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22화 (422/561)

#43. 고래사냥 (15)

로켓에 실려 파도를 뚫고 들어간 핵폭뢰는 수심 150미터에 도달하여 폭발을 일으켰다.

희고 거대한 준령(峻嶺)이 포말을 일으키며 가파르게 치솟았다. 수천수만의 벼락이 한꺼번에 내리치는 듯한 굉음을 그 안에 품고서.

이는 마치 국지적으로 중력이 역전된 듯한 광경이었다. 폭발지점에서만큼은 하늘과 땅의 상하가 바뀌어, 바다에 고여 있던 막대한 질량의 물이 하늘을 향해 쏟아져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장대한 규모로 중력을 거스르는 인공 바다폭포의 탄생이었다.

치솟는 물기둥은 대략 12초에 걸쳐 상승을 이어갔다. 원뿔형 첨단의 높이는 단 7초 만에 2백 미터를 넘어섰고, 그다음엔 뜨거운 열을 품은 수증기가 뿜어져 나와 차가운 공기와 부대끼며 수평 방향으로 둥글게 퍼져나갔다.

이렇게 퍼져나가며 바람을 타고 이지러지는 백색 수증기의 타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직경이 약 1킬로미터에 달하게 되었다. 바람을 따르는 희뿌연 물안개의 확산 범위는 그보다 두 배 이상 더 넓었다.

해수면에서 크게 일어난 파괴적인 너울은 처음엔 고속정이 아니고선 도망가지 못할 속도로 질주하다가, 폭심과의 거리에 반비례하여 점진적으로 파고가 낮아지고 속도 또한 줄어들었다.

이것이, 파란 고양이와 비슷한 수준에 불과한 저위력 핵무기의 폭발이었다.

우르르르릉- 하는 먹먹한 울림이 스텔라 포르투나의 선체를 길게 진감시키며 지나갔다. 그 강렬한 떨림을 느끼며, 나는 고고도 관측기가 보내오는 화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비상 주파수는 삽시간에 환경 미치광이들의 절규로 가득해졌다.

「살려주세요!」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신이시여, 제발……」 「같이 가, 이 나쁜 사생아 새끼들아! 나를 두고 가지 마!」 「엄마-!」 「더 빠르게! 더, 더, 더, 더!」

상용 통신장비의 EMP 내성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강한 편이다. 그리고, 이번 핵폭발은 수중 핵폭발이었다. 덕분에 폭심지 부근의 환경주의자들은 아무런 장애 없이 무전망을 자신들의 비명으로 채울 수 있었다.

“으…… 으흐흑…….”

환경 미치광이들의 비명을 들으며, 그리고 화면에 표시되는 핵폭발의 여파들과 먼 수평선 위의 하늘을 보면서, 전직 해양연구원 마츠오는 한창 열병을 앓을 때보다 더 초췌해진 안색으로 흐느껴 울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짓을……. 사람도 아니야…….”

참으로 순진하기 짝이 없는 소리였다. 사람이니까 이런 일을 하는 거지.

로켓이 해수면에 착탄하는 순간까지도 위험공역 가까이에 남아있었던 의인(義人)의 숫자는 단 셋이었다.

그리고 그들 셋 중에서 폭발의 여파에 휘말려 죽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세 사람의 의인은 지금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 속도로 폭심지로부터 달아나는 중이었다. 내 눈이 닿기엔 먼 거리지만, 화면에 뜨는 식별기호들의 움직임을 보면 그들이 지금 어떤 표정들을 짓고 있을지도 대강은 짐작이 갔다.

‘시간이 너무 부족했지.’

시간. 이성이 생존본능을 억제하는 데엔 시간이 필요하다. 상황이 급박할수록, 마음의 준비를 할 여유가 짧으면 짧을수록 본능이 이성을 압도하고야 마는 것이다.

자연재해에 가깝게 솟구치는 거대한 물기둥. 탑승한 기체를 세차게 치고 지나가는 충격파. 그리고 몸의 가장 깊은 곳까지 뒤흔들어놓는 굉음에 이르기까지.

일본이 자신들을 무시하고서 핵공격을 가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던 이상주의자들은, 새롭게 주어진 상황에 각오를 다지기도 전에 생존본능에게 자신의 지배권을 내주었다.

