 오랫동안 굶은 것처럼 유동식을 빨아먹는다.
나는 짜증을 담아 인상을 썼다.
‘화끈거리는군.’
고열에 구워진 조립식 아기들의 고통이 내 신경계로 밀려들어왔다.
통각과 열감을 많이 둔화시켰음에도, 내 몸 바깥에서 오는 고통의 강도가 약하지 않았다. 상처의 크기가 전투함 전체 크기에 비해서도 결코 작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보다 더 통각을 둔하게 만들기도 곤란했다. 전투함의 제어가 둔감해지는 까닭이었다.
저쪽이 그렇듯이, 위력이 줄어드는 걸 감수하면 이쪽도 환시장막을 전개한 상태에서 레이저 공격을 가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렇게 감소한 위력으로는 트라운서의 장갑판을 뚫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 다른 부분의 장갑도 그렇지만, 중요도가 높아 방어력이 집중된 부분들은 더더욱 그러하다.
점점 더 빠르게 흘러가는 지상에선 아까와 같은 순시경보(瞬時警報)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다. 7초간 떨리며 상승했다가 3초에 걸쳐 뚝 떨어지는 패턴의 경보음이.
「항공공격정보! 항공공격정보! 하네다 국제공항을 파괴한 고래는 현재 죠난지마(城南島) 방향으로 진행 중! 수도고속 제1로와 국도 15호는 현재 완전히 폐쇄되었습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경보음 사이에 나오는 메시지가 더는 녹음본이 아니게 되었다는 점. 어느 공무원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재난 상황을 전파(방재행정무선)하고 있는 것이었다. 음량을 최대로 키워놓아, 다급한 목소리가 아비터의 비행고도에까지 닿았다.
「영국 공중초계함 간 교전 발생! 폭주했던 초계함 아비타가 광학미채(光学迷彩/광학위장)를 실시한 상태로 토라운사를 추격하고 있다는 정보! 양측의 포격과 레이저 공격으로 부수적 피해가 확산 중!」
공무원의 필사적인 목소리는 대호를 잡을 적 마지막까지 소임을 다하다 죽은 여경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긴급피난명령 발효! 긴급피난명령 발효! 요코하마 동북부, 가와사키 남서부 전역에 긴급피난명령이 발효되었습니다! 영국 공중초계함들의 진행경로에 위치한 모든 분들께서는 신속하게 현 위치를 이탈하여 주십시오!」
환시장막에 걸러진 레이저 공격들의 여파는 하늘의 구름들을 기이한 색채로 번쩍이게 했고, 수백 미터 아래의 지상엔 작은 불씨들이 무수히 피어나도록 만들었다. 적어도 몇 개의 불씨는 덩치를 불려 화마로 거듭날 것이다.
위력이 깎인 레이저 광선을 그대로 미끄러뜨린 후, 바이탈 파트에 대한 명중이 확실해졌을 때 장막을 거두어 최대 화력을 내는 방법은 먹히지 않았다. 저쪽도 바보가 아니기에 레이저의 움직임을 보고서 회피기동을 했기 때문이다.
혹은, 그 타이밍에 맞춰 자신들 또한 최대화력 투사를 준비하거나.
결국 장막을 펼친 상태로 쏘는 레이저는 적에게 회피기동을 강요하는 수단으로서 더 의미가 있었다. 장갑판이 레이더와 안테나까지 보호해주진 못하기에, 내가 그것들을 향해 레이저 줄기들을 움직일 때면 트라운서는 불에 덴 사람처럼 발작적으로 기동했다.
그렇게 하고도 노출 면적이 넓은 이지스 레이더까지는 보호하지 못했다.
「바박! 바바바박!」
값비싼 이지스 시스템의 얇은 덮개가 녹아내리고, 레이저 공격에 노출된 질화갈륨 소자들이 줄줄이 손상된다.
이지스 레이더를 잃어버리면, 트라운서가 장막을 넘어 잡아내는 아비터의 상(像)은 더욱 번지고 흐트러질 수밖에 없었다. 트라운서의 무장을 다루는 전투체계관들은 지금쯤 희뿌연 전파 안개에 대고 막연한 공격을 퍼붓는 느낌을 받고 있을 것이다.
질화갈륨 레이더 소자의 생산국은 현재로선 일본이 유일하다. 그러니 설령 무사히 영국으로 돌아가더라도 복구에 난항을 겪을 타격을 가한 셈. 빠른 재전력화를 위해서는 성능 저하를 감수하고 자국산 준 이지스 시스템(샘슨)으로 교체해야겠지.
내가 집요하게 레이더를 노리는 사이, 재장전을 마친 적의 함포가 또 밤하늘을 번뜩이게 했다.
쿠르릉 하는 울림과 함께 피탄 당한 아비터의 선체가 강하게 흔들렸다.
계속해서 철갑탄으로 바보짓을 해주길 바랐으나, 이번에 적이 쏴 갈긴 건 내가 쏜 것과 같은 철갑유탄이었다. 철갑탄에 비해 내가 죽거나 다칠 확률은 낮지만, 배 안에서 폭발하는 포탄은 조립식 아기들에게 묵직한 피해와 출혈을 선사했다.
회로의 처리능력을 회복에 낭비하는 동안 전투함의 속도는 일시적으로 감소했다. 이는 곧 그만큼 벌어지는 간격을 의미했다.
심중의 화가 열기를 더해간다.
