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고래사냥 (17)
대잠로켓은 핵어뢰와 핵폭뢰를 가장 빠르게 목표 지점으로 날려 보내는 수단이지만, 그럼에도 조금 전 고래가 브리칭을 한 지점까지는 30초 가까운 비과시간(飛過時間/비행에 걸리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로켓에서 분리된 폭뢰나 어뢰가 표적 심도까지 내려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있는 탓이었다.
미국의 최신형 어뢰는 최고속도가 55노트 안팎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수평주행시의 최고속도일 뿐. 하강주행의 속도는 그보다 느릴 수밖에 없었다. 현재 고래가 머무는 심도까지 내려가려면 최대속도로도 최소 10초 가량이 걸릴 만큼. 나선을 그리며 탐색패턴으로 내려갈 경우엔 그보다 두 세배는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에 처음 표적을 설정하고 로켓을 발사하기까지 걸리는 기본적인 대응시간이 추가된다.
이 모든 시간들을 다 더하고 보면, 어뢰보다 더 빠르게 기동하는 고래가 최초 관측지점으로부터 1킬로미터 이상 벗어날 여유가 만들어진다.
물론 CTF-W2는 바다괴물의 정확한 역량을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고래가 몹시 빠르게 움직인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고, 나름대로 그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해놓은 상태였다.
그 대응책이란, 물량이다.
수직발사관으로부터 솟구쳐 날아간 대잠로켓 아홉 발은, 고래가 처음 관측된 지점을 중심으로 커다란 원형의 살상지대를 형성했다.
고래의 정확한 속도를 모르고 쏜 까닭에 살상지대의 반경은 다소 모자란 감이 있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고래가 살상지대를 벗어날 경우 다음 공격에선 그보다 더 크고 밀도 높은 살상지대를 구축한다는 게 CTF-W2 임무부대의 기본 계획이었다.
레이더 화면을 보고 있던 부하가 보고했다.
“어뢰, 전탄 입수합니다!”
우리가 보는 레이더 화면은 스텔라 포르투나의 자체 레이더의 정보와 CTF-W2의 데이터 링크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었다. 음향감시화면 또한 마찬가지다.
이동하는 내내 음향의 연막을 뿌리며 일찌감치 살상지대를 이탈한 고래는, 이제 다가올 충격에 대비하듯 자기 자신을 마법적인 힘으로 둥글게 감쌌다. 물의 흐름을 다스리는 힘과 염동력으로 이루어진 이중의 구체였다.
마치 자신이 모습을 드러낸 결과로서 어떤 일이 뒤따를지 예상하기라도 한 듯한 행동이다. 고래가 취한 방어조치엔 부수적으로 음파의 진행을 차단하는 효과도 있었다.
마츠오의 말처럼, 고래에게 인간의 무기체계에 대한 경험적 이해가 있다고 가정하면 딱히 놀랍지도 않은 일이었다.
하기야 저 바다괴물이 그동안 어뢰와 폭뢰 공격을 좀 많이 겪어봤겠는가.
전술핵을 품은 핵어뢰와 핵폭뢰의 의외성은 그 위력에 있을 뿐, 기본적인 탐색 및 공격방식은 기존의 재래식 어뢰 및 폭뢰와 완벽하게 동일하다.
「쿠르르르르르-ㅇ!」
수중 핵폭발의 굉음이 공기 중에서보다 빠른 음속으로 스텔라 포르투나의 선체를 후려쳤다. 진감하는 선체는 용골에서 나사 하나에 이르는 모든 구성요소가 폭음을 뱉어내는 스피커와도 같았다.
수평선 부근에서 솟구치는 크고 높은 물기둥은, 어두운 바다에서도 선명한 회백색으로 빛나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굉음은 오래지 않아 잔향을 남기고 가라앉았다. 먹먹하게 찾아온 고요함 속에서 경태가 헛헛한 웃음을 흘렸다.
“평생 한 번 보기도 어려운 걸 오늘 몇 번이나 보게 될지 모르겠네.”
방금 터진 아홉 발의 어뢰 중 핵탄두를 탑재한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핵 어뢰와 재래식 어뢰, 그리고 핵 폭뢰와 재래식 폭뢰는 서로 외양이 동일하며, 고래에겐 양자를 구분할 능력이 없다.
핵폭발의 굉음은 다른 재래식 무기들의 폭음을 다 집어삼키고 가까운 바다 전체를 잔향으로 가득 채우는 수준이며, 핵폭발의 섬광은 다른 재래식 탄두들의 비루함을 감춰주는 장막이기도 하다.
따라서 살상지대에 입수(入水)한 모든 어뢰-혹은 폭뢰-가 동시에 폭발한다면, 청각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고래로서는 그 전부가 ‘극도로 위험한 것’이자 ‘반드시 피해야만 하는 것’이었다고 판단할 개연성이 컸다.
일단 이러한 인식이 각인되고 나면, 고래는 재래식 어뢰와 폭뢰를 보고도 과민한 회피반응을 보여줄 것이었다. 적어도 CTF-W2가 기대하는 바는 그러했다.
