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진노의 날 (9)
HMS 트라운서에서 염동비행으로 내려온 조사대는 예정된 시각에 HMS 아비터의 선내로 진입했다.
이제부터는 정말로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셈이었다.
조사대 전원을 조용히 몰살시키거나 조사를 지연시키는 식으로 시간을 더 버는 방법이 있긴 하다. 그러나 그 경우, HMS 트라운서의 대마법사는 동료 대마법사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다소 극단적인 수를 쓸 가능성이 높았다.
그 극단적인 수란, 내가 타고 있는 이 배를 양파 껍질 벗기듯이 해체해버리는 것.
먼저 이쪽의 레이저 포대와 함포부터 무력화한 후, 고출력 레이저 광선으로 선체를 바깥에서부터 차근차근 절단해버리면 그만이다. 거의 외과수술에 가까운 정교한 해체는 원거리에서 이쪽의 대마법사를 최대한 안전하게 노출시키는 방법이었다.
“Fucking bloody hell.”
통로에 자라난 아기들의 귀에 조사대장의 욕설이 들어왔다.
“엉망진창이군. 마치 지옥에 들어온 것 같아.”
끔찍한 표정으로 씹어 내뱉듯이 말하는 트라운서의 조사대장은 원탁의 하수인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영국정부가 미치지 않은 이상 공중전투함의 승조원들을 원탁의 세력으로만 채웠을 리가 있나. 유사시 자폭을 해서라도 원탁의 폭주에 제동을 걸어줄 애국자들을 태웠겠지.
자폭을 한다고 공중전투함이 완파되진 않겠지만, 최소한 이지스 레이더나 전열화학포처럼 마력회로 외적인 기능들은 마비시킬 수 있다. 그러면 영국 정규군이 지닌 무력으로도 공중전투함을 제압할 승산이 생기는 셈이다.
치직 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무전이 들어왔다.
「F-1 선레이. 상황보고 바란다. 아비터의 내부 상태는 어떠한가?」
두 개 화력 팀(Fire team)으로 구성된 조사대는 외부에 설치한 중계기와의 유선연결을 통해 모함(母艦)과의 통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조사대장은 극도로 경직된 부하들을 한 번 둘러보고서 한숨을 내쉬며 송수신 마이크를 쥐었다.
“왜? 바디 캠 영상이 안 보이나?”
「노이즈가 심해서 알아보기 어렵다. 음성통신의 감명도를 보면 알 것 아닌가.」
영상에 끼는 노이즈, 그리고 음성통신의 낮은 감명도는 내가 통신선에 가하는 마법적 간섭이 원인이었다. 신호가 오가는 선의 어느 한 점에 대해서만 간섭을 유지해도 통신의 품질은 급락할 수밖에 없다.
“……돌겠군. 현장 상태는 몹시 좋지 않다. 장애물이 많아서 탐색에 필요한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질 것 같다.”
「길어진다면 얼마나?」
“모르겠다. 10 마이크(분)? 20 마이크?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
「그렇게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 다른 진입로를 찾아보는 건 어떤가?」
“글쎄. 배의 꼬라지로 봐선 다른 진입로라고 더 나을 것 같진 않군. 새 진입로를 찾는 데에도 시간이 걸릴 것이고……. 무엇보다, 아비터 0A의 추정 위치와 가장 가까운 진입로가 바로 여기다. 새 진입로로 들어오더라도 결국은 여기를 지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부터 10 마이크를 주겠다. 그 안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철수하라.」
“……알았다. 최선을 다해보지. F-1 아웃.”
조사대는 곧바로 통로 개척에 착수했다. 나는 흡음결계를 펴고 적당한 수준으로 통로를 벌려놓거나 장애물을 재배치하여, 조사대가 조기철수를 결정하지 않게끔 유도했다.
통로에 가득한 핏자국과, 내장재가 벗겨진 부분마다 드러난 생체조직들 사이를 걷는 조사대원들은 하나같이 안색이 좋지 못했다.
“오, 신이시여. 우리가 지금까지 이런 괴물에 타고 있었던 겁니까?”
한 대원의 말에 조사대장이 무뚝뚝하게 답했다.
“몰랐던 것도 아니잖나.”
“머리로는 알았지요. 머리로는. 하지만 이렇게 보니…… 하아.”
