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28화 (428/561)

#44. 진노의 날 (3)

달빛과 별빛, 그리고 화광을 받아 검은 윤곽을 드러내는 두 척의 공중전투함들은 고래에 대한 포격을 끈질기게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원탁의 대마법사들이 보여주는 강한 교전의지는 오로지 영국정부와의 합의에 따르는 것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나는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스승새끼의 잔재를 토대로 대마법사들의 심리를 추측했다.

‘모멸감이라도 느낀 건가.’

원탁은 「진정한 인류」의 부활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진정한 인류는 불사이고 불멸이며 이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도 강대한 권능을 지닌 신적 존재들이어야 한다. 진정한 인류가 자연계에서 누리는 지위는 어떠한 형태의 도전도 용납하지 않을 만큼 절대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스스로 그런 존재가 되기를 꾀하는 자들에게, 자신들을 잠깐이라도 달아나게 만들었던 키요우타마히코는 존재 자체가 끔찍한 모욕이자 신성모독이나 다름없을 터였다.

콰웅-! 콰쾅!

공중전투함 한 척당 두 문씩 탑재된 전열화학포가 연신 불을 뿜어댄다. 이미 고래의 방어를 뚫지 못함을 확인한 무기였으되, 원탁의 대마법사들이 그저 무의미한 공격만을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콰아아아-! 콰쾃-! 콰콰콰콰-!

후방과 현측으로 마력을 태우는 불을 분출하며 고속기동을 거듭하는 공중전투함들은, 고래가 두르고 있는 물의 구체의 회전축을 노리고 있었다. 물의 흐름이 최소화되는 회전축에 포탄을 꽂아 넣는다면 포탄은 더욱 깊은 곳까지 관통할 것이다.

이에 더해 대마법사들은 포탄이 지나갈 허공에 한 쌍의 이온화 도파관 채널을 레일처럼 깔아, 포탄이 발사될 때마다 강력한 방전을 걸고 있었다.

다름 아닌 레일 건의 원리다.

이렇듯 의도와 발상은 괜찮았지만, 결과는 매번 의도에 미치지 못했다.

고래를 감싼 구체의 회전축은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고, 그렇게 이동하는 축선과 전열화학포의 사선(射線)을 수동 사격으로 일치시키는 건 많은 부분 운에 기대야만 하는 어려운 일이다. 공중전투함의 사격통제장치들이 구체의 회전축을 직접 관측하지 못하기에 발생하는 어려움이었다.

대마법사들이 마법적으로 구현하는 허공의 레일건도 문제였다.

이건 순전히 확장회로를 장악한 대마법사의 감각만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 도파관 채널이 포탄의 진행 방향과 완전히 평행하지 못했다. 위력을 늘리겠답시고 포격의 정확도를 깎아먹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정확한 타이밍에 방전을 거는 것도 고난도의 일이어서, 포탄은 번번이 충분한 힘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발사를 거듭할 때마다 조금씩 나아지는 걸 보면 대마법사는 역시 대마법사였다. 숙련도를 쌓기 전에 포탄이 먼저 떨어질 게 확실해 보이나, 운이 따라준다면 고래에게 유효타를 먹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 낮은 가능성에 과연 거대 방전의 푸른 전광을 노출시킬 만큼의 가치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포탄의 운동에너지는 거리가 멀수록 감소한다. 실시간으로 이동하는 회전축을 노리는 것도 거리가 멀수록 까다로워지는 일이다. 공중전투함들이 고래의 사정권 바깥에서 중거리 이내의 교전 간격을 유지하는 이유였다.

나는 무전기의 주파수를 일본 공중포경선단 산하 비행단의 채널에 맞추었다.

「올라가! 올라가!」

「고래가 도쿄로 접근하도록 내버려두어선 안 돼! 5천만 시민들의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거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래가 움직이는 방향을 틀어놔야 해!」

「지원은…… 다른 지원은 없는 건가?!」

항공자위대 소속 각성능력자 자위관들과 일본 측 헌터들의 편대가 고래의 주의를 돌리려 안간힘을 쓰는 가운데, 거대한 기낭을 지닌 비행선들이 고도와 속도를 높이며 고래의 상방(上方)을 점유하고자 시도했다.