이 같은 화력의 허장성세는 일본 정부가 공언한 ‘핵무기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기도 했다. 몰이사냥을 오로지 핵무기로만 진행하려 들었다간 너무도 많은 수중 핵공격을 감행해야 할 것이었으니까.
「-」
혹등고래는 한자리에서 침묵하고 있었다. 나는 멀리 있는 고래의 신경계에서 고통에 해당하는 화학적 색채변화가 점멸하는 것을 보았다. 원시마법을 활용한 이중방어에도 불구하고, 수중 핵폭발의 소음으로 말미암아 청각기관을 다친 모양이다.
각성체가 아니면 일반적인 잠수함의 평범한 능동 음향탐지(액티브 소나) 핑만으로도 청각장애를 얻는 게 고래라는 동물이었다.
그러나 육성만으로 선박을 해체하게 만들어주는 생체강화는 곧 그만큼 높은 회복력을 의미했다. 고통의 색채가 빠르게 사라져가고, 그 빈자리에 다시금 흥분과 노여움의 색채가 돌아온다.
「……해치웠나?」
가쁜 호흡이 묻어나는 목소리. 통신망에 누구의 것인지 모를 헛된 기대가 잡힌다. 통신문법을 준수하지 않는 방향성 모호한 질문이었다.
마치 이 말을 듣기라도 한 양, 멈춰있던 고래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성체 혹등고래의 마력장은 그 크기만으로는 대마법사조차 능가한다. 그러므로 고래가 1천 미터의 깊은 심도까지 잠수를 하더라도, 바다 위에서 저고도로 비행하는 헌터들은 그 존재감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문제는 고래 역시 자신의 장악력을 건드리는 인간의 마력장을 느낄 수 있다는 점.
“당신이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본다.”는 경구를 떠올리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고래다! 여기 고래가 있다! 고래가 아직 살아있다고!」
하청 피라미드의 밑바닥으로부터 이러한 외침이 무전을 타고 올라올 때, 고래는 벌써 두 번째의 브리칭에 돌입한 참이었다.
고래의 존재를 감지한 헌터는 이제 곧 이루어질 로켓 공격의 사선을 회피하고자, 또 고래의 잠재적인 공격범위에서 벗어나고자 자신의 최고속력으로 위험 공역을 벗어나려 들었다.
그러나 일단 고래의 마력장 위에 올라탄 이상 마소에 대한 장악력의 저하는 불가피하다. 이는 곧 비행속도의 저하로 이어졌고, 그 결과 바다괴물의 거체가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순간까지도 해당 헌터는 위험 반경을 탈출하지 못한 상태였다.
「살려ㅈ-」
공포에 사로잡힌 헌터의 절규가 끝나기도 전에, 고래는 시속 백 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솟구쳐 또 한 번의 광범위한 염동 충격파를 터트렸다.
충격파에 직격당한 제트 바이크는 파편을 흩뿌리며 날카롭게 치솟았다. 원래 머물던 고도에서 1천 피트(약 3백 미터) 이상 치솟고 나서야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기 시작한다.
고래가 체공하는 짧은 시간 동안 함포를 포함한 직사화기들이 불을 뿜었다. 그러나 폭풍처럼 몰아치는 물안개는 조준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충격파와 충격파가 남긴 후폭풍은 탄의 궤도를 극도로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어두운 바다에선 강렬하게 빛나는 무지갯빛 광채들이 꽃피었다.
첫 브리칭에서는 미처 반응하지 못했던 공중전투함들이, 이번에는 충격파가 터진 직후 바다 방향으로 사격이 가능한 8문의 레이저 포대를 가동한 것이다.
물안개에 꽂힌 고출력 레이저 광선들은 다채로운 굴절로 인해 화려한 빛의 향연을 자아냈다. 본래대로라면 보이지 않아야 할 광선이 가시영역의 파장으로 산란하고 있는 탓이었다.
그렇게 흩어지면서 감소한 위력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레이저 줄기들은 여전히 사람 하나쯤 순식간에 탄화시킬 고열을 품고 있었다.
지속적인 조사(照射)가 가능한 레이저의 특성상, 자동화된 조준이 불가능할지라도 대강 수동으로 발사해도 무방하다. 맞지 않는 조준 따윈 통상시야로든 적외선 관측장비로든 광선을 직접 보면서 수정하면 그만이고.
결과적으로, 고래의 브리칭이 끝나기 직전, 두 줄기의 광선이 고래의 몸을 길게 지지며 긁고 지나갔다. 인류가 키요우타마히코의 몸에 새긴 첫 번째 상처였다.
「우우우우우-!」
물 밖에서 내질렀음에도 먼 곳까지 메아리치는 고래의 아픈 비명. 소리 한 번 질러서 강철 선체를 분쇄해버리는 괴물의 성량이었다. 내 시야엔 소리만으로 전율하는 대기의 흐름이 고스란히 들어왔다.
나는 혈관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거대한 사냥의 기회가 점점 더 목전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예감 탓이었다.
