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27화 (427/561)

#44. 진노의 날 (2)

물의 회전구체를 두르고 천공으로 날아오른 고래는, 인간의 함대가 하늘을 겨냥해 퍼부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재래식 화력에 대해 절대적인 방어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포탄도, 미사일도, 표면에서 하얗게 물거품이 이는 구형(球形) 폭포에 충돌하면 얕게 박힌 후 밖으로 튕겨나가고 마는 것이다.

설령 구체에 회전이 걸려있지 않다 한들, 빠르게 흐르는 유체를 사오십 미터씩 뚫고 들어가면서 궤도와 운동에너지를 유지하는 발사체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두 척의 공중전투함이 쏘는 전열화학포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콰우-웅! 콰쾅!

포구에서 연신 발사광이 번뜩였으나, 그때마다 포탄은 하릴없이 튕겨 나올 따름이다.

전열화학포의 핵심은 추진제(장약)의 연소제어다. 대마법사가 쓰는 「발화」와 「방전」은 장약의 양이나 밀도를 무시하고 연소의 단계를 조절할 수 있으며, 따라서 발사되는 포탄은 포신을 통과하는 내내 에너지 낭비 없이 최대의 추진압력을 전달받게 된다.

요컨대 공중전투함에 탑재된 전열화학포는 현재로선 오직 대마법사가 있어야만 사용 가능한 오버 테크놀러지였다.

이런 무기로 발사하는 강력한 포탄조차 고래의 방어를 뚫지 못하고 있다. 지근거리에서 핵이라도 터트리지 않는 한 고래의 방어를 뚫고 고래에게 타격을 줄 방법이 없었다.

문제는 미·영·일 3국이 고래사냥에 대한 중국의 동의를 구할 때 「CTF-W2 연합임무부대는 핵폭뢰와 핵어뢰 이외의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라고 명시적으로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이 사냥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중국 관전무관단의 감시 아래 철저하게 이행되었다는 점.

핵폭뢰나 핵어뢰의 환경감지장치는 정상적인 발사와 정상적인 입수(入水)를 거쳐야만 비로소 활성화되며, 그러고 나서도 오로지 수중환경에서만 정상적인 기폭 절차가 진행된다.

즉 현 시점에서 임무부대의 수중엔 하늘에 뜬 고래를 공격할 핵무기가 없다.

쐐애애애액-!

밤하늘에 바람을 찢어발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공중전투함을 지원하는 지상 기지의 화력지원이다. 서쪽 반도에서 날아온 미사일은 소리를 따돌리는 속도로 날아와 물의 구체의 중심부에 명중했다.

고래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상황에 대비해 준비된 무기, 극초음속 운동에너지 탄두 대공미사일이었다.

바다괴물이 천공으로 비상하는 상황은 임무부대가 사전에 대비한 바다. 호랑이도 허공답보를 하는 마당에 초능력 고래가 하늘을 날지 못할 이유는 뭐란 말인가.

하지만 임무부대가 상정한 고래의 방어는 염동방어 정도가 전부였다.

체급에 비례하는 염동방어를 관통할 만큼의 스펙을 갖춘 미사일은, 질량과 속도를 무기로 다른 무기들보다 더욱 깊은 곳까지 물의 구체를 파고들었다.

그러나 구체의 중심까지 닿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휘이잇- 휘이잇- 휘우우우우-!」

사람의 귀엔 몽환적으로만 들리는 전장의 함성과 함께, 고래는 자신보다도 더 거대한 존재감을 투사하는 공중전투함들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

이에 대마법사들의 선택은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거리를 벌리며 물러나는 것이었다.

공중전투함에 탑재된 재래식 무기들은 고래를 상대로 무엇 하나 효과를 발휘하는 게 없다.

그렇다고 마법으로 응전하자니, 이번엔 극도로 짧아지는 교전거리가 문제가 된다. 대마법사의 권능이 세상에 노출되는 건 그다음의 문제였다.

내가 보기에, 지금 고래의 방어를 뚫고 유효타를 먹일 수 있는 마법공격은 강한 「방전」을 물의 구체에 꽂아주는 것뿐이다.