대원은 차마 말을 맺지 못하고 떨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저기 돋아있는 귀와 입을 발견할 때마다 눈동자가 흔들리는 건 덤이었다. 다른 대원이 염동체술을 응용한 근력강화로 장애물을 치우며 투덜거렸다.
“제기랄. 마치 악마의 뱃속으로 들어온 기분입니다. 트라운서로 돌아가기도 싫어지는군요. 지금까지 그 배에서 먹고 자고 했다는 사실이 끔찍하기 짝이 없습니다.”
“입 다물고 힘이나 써.”
“떠들지라도 않으면 오히려 겁이 나서 힘을 못 쓰게 생겼습니다. 저 지금 떨고 있는 거 안 보이십니까?”
“지랄.”
이들이 떠들어대는 말들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조사대가 전진하는 동안 나는 조용히 전투함의 기능들을 되살리는 데 집중했다. 전력계통의 끊어진 부분들을 재연결하고, 내부 장갑재를 티 나지 않게 다시 채워 넣고, 탑재된 무장들의 정상 작동여부를 확인하는 등의 일.
전율하는 거인을 두 번째로 관찰했을 때 얻은 13종의 확장된 마법적 구속력엔 철·구리·니켈·몰리브덴과 탄소에 대한 구속력이 포함되어 있었다. 탄소를 제외한 나머지 원소들에 대한 구속력은 효율이 너무 낮아 실용성이 바닥을 치긴 하지만, 거대 확장회로를 손에 넣은 지금은 그 낮은 효율로도 전투함 곳곳의 수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전열화학포는 하나가 살아있고……. 레이저 포대는 고작 세 문밖에 못 쓰는 건가.’
동력공급을 재개하는 것만으로는 재가동이 불가능한 레이저 포대가 다섯 문이나 되었다. 안타까운 노릇이나,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감안하면 세 문이라도 살아남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레이저보다 더 중요한 전열화학포는 두 문 중 한 문이 고장이었다. 숙련된 탄약수가 시체인형으로 교체된 만큼 남은 한 문의 발사속도도 저쪽보다 느릴 터였다.
전체적으로 비교하면, 현시점에서 아비터가 보유한 재래식 화력은 트라운서의 4할 이하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나쁜 것이 살아있는 확장마력회로의 출력 열세였다.
조립식 아기들의 영적 군체를 다루는 기량은 내 쪽이 더 우수할 것이다. 나는 확실하게 크로우허스트 이상이고, 원탁의 다른 마스터들은 크로우허스트보다 못한 수준일 테니까. 스승새끼는 때때로 자기 자신의 영혼마저 실험물로 삼아 위험한 연구를 진행했던 미치광이였다. 그 광기는 다른 마스터들이 쉬이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영혼을 다루는 기량의 차이만으로는 만회하지 못할 격차가 존재했다.
우선은 마스터 섀빙턴의 구획 분리(퍼지) 시도로 말미암아 떨어져나간 아기 덩어리들. HMS 아비터의 전체 중량에 비하면 떨어져나간 무게는 대단치 않으나, 문제는 그 대부분이 순수한 생체질량의 손실이라는 점이다.
그 손실로 인한 회로의 손상을 봉합했을지라도, 봉합한 회로의 성능이 처음에 미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외부 장갑재가 많이 떨어져나간 것도 좋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달라붙어야 하는데 말이지…….’
무게가 감소한 것은 물론 속도를 내기 좋은 조건이기는 하다. 그러나 각종 포화와 레이저 광선들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이쪽은 전투를 벌이는 내내 지속적인 확장회로 생체질량의 손실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재생을 아무리 빨리 해도 레이저가 아기들을 잘라내는 속도보다 빠를 순 없을 터. 「생명」에 마력을 쏟는 만큼 속도가 느려질 것은 당연한 이치다. 연료로 삼을 유동식 또한 무한하지 않다.
게다가 내가 받아내야 할 화력은 HMS 트라운서의 것만이 아니다. 일단 이쪽이 본색을 드러내면, 영국군은 트라운서를 보호하기 위해 갖은 화력들을 다 퍼부어대겠지.
그뿐인가. 영국군의 요청에 따라 미군이나 일본 자위대까지 가세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화력의 격차가 다시 확장회로 생체질량의 격차로 이어지는 셈.
