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진노의 날 (6)
혼이 뒤섞이고 육체가 뭉쳐진 아기 군체의 고통스러운 합창은 그 자체로 사람을 죽이고도 남을 음량이었다. 나는 청각신경을 차단하여 소음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했다. 그럼에도 가벼운 어지럼증과 구토감이 느껴지는 것까지는 피할 수 없었다.
확장회로와의 연결을 통해 밀려드는 조립식 아기들의 고통도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나는 이 감각 역시 즉각적인 신경 조율을 통해 경감시켰다.
확장회로에 대한 지배력을 겨루는 싸움은 기본적으로 공중전투함의 추락을 걸고 벌이는 치킨게임이었다. 나는 오로지 확장회로를 강탈하는 일에만 전념했으므로, 나와 대적하는 대마법사는 추락에 제동을 걸 때마다 확장회로의 점유율을 상실했다.
만약 정말로 전투함이 지면에 격돌할 것 같으면, 나는 등 뒤에 열려있는 균열을 통해 탈출을 시도할 수 있다.
물론 타이밍을 맞추기는 어려울 것이다. 너무 빨리 탈출해버렸다간 전투함이 완파되지 않을 테고, 너무 늦게 회로와의 접속을 끊으면-
‘함께 으스러져 죽겠지.’
그러나 전투함의 중심부에 자리한 상대의 처지는 나보다 나쁘다. 상대의 탈출 동선은 내 동선에 비할 바가 아니니까.
대마법사를 위한 공간을 전투함의 가장 깊은 곳에 마련한 건 무엇보다 우선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원탁의 대마법사가 타고 있는 한, 이 강철의 공중요새가 무너질 일은 없으리라는 자신감이.
한편으로는 황금기의 눈으로부터 자신을 숨기고 싶은 욕망도 있었을 것이다. 마법의 암흑기에도 이 염병할 눈알 한 쌍을 들고서 온 세상의 잠재적 경쟁자들을 말살하고 다녔던 게 원탁의 대마법사들이지 않은가.
일신의 전투력으로는 최강이었던 로더필드마저 전사한 마당에, 흉수일 가능성이 있는 내 스승새끼의 관측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
이런 것들에 비하면 공간적 위치에 따른 확장회로의 제어 용이성은 부수적인 이득에 불과하다. 오로지 그 이득만을 위해 유사시의 탈출을 어렵게 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자기 자신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원탁의 마스터에게는.
「-」
고요하다.
나는 부자연스러운 적막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청각을 계속 막아놓는 건 내 생존성 제고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상대가 추락을 저지하는 틈에, 나는 「생명」을 운용하여 내 지배하에 들어있는 인간혼합물들의 표피에 드문드문 귀가 돋아나도록 만들었다. 내 본신의 청각은 여전히 닫아놓은 채로. 각각의 귀에서 들어오는 신호는 선별적으로 골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하여 고요하던 내 세상에 시끄러운 소리들이 돌아왔다.
「끼우우우웅- 드드드등-」
자유낙하와 급제동이 반복되면서, HMS 아비터의 선체가 내는 소리가 점점 더 위태롭게 변해가고 있었다. 수천 톤짜리 강철 선체가 견뎌내기엔 과도한 변형 스트레스였다. 용골에 누적되는 금속피로의 색채가 선명하다.
지상은 그 색채가 진해진 만큼 더 가까워진 상태였다.
아기들의 울음소리는 여전했다. 이 울음소리들 사이에 영국군 승조원들의 절규와 울음이 간간이 뒤섞였다. 모든 승조원들이 각성능력자여서 아기들이 우는 소리만으로 죽지는 않았으되, 멀쩡히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군사적인 관점에서는 사실상 궤멸 상태다.
개중엔 큰 소리로 기도문을 읊는 기술사관도 있었다.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흐극……! 이는 그가 너를 올무와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귀를 막고 눈을 감은 채로 고래고래 외치는 기도문은 패닉에 빠져 현실을 거부하는 전형적인 방어기제였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흑,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흐흑-”
이렇게 흐느끼며 기도하는 사관의 옆엔 피와 고름에 얼굴을 박고 익사한 시체가 뻗어있었다. 머리의 상처를 보건대 천장이나 벽에 머리를 박고 기절해버린 경우였다. 사관이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면 죽지 않았을 인간이다.
그러나 선내의 모든 전투원들이 무력화된 건 아니었다.
원탁의 마스터를 호종하는 추종자들은 필사적으로 통로를 개척하고 있었다. 그리니치 갑주를 착용한 기사가 일그러진 낯으로 악을 써댔다.
“서둘러라! 마스터께서 적을 상대하시는 동안 길을 열어야 한다!”
이들이 확보하고자 하는 경로는 두 갈래였다. 하나는 탈출로. 하나는 공격로. 보다 절박한 건 탈출로를 뚫는 쪽이고, 보다 비장한 건 내 추정위치로 이어지는 공격로를 뚫는 쪽이다.