이제껏 포경선단의 비행선들은 압도적인 폭장량을 활용해 무더기로 폭뢰와 어뢰를 투하하고 음향탐지부표(소노부이)를 뿌리는 등 몰이사냥의 한 축을 담당해왔다.

그러나 이 순간 비행선들은 고래의 주의를 끌기에 역부족이었다. 비행선의 특성상 크립 밸러스트를 적재하지 않아, 고래가 비행선의 존재를 느끼지도 못하고 있는 탓이었다. 선체 자체가 거대한 마력장을 뿜어내는 왕립공군 공중전투함과는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비행선에 있는 마력장이라고는 각성능력자 승조원들 개개인이 지닌 것들이 전부인 상황. 그러니 고래가 느끼는 비행선의 존재감은 여기저기서 날파리 떼처럼 날아다니는 1인승 비행체들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이쪽을 봐라! 제발 이쪽을 보란 말이다!」

「한 점에 화력을 집중해봐! 로켓이든 기관포든, 최대한 화력을 집중해서 저 미친 괴물새끼를 돌아보게 만들라고!」

「젠장! 나는 빠질 거야! 부모님께서 에도가와에 살고 계신단 말이야!」

「이 바보 녀석이! 적전도망(적전도주)이 용서받을 것 같아?! 감옥에 가는 게 다가 아니야! 사회적으로 죽는다고! 너뿐만 아니라 네 가족들까지도! 차라리 여기서 명예롭게 죽어!」

한국에선 적전도주가 최대 사형까지도 가능한 죄목이지만, 일본 자위대에선 그저 징역살이에 그친다. 그러니 위험지대의 가족들을 대피시키겠다며 전열을 이탈하는 자위관이 나오는 것도 놀랍지 않다. 고래 저지는 영 가망이 없어 보이니까.

부우우우우-!

공중 포경선단의 기함 닛신마루가 길고 시끄러운 기적소리를 냈다. 쇼난마루와 제1·2·3 유신마루가 기함을 본받아 거대한 불협화음을 빚어냈다. 고래의 주의를 끌어보려는 절박하고도 애처로운 시도였다.

염동력으로 빚은 지향성 음파공격과 충격파로 요코스카 동쪽 민간부두를 초토화시킨 고래는, 이제 서로 다른 부두들을 잇는 직선을 따라 주택가 상공을 가로지르는 중이었다. 이동하는 내내 통상시야엔 보이지 않는 투명한 공격들을 뿌려댔으므로, 지상에선 무수한 파괴와 죽음의 향연이 펼쳐졌다.

이대로 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요코스카 군항이 공격을 받을 판이다. 해상자위대와 미국 태평양함대의 기지가 함께 들어서있는 중요한 군항이.

상황이 이렇게 다급하다 보니, 자위관들에겐 도망치는 동료를 쫓거나 제지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전열에서 이탈한 기체를 고속으로 따라잡으며 스텔라 포르투나에 무전을 넣었다.

“지금부터 기체를 갈아탈 예정이다! 본 기체의 신호가 소실되더라도 놀라지 말도록!”

무전망에 대기하고 있던 경태가 조금 당황하여 되묻는다.

「예? 기체를 바꿔 타신다고요? 공중납치로요?」

“그래!”

내게 필요한 건 CTF-W2 임무부대의 대공감시체계에서 항공자위대 소속 기체가 부여받았을 식별기호다. 그 기호와 자위대의 피아식별장치를 가지고 날아다니면 나에 대한 경계는 자연히 줄어들게 되어있었다.

나는 사냥감의 위에서 제트 바이크를 뒤집었다. 나와 사냥감의 기체는 위아래에서 근접한 평행선을 그리며 나란히 날게 되었다.

「……?!」

두 눈을 크게 뜨고 경악한 시선으로 내 기체를 올려다본 사냥감은, 곧 본능적으로 기수를 틀어 나를 떨쳐내려 들었다.

그러나 기동성은 내 쪽이 압도적인 우위였다. 게다가 주변에 다른 기체들이 없어진 시점에서 내가 마력장을 팽창시켰으므로, 내게 장악력을 잠식당한 사냥감의 비행능력은 순식간에 고도유지조차 힘겨운 수준까지 저하되었다.

