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29화 (429/561)

#44. 진노의 날 (4)

고속으로 접근해오는 광점들의 정체는 씨 셰퍼드 소속 각성능력자 활동가들의 기체였다. 칼날처럼 예리한 형상의 검은색 레이싱 제트 바이크들은, 저마다 하얀 해골 아래 목자의 지팡이와 포세이돈의 삼지창이 교차하는 해적기 마크를 붙여놓았다. 해골의 이마엔 향유고래와 돌고래가 태극의 음양과도 같은 순환의 고리를 그렸다.

자위대 포경선단 산하 호위기 편대의 무전망에 경멸 어린 외침이 울려 퍼졌다.

「고래랑 붙어먹는 해적 놈들이다!」

고래 보호에 목숨을 거는 환경미치광이들의 함대 씨 셰퍼드는 국제법상 엄연한 테러조직이자 해적단체로 간주된다. 깃발만 해적 흉내를 내는 집단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공개적인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은, 이들을 후원하는 환경미치광이들의 정치외교적 영향력이 워낙에 크고, 자연과 고래를 보호한다는 이미지로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는 덕분이었다.

이들의 명성은 몸을 사리지 않는, 그야말로 맹견과도 같은 저돌성과 공격성에서 나온다. 그 공격성은 바다만이 아니라 하늘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젠장맞을! 산개! 산개!」

씨이이이잉- 하는 예리한 소음이 자위대 편대들의 대열을 쪼개며 지나갔다. 월광에 번뜩이는 씨 셰퍼드 기체들의 날개는 필요 이상으로 길고 견고하며 첨예하게 개조되어 있었다.

개조의 목적은 누가 봐도 뻔한 것이었다.

그렇게 뻔한 목적에도 불구하고, 이 기체가 무장을 하고 있다고 주장할 순 없었다. 그리고 씨 셰퍼드의 환경미치광이들 중 공식적으로 범죄자로서 수배중인 자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고로 환경운동가가 탑승한 비무장 기체는 무턱대고 격추시킬 수도 없는 골칫거리였다.

「훈련받은 대로 대응한다! 키지(キジ) 편대! 츠바메(ツバメ) 편대! 저들이 포경선단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

닛신마루(야시마)가 무리한 명령을 내렸을 때와 달리, 각 편대들은 일사불란하게 분열하여 환경 미치광이들을 근접비행으로 압박했다. 씨 셰퍼드가 비행선 대책으로 칼날 같은 레이싱 기체들을 준비한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하고 이쪽도 대응훈련을 해뒀던 게 분명했다.

내가 탑승한 이 기체가 방금 불린 두 편대, 키지와 츠바메 소속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씨 셰퍼드의 기체들은 편대를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으므로, 나는 그중 하나가 근접해왔을 때 당황한 시늉을 하며 대열을 이탈했다.

이 모습을 본 인근 공역의 셰퍼드들은 마치 피 냄새를 맡은 피라냐 떼처럼 반응했다. 나는 그 반응들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래, 여기다! 여기에 나약한 사냥감이 있다!’

지레 겁을 먹고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양 한 마리는 셰퍼드들이 노리기에 적합한 목표물이었다. 셰퍼드 세 마리가 삽시간에 따라붙자 다급한 무전이 들어왔다.

「후지이! 침착하게 대응해라! 경고사격을 하면서 대열로 복귀해! 듣고 있나? 들리면 대답해라! 후지이! 후지이!」

나는 다급하게 불러대는 무전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다시 한 번 의심스러운 흔적을 남기지 않고 탈것을 바꿔 타는 거다.

제트 바이크에서 거대 비행선으로.

씨이이이잉-!

칼날 같은 날개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예기를 발한다. 내 기체를 포위한 셰퍼드들은 세 방향에서 나를 위협하며 기수를 틀도록 강요했다. 자위대의 기체를 자위대의 비행선에 충돌하게끔 유도할 셈이다. 기낭에 충돌한다고 해서 사람이 반드시 죽는 것도 아니니, 환경 미치광이들 딴에는 사정을 봐주는 공격이었다.

고래를 둘러싼 구체의 회전축 이동, 그 이동에 따라 움직일 공중전투함들의 예상 기동, 마지막으로 충돌궤도에 있는 비행선의 위치를 차례로 빠르게 살핀 나는, 고래박이 셰퍼드들의 난폭한 기도(企圖)에 기꺼이 어울려주기로 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조종간을 당겨 셰퍼드 하나와 동귀어진을 시도했다. 테러리스트들의 위협에 겁을 먹고 궁지에 몰렸으나, 아군과의 충돌이 목전으로 다가오자 마지막으로 용기를 낸 자위관의 흉내였다.

내 손에 죽은 자위관은 적전도주를 할 만큼 심약한 인간이었으니, 이런 종류의 흉내는 동료들에게도 강한 호소력을 발휘할 것이다.

죽은 자위관의 유가족들이 사회적으로 따돌림을 당하거나 비국민 사냥을 당할 일은 없겠지.

