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23화 (423/561)

#43. 고래사냥 (16)

키요우타마히코는 기본적으로 무음(無音)에 근접한 저소음 상태를 유지하며 움직인다.

고래에게 있어 음향탐지는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생리다. 그러므로 고래가 인류의 음향탐지를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연구자들의 중론이 그러하고, 내 생각 역시 동일하며, 지속적인 관측으로 확인된 정황증거들이 이를 뒷받침해주었다.

따라서 키요우타마히코는 능동적인 음향탐지를 신중하게 이용했다. 잠수함으로 치면 이는 자신을 노출시키는 액티브 소나를 신중히 쓰는 것과 비슷했다.

핏빛 그리움과 복수의 노래는 오로지 공격을 예고할 때 부를 따름이다.

괴물 고래가 고속으로 이동할 때 발생하는 소음은 고래 스스로 지배하는 물의 흐름을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바다괴물이 만들어내는 수중의 고속해류 터널은 두 가지 특성을 지녔다.

가속(加速). 그리고 가압(加壓).

압력이 높은 유체 내부에선 유동(流動)에 따른 소음의 발생이 최소화된다. 중심부로 갈수록 압력이 높고, 압력에 비례하여 속도도 점진적으로 빨라지는 물의 터널은 키요우타마히코가 선보이는 저소음 고속기동의 원천이었다.

여기에 더해, 가압 가속 터널의 형태는 입체적인 순환구조를 이루었다. 고래의 위치변화에 따라 터널 밖으로 방출되는 운동에너지의 양이 최소화되는 방식이다.

대마법사를 제외한 동물들 중에선 오로지 대형종 각성체 고래만이 할 수 있는 짓이었다. 물론 회로의 크기에 차이가 있는 만큼, 단순히 규모만 놓고 보면 대마법사조차도 각성체 고래를 따라잡기 어려웠다.

이런 식으로 움직이니 소음이 낮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키요우타마히코의 구체적인 이동방식에 대해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터였다. 나처럼 직접 조우해서 황금기의 눈으로 관측하지 않고서야, 무슨 수로 이 모든 것들을 알아내겠는가.

사정이 이러함에도, 가장 악명 높은 해양각성체를 음향탐지로 포착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가압 가속 터널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정말로 제로는 아니거니와, 이따금씩은 바다괴물 스스로 소리를 내는 순간들이 존재하는 까닭이다.

특히 뒤쪽은 아주 먼 거리에서도 감지가 가능하다. 마츠오가 듣고 흥분한 소리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었다.

무리와 가족의 안부를 확인하는 노랫소리.

‘하여간, 핏줄이라는 게 뭔지.’

피로 이어진 가족이 개별 생명체의 생존성을 저해하는 건 인간과 고래가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마츠오가 들은 게 진짜 키요우타마히코의 노래라고 확신하기는 아직 일렀다.

“어떻게 아는 거요?”

내가 콘솔로 다가서며 던진 물음에, 마츠오는 헤드셋을 반쯤 벗으며 “예?”하고 고개를 돌렸다. 나는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이게 키요우타마히코의 노래라는 걸 무슨 수로 아느냐고 물었소.”

사람마다 목소리가 다르듯이, 고래가 내는 소리도 종과 개체별로 차이가 존재한다. 음역대의 차이와 발성의 차이.

가장 극단적인 예시로는 「52 블루」라는 이명으로도 불리는 「52헤르츠 고래」가 있다. 음역대가 혼자서만 완전히 달라, 다른 고래들과 의사소통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고독한 개체가.

그러나 혹등고래는 개체를 불문하고 발성영역이 대단히 넓은 종이다. 주파수의 유사성만 가지고는 동종의 고래들 사이에서 특정 개체를 식별하기가 까다롭다는 뜻이었다. 발화특성의 차이 또한 정량화된 분석이 어려운 줄로 안다.

전직 해양연구원은 얼빠진 대답을 내놓았다.

“저는 그냥…… 알 수 있습니다.”

“그냥 알 수 있다?”

“에, 또…… 이것이 설명하기가 매우 어려운 감각이라서…….”

“혹시 단순한 감이라는 말이오?”

