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19화 (419/561)

#43. 고래사냥 (12)

연합임무부대가 잡아야 할 고래는 바다 속에 있었지만, 내가 언젠가 잡아야 할 고래들은 하늘 위에 떠있었다.

통상시야로 바라보는 도쿄 앞바다의 하늘은 그림으로 그린 듯한 맑음과 푸르름이어서, 혼탁하게 파도치는 바다의 더러움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그런 하늘에 고요하게 떠있는 두 척의 흑색 공중전투함은 하늘에 박힌 한 쌍의 불경스러운 쐐기와도 같은 인상을 주었다.

두 공중전투함의 선체는 날카로운 끌이나 검을 꼭 닮아있었다. 전면 스텔스 디자인을 채택하여 온 선체가 오로지 면(面)과 각(角)으로만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염동력으로 부유하는 선체의 앞과 뒤엔 오로지 경사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고, 「발화」를 이용하는 보조추진계통은 흡기구와 배기구 모두 필요할 때만 개방되는 형식이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탑재된 무장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미니멀리즘의 극한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깔끔한 외양 안에 숨겨져 있는 건, 당연히 처음부터 조립용으로 만들어진 무수한 인간 영육들의 결합물이었다. 장갑재와 내장재 사이의 공간을 샌드위치 패널처럼 채우고 있는 인간 결합물은 콜레로의 뱀보다 강력한 외부확장회로이자 영적 차원의 다형성 군체였다.

전율하는 거인의 뱃속에서조차 일정한 시계(視界)를 확보하도록 해주는 내 눈은 공중전투함의 내부를 꿰뚫어 보았다.

아래에서 위를 보는 구도인지라 상층으로 갈수록 해상도가 떨어졌으되, 해상도가 떨어지는 부분들은 그 외의 다른 부분들을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한 해상도를 보충할 수 있었다.

인간 결합물을 구성하는 하나하나의 인간들은 철저하게 변형되어 원래의 모습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눈이나 귀, 팔과 다리처럼 불필요한 기관들은 사라지고, 두개골은 뇌를 감싸는 둥그런 구체가 되었으며, 그 구체엔 혈관과 신경다발이 지나갈 틈만이 존재했다. 소화계통은 ‘연료실’에서 공급되는 영양분을 소화하고 분배하는 단일한 연결망으로 바뀌었고, 생체강화가 걸린 뼈들은 티타늄 구조재와 결합하여 패널의 형태를 단단하게 붙잡아주었다.

이 인간모독적인 샌드위치 패널의 안쪽을 평범한 사람이 들여다본다면, 그저 ‘일정한 형태로 정형화 가공된 불사암이 이렇게 생겼구나-’라고만 여길 것이다. 조직을 채취하여 DNA 검사를 해보지 않는 이상에야.

결합 가공된 인간들을 제외하면, 함선 내부의 공간엔 두 부류의 인간들이 존재했다.

첫 번째는 영국군 승조원들이다. 이들은 일반적인 전투함과 유사한 전투정보실, 항해함교, 격납고, 무장창 등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기능들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이들은 모두가 각성능력자들이었고, 병사, 부사관, 장교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타고 있는 배를 꺼리는 기색이 없었다. 아무래도 공중전투함의 진정한 실체를 모르는 느낌이다.

부력과 동력을 만들어내는 게 그저 가공된 불사암 패널에 불과하다고 알고 있다면, 불사암의 마력장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할 능력을 갖춘 승조원들은 조금 무뎌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선상생활의 길이에 비례하여 쌓이는 익숙함으로써.

어차피 흉물스러운 ‘불사암 조직들’이 겉으로 드러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함선 내부에 존재하는 두 번째 부류의 인간들은 대마법사의 식솔과 가신들로 구성된 집단이었다. 이들이 점유한 공간들은 승조원들이 배치된 공간들과 많은 부분 분리되어 있었다.

제한된 해상도 속에 자리 잡은 대마법사는 회로의 밀도가 높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당장 누구인지까지는 확인하기 어려웠다.

과연 어느 귀하신 몸들이 행차하셨을까.

나는 스텔라 포르투나의 갑판 위에 서서 눈에 들어오는 공중전투함의 상세를 분석하고 기록했다. 태블릿으로 데이터를 공유받은 경태는 떨떠름한 목소리를 냈다.

“어…… 이게 맞습니까? 초계함 사이즈의 전투함에 메가와트 급 레이저 포대가 여덟 문이나 탑재되어있다고요? 심지어 그게 무장의 전부도 아니고?”

“그래.”

“허.”

탄성을 뱉은 경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늘을 나는 전투함을 타고 고출력 레이저를 무한정 난사 가능한 대마법사라……. 원탁은 그…… 양심이 없나?”