전류는 주파수가 높을수록 도체의 표면을 따라 흐르려는 성질이 강해지기에, 고래가 파도 아래에 머물 땐 바깥에서 아무리 강력한 벼락을 내리꽂아도 소용이 없다. 모든 전기 에너지가 해수면을 타고 퍼져버리는 까닭이다.

고래가 물의 구체를 두르고 하늘에 떠있는 지금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벼락이 일단은 구체의 표면을 타고 퍼지더라도, 표면에 흐르는 전류가 임계점에 도달하고 나면 남은 에너지는 구체 내부로 침투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전자가 지배하는 마력장 내부에서만 전류가 흐를 길(이온화 도파관 채널)을 빚을 수 있는 「방전」의 특성상, 강력한 마력장을 지닌 고래에게 벼락을 꽂아주려면 치명적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해야만 한다.

그것은 곧 공중전투함 또한 고래의 공격범위에 들어가야만 한다는 뜻.

‘그럴 배짱이 있을 리가.’

죽은 로더필드라면 모를까, 원탁의 남은 생존자들에게 성난 고래와 초 근접 난타전을 벌일 배짱이 있으리라곤 생각하기 힘들었다.

개싸움의 조건은 오히려 공중전투함에게 더 불리하다. 간합을 충분히 줄일 때까지 원탁의 대마법사들이 취할 마법적 방어라곤 염동장막 하나가 전부인데, 염동력은 물의 흐름을 만들고 다스리는 고래의 마법에 비해 회로점유율이 높고 연비가 좋질 못하니까.

오직 연비 하나만 놓고 보면, 고래의 원시마법은 전율하는 거인에게서 얻은 물의 지배력마저 능가한다. 정교함이 많이 떨어져서 그렇지.

「위익- 위이익!」

성난 고래의 날카로운 울음이 물의 구체를 뚫고 나왔다. 두 공중전투함과의 거리가 도무지 좁혀지지 않자, 고래는 길게 쫓지 않고서 방향을 틀었다.

고래가 향하는 방향엔 항구와 육지가 있었다. 요코스카 시 동쪽의 부두였다.

통신망에선 여러 채널에 걸쳐 다시 한 번 극심한 혼란과 경악이 끓어올랐다. 임무부대의 통합 정보공유 플랫폼에도 실시간으로 온갖 메시지와 어지러운 지시들이 떠올랐다. 지휘체계의 총체적인 마비가 목전이었다.

「신이시여! 저 미친 괴물이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막아! 무슨 수를 써서든 막아!」

「막다니? 대체 무슨 수로?!」

이 와중에 누군가는 고래가 어떻게 외부를 관측하는지 의문스러워했다.

바보 같은 의문이었다. 비록 눈은 둥근 폭포의 하얀 포말에 가려지고, 음향탐지 또한 불가능해진 상황이지만, 고래에게는 아직 마력장을 느끼는 감각이 남아있다. 자신의 마력장에 부대끼는 다른 마력장들을 감지하는 능력이.

그리고 항구엔 다수의 배들이 묶여있었다. 일정 크기 이상의 선박이라면 최소 하나씩은 반드시 실어놓은 크립 밸러스트들의 마력장은, 격노한 고래를 항구와 도시로 이끌어주는 휘황한 유도등과도 같은 것이었다.

각성능력자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깨달을 기본적인 사실이건만, 철밥통 비각성자들 투성인 포경선단 참모부는 그 기본적인 사실조차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작전실에서 수연의 선내통신이 들어왔다.

「현시각부로 에코 그린 인터내셔널 민간항모 전단으로부터 페어리들이 출격한다는 통보입니다. 출격할 기체의 수는 HGS 엘븐 포레스트에서 42기, HGS 엘븐 프로퍼시에서 39기, HGS 엘븐 랜드에서 39기, HGS 엘븐 오션에서……」

HGS, Her Gaia’s Ship은 요정함대의 선박 명칭에 공통으로 붙는 접두 수식어(Ship prefix)였다. 이게 아니더라도 요정의 숲, 요정의 예언, 요정의 땅, 요정의 바다 등등의 이름을 보면 이 민간항모들의 소속을 헷갈릴 수가 없었다.