“굳이 말씀드리자면…… 이야기가 그렇게 되긴 하겠습니다만…….”

“…….”

무언의 힐난을 담은 시선을 보내자, 마츠오는 허둥거리며 조금 긴 변명을 덧붙였다.

“고, 고래의 언어 연구에 일소현명(一所懸命)으로 매달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쌓인 암묵지라고나 할까요? 저는 꿈에서조차 고래의 노래를 듣습니다. 이런 나날이 길어지니 말로는 설명하지 못할 무언가를 느끼는 감각이 생기더군요. 어쩌면, 어쩌면 저만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이 뚜렷한 감각이 착각일 거라고는 도저히-”

이렇게 열변하는 마츠오의 신경계엔 진실과 열의의 색채만이 가득했다. 본인은 본인의 말을 강하게 믿고 있는 것이다.

“그만. 그 정도면 됐소.”

나는 손을 들어 순진한 전직 해양연구원의 변명을 끊었다. 마츠오가 이거야말로 키요우타마히코이리라고 짚은 고래에게는 이런 식별기호가 붙어있었다.

시에라-109.

이 고래와 CTF-W2 초계선 사이의 거리는 아직 불명이었다. 거리에 따라 달라지는 주파수의 특성을 분석하여 거리를 추정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소리가 들릴 때마다 음원의 방위를 파악하는 건 가능했다. 나는 일정 주기로 점멸하는 시에라-109의 식별기호와, 시에라-109로부터 마지막으로 들어온 음원의 시각화된 주파수를 가만히 바라본 끝에 함장과 경태에게 지시했다.

“지금부터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는 시에라-109가 키요우타마히코라고 가정한다. 조우가 이루어지기 전에 우리 측의 위치 조정을 완료하도록.”

“예!”

성난 고래와 CTF-W2의 싸움이 시작될 때, 내 선단이 충돌의 일선에 있으면 곤란했다.

물론 고래의 주 공격수단인 음파는 내가 음파간섭이나 염동력으로 중화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주변 해역에 떠있는 군함과 정보수집함, 감시 플랫폼 및 드론, 통합 해저감시 시스템(IUSS) 부설함 등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이상한 노이즈를 듣게 될 것이다.

나는 키요우타마히코가 보여주었던 신경질적인 공격을 기억한다. 내가 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같은 호곡만을 반복해서 연주하자, 답답해진 고래가 저가 공격 가능한 범위 내의 모든 선박에 음파공격을 퍼부었던 것을.

‘그저 답답함을 느낀 것만으로도 그런 짓을 했는데, 본격적인 충돌이 빚어지는 현장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겠지.’

우리가 딱히 적대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다 한들, 성난 바다괴물은 우리에게 얼마든지 화풀이를 할 수 있었다. 여기서 마법적인 중화로 공격을 막았다간 괴물을 더욱 흥분하게 만들 공산이 크다. 그렇게 공방이 거듭되면 내 이상성이 드러나는 건 시간문제일 터.

최악의 경우에도, 대마법사의 힘을 투사하는 방어는 부하들이 배를 버릴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니 사전에 최적의 위치를 선정하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미국과 영국의 함대가 자위대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그다음으로 중요한 일은 고래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

바다괴물이 들어오는 방향을 미리 알고 있다면, 대마법사의 힘은 방어가 아니라 교란의 수단으로 바뀔 수 있다.

내가 잡고 싶은 고래들은 바다가 아니라 하늘에 떠있지 않은가. 내가 바다고래에게 길을 열어주면, 어쩌면, 바다고래가 내게 하늘고래를 잡을 길을 보여줄지도 모르는 노릇.

접근해오는 과정에서 시에라-109는 때로 시에라-221이 되기도 했고, 시에라-328이 되기도 했다. 적어도 마츠오의 판단에 따르면 그러했다. 민활한 바다괴물이 자신의 음향적 특성과 위치를 의도적으로 바꿔가며 지그재그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면 관측자의 입장에선 서로 다른 고래들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고래의 호곡이 바다를 가로지르는 데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각성체 혹등고래에게는 그 틈에 자신의 위치를 크게 변경할 기동력이 있으니까.

