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21화 (421/561)

#43. 고래사냥 (14)

고래는 알고 보면 무척이나 수다스러운 동물이다.

이번 고래사냥의 목표인 혹등고래의 경우, 발화(發話)를 대신하는 노래는 평균적으로 10분에서 15분가량 이어진다. 그러나 서로 다른 고래들이 조화를 이루며 노래를 부를 땐 그 길이가 최장 22시간까지 늘어나기도 한다.

물론 이는 인간이 관측한 기록에 한정된 이야기인 만큼, 실제로는 그 이상으로 길게 이어지는 노래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러한 노래들은 음파의 확산이 극대화되는 특정 해수층(SOFAR Channel)을 타고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바다까지 퍼져나간다. 평범한 비각성체 혹등고래들조차 3천 킬로미터 바깥에 있는 동족과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곤 하는 것이다. 내 노래를 상대에게 보내는데 반시간이 걸리고, 상대의 노래를 내가 듣는 데 다시 반시간이 걸리는 느긋한 대화다.

CTF-W2 함대의 첫 번째 활동이 바로 이 광역 대화 채널에 끼어드는 것이었다.

일본이 보유한 고래 언어 데이터베이스가 강력한 증폭장치를 통해 폭발적으로 발산되자, 태평양 전역에서 고래들의 이상행동이 관측되기 시작했다.

고래들의 언어는 종에 따라 다르고, 같은 종이라도 무리에 따른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고래들의 이상행동은 이런 차이에 구애받지 않았다. 증폭장치가 생성하는 음파는 그 크기만으로도 충분히 파괴적이었기 때문이다.

기실, 강도 높은 소음공해는 고래를 공격하기 위해 준비된 또 하나의 무기이기도 했다.

수중에 퍼지는 음파는 스텔라 포르투나의 함교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눈으로는 모니터에 뜨는 음파의 파형을 보고, 귀로는 가청영역의 소리를 듣는다.

“우욱…….”

조언자로서 함교에 올라와있던 마츠오 카즈오는, 인공적으로 재현되는 고래의 노래를 듣고서 창백한 얼굴로 헛구역질을 했다. 함교로 불려온 시점에서 자신의 살인멸구가 확정되었음을 모르는 전(前) 해양연구원은 그저 고래들에 대한 우울한 연민에 젖어있을 따름이었다.

마츠오가 제공한 정보는 이미 일본 정부가 제공한 음원과의 디지털 매칭이 완료된 상태였다. 그러므로 스텔라 포르투나의 음향분석체계는 탐지기에 잡히는 노래의 의미들을 자동으로 분석해냈다.

“이거는 이름이고…… 이거는 아프다, 살려달라는 뜻이고…….”

화면을 보며 중얼거리던 경태가 턱을 긁적였다.

“흠……. 키요우타마히코 입장에선 오래전에 죽은 친구랑 이웃이랑 가족들이 자기 귀에 대고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는 느낌이겠는데? 뭐지? 호러인가?”

마츠오의 존재로 인해 함교에서의 모든 의사소통은 영어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도쿄대 출신이라는 마츠오는 영어도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했다.

경태의 말을 들은 마츠오가 다시 한 번 헛구역질을 해댔다. 음원의 의미와 별개로, 고래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도움이 될까 싶어서 조언자로 불러온 것인데, 벌써부터 이 모양이어서야 어디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기나 할지 의문이었다.

나는 함선들의 위치정보를 확인했다.

말은 연합임무부대라고 하지만, 임무부대를 구성하는 전단들은 국적별로 따로 노는 느낌이 강했다.

유인은 어디까지나 일본 해상자위대의 역할이었고, 미국과 영국의 역할은 광범위한 탐지망의 바깥 부분을 채우며 살상지대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핵투발 역시 일본 해상자위대의 결정이어야 한다.

연합임무부대의 관계자들은 이것을 합리적인 역할 분배라고 표현했다.

