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진노의 날 (5)
내 눈엔 비가시영역의 레이저들이 선명하게 빛나는 열선으로 보였다.
각각의 열선들은 거대 비행선의 기낭을 너무도 쉽게 갈라버리고 있었다. 기낭 및 격벽의 뼈대를 이루는 탄소복합소재와 금속복합소재(Metal Matrix Composite)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레이저가 닿는 곳마다 강렬한 빛과 열파를 방출하며 부드러운 시폰 케이크처럼 잘려나갔다.
아무래도 레이저의 출력이 내 예상보다 더 높은 모양이다. 이 정도면 탄도탄 파괴를 넘어서 전투함 파괴까지도 가능할 수준이었다.
「바바바바바박-!」
기괴한 굉음과 함께 레이저 하나가 나로부터 고작 예닐곱 걸음 떨어진 공간을 절단하고 지나갔다. 정비용 통로에 짧은 시간 뜨거운 복사열이 몰아치고, 끊어진 전선들로부터 사나운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달아오른 절단면 너머의 정비통로가 어둠에 삼켜졌다.
내가 버티고 선 쪽은 그래도 EPS실이 있어 전기가 공급되었다. 전원이 살아있는 경보장치가 날카로운 경고음과 함께 사전에 녹음된 메시지를 송출했다.
「가스 누출 감지. 가스 누출 감지. 내부 인원은 질식 사고에 유의하십시오. 반복합니다. 가스 누출 감지. 가스 누출 감지……」
헬륨 용기들이 쪼개지면서 나오는 경고 메시지였다.
그러나 기낭 내 헬륨의 농도는 빠르게 하락했다. 기낭이 갈라진 틈으로 고고도의 차고 거친 바람이 밀려들어오는 탓이었다. 가스 누출 경고는 잠깐으로 그쳤고, 다만 비상상황을 알리는 경고음만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포경 비행선 전체가 기울어가는 가운데, 기낭 곳곳에서 둔중한 파열음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했다. 쩌저적 하고 갈라지는 소리와 떠엉-! 하고 끊어지듯 울리는 소리. 이는 레이저가 닿지 않은 곳에서도 변형 스트레스에 의한 자체적인 파괴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드드드드- 하는 진동이 발아래를 흔들었다.
나는 격실 내 헬륨 용기들을 고정해주는 라싱 벨트(Lashing belt)들의 연결고리를 마법으로 파괴했다. 자연스럽게 고정이 풀려 기낭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들이 제법 많았으나, 확실한 성공을 위해선 더 많은 헬륨 용기들이 기만체(디코이) 풍선 역할을 해주어야 했다.
갈라진 기낭 밖으로 둥근 헬륨 용기들이 수도 없이 유출되었다. 공중전투함 HMS 아비터는 그 모든 풍선들을 터트리려는 것처럼 신경질적으로 레이저를 난사해댔다.
‘대공 레이더 화면이 아주 엉망진창이겠지.’
비록 레이저의 공격목표가 바뀌었어도, 비행선의 추락은 돌이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기낭의 균열은 이제 그냥 내버려두어도 알아서 확대되었다.
최후를 앞둔 쇼난마루의 모습은 피 대신 헬륨 풍선들을 뿜어내는 초현실적인 고래를 연상케 했다. 포경선이 하필 고래를 닮았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모선의 추락에 경악한 비행편대들이 주변 공역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이들은 배를 버리고 뛰어내리는 승조원들을 구조하는 데 몰두하느라 기낭 위쪽으로는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괜히 위로 올라와봐야 레이저를 맞을 확률만 높아질 따름.
공중전투함이 쇼난마루를 공격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아예 접근을 안 하는 게 상책이다. 항의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았다.
“후우-”
모든 조건이 갖춰졌다. 나는 사전에 준비한 다중 스펙트럼 위장막을 두른 후, 심호흡을 하고서 허공을 밟는 도약으로 날아올랐다.
기낭의 갈라진 틈으로 빠져나오자 피부에 닿는 바람이 한층 더 차가워졌다. 거인의 칼질과도 같은 레이저 줄기들을 회피하며 풍선들 사이를 달리는 단거리 육탄 비행의 목적지엔,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워진 왕립공군의 공중전투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통상 시야의 세상이 밝은 주홍빛과 창백한 쪽빛으로 번뜩였다.
「콰아앙-!」
전열화학포의 포성이 빠르게 전신을 치고 지나갔다. 발사화염과 푸른 전광을 등진 포탄은 키요우타마히코의 방어를 절반쯤 파고들었다가 바깥으로 내팽개쳐졌다. 고래의 마법이 물을 붙들어두는 까닭에, 회전으로 인한 원심력은 오직 포탄만을 밖으로 뱉어내는 것이었다.