「안 돼에에에에에! 후지이이이이이이-!」

제트 바이크와 제트 바이크가 비스듬한 궤도로 충돌했다. 강한 충격과 함께 콰자자작 찌그러지고 바스러지는 소리가 귓가를 가득 채웠다.

레이싱 모델답게, 셰퍼드 측의 기체는 날개와 핵심 골조를 제외하면 합성섬유(CFRP)로 제작된 부분들이 많았다. 반면 내가 탑승한 기체는 튼튼함과 신뢰성이 미덕인 군용 제식기체였으므로 충돌에 따른 피해를 상대적으로 적게 입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피해의 절대량 자체는 컸다. 기체에 격렬한 회전이 걸리면서 온 세상이 무서운 속도로 돌기 시작했다.

“흡-!”

중력가속도의 압력이 전신을 불균형하게 짓눌러댔다. 대마법사의 생체강화가 아니었으면 사고능력이 저하될 수준이었다. 나는 압력에 저항하며 호흡을 조절했다. 파편을 흩뿌리며 떨어지는 셰퍼드의 모습이 캐노피 밖으로 스쳐지나갔다.

「삑삑-! 삑삑-!」

「Bank Angle! Bank Angle! 2,150ft!」

기체의 이상을 감지한 군용 지상충돌방지장치(GCAS)가 높은 경고음과 더불어 건조한 경고 메시지를 뱉어냈다. 뱅크 앵글은 선회각이 지나치게 클 때 나오는 경고다. 기체가 비뚤어진 팽이처럼 도는 탓에 센서가 미쳐 날뛰는 중이었다.

포경 비행선 쇼난마루의 거대한 기낭이 급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발화와 염동력으로 충돌궤도를 조절하는 한편, 나 자신에 대한 보호를 강화했다. 또 한 번의 공중충돌을 목전에 두게 되자 불현듯 경태와 수연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녀석들이 걱정하겠군.’

쿠웅-! 콰지지지지직-!

난폭한, 그러나 아까보다는 덜한 충격이 제트 바이크를 뒤흔들었다. 기체는 초대형 비행선의 기낭을 작살처럼 뚫으며 파고들었다. 기낭의 내부구획들을 나누어놓은 격벽들이 차례차례 퍽퍽 부서져나갔다.

심하게 손상된 제트 바이크는 아홉 개의 격벽을 뚫고서야 간신히 정지했다.

격벽의 손상에도 불구하고 부양기체의 유출은 매우 미미했다. 부양기체인 헬륨이 각각의 구획 내부에서도 별도의 둥근 용기들로 나누어 포장되어 있었던 까닭이다.

포경 비행선을 완성했을 때, 일본은 자국의 우수한 소재공학기술로 헬륨의 사용량을 줄이면서 부력을 증가시키고 비행선의 안정성을 제고했노라고 자랑했다.

그 기술이란 헬륨을 저압으로 담을 수 있는 초경량 격납용기의 제작기술을 의미했다. 아예 가스를 쓰지 않고서 부력을 만들어내는 진공 비행선이나 부분진공 비행선까지는 아니더라도, 용기 내부의 압력을 한계까지 낮춤으로써 부력을 유의미하게 늘리는 데까진 성공한 것이다.

이건 정말로 우수한 기술이 맞았다.

덕분에 포경 비행선 쇼난마루는 나로 인한 기낭 손상에도 불구하고 고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끄음…….”

긴장이 좀 가라앉고 나니 몸 곳곳에서 뒤늦게 은근한 통증이 올라왔다. 통증이 가장 강한 곳은 오른쪽 겨드랑이 아래였다. 마법적인 방호를 최대한 두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갈비뼈 두 개에 금이 간 탓이었다.

부상을 신속히 치료한 후, 나는 고정에서 풀려난 헬륨 격납용기들을 헤치고 나와 기낭 구획 사이로 나있는 정비용 통로에 발을 디뎠다.

「삐빅- 삐빅- 삐빅- 삐빅-」

붉은 경고등이 빠르게 회전하는 가운데, 충돌을 알리는 평탄한 비상경고음이 비좁은 통로의 적막을 몰아냈다.

그러나 자위대 응급공작원(応急工作員/데미지 컨트롤 팀)이나 구조대가 달려오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기낭의 크기가 미국의 항공모함보다 더 거대했기 때문이다.

이토록 거대한 기낭 안에 응급원 대기소는 전·중·후로 나누어 단 세 곳이 있을 뿐이었다. 아마 해상자위대의 호위함에 적용되는 안전 매뉴얼을 그대로 옮겨왔을 것이다. 가장 가까운 대기소에서 여기까지 오려고 해도 10분 안팎의 시간이 소요될 것 같았다.

고로 당장은 나를 방해할 인간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빈 통로를 무인지경으로 주파하여 기낭 내 전기배선 전용실(EPS실) 앞에 도달했다. 정비용 승강기와 붙어있다시피 한 이 작은 전용실은 기낭 좌우의 추진기로 들어가는 각종 배선들이 1차적으로 모이고 나가는 공간일 뿐이었다. 진짜 전기실과 기관실은 기낭 아래의 하부갑판에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덜컹-!」

수십 미터 아래에서부터 막 올라오기 시작하던 승강기가 내 마법적 간섭에 의해 정지했다. 승강기에 탑승한 응급반원들이 당황하여 문을 두드려대는 모습들이 보인다.