‘확실히 합리적이기는 하지.’

일이 잘못되었을 때 다 같이 죽어야 할 이유는 없잖은가. 미국과 영국의 함대는 해상자위대 함선들과 거리를 두고 싶어 했다. 미친 고래를 직접적으로 상대하는 건 오롯이 해상자위대만의 몫이다. 아쉽고 절박한 쪽이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는 건 분명 합리적인 역할 분담이었다.

「휘오오오오- 휘이- 휘이- 우우우우-」

스피커에서는 계속해서 몽환적인 다중창이 흘러나왔다. 의미를 모르고 들으면 신비롭고 아름답기만 한 소리들이다.

고래들이 아무리 처절한 비명을 질러봐야 사람의 귀에는 듣기 좋은 소리에 불과하다는 점이 흥미롭다. 극에서도 보기 드물 만큼 전형적인 비극적 단절이다.

가정집에도 부쓰단(仏壇)이나 가미다나(神棚)를 두는 일본답게, 해상자위대 함선들의 내부엔 쿠지라즈카(鯨塚)가 하나씩 설치되어 있었다.

나는 이것이 우습다고 생각했는데, 경태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명복을 빌어줄 테니 순순히 죽어 달라”는 의미가 아니겠느냐면서. 듣고 보니 그것도 나름 그럴듯했다.

통신을 담당하는 부하가 보고했다.

“NQHS로부터 전파. 키요우타마히코와 유사한 음원 포착. 유사성, 약 49%. 추정거리, 약 4천 킬로미터 이상. 식별기호 시에라-1 부여. 데이터링크가 들어옵니다.”

NQHS는 미 태평양함대의 기함 블루 릿지의 국제 해상 무선통신 호출부호였다.

미국이 이번 고래사냥에 제공한 것은 핵폭탄만이 아니었다. 음향을 이용한 공격수단과 더불어, 소파 채널을 통해 1만 킬로미터 바깥에서도 고래의 노래를 감지할 수 있는 차세대 음향탐지기를 함께 제공했다.

단, 아주 먼 거리에서 들어오는 소리를 분석하는 건 아무래도 정확도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발신원의 음향 패턴, 발신원과의 거리, 발신원이 위치한 방위각 모두 정확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고래의 언어에 대한 이해 부족은 분석의 정확도를 한층 더 저해하는 요소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화면에 표시되는 미확인 음원 식별기호의 숫자는 늘어만 갔다.

시에라-1, 시에라-2, 시에라-3, 시에라-4…….

이 속도대로라면 오늘 중에 두 자릿수는 물론이고 세 자릿수 돌파도 가능해 보일 지경.

“윽-!”

음탐(音探)을 맡고 있던 부하가 돌연 신음을 흘리며 황급히 헤드셋을 벗었다. 벗은 헤드셋에선 길고 날카로운 소음이 흘러나왔다. 경태가 인상을 썼다.

“또 인터내셔널 놈들이야?”

음탐 담당 부하가 고개를 끄덕인다.

“예, 아마도.”

여기서 말하는 인터내셔널이란 행동주의적 환경주의자들의 연합전선인 「에코 그린 인터내셔널」을 뜻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인터내셔널이 사회주의 인터내셔널만 있는 줄로 알지만, 실제로는 저마다 성향이 다른 온갖 종류의 인터내셔널들이 존재한다. 자유주의 인터내셔널, 진보주의 인터내셔널, 기독교 민주주의 인터내셔널, 이슬람 인터내셔널(해방당과 국제 이슬람 형제단), 해적당 인터내셔널(Pirate Parties International), 인본주의 인터내셔널 등등.

에코 그린 인터내셔널은 기존의 환경주의 인터내셔널이었던 글로벌 그린스(Global Greens)에서 직접적 행동(다이렉트 액션)을 지향하는 강경파가 떨어져 나와 결성한 또 하나의 환경주의 연합전선이었다.