후자의 무리는 문자 그대로의 결사대였다. 결사대가 착용한 그리니치 갑주들이 피에 젖어 붉은빛으로 번들거렸다.
“전방에 귀!”
타탕! 천장에 돋아있는 아기의 귀를 발견한 기사 하나가 소총사격으로 귀를 날려버렸다. 나는 파괴된 귀 주변으로 여러 개의 귀가 더 돋아나게 했다. 소총을 쏜 원탁의 기사는 금방이라도 전의가 꺾일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회로로 미루어 4등위 장교쯤 되어 보이는 다른 기사가 호통을 쳤다.
“귀 같은 건 무시해! 우리는 최대한 빠르게 나아가 적을 타격해야 한다!”
“하지만, 하지만……!”
소총을 쐈던 기사가 울먹거린다.
“대마법사가…… 우리의 소리를 듣고 있는 거잖습니까……! 어쩌면, 로더필드 경의 살해자일지도 모르는 강대한 악이……!”
대마법사에게 대적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같은 대마법사들뿐이다. 이는 원탁의 추종자들에게 있어선 교리와 믿음의 영역에 있는 사실. 게다가 로더필드의 죽음은 가문의 차이를 떠나 추종자들에게도 크나큰 충격이었을 게 뻔하다.
지휘관이 다시금 호통을 친다.
“멍청한 것! 우리 가주님께서 만드신 귀일 수도 있잖아! 왜 근거도 없이 원탁의 대적(大敵)이 엿듣는 귀라고 단정을 짓나!”
겉으로는 이렇게 노호하면서도, 지휘관 역시 공포의 색채에 젖어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떨리는 몸, 떨리는 눈,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 이렇게 알기 쉬운 질책을 당한 기사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상급자를 바라보았다. 상급자는 이를 악물었다.
“사기를 떨어트리는 자! 패배주의를 확산시키는 자! 감정에 치우친 행동으로 시간을 낭비하게 만드는 자는 내 손으로 찢어 죽이겠다! 전원 복창해라! 위대하신 가주님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
“위대하신 가주님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
“더 크게! 마지막 언약의 주인 되시는 사람의 아들(Filius hominis)께서 우리를 가호하고 계신다!”
“마지막 언약의 주인 되시는! 사람의 아들께서! 우리를 가호하고 계신다!”
“모두 전진! 전진! 전진! 신실하고 명예로운 죽음은 곧 우리 영혼의 구원일진저!”
이 순간, 공중전투함이 또다시 덜커덕 고도를 상실했다. 수십 미터를 단숨에 떨어지는 기습적인 낙하는 원탁의 정예들에게도 거칠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더욱이 나와 밀고 밀리는 싸움을 벌이는 원탁의 마스터는 휘하의 기사들에게 마소 과급(過給)을 해줄 여유가 없었다.
즉 원탁의 기사들은 지금 거대 인간혼합물의 마력장에 짓눌려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 한들-
‘접근을 허락하면 귀찮아진다.’
나라고 마냥 여유가 넘치는 게 아니다. 나는 추락을 저지하려는 상대 대마법사의 시도에 비뚤어진 힘을 실어주었다. 갑작스럽고 불균형하며 폭발적인 상승을 초래하기 위하여. 이는 가장 가성비가 탁월한 견제수단이었다.
“으아아악!”
전투함 내부 곳곳에서 다채로운 비명들이 터져 나왔다. 사람과 더불어 선체의 용골도 금속성의 비명을 질러댔다. 공중전투함이 롤링(Rolling)·요잉(Yawing)·피칭(Pitching)이 뒤섞인 복합적인 회전과 함께 맹렬하게 치솟아 오른 탓이었다.
미리 대비하지 못한 원탁의 추종자들은 구르고 떨어지고 부딪쳐 튕겨나가며 온갖 방향으로 흩어졌다. 스스로를 염동력으로 묶을 만큼 순발력이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극명하게 갈렸다. 순발력과 판단력이 낮은 자일수록 보다 긴 거리를 나뒹굴고 더욱 큰 부상을 입었다.
내 몸은 벽과 천장에서 고사리 군집처럼 돋아난 기형적인 손들이 단단히 붙잡아주었다. 그러나 전투함의 거친 기동으로 인해 역겨운 액체를 뒤집어쓰는 것까지는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것을 막는 데 낭비할 회로점유율은 없다. 나는 얼굴에 묻은 고름을 손바닥으로 닦아냈다.
「응애응애응애응애응애응애-!」
지배력과 지배력이 충돌하는 경계마다 돋아난 입들은 여전히 시끄러운 음량으로 울어대고 있었다. 경보음이 끊어진 통로엔 작고 단단한 것들이 타닥 탁 튀며 날아다녔다. 조립식 아기들의 구강에서 빠진 유치들이었다. 일부 입들이 피 섞인 구토를 하면서, 그렇잖아도 더럽던 피와 고름의 홍수에 토사물까지 뒤섞이게 되었다.