다음으로 행한 일은 양현에 하나씩 달린 보조 추진기의 작동에 대한 간섭이었다. EPS실 안쪽엔 CCTV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으나, 굳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조종실에서 올라오는 신호를 차단하고 현측 엔진의 기계적 제어권을 손에 넣는 데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정교한 조종은 불가능할지언정 내가 원하는 수준의 기동을 하기엔 충분하다.

내 존재감을 비행선 내의 다른 각성능력자들에게 감춰야 하는 상황만 아니었어도, 여기까지 달려올 필요조차 없이 저 멀리서 현측 추진기들의 제어능력을 탈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왕립공군 공중전투함으로의 접근을 꾀하는 게 아니었다면 아예 비행선 바깥에서 원격으로 조종하는 일도 가능했을 테고.

「우우우우우웅-!」

현측 추진기들의 RPM이 상승하면서 기낭과 정비통로 전체에 은은하면서도 묵직한 구동음이 메아리쳤다. 비행선의 기수를 급격히 틀자 한쪽으로 쏠리는 중력가속도가 느껴진다.

아래에서는 당장 난리가 났다.

기관실에 배치된 인원들이 현측 추진기 오작동의 원인을 파악하려 애쓰고 있었으나, 하부갑판에서 원인 파악이 가능할 리가 없다. 정상적으로 올라오는 제어신호들을 내가 차단하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같은 이유로, 문제의 원인이 이 작은 EPS실에 있다는 것도 아래에서는 파악하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동력실에선 전기를 공급하던 방전능력자들이 충전작업을 중단했다. 그러나 민간 항공기들이 그렇듯이, 이 비행선 또한 충전 없이도 단시간 비행이 가능한 용량의 배터리 및 울트라 커패시터를 탑재하고 있었다.

어쩔 줄을 모르고 우왕좌왕하던 아래에서는 아예 이쪽으로 올라오는 동력선의 차단기를 내려버리는 방법으로 대응했다.

「후우우우우웅…….」

현측 추진기가 발하던 소음과 진동이 단숨에 가라앉는다.

이러면 내가 대신 동력을 공급하기도 곤란해진다. 동력을 끊었는데도 엔진이 돌아가는 괴현상의 목격자들이 너무 많아질 테니까. 살인멸구와 증거인멸을 철저히 할 여유도 없거니와, 당장 무전이라도 나가면 어쩐단 말인가.

그러나 아래에서 동력을 끊기로 결정하는 데 걸린 시간이 너무 길었다. 최종적으로 차단기가 내려가기까지 소요된 2분 남짓한 시간 동안, 이 비행선은 왕립공군의 공중전투함 「HMS 아비터」의 방공능력을 치명적으로 저해하는 접근경로로 진입했다.

HMS 아비터의 기동성이면 빠른 변침과 가속으로 최소한의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것쯤 간단하게 해낼 수 있는 일이다.

그저 고래에 대한 공격을 일정 시간 포기하기만 하면 된다.

아비터를 움직이는 대마법사가 어울리지도 않는 이해심을 발휘할 경우에 대비하여, 나는 쇼난마루의 기낭을 추가로 파괴할 준비를 했다. 격벽에 갇혀있는 헬륨 용기들 다수를 단숨에 쏟아내 아비터의 감시능력을 교란할 요량이었다.

비록 마력장 전개에 제약이 걸려있긴 하나, 마력장 전개 범위 이내에서 기관포탄 정도의 물리력을 초당 수십 회 꼴로 투사하는 건 가능했다.

그러나 내 준비는 불필요한 것이었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통로에 울리는 비상경고음의 높이와 패턴이 바뀌었다. 원인은 보다 높은 고도에서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는 왕립공군 공중전투함의 사격통제레이더 조사(照射)였다.

사격통제레이더의 전파를 쏜다는 건 이제 곧 너를 공격하겠다는 예고와도 같은 것.

빙그르르 회전한 레이저 포대들이 각각의 렌즈를 이쪽으로 겨누었다. 나는 레이저 포대와 연결된 커패시터들이 일제히 최대 전력을 쏟아내는 것을 보고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

‘과연 대마법사다운 성품이로군.’

언제나 그렇듯이, 나를 포함하여, 좋은 대마법사는 죽은 대마법사뿐이다.

왕립공군에게도 변명거리는 있다. 왕립공군은 이미 자위대에게 이 공역에서의 퇴거를 요구하지 않았나. 자위대는 그 요구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자위대의 귀책으로 왕립공군 공중전투함의 안전을 위협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이것은 정당한 방어권의 행사라고 우길 수 있다.

공중전투함이 발사한 네 줄기의 고열 광선들이 쇼난마루의 기낭을 무저항으로 가르며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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