적어도, 바로 어제 도쿄에서의 출범식을 통해 선포한 바는 그러하다.

이들의 선단이 고래사냥을 방해하는 방법 중 하나가 원거리에서 강력한 지향성 방해음파를 쏘아 보내는 것이었다.

경태가 투덜거렸다.

“거 우리는 고래를 해칠 생각이 없는데……, 이걸 어떻게 알려줄 방법도 없고…….”

에코 그린 인터내셔널은 고래 사냥이 진행 중인 바다에 그들의 함대를 내보냈다.

국제적 연대를 이룬 환경주의자들의 함대는 CTF-W2의 정규해군 함대에 비해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자랑했다. 선박의 위치정보를 표시하는 화면에 뜨는 숫자만 물경 7백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물론 그 7백은 태반이 크기가 작은 소형선들이었다. 그리고 그 소형선들은 대부분 동력기관을 끄고도 항해가 가능하도록 돛을 달아놓은 세일 요트(Sail Yacht)였다. 수중생물들을 소음으로 자극하지 않는 것은 해양생태계 보호에 투신한 환경주의자의 기본 소양이거니와, 고래에게 오인공격을 받을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인 것이다.

그러나 인터내셔널 함대가 오직 소형선만으로 이루어져있는 건 아니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일본 포경선단의 오랜 숙적, 씨 셰퍼드 산하의 「넵튠의 해군(Neptune’s Navy)」이었다.

이들의 전력은 마법의 시대가 돌아온 이래 크게 늘었는데, 이는 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은 환경 미치광이들의 기부에 힘입어 새로운 함선들을 대량으로 획득한 덕분이었다.

그렇게 획득한 신규 함선들 중엔 군함으로 설계되었던 전(前) 기함 「오션 워리어」의 동형함이 다섯 척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현재 씨 셰퍼드의 기함 노릇을 하는 배는 어처구니없게도 비행갑판을 보유한 항공모함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일 무렵 싼값에 매물로 나온 여객선을 사다가 개수한 것이고, 함재기가 제트 바이크나 드론 바이크 외엔 활주거리가 짧은 경량 복엽기로 한정되기는 하나, 어쨌든 항공모함의 자격요건을 갖추고는 있는 그런 배였다.

그리고 씨 셰퍼드는 항공모함을 보유한 유일한 환경단체가 아니었다.

인터내셔널 함대의 최대 전력은 과거엔 없었던 새로운 환경 미치광이 집단, 「지구 해방 함대(Earth Liberation Fleet)」라는 놈들이었다.

약자가 엘프(ELF)인지라 「요정함대」 내지 「바다 엘프」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이들은, 같은 약자를 사용하는 방화광(放火狂) 요정들과의 관련성을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사람들이 믿든 말든, 공식적인 부인은 중요한 것이다. 특히 법정싸움을 할 때 그러하다.

인터내셔널 연합함대엔 요정함대와 씨 셰퍼드의 것을 포함하여 총 아홉 척의 항공모함이 존재했다. 그리고 굳이 항공모함이 아니더라도, 적은 숫자나마 제트 바이크와 드론 바이크를 탑재한 선박은 수십 척이 더 있었다.

CTF-W2 연합임무부대 민간협력자들의 통신망은 빠른 속도로 번잡해졌다.

「무동력 항해중인 요트 다섯 척, 라인 아이다(Ida)를 통해 작전수역으로 진입 중. 백기를 게양하고 있으며 별도의 무장은 확인되지 않음. 인디아 그룹 기동대는 속히 출동 바람. 이상.」

「킬로 알파에서 킬로 리마 3-2에. 상대는 모두 민간인들이다. 반드시 경고방송을 선행한 후에 저지행동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걸 잊지 마라. 그리고 채증을 게을리하면 나중에 법정에서 엿을 먹는 수가 있으니 주의하도록.」