거리가 일정 선 이내로 가까워지기 전까지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고래는 바보가 아닙니다.”

마츠오는 긴장과 흥분으로 입술을 부들거리면서 말했다.

“벌써 죽은 지 오래인 무리와 새끼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거기에 순진하게 속아 넘어갈 리가 있겠습니까? 자기네 언어가 노출되었다는 사실쯤은 당연히 이해하겠지요.”

이 대목에서 나는 탄자니아 앞바다에서 있었던 불시의 조우를 다시 한 번 떠올렸다. 고래는 이미 인간이 자신의 노래를 흉내 내는 것을 경험해본 적이 있다.

즉, 마츠오가 주장하는 고래의 교활함이 사실이라 치면, 거기엔 내가 차지하는 지분도 있을지 모르는 노릇이다.

“저, 저들이 일찍부터 핵을 사용한 건 실수였어요.”

떨리는 목소리에 휘발성 짙은 희열과 고통이 뒤섞였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감정들이. 고통의 뿌리는 아마 조국의 미래에 대한 우려와 근심에 있지 않을까.

“죽은 새끼와 무리들의 노래가 들려오던 방향에서 연달아 거대한 굉음이 울려온 겁니다. 그러니 키요우타마히코는 자신을 도, 도발하는 해충들이 뭔가 차원이 다를 만큼 강력한 무기를 준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겠죠. 자신을 부르는 망자들의 노래와, 그 뒤에 터진 거대한 굉음 사이에 어떤 연관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일본과 전면전을 치러온 고래라면 인간의 무기체계에 대한 나름의 이해가 있다 한들 이상할 게 없긴 하다. 그 이해와 거대한 뇌의 지성을 토대로, 죽은 고래들의 노래와 핵무기의 폭발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할 법도 하고.

그보다 이 인간, 방금 같은 인간들을 해충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마츠오의 눈과 그 너머의 신경신호들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도 온다고? 도망가는 게 아니라?”

“자식의 원수가 자식의 소리를 흉내 내며 자기를 도발하는 겁니다. 고래가 사람이라고 치면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지 않겠습니까?”

나로서는 공감하기 어려우나, 그게 보편적인 반응이기는 하지. 그래서 가족이라는 게 유해하기 짝이 없는 것이고.

마츠오는 다시금 음원 추적에 매진했다.

전직 연구원의 추적과 분석이 단순히 착각이나 공상이 아니라는 사실은 두어 시간이 더 지나서야 밝혀졌다. 수평선 위로 올라오는 거대한 마력장의 가장자리와 수면 아래 가압 가속 터널의 흐름이 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즉시 부하들에게 전파했다. 헤드셋을 끼고 음향 분석에 매진하는 마츠오는 흡음결계를 이용한 상황공유에서 자연스럽게 배제되었다.

“전 함선들에게 기관정지 명령을 내릴까요?”

경태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어차피 위험지대에서 벗어나있으니, 처음부터 우리 존재를 알도록 유도하는 편이 낫겠지. 긴급 상황에서 갑자기 엔진을 가동하면 그게 오히려 더 고래를 자극할 거야.”

이어서 나는 분노한 고래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려 했다. 쉬운 일은 아니어도, CTF-W2의 배치와 감시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입장에선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우선 주변을 돌면서 이쪽을 염탐하리라 여겼던 혹등고래는, 이제까지의 신중함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저돌성으로 CTF-W2의 감시범위를 파고들었다.

그 저돌성의 저변엔 합리적인 자신감이 깔려있었다.

쿠구구구구구-!

너른 바다가 성난 소리로 포효하기 시작했다. 하늘엔 작은 새털구름 몇 조각이 떠있을 뿐이건만, 거친 태풍이 몰아칠 때보다 더한 수준의 소음이 온 사방을 가득 메웠다.

나는 노이즈가 폭주해서 미쳐 날뛰는 음향감시화면과 먼 바다에서 펼쳐지는 장대한 마력 작용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저게 염동력을 얻었군.’

혹등고래의 생체질량이면 다중각성체로 거듭날 잠재력은 넘쳐흐를 만큼 충분하다.