「제기랄, 대체, 이게 무슨……!」

겁에 질린 자위관이 헐떡이며 간신이 내뱉는 신음 같은 말들. 나는 내 기체의 캐노피를 개방한 후 조종석을 박차고 도약하여 사냥감의 기체에 달라붙었다. 그러고는 방탄유리 너머에 대고 회로에 장전해두었던 염동술식을 해방했다.

퍽-!

염동력으로 자아낸 충격파가 사냥감의 머리를 강타하는 소리. 고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워하던 사냥감은 변변한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한 채로 즉사했다. 눈알 두 개가 모두 터졌고, 코와 귀에서도 피가 흘러나온다.

후지이(藤井)라고 적힌 명찰이 뚝뚝 떨어지는 핏물에 물들었다.

나는 노획한 기체의 연소 체임버에 발화를 불어넣는 한편, 조종간을 원격으로 움직이고, 조금 전까지 타고 있던 기체를 염동 충격파로 후려쳐 충돌궤도로부터 밀어냈다. 조종석이 빈 기체는 튕겨나가듯이 꺾여 해수면으로 추락했다.

해변을 따라 줄지어 띄워놓은 크립 밸러스트 차단선이 추락의 여파로 물결친다.

자위관 후지이의 시체는 인식표를 뜯고 명찰을 찢어 차단선 바깥의 바다로 던져버렸다. 나중에 유해가 발견될 수도 있겠지만, 무슨 경위로 죽었는지, 또 시체의 신원이 무엇인지는 알아낼 방법이 없을 것이다. 차단선 바깥의 바다엔 먹성이 좋은 자연각성체들이 많을 테니까.

노획한 기체에 적응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나는 기수를 돌려 이 기체가 원래 있어야 할 공역으로 복귀했다.

「돌아온 거냐, 후지이! 잘 생각했다!」

콜사인이 아닌 이름으로 망자를 부르는 자는 망자의 상관인지 동료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침묵을 유지하며 다른 자위대 기체들 사이로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야시마에서 전파한다! 탱고 위스키(고래)는 지금 E 필드(이써리얼 필드/마력장)를 느끼는 감각에 의지해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전 제트 바이크 편대는 집단 비행으로 탱고 위스키의 감각을 교란할 것! 반복한다! 전 제트 바이크 편대는 집단 비행으로 탱고 위스키의 감각을 교란할 것! 비행 대형의 형태는-」

이어지는 세부지시의 내용을 요약하면 쉽게 말해 정어리 흉내를 내라는 것이었다. 수많은 개체들이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를 이루어 포식자들에게 혼란을 주듯이, 개별 기체들의 마력장을 하나의 대형으로 모아 거대한 존재감을 꾸며내라는 뜻.

야시마는 포경선단의 기함 닛신마루의 호출부호다.

자위대 제트 바이크 파일럿들은 무전망에 대고 불만과 불안을 쏟아냈다.

「돌겠군! 설마 야시마는 고래가 E 필드를 쫓는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건가? 늦어도 너무 늦잖아! 우리가 그동안 뭘 하고 있었는데!」

「부두에 계류된 선박들부터 먼저 바다로 내보내라고! 쿠리-뿌 바라스토 라인(크립 밸러스트 차단선)도 빨리 걷어내고! 대체 위에선 뭘 뜸들이고 있는 거야!」

「뭐?! 부두 통제랑 바라스토 라인 관리는 자위대가 아니라 해상보안청과 항만국 소관이라고?! 이런 상황에서조차 관할 부처를 따지고 있어?! 아, 제발!」

「그놈의 관할권! 그놈의 매뉴얼!」

「이런 대형은 연습해본 적도 없어! 우리가 무슨 곡예비행단이나 자동제어 드론도 아니고, 즉석에서 어떻게 이런 사이즈로 움직임을 동기화해?! 위쪽은 머리가 어떻게 돼버린 거 아냐? 차라리 우리를 모선으로 복귀시키라고! 모두가 함께 타고 있으면 되잖아!」

이 와중에 영국군은 자위대에게 두 왕립공군 공중전투함의 방공구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경고를 날려 왔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대마법사들이 고래를 쫓으며 화력을 투사하는 와중에, 자위대는 자위대대로 고래를 저지하려 노력하는 중이니, 서로가 서로의 방공구역을 침범할 수밖에 없는 조건인 것이다.