「돌겠군! 대체 몇 번을 교육했는데 경고사격이 먼저 나가는 건가? 공포탄을 쏘면 다인 줄 아나? 개인 경력만 챙기면 회사 간판 따윈 어찌 되든 좋다는 거야?」

「유니폼 빅터! 당신들 지금 뭐하고 있어? 저지선이 뚫리잖아!」

「킬로 알파. 당소 킬로 줄리엣 2-1. 미인가 침입 선단 중 소화기를 보유한 인원을 식별했다. 해당 인원이 탑승한 요트의 흘수선에 파공을 뚫어도 되는지 확인 바람. 이상.」

고래사냥을 방해하는 환경 미치광이들은 어디까지나 민간인 신분에 불과하다.

또한, 국제해양법에 의거, 모든 선박과 항공기는 공해(公海) 수역과 국제법을 준수하는 국가의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항행의 자유를 누린다. 중공 빨갱이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바로 그 항행의 자유다.

그러므로 범죄 혐의가 뚜렷치 않은 환경 미치광이들의 선단과 비행전대에 강제력을 행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섬세한 주의와 책임회피가 필요한 일인 것이다.

이런 일에 정규해군 함대가 나설 수는 없다. 요컨대, 지금은 악명의 외주화가 빛을 발할 시점이었다.

민간인 신분으로 하청계약을 맺은 헌터들은 계약상의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했다.

물론 하청에도 격이 있고 급이 있는 까닭에, 우리 같은 1차 하청업체들은 이런 일로 손을 더럽히지 않아도 되었다. 이렇게나 품위가 없고 불명예스러운 일감은 하청과 재하청의 연쇄로 이루어지는 피라미드에서 가장 밑바닥을 차지하는 용역 잡부(雜夫)들의 몫이다.

하급 헌터들의 비행편대는 요트의 삭구(索具)를 끊어 돛이 바람을 받지 못하도록 만들거나, 지향성 마이크로파 발생장치(Active Denial System)와 같은 군중통제 장비로 탑승자들에게 고통을 가하거나, 돛대에 로프를 걸어 강제로 견인하거나 하는 식으로 인터내셔널의 요트 선단을 방해했다. 이런 식이면 나중에 피해보상을 청구하더라도 큰 의미가 없어진다.

공중에서는 양측의 비행편대들 간에 아슬아슬한 충돌 위기가 반복해서 발생했다.

그러다 간혹 진짜 충돌사고가 빚어지기도 했다.

일반적인 항공기와 달리, 제트 바이크는 추진기관만 멀쩡하면 여간해서는 추락하는 일이 없다. 그런즉 가벼운 접촉사고 정도는 얼마든지 내도 무방했다. 밀어낼 상대와 등속비행을 하며 동체를 맞대고 밀어내는 짓이 가능하다는 이야기.

인터내셔널은 CTF-W2의 핵공격을 인간 방패로 막으려 시도하고 있었다. 설마하니 민간 선박이나 항공기가 위치한 해역에 핵공격을 가할 리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어느 배에서 핵이 발사될지 모르는 이상, 인간 방패만큼 효과적인 저지전략은 없다.

CTF-W2의 입장에선, 주변에 어디로 움직일지 모를 민간선박 및 민간비행체들이 잔뜩 있는 마당에 대피범위를 통보하지 않을 수도 없다. 대피범위를 통보하면 자연히 공격지점이 노출된다.

그러나 인터내셔널은 한껏 독이 올라있는 일본을 너무 만만하게 보았다.

통신을 담당하는 부하가 조금 당황하여 보고했다.

“야시마(ヤシマ)로부터 전파. 시에라-31에 핵투발 예정. 투발수단, 대잠로켓. 공격시간을 포함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추후 다시 통보하겠음. 이상.”

야시마는 일본 공중 포경선단의 기함 닛신마루(日新丸)에게 부여된 호출부호였다. 닛신마루가 원래 쓰던 호출부호는 따로 있지만, 최고위 지휘관인 해상막료장이 직접 탑승하면서 호출부호가 바뀐 경우다.