비록 폭심지 가까이에 있었다고는 해도, 방사능 노출은 심각한 수준이 아닐 것이다.

나는 지금 터진 것과 거의 동일한 규모로 이루어진 수중 핵실험을 하나 알고 있다. 해당 실험의 기폭 심도는 30미터에 불과했으나, 실험지역 상공을 비행하던 관측기에선 시간당 0.35뢴트겐의 방사선량이 감지되었을 뿐이다.

수중에서 생성되는 오염물질의 양이야 어쨌든, 대기 중에서의 방사능 오염은 극히 제한적인 게 수중 핵폭발이다. 폭발 여파에 직접적으로 휘말리거나, 아예 물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방사능 오염 노출만으로 사람이 죽긴 어려운 것이다.

즉, 일본은 처음부터 저들에게 순교자를 만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저들의 공분을 공포로 갈음하고, 저들의 단합력에 균열을 유도할 작정이었을 뿐이지.

비상 주파수에서 터져 나온 누군가의 외마디 절규는 일본 측의 계산이 아주 잘 먹혔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배신자들!」

환경 미치광이들에게 일본은 원래 악이다. 원래부터 악하던 자들이 악한 짓을 저지른 것보다는, 먼저 등을 돌리고 달아난 같은 편의 배신자들이 더 선명히 눈에 들어오는 게 당연하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그러하다. 죽음에 보다 가까웠던 자들에게는 특히 더 그러할 터.

머리에서 공황의 열기가 빠지고 난 다음에는 생각이 좀 달라지겠지만, 인간은 매양 감정에 매몰되기 쉬운 동물인지라, 한 번 생긴 불신과 갈등이 아무는 데엔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혹은 끝끝내 아물지 못할는지도 모르고.

경태가 가볍게 혀를 찼다.

“아, 이게 이렇게 되나. 이러면 저쪽은 나가리인데.”

핵과 방사능의 공포는 핵무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자들에게 오히려 더 크게 느껴지는 것. 막연한 두려움은 막연하기에 오히려 무제한적으로 팽창할 수 있다.

수평선 위로 아스라이 솟구치는 거대 물기둥, 구름을 밀어내는 수증기의 팽창, 골수 깊은 곳까지 난폭하게 스며드는 폭발의 굉음, 굉음이 울려오는 방향에서 정신없이 도망쳐오는 도망자들, 그리고 그 도망자들이 모든 가용 채널을 통해 내지르는 비명들은 방사능에 대한 공포가 군중심리 속에서 증폭을 거듭하기에 이상적인 조건들이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CTF-W2와 민간협력자들의 함대가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서 여기까지는 방사능 오염의 여파가 닿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포에 잡아먹힌 군중에게 그 정도의 냉정함이 남아있을 리가 있나. 공용 무전채널은 아까보다 더욱 크고 혼란스러운 비명들로 가득 찼다. 간헐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핵’과 ‘방사능’ 정도가 전부였다.

“앗, 아아……! 안 돼……!”

비틀거리는 움직임으로 창문에 달라붙는 마츠오. 나는 이 순진한 인간의 슬픔이 조금 거슬리기 시작했다.

창문 밖의 바다에선 고래의 편에 섰던 인간들의 무질서한 궤주가 한창이었다. 심지어 CTF-W2의 민간협력자인 헌터들마저 저지선을 구성하던 일부가 군중심리에 휩쓸려 궤주 대열에 합류했다. 갑을병정 아래의 하도급에 경험마저 일천하여 상황파악능력이 떨어지는-혹은 그저 겁이 많을 뿐인-하급 헌터들의 추태였다.

불운한 고래 시에라-47의 생사 따윈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상황.

CTF-W2 임무부대는 인터내셔널 세력에게 강력한 전자전을 걸어 결정타를 꽂아 넣었다.

인터내셔널 측의 상태가 멀쩡했다면, GPS 교란이나 통신장애, 레이더 마비 등의 전자전 공격은 가벼운 혼란만 자아내고서 끝났을 것이다. 한정된 공격능력을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도 불분명하거니와, 인터내셔널의 의사결정구조는 다분히 수평적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공격을 집중할 목표들이 더없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상황이다.