영국의 경고를 전달받은 자위대원들은 단숨에 격앙되었다.

「기분 나쁜 자식들! 여기는 우리의 나라! 우리의 조국이다! 이런 위기상황 대응을 남에게만 맡겨놓으라는 게 말이나 돼?!」

「자기들도 마땅한 수가 없기는 마찬가지인 주제에, 뭘 잘난 듯이 떠들어?! 어차피 박히지도 않는 함포만 계속 쏴댈 뿐이면서!」

「무시해! 우리는 끝까지 우리의 임무를 수행한다!」

상식적으로, 방공구역을 따지기 이전에, 함포사격과 미사일 공격이 이루어지는 공역에선 모든 우군 기체들의 철수가 이루어져야 정상이다.

그러나 고래가 촉발한 미증유의 위기는 모든 상식과 안전규정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우우-윗-! 휘우우우-!」

진노한 고래는 여전히 진격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고래가 발산하는 마력장은 벌써 미 7함대 요코스카 기지의 행정경계를 넘었다. 군 병원 앞 주차장엔 환자 긴급이송에 동원된 앰뷸런스들의 경광등 불빛들이 보였고, 기지 내 도로는 지하벙커와 기지 외부로 대피하는 군인 및 군인가족들의 차량 행렬이 심각한 정체를 빚어내고 있었다.

부두에선 고래사냥에 참가하지 않았던 군함들이 황급히 홋줄을 풀고 닻을 올리는 중이었다. 미군기지 맞은편에 자리 잡은 해상자위대 기지에서도 비슷한 광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쿠궁- 쿵-!

고래는 크립 밸러스트 차단선을 따라 2차 대전기의 요새가 남아있는 무인도 상공을 통과했고, 이어서 마력장을 지닌 녹슨 대형 로로선(RO-RO船) 한 척을 충격파로 두들겨 갑판 전체를 누더기 꼴로 만든 후, 그 여파만으로 근처에 있던 박물관함의 연돌까지 손상시켰다.

박물관함의 정체는 옛 제국주의 시대의 전함 미카사(三笠)였다. 전함 옆 광장에 서있던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의 동상이 후폭풍에 휘말려 앞으로 쓰러졌다.

성난 고래의 공격권에 든 함선들이 침몰을 면한 것은 고래가 하늘에 떠있는 덕분이었다.

고래가 염동력으로 빚는 충격파와 지향성 음파공격은 본연의 육성을 이용한 음파공격에 비하면 정교함이 많이 떨어졌다. 게다가 물 밖에서 이루어지는 음파공격은 수중에서에 비해 위력이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고래는 진득한 공격 이후에도 남아있는 불사암괴의 마력장에 연연하지 않았다.

이제껏 무수히 많은 선박들을 공격해 침몰시킨 전적이 있는 고래가 크립 밸러스트를 모른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또한 컨테이너 용량에 따라 정확하게 규격화된 크립 밸러스트의 마력장은 고래가 느끼기로는 매우 몰개성하고 인위적인 것일 터.

그리고 한 가지 더.

‘항구가 무엇인지도 알고 있겠지.’

고래가 바다에서 살아온 세월이 몇 년인데 항구의 존재와 기능을 모르겠나. 인간들이 탄 배가 언제나 항구에서 나와 항구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곳에서 항상 더러운 물이 흘러나오기까지 하는데.

그러므로 고래의 머릿속에선 공격을 퍼붓고 나서도 딱히 반응이 없는 마력장은 무시하면 그만이라는 판단이 섰을 것이다.

자신의 공격이 인간들에게 유효한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쯤은, 활발하게 움직이며 필사적으로 따라붙는 다른 마력장들이 증명해주는 것이니까.

그러한 마력장들 가운데 하나, 왕립공군 공중전투함 「아비터」가 자위대 제트바이크 편대 사이로 포격을 꽂아 넣었다.

콰우-웅! 콰앙! 콰쾅!

무전망에 거친 비속어들이 난무한다.

비록 이렇게 서로의 방공구역이 중첩된 상태이긴 하나, 그럼에도 공중전투함 「아비터」와 「트라운서」는 자기방어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만큼은 견고하게 점유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렇게 되뇌는 내 눈에, 새로이 접근하는 다수의 광점들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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