이제는 부인할 수 없는 바, 내 안엔 분명 조급증이 도사리고 있었다. 수연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려를 표했던 것처럼. 녀석은 나를 지나치게 잘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원탁의 몰락을 향해 나아가는 매 순간 순간들이 나를 악몽으로부터 조금씩 조금씩 자유롭게 만들어주고 있으니까.
내 육체를 빼앗고 영혼을 집어삼키려는 대마법사로부터 울면서 달아나는 꿈에 시달린 세월이 얼마인가.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꿈속의 내가 느끼는 공포엔 쇠함이 없었다. 내가 느끼기로, 이는 생존을 향한 목마름을 심지에 새겨 넣는 장기간의 세뇌와도 같았다.
고래가 브리칭을 행했던 지점을 향해 또다시 대잠로켓들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고래는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피해를 최소화했다.
방사능 피폭에 따른 피해도 치명적인 수준과는 거리가 멀었다. 고압의 해수로 가득한 1.5킬로미터 가량의 간격이 두꺼운 방호벽 역할을 해주는 데다, 거대한 고래는 원래부터 방사능에 대한 저항력이 높은 까닭이었다.
「저건 또 뭐야?!」
하청 피라미드의 밑바닥으로부터 무전망을 타고 다시금 혼란스러운 비명들이 올라왔다.
「모두 피해! 고도를 높이면서 흩어지라고!」
왕립공군 공중전투함들의 레이저 공격에 지져진 고래는, 이제 브리칭에 이은 충격파 대신 다른 방법으로 물 밖의 날파리들을 공격했다.
그 방법이란, 본디 고속이동에 쓰던 가압 가속 터널을 물대포로 전용하는 것이었다. 터널의 폭을 줄이고 유속을 늘려 방출하는 세찬 해수의 흐름은, 파도를 뚫고 삼사백 미터나 솟구치는 사나운 포말의 채찍으로 화했다.
회로가 엉성하고 감각이 둔한 하급 헌터일수록, 고래의 존재감을 포착하려면 그만큼 낮은 고도로 비행해야 한다. 그것은 곧 마소 장악력 저하에 따른 본인의 마력회로의 출력감소가 뚜렷하게 체감될 정도의 고도를 유지해야 함을 의미했다.
물론 물의 채찍이 닿지 않을 고도에서 고래의 존재감을 포착할 만큼 감각이 좋은 헌터들도 다수 존재한다.
그러나 이렇게 능력이 우수한 헌터들은 같은 하청이라도 급수가 높은 편이었다. 위험한 일에 스스로 나서느니 2차, 3차, 4차, 5차로 줄줄이 이어지는 하도급 업자들을 내모는 쪽이 편한 입장들이라는 뜻이다. 고래가 언제 또 브리칭과 충격파 발산을 시도할지 모르는 노릇 아닌가.
질량이 수천 톤은 거뜬히 넘어갈 바닷물의 채찍에 불운아들의 기체 둘이 연속으로 휘말렸다. 그 광경을 본 하급 용팔이들은 더더욱 겁을 집어먹었다.
「야시마로부터 모든 패스파인더들에게. 지금 당장 원 고도로 복귀하여 수색을 재개할 것. 반복합니다. 지금 당장 원 고도로 복귀하여 수색을 재개할 것. 지시에 불복할 경우-」
마력장 수색을 맡은 패스파인더들의 움직임이 둔해지자, CTF-W2 임무부대는 민간협력업자들에게 계약상의 의무를 이행할 것을 강하게 요구해왔다.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계약을 파기하고 위약금을 청구하리라는 협박과 함께.
위약금 그 자체보다는 계약 파기에 따른 커리어 손실이 더 큰 위협이다.
일본 공중 포경선단의 기함 닛신마루에서 보내는 전언에선 이글거리는 독기가 느껴졌다.
전체무전 이후로는 서로 다른 계약업체들에 대한 개별적인 통고가 이어졌다.
이 와중에 우리에 대한 압박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이쪽으로는 한마디도 안 하는군.’
내가 생각하기로는, 앞서 빅사이트 통합지원센터에서 공무원들과 맺은 다수의 거래계약들이 방패막이 역할을 해주고 있는 덕분이었다.
우리가 증발해버리면 공무원들이 우리를 상대로 올린 실적들도 증발하게 되어있다. 그러면 일본 총리가 국민들에게 보여줄 구체적인 숫자들 또한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물건을 팔기로 한 기업들 역시 이야기가 다르지 않느냐며 인상을 쓸 터.
국익을 따지면 당연히 그런 작은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우리를 적극적으로 압박하는 편이 낫다.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이 옳고 그름만을 따져서 돌아가는 경우가 얼마나 되나.
마츠오의 감에 의지해 미리 잡아놓은 위치와 더불어, 일본 정부의 음습함과 정경유착이 우리를 보호해주고 있었다.
이 와중에 고래는 새로운 공격 양상을 선보였다.
공격을 당한 것은 멀리 나아가 외곽 감시를 맡고 있던 음향감시 피켓(Picket) 역할의 무장여객선 한 척이었다. 배수량이 2천 톤은 됨직한 배가 밤바다의 새까만 물결 아래로 쑥 꺼지듯이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