겁에 질려 무분별하게 도망치는 양떼들 사이에서, 아직도 결의가 살아있는 염소들의 존재는 너무나도 눈에 띄는 것이었다.

투명한 공격이 집중되는 지점마다 가시적인 공황이 부풀어 올랐다.

「쿠웅-! 끼기기기기-!」

너른 바다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인 충돌사고가 발생했다. 충돌하는 질량의 단위가 육상과는 차원이 다른 바다 위의 사고들이었다.

해상에서의 안전거리는 지상에서의 그것보다 현격히 크다. 선박의 특성상 자동차만큼 기민한 충돌 회피가 불가능한 까닭이다.

게다가 조타기를 거머쥔 자들은 지금 시야가 극히 좁아져있는 상태다. 극도의 흥분과 긴장상태에서 시야가 좁아지는 건 백전연마의 베테랑이라도 피하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여기에 강력한 전자전 공격을 끼얹었으니 사고가 나지 않고 어찌 배기겠나. 요동치는 좌표계와 맛이 가버린 항법장치들은 사고가 반쯤 마비된 인터내셔널의 조타수들에게 미칠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해주고 있을 터였다. 전자전 공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라도 하고 있으면 다행이겠지.

원양항해가 가능한 체급의 요트는 가장 작은 것이라도 5톤이 넘어간다. 그렇게 무거운 것들이 이 바다에서는 마치 수수깡으로 만든 모형처럼 쉬이 깨어지고 부서져나갔다.

「부우우우우-!」

덩치가 큰 배들이 경고성 기적(汽笛)을 울려댔다. 제발 내 진로에서 비켜나라는 외침이다. 공용 무전망은 갈수록 더 소란스러워지기만 할 따름. 충돌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경태 말대로 저쪽은 글렀나.’

경태가 말했던 ‘저쪽’이란, 인터내셔널 함대가 아니라 그 배후의 전파·음파 음영지대에 숨어있는 해적함대 원정전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물결 아래에 자리 잡은 채 때때로 자그마한 스노클만 올려서 인력 펌프로 선내 공기를 교환하는 충각 반잠수정들. 이들은 공중전투함 및 일본 공중 포경선단의 레이더로도 잡아내기 어려운 존재들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식별 자체는 가능하다. 하늘에 띄운 합성개구레이더는 일정 심도까지는 물속을 들여다볼 수 있으므로.

그러나 숫자가 많은 인터내셔널 함대와 해적함대 반잠수정을 구분해내기란 어렵다. 레이더 화면엔 기껏해야 작은 요트 한 척과 흡사한 형태로 표시될 따름이니까. 정확하게 충각선을 짚어서 형상을 분석하기 전에는 알아차릴 방법이 없다. 충각선들이 얕은 심도에 머물고 있는 까닭에 심도의 차이로도 구분하기 곤란할 것이었고.

무음항해에 인력 스크류 대신 염동력을 쓰는 해적들은 해적함대의 진짜배기 정예들이라 할 만했다. 「발화」와 「염동」을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삼중각성능력자들은 어디를 가더라도 귀한 대우를 받을 희소한 인재들이다.

통신 담당 부하가 긴장한 어조로 보고했다.

“시에라-48, 시에라-31에 대한 핵공격 경보가 갱신되었습니다. 시에라-48, 발사까지 남은 시간 1분 30초. 시에라-31, 발사까지 남은 시간……”

잠시 후. 기어이 두 번의 수중 핵폭발이 추가로 발생했다. 연달아 수평선을 넘어오는 굉음들은 군중의 정신을 세차게 후려치는 두 차례의 채찍질과도 같았다. 인터내셔널 함대에겐 냉정을 되찾고 혼란을 수습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다소 과격한 방법이긴 했으나, 이렇게라도 환경 미치광이들을 치워놓지 않으면 고래사냥이 진행되는 내내 방해를 받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미국과 영국도 핵무기 투발에 동의해준 것이겠지.

예상 밖이었던 것은 긴 혼란이 일단락된 뒤에 재집결한 인터내셔널 함대의 규모였다.