튕겨나간 포탄은 시가지로 떨어졌다.
고래는 어느덧 요코하마 도심으로 진입한 상태였다. 격노한 고래를 항구가 아닌 도심으로 끌어들이는 등불은 대형병원들이 보유한 의료용 불사암 컨테이너들이었다.
의료용 불사암 컨테이너와 크립 밸러스트 사이엔 용도 이외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키이이이잉!」
커다란 헬륨 구체들이 가까운 곳에서 레이저에 잘려나갈 때마다 기이한 울림이 발생했다. 용기의 형상이 울림통의 역할을 하는 모양. 나는 진행경로를 꺾어 내게 육박해오던 광선을 회피했다. 비가시영역에서 작열하는 광선은 불과 2미터 간격으로 나를 비껴갔다.
공중전투함은 다음 공격을 위해 빠른 속도로 위치를 변경하고 있었다. 내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기동이었다.
내가 잡아야 할 고래와의 거리가 더욱 가까워졌다. 적이 대응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확신이 고개를 드는 시점에서, 나는 인형술사의 제례검을 뽑아들고 대마법사의 마력장을 폭사시켰다. 나 자신을 투사체로 삼는 최후의 가속. 심장을 거칠게 두들기는 흥분이 폐부에서 소리를 쥐어짰다.
“드디어어어-!”
쿠웅! HMS 아비터의 외부 장갑판에 몸이 부딪혔다. 부딪힌 자리에서 둔탁한 아픔이 번졌다. 통증을 무시하며, 나는 염동력으로 선체에 발을 붙이고 선 즉시 마력을 끌어올려 장갑판을 파쇄했다. 필요한 것은 그저 약간의 틈. 사용한 마법은 「침식」과 「열화」였다.
작은 폭발과 함께 장갑판이 벌어졌다. 날카롭게 튄 금속 파편이 내 몸에 예리한 생채기를 긋고 지나갔다. 그러나 파편과 함께 튄 피는 대부분 내 것이 아니었다.
벌어진 장갑판 틈으로 핏물에 젖은 생체조직이 드러났다. 나는 이 생체조직에 있는 힘껏 제례검을 꽂아 넣었다.
푸욱-
칼날이 깊게 들어가는 순간, 인간혼합물로 이루어진 외부확장회로의 마력 흐름이 내 간섭을 받아 뒤틀렸다. 나를 겨냥해 구축하던 마법술식이 깨어진 것이다.
동시에 공중전투함의 고도가 훅 떨어졌다. 전투함의 회로에 흐르던 마력이 끊어지자, 전투함을 하늘에 띄우는 힘도 덩달아 사라진 것이었다.
아찔한 추락은 몇 초 만에 제동이 걸렸다.
내 주변에선 마력회로에 충격을 받은 인간혼합물들이 발작적인 꿈틀거림을 드러냈다. 마치 고통을 느끼기라도 하듯이. 주변 장갑판들과 골조, 그리고 내장재들의 이음매가 내부로부터의 팽창압력에 밀려 추가로 벌어졌다.
회로와 연결된 마법사에게도 충격이 전해지긴 했을 것이다. 콜레로의 뱀에 들어있던 라일라가 내 칼질에 비명을 질렀던 것만큼은 아닐지라도.
전투함 내부엔 붉은 비상등이 들어왔다. 배 전체에 전력을 공급하던 「방전」이 순간적으로 확 튀어 오르면서 전력계통의 퓨즈들이 줄줄이 터져버린 탓이었다. 전투함의 전자적인 기능들 다수가 마치 EMP를 맞은 것처럼 마비되었다.
「위이이익! 위이이익!」
안쪽에서 울리는 경보음이 바깥에 있는 내 귀에까지 들어온다. 전투함 내부는 온통 난장판이었고, 승조원들은 혼이 빠진 낯짝으로 서로의 안위부터 확인했다. 갑작스러운 낙하 충격은 각성능력자들에게도 부상을 입히기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쪽의 공격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화르르르르-
나는 내 주위로 마력을 태우는 불을 넓게 퍼트렸다. 장갑판에 칠해진 난연성 스텔스 도료가 불을 만나 매캐한 연기를 뿜어냈다.
일렁이는 불의 커튼과 연기의 조합은 내 모습을 감추는 방편이었다. 마냥 몸에 두른 위장막만 믿고 있을 순 없으니까. 외부의 관측자들은 이곳에 화재가 발생했다고 판단할 것이다.
주 전력계통의 마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작동하는 HMS 아비터의 레이저 포대들 또한 정확한 조준지점을 특정하지 못할 터였다. 무작정 광선을 그어대다 보면 나를 맞힐 수도 있겠지만, 이건 시간을 주지 않으면 그만인 문제다.