그래도 해볼 가치는 있는 싸움이다. 사냥감이 대마법사이지 않나. 생각해둔 수가 없지는 않거니와, 그게 통하지 않는다 한들 바다가 가까우니 여차할 때 내 한 몸 빼내는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았다.
“망할! 여긴 아주 꽉 막혔어!”
선두의 조사대원이 승강기 수직통로를 올려다보며 인상을 썼다. 작게 소리죽여 외치는 소리엔 짜증이 잔뜩 묻어있었다.
“보어스코프!”
이어지는 요청에 다른 대원이 탐색용 방폭 내시경(Borescope)를 넘겨준다. 선두의 대원은 우그러진 수직통로의 틈새로 적외선 케이블 카메라를 밀어 넣었다. 카메라 끝에 달린 적외선램프가 막힌 통로 저편으로 최소한의 조명을 제공해주었다.
“어때? 지나갈 수 있겠어?”
후열의 물음에, 내시경을 조작하던 대원은 자신이 밀어 넣은 케이블의 길이를 가늠해보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뚫어야 할 두께가 너무 두꺼워. 지금 우리가 낼 수 있는 힘으로는 너무 오래 걸리겠지. 게다가 저편이 잘 보이지도 않아.”
소형 적외선램프가 제공하는 조명은 수직통로 전체를 밝히기에 역부족이었다. 카메라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내다보는 건 수 미터 안팎이 한계다. 대원들은 각자 맡은 방향의 경계를 유지하며 대장에게 건의했다.
“더는 무립니다. 여기서 돌아가죠.”
“음…….”
“명령이라서 어쩔 수 없이 들어오긴 했지만, 애초에 시간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배가 멀쩡할 때도 5분은 걸릴 동선인데 겨우 10분이라뇨?”
“솔직히 여긴 너무…… 이상합니다. 누구, 여기까지 오면서 시체 하나라도 본 사람 있어?”
마지막 질문에 대해선 누구도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정예한 군인들답게 최대한 억누르고는 있었으나, 내 눈엔 조사대원들이 느끼는 공포의 색채가 선명했다.
일반적인 전장과 죽음에 대한 공포라면 모를까, 제아무리 역전의 용사들이라 해도 초현실적인 공포에 대해서까지 내성이 있을 리가 있나.
“근데 진짜 시체가 없는 건 너무 이상해. 혹시 이 배에 전부 잡아먹힌 거 아냐?”
후방 경계를 맡고 있던 대원의 말이 결정적이었다. 두려움을 느끼기로는 부하들과 다르지 않던 조사대장은 떨리는 숨을 뱉으며 끄덕였다.
“철수한다. HQ에 보고해라.”
이들의 보고는 내가 기다리던 것이었다.
‘무작정 퇴로를 끊는 건 상책이 아니란 말이지.’
지금의 내게는 1분 1초의 추가적인 여유가 소중하다. 시간을 벌면 벌수록 이 전투함의 상태를 더 만전에 가깝게 만들 수 있으니까.
조사대와 통신이 끊어지면 HMS 트라운서는 즉시 공격을 개시할 가능성이 높다. 통로가 막혀 퇴출이 불가능해지거나 너무 어려워져도 같은 결과가 나올 터. 저편에 있는 대마법사가 누구든, 조사대 따위를 기다려주느라 많은 인내심을 발휘하진 않을 것이었다.
잠깐은 섀빙턴의 시체를 눈속임에 이용하는 방안도 고려해봤다. 그러나 마력회로 파열에 따른 뇌와 신경계의 손상이 심각하여, 인형으로 만들어봐야 말 한 마디 제대로 못 내뱉는 결함품이 탄생할 게 뻔했다.
내게 충성과 순종을 서약한 기사들은 트라운서에 탑승한 대마법사가 감각과 의식(意識)을 다루는 마법의 대가, 마스터 콜리어 경이라고 털어놓았다.
이 진술이 정확하다고 치면, 내가 싸워야 할 상대는 원탁에서 내 스승새끼 다음으로 미친 과학자 같은 놈이다. 인간의 자아를 철저하게 전기적인 현상으로만 보는 이 인간은, 과거 포튼 다운(Porton Down)의 지원을 받아 인간 의식과 영혼의 결합을 연구했던 전적이 있었다.