CTF 연합함대와 데이터 링크로 연결된 대공레이더 화면에도 전에 없던 광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각각의 광점들마다 자동으로 식별기호들이 부여된다.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제트 바이크의 이함(離艦) 속도는 군용 재래식 함재기들을 압도적으로 능가한다. 게다가 환경전사 엘프들이 쓰는 기체는 별도의 무장을 장착하지 않고 오로지 속도와 기동성만을 중시한 설계를 채택하여, 탑승자의 기량이 동등하다는 전제하에 군이나 헌터들의 기체보다 우월한 기동력과 최대속도를 자랑했다.

환경전사 엘프들이 차례차례 초음속의 벽을 돌파한다. 편대비행이고 뭐고 없이, 그저 제 한 몸 신념으로 불태우고자 달려드는 개인들의 집단이었다. 기체들 간의 벌어지는 간격들은 역량의 차이일 뿐만 아니라 신념과 광기의 차이이기도 할 터.

점멸하는 광점들의 빠른 접근은 내게 그만큼 빠른 결정을 요구하고 있었다. 해적함대의 공격을 취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나는 마지막까지 취소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공격 직전, 해적함대 원정전단 전단장의 성난 외침이 국제조난주파수(2182kHz)를 통해 발산되었다.

「이 세상 모든 정령들의 중재자이시며 사람과 우주의 균형을 수호하시는 주술사 왕 폐하의 이름으로! 위대한 바다 정령의 대적자들에게 응징의 철퇴를 내리노라! 우리들 왕의 전사와 주술사들에게 알라와 자연과 정령들의 축복이 함께할진저!」

「알라 후 아크바아아아아르!」

이 외침은 이쪽에서 사전에 주문한 바였다. 미사일과 곡사포 공격을 퍼붓는 세력이 에코 그린 인터내셔널과는 별개의 세력임을 확실히 인식시켜야만 CTF 함대의 대응이 더욱 혼란스러워질 것이었으니까.

국제조난주파수를 쓰도록 한 건 다른 채널에 비해 통달거리가 길기 때문이다. 해적함대가 쓰는 무전기로는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알라 후 아크바르! 알라 후 아크바르! 알라 후 아크바르……!」

수면으로 부상한 반잠수 충각선들이 저마다 탑재된 무기를 발사하기 시작하면서, 레이더 화면엔 새로운 광점들이 무더기로 출현했다. CTF 연합함대가 지닌 고성능 레이더들은 포탄 한 발조차 놓치지 않고 포착해냈으나, 거기에 대응할 여력이 있는가는 별개의 영역이었다.

‘알라 후 아크바르’는 에코 그린 인터내셔널과 해적함대의 상이함을 더없이 선명하게 드러내는 구호였다. 주술신앙과 하나로 융합된 아프리카식 이슬람 신앙은 주술의 장막 너머의 세상이 품은 기괴함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우우우우우우우-!」

고래가 있는 방향으로부터 강렬한 굉음이 엄습해왔다. 물의 구체 바깥에서 염동력으로 빚어낸 충격파와 지향성 음파공격들의 잔향이었다. 요코스카 동쪽 부두의 빛이 일시에 사라진다. 어딘가의 변전소나 송전탑이 피해를 입은 모양이었다.

두 척의 공중전투함은 아직 전장을 이탈하지 않았다. 아니, 이탈하기는커녕 고래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도발적으로 화력을 투사하는 중이었다.

고래의 예기치 못한 도시 진공에 당황한 비행선들은 어찌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처럼 어지러운 움직임들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제부터 하늘에서 기회를 노리겠다. 선단의 지휘는 비서실장이, 기타 전력의 통제는 경호실장이 맡는다.”

경태는 내 말에 깊이 상심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호위 하나 없이 가시려고요?”

“호위는 불필요하다.”