어디까지나 가짜 광기에 불과했던 패션 미치광이들은 모두 도망갔다. 이 고래잡이의 바다가 자신들의 허영을 채우기 위한 축제 같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몸서리쳐지도록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바다 엘프들의 함대는 대다수가 그대로 잔류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자, 조각조각 파편화된 인터내셔널 함대는 바다 엘프들의 함대를 중심으로 전열을 재정비했다. 규모는 크게 줄었을지언정 진정한 의미에서 ‘함대’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세력의 탄생이었다.

비록 당장은 익수자 구조와 실종자 수색에 전념하느라 고래사냥을 방해하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 수습을 매듭지은 다음에는 다시금 CTF-W2 임무부대의 앞을 가로막을 터였다. 처음보다 오히려 더 큰 장애물이 되어서.

덕분에 해적함대 원정전단도 일단은 더 기회를 노려볼 수 있게 되었다. 수색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잠시 빠졌다가, 수색이 일단락된 연후에 다시 들어오기로 한 것이다. 비밀스러운 교신은 함교와 분리된 전투정보실에서 이루어졌다.

인터내셔널 측은 CTF-W2의 수색 및 구조 활동 합류를 강하게 거부했다. 합동구조를 제안하는 전언을 보낼 때마다 돌아오는 답신은 맹렬한 증오로 가득 차있었다.

「저리 꺼져! 이 더러운 살인자들! 너희에게 어머니 자연(Mother Nature)과 고래들의 분노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반발을 핑계로, CTF-W2 임무부대는 체면치레나 간신히 할 정도의 함선만을 구조 활동에 할당했다. 임무부대에게 지금 중요한 건 인터내셔널이 다시 훼방을 놓기 전에 고래사냥을 진행하는 것이었으니까.

체면치레 이상의 구조인력은 일본 본토에서 일감의 낙수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예비 하도급업자들을 불러들여 채우면 그만이다.

일시적으로 중지되었던 유인용 음향의 확산도 재개되었다.

「우우- 우우- 휘이이이이-」

아득한 메아리 같기도 하고, 흐느낌 같기도 한 고래의 노래들이 깊고 먼 바다 속으로 넓게 넓게 퍼져나갔다.

고래를 끌어들이기 위해, 그리고 고래를 소음으로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고출력 음향발산장치는 지속적으로 상당히 많은 양의 전력을 잡아먹었다. 공진형 전력증폭기를 써서 순간적인 핑(Ping)을 쏘기만 하면 되는 능동 음향탐지장치(액티브 소나)와는 사정이 달랐다.

게다가 이 장치는 무게와 부피마저 상당했기에, 전투함 같은 대형 플랫폼이 아니고선 설치나 운용이 불가능했다.

다만 모선(母船)과 파워 케이블로 연결된 유선 원격조종 플랫폼의 형식으로 거리를 띄워 운용하는 정도는 가능했다. 일본 해상자위대와 공중 포경선단이 자신들의 생존성 제고를 위해 채택한 방식이었다.

유인 과정에서 우리 같은 민간협력자들에게 주어진 역할은 기본적으로는 수동적인 음향탐지 및 넓은 해수면에 대한 시각적인 감시, 그리고 각성능력자의 감각을 활용한 마력장 감지였다.

이중에서 마력장 감지는 오로지 각성능력자들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고래는 자신의 생체질량에 비례하는 거대한 마력장을 감추는 방법을 모르고, 뛰어난 각성능력자일수록 고래의 존재감을 보다 먼 거리에서 보다 민감하게 느낄 수 있다. 일본이 우수한 민간협력자 모집에 공을 들인 이유의 하나였다.

마츠오는 식사마저 거르면서 음향감시에 매달렸다.

이 순진한 전직 해양연구원은 우리가 고래의 편이라는 말만 믿고서 열심히 우리를 도와주려 하고 있었다. 길게 준비한 여러 시나리오들을 쓸모없게 만들어버린 순진함이었다.

혹은, 목숨을 구해준 데서 그만큼의 믿음을 얻은 것이거나.

어쨌든 우리는 겉보기만으로는 생명의 은인이지 않은가.

마츠오가 다시 한 번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한 것은 수평선 너머로 해가 저물고 나서도 다시 두어 시간이 더 지났을 즈음의 일이었다.

“온다!”

마츠오는 충혈된 눈으로 헐떡이며 부르짖었다.

“동쪽 바다로부터! 키요우타마히코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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