어쩌면 고래는 나와의 조우 이전에 벌써 염동력을 획득한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당시 나는 고래의 음파공격이 순수한 생체강화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당황했었지만, 그게 고래에게 다른 능력이 없다는 증거는 아니었다.

그때의 내겐 고래의 회로를 정밀하게 분석할 여유가 없었으니.

지금 키요우타마히코는 물의 흐름을 지배하는 힘과 염동력을 활용하여 초월적으로 강력한 지향성 음파를 생성하고, 특정 형태로 굽이치는 해저협곡지형을 전성관 겸 반사판으로 삼아 소음을 넓게 퍼뜨리는 중이었다.

즉, 고래는 이 근방의 해저지형을 이미 숙지하고 있다.

이는 자신이 설 무대공간의 음향반사 특성을 숙지하고서, 그 공간적 특성을 지휘와 연주에 반영하는 클래식의 거장을 꼭 닮아있었다. 태어난 직후부터 최소 수십 년을 소리와 노래에 의지해 살아왔을 바다생물의 지혜였다.

CTF-W2와 민간협력자들에겐 비상이 걸렸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빨리 소음의 발산지점을 특정해!」

「무리입니다! 오차범위가 너무 넓습니다!」

「그럼 그 해역으로 헌터들을 보내! 이써리얼 필드(마력장)를 찾으라고!」

기뢰 하나, 어뢰 하나가 터지더라도 그 근처에 있는 함선은 잠시 귀머거리로 전락한다. 폭발의 잔향(殘響)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나서야 음향탐지장치의 선명도가 돌아오는 까닭이다.

“아, 아아……! 역시, 역시 고래는 굉장해……!”

전직 해양연구원답게 금세 상황을 이해한 마츠오는 흥분에 의한 탈진이 우려될 만큼 온몸을 떨어댔다. 핏발이 선 눈에선 눈물이, 벌름거리는 코에선 콧물이 흘러내렸다.

“바다의 신(わたつみ)이 왔다……. 키요우타마히코가 왔다……! 아아, 이렇게 되지 않기만을 바랐는데……! 일본은, 우리 일본은……!”

폐부에서 쥐어짜내는 듯한 괴로운 울음.

고래가 지금 하는 짓은 지상으로 치면 연막을 까는 것과 흡사했다.

이러한 수중 연막차장의 문제는 고래 자신의 음향탐지능력도 저하된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음파공격의 사정거리와 효율 또한 감소한다.

나는 소음방출을 중지한 키요우타마히코가 거대한 소음의 잔향 속에서 해수면을 겨냥하여 가속과 가압의 순환류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았다.

다음 순간, 무게만 30톤이 넘을 바다괴물은 덩치를 무색케 하는 엄청난 가속을 선보이며 수면 위로 치솟았다.

호흡과 탐색, 그리고 공격을 위한 브리칭(Breaching).

단시간의 탄도비행을 하며 고래가 허공에서 몸을 뒤집는다. 나는 아주 먼 거리에서도 인간의 함대를 슥 훑고 지나가는 고래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짧은 상승의 정점에 도달한 각성체 혹등고래는 자신의 몸 주위로 제 한계까지 압축한 염동력의 고리를 두른 상태였다.

그 고리는 곧 투명한 힘의 폭발로 바뀌었다.

「콰아아아아-!」

일찍이 엘 세르도타도에게서도 보았던 충격파 생성기술이지만, 고래가 격발한 충격파는 규모 면에서 차원이 달랐다.

격렬하게 일어난 백색의 물안개가 직경 수 킬로미터 범위를 집어삼키고, 가까운 하늘에 떠있던 구름 몇 조각마저 가볍게 흐트러지는 가운데, 위험 반경 내에 있던 헌터들은 기체가 손상되거나 내장이 진탕이 되어 수면 위로 떨어져 내렸다.

공방일체의 탄도비행을 마친 고래는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다시금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고래가 떨어진 해수면 아래엔 또 다른 해저협곡이 똬리를 틀고 있었고, 고래는 고작 10초 만에 대부분의 재래식 잠수함들이 내려가기를 두려워하는 깊은 심도까지 하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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