서로 다른 다수의 뇌에서 미세한 신경 다발을 뽑아 연결하는 것은, 당시의 미약한 「생명」으로도 장기 연구 프로젝트로 도전해볼 만한 일이었다.
외부확장회로와 공중전투함의 설계자가 바로 이 인간이 아닐는지.
콜리어의 인명경시는 분명하게 원탁의 평균 이상이다. 이런 놈을 상대로 시간을 벌자면 적당한 완급 조절이 필요했다.
철퇴를 서두르는 조사대원들은 여전히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듯한 대화를 이어가며 내면의 두려움과 싸우고 있었다.
“고래 한 마리 잡으러 왔을 뿐인데 이게 대체 뭔 난리인지…….”
“차라리 이렇게 된 게 다행일지도 모르지.”
“진심입니까? 다행이라고요? 이게?”
“이 배가 무사했어도 저 미친 고래한테는 어림도 없었어. 계속해서 고래를 쫓아갔으면 역으로 우리가 사냥당했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본다.”
“고래가 무슨 수로 우릴 잡습니까? 우리가 놈을 잡을 방법은 없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잡히는 건 말도 안 되죠.”
“고래가 하늘로 날아올라 항구와 도시를 폭격하는 건 말이 되나? 그것도 다국적 연합함대의 공격을 모조리 방어해내면서?”
“…….”
“키요우타마히코의 능력과 행동은 임무부대의 모든 예측을 다 벗어났어. 난 그 초대형 괴수가 다음에 어떤 걸 보여주더라도 놀라지 않을 거야. 그건 진짜 괴물이라고.”
“……꼭 심판의 날 한복판에 던져진 기분이군요. 갑자기 집이 엄청나게 그립습니다.”
이들이 가쁜 호흡으로 속삭이는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나는 조립식 아기들의 확장회로 일부에 작은 규모의 「환시(幻視/Hallucination)」를 장전했다. 그레이스로부터 넘겨받고서 내 고유의 개량을 가한 기만용 술식.
내가 행한 개량의 목표는 환시가 왜곡하는 전자기파의 범위를 가시영역 너머로까지 확장하는 것이었다. 비록 아직은 그 목표를 완전히 달성하지 못하였으나, 그래도 HMS 트라운서를 상대로 치를 싸움에서 내 쪽의 생존성을 높여줄 순 있을 것이다.
이 술식을 실전에서 사용하는 건 이번이 처음.
그러니 확장회로를 통한 「환시」 시전 역량의 최종점검을 겸해, 조사대의 퇴출 속도를 조절하는 용도로 써먹어볼 참이다.
잠시 후.
“……!”
철컥. 급하게 총구를 올리던 조사대 선두가 뻣뻣하게 굳어 멈춰 섰다. 후속하던 다른 대원이 선두의 행동에 의문을 표했다.
“뭐야? 무슨 일이야?”
“분명히…… 사람을 봤는데……?”
“사람이라고? 확실해? 여긴 우리가 지나온 길이잖아!”
전장에서 두려움에 헛것을 보는 일은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뒤쪽의 물음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었다. 선두 대원은 식은땀을 흘리며 겁에 질린 표정으로 전방을 경계했다.
선두가 본 것은 여성 승조원의 시체인형이었다. 통로 중간에 세워놓고 환시로 가려두었다가, 전등 불빛이 점멸하는 찰나에 순간적으로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 이 순간, 서로의 간격이 10미터 정도에 불과함에도, 주야간 겸용 4세대 야간투시경을 사용하는 조사대원들은 시체인형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환시」가 가시영역을 넘어 적외선 대역에서도 완전한 위장을 제공한다는 의미다.
깜박이는 불빛 아래에서 가시(可視)와 불가시(不可視)를 오가는 괴이(怪異)는 영화에 큰 관심이 없는 내게도 익숙할 만큼 고전적인 연출이다.
그러나 그 고전적인 연출을 스크린이 아닌 현실에서 보게 되었을 때, 이런 건 많이 봐서 괜찮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피에 젖은 시체인형의 모습이 다시 한 번 깜박이듯 나타났다가 사라지자, 소스라치게 놀란 선두 대원은 발작 같은 3점사를 가한 후 덜덜덜 손을 떨어댔다.
“씨발……! 왜 귀신까지 나오고 지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