「콰앙!」
이쪽의 함포도 재장전을 마치고 발포했다. 한 발 한 발의 장전에 걸리는 시간은 이쪽이나 저쪽이나 7~8초 안팎. 가대에 포탄을 올려놓기만 하면 나머지는 자동장전장치가 알아서 처리하는 방식이다. 그렇기에 시체인형이 쓸모가 있는 것이고.
「철커덕-」
커다란 탄피가 자동으로 배출되고, 새로운 철갑유탄이 약실로 밀려들어간다. 그 옆에서 대기하는 건 인형으로 만든 승조원들. 반복훈련으로 숙달했을 직별 기능은 시체인형이 되어서도 기계적으로 재현되었다.
부분적으로는 인형 윌리엄에 대한 분석을 통해 향상된 내 「소생」의 기량 덕분이기도 했고.
전향한 기사들에겐 전투임무를 맡길 수 없었다.
“황금기의 태양이시여. 태양의 빛을 계승하는 사람의 아들이시여. 당신의 종을 구하소서. 진리의 빛과 당신의 언약으로 제 영혼을 이끌어주소서…….”
요동치는 전투함 내부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기도를 올리는 기사는 두 눈에 눈물이 그득했다.
강한 중력가속도가 수시로 방향을 바꿔가며 엄습하고, 포성이 울리고, 폭음에 선체가 진동하고 있으니, 내가 트라운서와 교전을 개시했다는 사실을 투항자들이 모를 수가 없다.
마음의 정리를 시작조차 못한 투항자들에겐 내 승리도 비극이고 트라운서의 승리도 비극일 터.
그런 의미에선 차라리 자포자기한 기도라도 올리는 자들이 나은 편이었다. 지금 올리는 기도는 새로운 언약의 주(主)인 나를 향하는 것이니까. 기도를 올릴 곳을 잃었다고 여기는 기사들은 모든 의지가 꺾인 모습으로 아이처럼 울고만 있을 따름이다.
나는 눈을 적에게 둔 상태에서도 기도하는 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해두려 애썼다.
「콰아앙!」
기도하던 자 하나가 폭발에 휩쓸려 죽었다.
‘염병-’
지금 벌이는 난타전에서 내가 유리한 점 하나는, 환시장막의 개폐가 온전히 내게만 달려있다는 것. 따라서 최대출력의 레이저 공격은 사실상 나만이 가할 수 있다는 것.
조사대에게 귀신놀음으로 연습을 한 보람이 있어, 장막을 켜고 끄는 과정에서 실수는 발생하지 않았다.
‘역시 무리였나……. 이대로는 못 따라잡는다.’
난타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피아의 간격은 미세하게나마 조금씩 조금씩 더 벌어지기만 할 따름이었다.
적의 포격이 정밀하지 못하다곤 하나 아예 빗나가는 경우는 없었고, 레이저 공격으로 누적되는 피해량도 옷을 적시는 가랑비와 같았으며, 결정적으로 확장회로를 다루는 대마법사의 기량이 내 예상을 웃돌았다.
상대의 기량은 나보다는 아래였으되 섀빙턴보다는 훨씬 더 윗줄이었다. 상대가 확장회로의 설계자일지 모른다는 의심은 이제 거의 확신으로 바뀌었다.
「쿠웅!」
전열화학포의 발포 충격에 아비터의 선체가 진감했다. 섀빙턴과의 곳곳이 피로한계에 가까워진 선체는 슬슬 함포의 반동을 견디기도 버거워하고 있었다. 조립식 아기들이 대신 감당하는 응력이 점점 더 커지는 게 느껴진다.
나는 우현 너머 멀리에 있는 바다를 일별했다. 지금이라면 사냥을 중단하고 전장을 벗어날 여유가 넉넉하다.
그러나 위험부담을 감수한다면, 아직 시도해볼 만한 방법이 하나 남아있기는 했다. 전율하는 거인이 구사하던 마법들 가운데 내가 감히 재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단 하나의 권능.
공간왜곡.
그건 분명 사람이 닿지 못할 영역에 존재하는 힘이었다. 나 같은 대마법사라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순수 생체질량만 천 톤이 넘을 확장회로를 손에 넣은 지금이라면, 그 말도 안 되는 원시마법을 국소적으로나마 재현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막대한 과부하가 발생하리라는 점.
거인이 사용한 공간왜곡의 코드 자체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걸 내가 쓰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에, 연구도, 최적화도 해놓은 게 없었다. 실제로 어느 정도의 과부하가 발생할지조차 예상하기 어렵다.
아비터의 생체질량이 아무리 크다 한들 전율하는 거인에 비하면 하찮은 수준이다. 내게 공간왜곡을 선보이던 시점에서, 영토 확장과 성장을 거듭한 거인의 추정 질량은 이미 이십만 톤을 넘어선 상황이었다.
어쩌면, 이 한 수는 내 전장이탈 가능성을 봉쇄하는 최악의 선택이 될지도 모른다.
가장 안정적인 선택은 지금 바로 철수하는 것이다. 이미 대마법사 하나를 사냥했고, 원탁의 내부 사정을 캘 전향자들도 확보했다. 후자를 빼내는 데 실패한다면 굉장히 아깝겠지.
그럼에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갈등의 마지막 순간에 떠오르는 건 수연 녀석이 공손하게 입에 담았던 노파심이었다. 내 목표는 이제 정공법으로도 달성할 수 있게 되었으니, 서두르지 말아달라고 했던 당부. 그 목소리가 귓가에 되살아나는 듯하다.
망설임 끝에, 나는 조립식 아기들의 마력회로에 공간왜곡의 코드를 장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