‘이건 좀 아닌데’ 싶은 표정으로 갸우뚱하며 다시 한 번 태블릿을 들여다보는 경태 녀석.

레이저 포대의 출력은 포대와 연결된 커패시터의 밀도 및 규모, 그리고 유사 시스템들과의 형상 비교를 통해 눈대중으로 추정한 것이었다.

내가 아는 한, 미국과 영국이 군함에 탑재할 목적으로 개발하던 기존의 레이저 무기체계들은 최대출력이 일이백 킬로와트 언저리에 머물렀다. 다른 무엇보다 포대를 탑재할 함선들의 발전량에 한계가 있었던 까닭이다.

아예 원자로를 올려버린 경우가 아니라면, 현대적인 수상 전투함의 잉여전력(파워 마진)은 많아봐야 2메가와트시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예외가 있다면 발전량을 무식하게 키워 잉여전력이 9.5메가와트시에 달하는 중국의 최신예 구축함(055형) 하나가 전부.

달리 말해, 각성능력자의 보조 없이 복수의 메가와트 급 레이저 화기를 운용할 수 있는 재래식 전투함은 이 세상에서 오직 중국만이 보유하고 있었을 따름이다.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공중우세(Air superiority)가 아니라 공중지배(Air domination)라고 해도 되겠군.’

함체 내부로 수납되어있는 함포는 이제껏 단 한 번도 실용화 궤도까지 오른 적이 없었던 전열화학포인 듯하고, 수직 미사일 발사관도 24셀이나 들어가 있다. 그 외의 부수적인 무장들도 여럿 눈에 띈다. 아무리 공중전투함이라지만 초계함 체급의 배엔 지나칠 정도의 과무장이었다.

공중전투함의 주 레이더는 하나하나가 37개의 모듈로 구성된 최신형 이지스 레이더였는데, 공중 환경의 특성에 맞게 여덟 개의 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사각지대라는 게 존재할 수가 없는 배치다.

여기에 긴급 상황에서 대마법사가 발휘할 별도의 공방능력까지 고려하면, 룰러 급 공중우세 초계함은 설령 동아시아 지역의 모든 재래식 항공 전력이 한꺼번에 적으로 돌변하더라도 높은 확률로 판정승을 점칠 수 있는 압도적인 성능의 결전병기였다.

원탁의 대전사, 대영제국의 기수, 「전쟁지도자(Dux Bellorum)」 로더필드의 죽음이 선사했을 충격에도 불구하고, 원탁의 대마법사가 두 놈이나 원탁 밖으로 기어 나온 배경엔 근거 있는 자신감이 깔려있었던 셈이다.

내가 든 태블릿의 화면엔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와 수치들이 레이어 단위로 덧씌워졌다. 경태처럼 데이터 링크 시스템에 접속해있는 부하들이 내가 기입하는 정보들을 보다 정교한 도면과 시각화 자료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장갑재의 방어력 계산 과정을 지켜보던 나는 등 뒤에서 대각선으로 미끄러지듯 다가오는 마력장의 존재를 느꼈다.

마력장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형님.”

또각. 갑판을 딛는 정갈한 구두 소리. 매끄러운 염동비행으로 함교에서 내려온 수연 녀석이 차분한 음색으로 나를 부른다.

“그레이스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언제든 편하실 때 전화를 달라는 요청입니다. 영상통화였으면 좋겠다더군요.”

이런 전갈쯤은 문자로 알려도 될 것을, 수연은 굳이 직접 와서 육성으로 보고했다. 나는 이것이 이 녀석 나름의 숨 돌리기이겠거니 했다. 달리 쉬는 시간도 없는 녀석이니까.

최신예 정보수집함들이 다수 닻을 내리고 있는 만(灣) 안에서 저 먼 주술의 장막 너머로 통신을 연결하는 건 주의를 기울여야 마땅한 일이다.

그레이스와 나 사이의 전언 교환은 중계 릴레이와 위구르어 암호화를 거치고 있으며, 심도 깊은 의사교환이 필요할 경우엔 미국의 정보유출 방지기준(TEMPEST spec)에 준하는 보안 시스템을 갖춘 통신실을 이용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올라가겠다.”

“…….”

“뭔가 더 할 말이라도 있는 거냐?”

“노파심에 말씀드립니다. 너무 서두르지는 마십시오.”

수연은 하늘에 떠있는 두 마리의 검은 고래들을 짧게 일별하고서 말을 이었다.

“형님의 목표는 이제 정공법으로도 충분한 승산이 보이게 되었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성급히 굴지 않으마.”