공중전투함이 왕립공군 소속인 영국과 달리, 일본의 공중 포경선단은 해상자위대에 배속되어 있었다.

대잠로켓은 폭뢰를 실어 날리는 무기다. 웨스트버튼을 살해하던 날, 까마귀 섬의 앞바다에서 내게 날아왔던 것 역시 탄두에 폭뢰가 들어있는 대잠로켓이었다.

나는 눈을 찌푸렸다.

“시에라-31이 확실한가? 그건 음문(音紋) 유사성이 38%밖에 안 되는데?”

“어…… 다시 확인해보겠습니다.”

부하가 재차 확인했으나 통보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다.

‘무슨 속셈인지 대충 알겠군.’

내가 보기에, 불행한 고래 시에라-31의 죄는 그저 당장 핵을 쏠 수 있을 만큼 가깝고, 바람이 CTF-W2에게 안전한 방향으로 부는 해역에서 헤엄을 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지금으로선 시에라-31이 각성체인지 아닌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공용 주파수와 비상 주파수 통신으로 핵공격 경보가 퍼져나가자, 인터내셔널 측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가장 먼저 비행편대들이 공격예정지점으로 날아가고, 수많은 요트들이 앞다퉈 그 뒤를 따랐다. 요트들은 결코 시간에 맞추지 못하겠으나, 로켓만큼이나 속도가 빠른 비행 편대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러나 핵공격 경보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야시마로부터 전파. 시에라-47, 시에라-48에 핵투발 예정…….”

통신 콘솔 앞에 앉은 부하는 계속해서 경보를 전파했다. 시에라-47과 시에라-48의 죄는 31의 그것과 동일했다.

의도적으로 시간을 확정하지 않은 핵공격 경보가 다수 발령되자, 에코 그린 인터내셔널의 움직임엔 크나큰 혼란이 빚어졌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까진 미처 상정해두지 못했던 모양.

무수히 많은 환경단체들의 연합체인 인터내셔널의 현장 지휘체계는 정교함과 즉응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을 통보하기 직전, 닛신마루에선 이러한 통신이 날아들었다.

「지금부터 행하는 핵공격은 일본국 해상막료장의 단독적인 결정임을 알린다.」

아무리 막료장이라도 단독으로 핵무기 사용을 결정할 권한이 있을 리 없다. 자발적으로 희생양이 되겠다고 나선 애국자인가, 아니면 이미 다 사전협의를 거친 연극인가.

시에라-31을 가장 먼저 불렀던 것은 속임수의 한 갈래였다. 공용 주파수와 비상 주파수 양쪽에서 마침내 시에라-47에 대한 카운트다운이 기습적으로 시작되자, 그렇잖아도 혼란에 빠져있던 인터내셔널 측은 한층 더 깊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인간 방패 역할을 하겠노라 당당하게 나서긴 했지만, 진심으로 죽을 각오를 다진 사람이 많아봐야 얼마나 많을까.

소수의 진짜배기 미치광이들- 혹은 그 미치광이들보다 더욱 드문 존재인 진정한 도덕주의자들을 제외하면, 나머지 대다수는 그저 스스로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정의감과 선민의식에 도취되어있을 뿐이지 않겠는가.

카운트다운 잔여시간이 1분 아래로 내려감과 동시에, 자아도취에 빠져있던 자들의 도주는 제방이 무너지는 것처럼 시작되었다. 불안과 공포의 수위가 한계까지 차올랐던 둑의 붕괴는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울 만큼 빠르고 급격했다.

잠시 후.

카운트다운을 종료한 일본 함대는 정말로 핵폭뢰가 실린 대잠로켓을 발사했다. 아직 소수의 미치광이들이 날파리들처럼 배회하고 있는 해역을 겨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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