나는 인형 윌리엄을 녹여버리면서 완성한 역병의 코드를 인간혼합물의 마력회로에 침투시켰다.
크로우허스트의 지식에 레이디 아밀라리아의 「침식」을 더한 결과 침투 자체는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침투한 코드의 작동으로 말미암아, 확장회로에 장전되던 파괴적인 마법이 다시 한 번 깨어진다.
또 한 번의 짧은 추락이 발생했다. 주변의 장갑판들이 다시금 쇳소리를 내며 이음매를 벌렸다. 장갑판 몇 장은 아예 떨어져나가기까지 했다. 번들거리는 인간혼합물이 넓은 면적으로 바깥바람에 노출되었다.
그러나 진짜 반응은 두어 호흡이 더 지나서야 돌아왔다.
「카캉-! 끼기기기긱-! 끼우우웅-!」
이제까지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에서 장갑판들이 들뜨고 우그러지기 시작했다. 통상시야로만 국한하면, 장갑판 안쪽에 갇힌 커다란 괴물이 밖으로 나오려 발광을 해대는 느낌이었다.
불안정한 회로제어로 인하여, HMS 아비터는 간신히 정지비행을 유지하고 있었다. 전투함 속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대마법사 입장에선 일단 추락사부터 면하는 게 우선이다.
가벼운 염동비행으로 선체에서 발을 뗀 나는, 꿈틀거리는 인간혼합물 확장회로에 대고 푸르스름한 「방전」을 꽂아 넣었다.
쩌정-!
비록 모든 조각들이 인간의 형상을 잃어버리긴 했으되, 공중전투함의 근간을 이루는 생체 확장회로에도 근육은 존재했다.
그리고 감전은 근육을 수축시킨다. 강화된 근섬유들이 격렬하게 수축하면서, 공중전투함의 선체엔 결정적인 균열이 발생했다.
내 한 몸 드나들고도 남을 너비의 균열이.
나는 이 균열을 통해 재빨리 함선 내부로 침투했다. 마침내 외부관측 차단이나 방어에 힘을 낭비하지 않고 온전히 공격에만 전념할 수 있는 장소에 도달한 것이다.
「위이이익! 위이이익!」
경보음이 메아리치는 내부통로는 곳곳이 음식을 잘못 먹은 알레르기 환자의 기도처럼 부어올라 막혀있다시피 했다.
발아래에선 역겨운 액체가 철벅거렸다.
통로 전체에 고여 있는 액체의 정체는 오염된 피와 고름이었다. 내가 확장회로에 침투시킨 역병의 코드로 말미암아, 천장과 벽 전체에서 피와 고름이 줄줄 흘러나온다. 위태롭게 깜박이는 조명들 너머로부터 영국군 승조원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최종적인 공격을 감행하기에 앞서, 나는 품속에서 항생제를 두 알 꺼내어 삼켰다. 역병의 코드를 완성한 이래 언제나 지니고 다니던 페스트 치료용 약제였다.
지금부터는 영혼을 다루는 마법과 지배력을 겨룰 시간이다.
역병의 코드는 내게 물리적인 틈만 열어준 게 아니었다.
마력회로 내에서 스스로 증식하는 마법적 역병은 전투함의 중심에 있는 대마법사의 통제력을 끊임없이 불완전하게 만들었다. 저쪽도 대마법사인 만큼 언제까지고 당하고만 있진 않겠지만, 역병의 코드를 해석하여 무력화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빈틈을 이용하여, 나는 대마법사로서 눈앞의 외부확장회로에 접속했다. 내 마력에 이끌린 인간혼합물의 신경다발들이 수백 수천의 연가시 무리처럼 흘러나와 내 살과 척추를 파고들었다.
이것이야말로 콜레로의 뱀으로부터 시작된 확장회로 연구의 종착점이었다.
다음 순간, 중력의 급격한 변화가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피 흘리는 공중전투함이 자유낙하에 돌입한 것이다.
「애애애애애애앵!」
방어자와 침입자의 지배력이 힘의 균형을 이루는 경계선에서, 일시적으로 통제를 벗어난 인간합성물들의 울음소리가 줄줄이 터져 나왔다.
이 공중전투함의 핵심 재료는 육체만을 강제로 키워 용도에 맞게 변형시킨 조립식 아기들. 비명을 질러야 하지만 이제껏 입이 없었던 아기들이, 통제가 흐트러지자 없던 입을 만들어서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응애응애응애응애응애-」 「-끼에에에에에에-」 「-응애응애-」 「-끄에엥-」 「-므아아아아아아 쁘아아아아아아-」
아기들은 생각을 하고 우는 것이 아니다. 피부 병변처럼 돋아나고 찢어지는 무수한 입들은 그저 조립식 아기들의 본능이 발현된 결과일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