나는 경태의 표정을 보고서 짧게 덧붙였다.

“지금은 그렇지.”

내가 윌리엄을 역병으로 녹여버릴 때부터, 경태와 수연은 내가 유사시 공중전투함을 공략하기 위해 비장한 연쇄적인 방안들을 모두 숙지하고 있었다.

그 방안들이 지금 이 상황에서 높은 실현가능성을 보여주게 되었음을 알기에, 경태는 한숨을 삼키면서도 내가 단독으로 나서는 걸 막아서지 않았다.

일단 접근하기만 하면 승산은 충분하다. 관건은 지근거리까지 은밀하게 접근하는 데 성공하는가 여부다.

“……알겠습니다. 우리 윌리엄 게이를 녹여버린 그 마법이 형님의 계산대로 틈을 열어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겠군요. 그래도, 상황이 달라지면 즉시 불러주십시오.”

불러달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그래야 할 상황에 처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이 녀석도 안다.

아무리 대혼란이 빚어지는 와중이어도 다수의 비행체가 공중전투함에 접근하면 발각당하지 않을 리가 없잖은가.

이건 황금기의 눈을 가진 대마법사가 홀로 기회를 노려야 할 일이다.

수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쿠릉- 뻐버벙-!」

비행갑판으로 나가자 거친 바람에 희미한 초연과 폭음이 실려 왔다. 바다 곳곳에서 창백한 물기둥과 번뜩이는 화광이 치솟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임무부대의 외곽 초계를 맡고 있던 민간협력업체의 함선들이 해적들의 포화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었다.

고래를 사냥하기 위한 싸움은 일반적인 해상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고래 추적의 일선에 투입되어있던 민간협력업체들은 이런 상황에 전혀 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민간 무장선박들이 지닌 대공화력은 최대치가 자동화된 근접대공방어 기관포(CIWS) 정도다. 해적들이 기습적으로 퍼부은 불벼락은 거의 걸러지지 않은 채로 헌터들을 향해 쏟아졌다.

한쪽에는 고래가 도시를 파괴하는 혼돈이.

다른 한쪽에는 환경전사들과 해적함대가 자아내는 또 다른 혼돈이 펼쳐져있다.

나는 두 혼란의 넓은 틈바구니로 날아올랐다.

「부우우욱-! 부우우우우욱-!」

분당 4천 5백 발의 속도로 포탄을 뱉는 대공방어 기관포들이 어두운 하늘에 굵은 예광탄의 빛줄기들을 뿌려댔다. 예광탄 줄기들 사이로 날아드는 이란제 대함미사일은 일찍이 광저우에서 나를 곤경에 빠트렸던 중국제 대함미사일의 복제품이었다.

어둡던 통상시야 전체가 한순간 밝은 주홍빛으로 번쩍였다. 민간협력업체의 무장선박이 또 한 척 미사일에 맞은 것이다. 굉음은 서너 호흡의 시차를 두고 빛을 뒤따라왔다.

「콰릉-!」

배에 실려 있던 연료와 탄약이 폭발하면서 까맣던 바다 한쪽이 환하게 타올랐다. 몸에 불이 붙은 각성능력자들이 사지를 휘저으며 바다로 뛰어든다. 통신망도 어느 채널에 접속하든 온통 아비규환이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CTF 연합임무부대는 대공방어를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환경전사 엘프들의 기체들(페어리)이 여기저기서 사선(射線)에 걸려드는 탓이었다.

자칫하다간 연합함대가 민간인 대량학살의 책임을 뒤집어쓸 판이다.

페어리들은 자신들의 배후에서 날아오는 포탄과 미사일에 놀라 이리 튀고 저리 튀며 전장의 무질서를 증폭시키는 중이었다. 너무나도 내가 바랐던 광경 그대로여서 심장이 뛰는 속도가 빨라진다. 매번 뛸 때마다 목에서 머리에 이르는 맥박이 선명하게 느껴질 지경으로.

이 전장에 그레이스의 고양이는 필요 없다.

이 순간 나는 단순한 파괴와 살해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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