장갑판을 뚫고 보이는 광경은 계속해서 어지럽게 돌았다. 하늘과 땅이 서로의 자리를 빼앗기를 수십 차례. 피 흘리는 공중전투함의 격렬한 회전은 그 원심력으로 말미암아 더 넓은 지상에 오염된 소나기가 쏟아지도록 만들었다.
하늘과 번갈아 휙휙 지나가는 지상에선 가정집들과 피난민들의 행렬이 역병의 빗방울들을 맞는 중이었다.
조만간 도쿄 광역권에선 대대적인 흑사병 유행이 발생할 것이다. 심각한 인구 과포화 상태인 도시들에겐 엄청난 재난이 될 터.
「콰릉! 콰콰콰쾅!」
시가지 한쪽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나 수백 채의 주택들을 파괴했다. 충격파가 길과 골목을 휩쓸고, 박살 난 지붕과 벗겨진 기와들이 난잡하게 비산한다.
폭발의 근원은 포경비행선 쇼난마루의 추락지점이었다. 비행선이 고래를 잡기 위해 탑재한 대잠로켓과 폭뢰들이 경착륙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연쇄유폭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었다. 막대한 양의 군용 폭발물들이 줄줄이 터져나가면서 주변 지역을 완전히 초토화시켰다.
뭉글뭉글 올라오는 연기를 뚫고, 또 한 척의 공중전투함 HMS 트라운서가 거리를 좁혀왔다. 동료함의 위기를 보고 고래에 대한 추적과 공격을 단념한 것이다.
그러나 가까이 온다고 해서 딱히 도와줄 방법이 생기지는 않는다.
이쪽이 이렇게 발광을 해대는 이유를 모르는 이상 함부로 접근하기도 어렵다. 문제의 원인이 전염병처럼 옮겨붙을 수도 있잖은가?
하물며 저 배의 조종자 역시 자기 자신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원탁의 대마법사임에야.
나는 머뭇머뭇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HMS 트라운서를 보고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을 확신했다. 적어도 지금 벌이는 싸움을 결판내기 전까지는.
「끼이이이-! 끽! 끼기긱-!」
「끼우웅-!」
HMS 아비터의 회전이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은 직후, 금속과 금속의 마찰음이 소름끼치는 음계로 울려 퍼졌다. 내가 탑승한 공중전투함의 폭탄창이 열리고 있는 것이었다. 찌그러진 폭탄창 개폐구는 강한 염동력에 밀려 부서지다시피 개방되었다.
‘무게를 줄일 셈인가?’
아무래도 내 대적자는 저편의 땅에서 발생한 폭발에 영감을 얻은 모양이었다. 폭탄을 모조리 투하해버리면 단숨에 수백 톤의 중량을 줄일 수 있다. 그 무게에 비례하여 추락의 위험도 줄어드는 셈이다.
사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방출 가능한 폭발물은 최대한 방출하는 게 맞긴 하다. 고정 장치가 풀려 굴러다니는 폭발물은 언제라도 터질 수 있으니까. 오히려 이제까지 하나도 터지지 않은 게 놀라운 일이라 해야 할 것이다.
원탁의 대마법사는 지상의 민간인들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상대가 폭탄창에 염동력을 낭비하는 틈을 타, 나는 확장회로의 지배력을 늘릴 수 있었으니까.
“엄마아아아아-!”
폭탄창에 피신해있던 영국군 몇몇이 다양한 종류의 폭탄들과 함께 강제로 방출되었다. 팔다리를 허우적대며 떨어지는 것들에겐 날개도 염동력도 존재하지 않았다.
「콰쾅! 쿠구구궁!」
지상에서 다시금 폭발이 일어났다. 단 한 곳에 집중적으로 투하된 대량의 폭발물들은 화산의 분화구와 흡사한 폭심지를 만들어냈다. 도로 곳곳이 추돌사고로 마비됨에 따라, 재난지역의 시민들은 이제 자신의 발에만 의지해서 탈출을 이어갔다.
포경비행선의 추락과 탄약 유폭으로 인해 발생한 대형 화재. 피를 흩뿌리며 발광하는 왕립공군 공중전투함과, 그 전투함의 폭탄 투하로 타오르기 시작한 또 다른 불길. 그리고 하늘을 나는 고래의 융단폭격에 이르기까지.
이 세 방향을 다 피할 수 있는 대피로는 한정적이었고, 극심한 병목현상은 필연적인 압사자들을 양산했다. 소방대 및 구조대는 재난지역으로 들어올 엄두조차 못 내는 중이다.
‘이제 좀 알겠군.’
HMS 아비터를 떠받치는 확장회로의 과반이 내 지배 아래로 떨어지면서, 나는 이제야 내가 누구와 싸우고 있는 것인지 알 것 같았다.
광명의 탐구자, 마스터 서(Sir) 섀빙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