나는 무의식중에 손을 올리려다 말았다.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서운 것이었다. 이번에도 내 실수를 눈치챘는지, 수연은 내 손을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다시금 속으로 혀를 찼다.

수연은 내 옆에서 잠시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있었다.

「우우우웅-」

두 공중전투함에 대한 1차적인 관측을 거의 마무리할 즈음, 공중전투함보다 더 거대한 인공비행체들이 아스라한 엔진 구동음과 함께 도쿄 앞바다 상공으로 진입했다.

새로운 거대 비행체들의 정체는 일본이 건조한 포경 비행선들이었다.

비행선은 작금의 일본에서 빠르게 숫자가 늘고 있는 탈것이자 수송수단이었다. 초대형 비행선 한 척이 대형 화물기 열 대 분량의 화물을 실어 나르는데, 운행에 필요한 각성능력자의 허들은 중형 화물기 한 대에도 미치지 않으니 가성비가 극히 우수한 것이다.

베를린 봉쇄 당시, 2백만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필요한 일일 수송량이 5천 톤이었다. 이 수송량은 일본이 건조하는 표준규격 화물 비행선 다섯 척이 단 1회의 비행만으로 달성 가능한 수준에 불과했다.

이런 대형 비행선을 고래사냥에 쓰겠다는 발상 자체는 나쁘지 않다. 음파탐지기(소노부이)와 어뢰, 폭뢰 등으로 무장한 공중기병들의 모선이 되어줄 수도 있고, 파도 아래 수십 미터 깊이까지 들여다보는 합성개구레이더를 실어 얕지만 광범위한 감시능력을 확보할 수도 있으며, 특정 해역에 국한된 고속 데이터 링크 시스템의 허브 역할을 담당할 수도 있다.

어쨌든 고래의 음파공격으로부터는 안전할 것이다.

‘유신마루(勇新丸)라…….’

제1, 제2, 제3유신마루와 포경선단 기함인 닛신마루(日新丸), 그리고 포경선보다는 호위함이라고 해야 어울릴 쇼난마루(昭南丸)에 이르기까지. 공중 포경선단의 선명(船名)들은 일찍이 고래와 싸우다 심연으로 가라앉은 구(舊) 포경선단 선박들의 이름을 계승한 것이었다.

일본의 새로운 포경선단은 혐오스러운 섬나라의 공중전투함과 거리를 두고 계류되었다. 높이 솟은 계류탑에 줄을 걸어 비행선을 고정시키는 과정.

고정시킨다고는 해도 비행선답게 흔들림이 전혀 없을 순 없었다.

높은 바람에 부대끼며 느릿한 유동을 거듭하는 기낭(氣囊)들은 하나하나의 부피가 미국의 항공모함만큼이나 컸다. 이만한 크기의 기낭이 있어야 비로소 천 톤이 넘는 페이로드를 띄울 부력이 생기는 것이다.

즉, 이들 포경선단은 영국의 공중전투함에게 커다란 사각지대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형님.”

경태 녀석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서두르지 않겠다고 하셨던 게 조금 전인데요.”

“…….”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 같은 말이었다. 불쾌감과 비슷하지만 불쾌감은 아닌 모호한 감정이 심중을 스친다. 내 눈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시선을 내리까는 수연의 모습에 이르러선 그 감정이 한층 더 강해졌다.

퍼즐 조각이 부족하다는 건 나도 안다. 두 공중전투함의 사각지대는 다른 군함들과 조기경보기가 보충해주고 있으니까.

그냥 가능성을 생각해보았을 뿐이다.

“받아라.”

나는 태블릿을 경태에게 넘겨주고서 통신실로 이동했다.

화상통화 스크린으로 마주한 그레이스는 소파에 앉아 교태롭게 손을 흔들었다.

「잘 지냈어, 여보?」

“너도 이미 알다시피,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지내고 있지.”

「언제나 한결같이 성실한 남편이네. 아내로서 존경을 표하는 바야.」

남편이니 아내니 하는 헛소리는 그냥 무시하는 쪽이 편했다. 내가 미간에 주름을 잡고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자, 그레이스는 싱거운 미소를 한 번 머금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결국 당신이 입수한 정보가 사실이었네. 원탁의 공중전투함이 정말로 도쿄 앞바다에서 데뷔식을 치르다니.」

“관측정보는 제대로 공유해주겠다.”

「응, 고마워. 이번에도 신세를 질게.」

“연락을 희망한 이유는?”

「그냥 당신 얼굴이 보고 싶어서, 라는 이유로는 부족해?」

“빨리 용건을 말해라.”

내 재촉에, 그레이스는 방금 전과는 느낌이 다른 미소를 머금고 고혹적인 태도로 물었다.

「자기. 혹시 핵폭탄 필요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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