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18화 (418/561)

#43. 고래사냥 (11)

상품의 인도는 시나가와구(品川区) 야시오(八潮) 부두 컨테이너 하역장의 최북단에서 이루어졌다. 도쿄 항 해저터널의 오오이(大井) 방면 출입구가 지척인 이곳은, 야쿠자들이 비국민들을 죽일 준비를 하던 창고로부터 가까우면서도 지극히 한적하기 그지없었다.

파도가 부서지는 하역장 가장자리엔 공중전화 부스 크기의 고래신사(쿠지라즈카/鯨塚)가 하나 덩그러니 서있었다.

무덤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塚)를 쓰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쿠지라즈카는 본디 죽은 고래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세우는 것이었다. 바다의 신(에비스)과 관련이 있는 신령한 동물의 죽음이 재액을 몰고 오는 걸 막고, 또 바다에서의 풍요와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그러나 지금은 그 의미가 다소 달라졌다.

지금의 일본엔 키요우타마히코를 진지하게 액신(厄神)이라고 믿는 자들이 제법 많았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일본인들의 손에 죽은 고래들의 원혼이 하나로 뭉쳐 실체화된 존재가 키요우타마히코라는 것이다.

따라서 키요우타마히코에게 깃든 원혼의 숫자만큼 쿠지라즈카를 세우고, 그 원혼들이 만족할 만큼 진심으로 사죄와 공양을 하면, 바다의 액신은 비로소 복수를 멈추고 깊은 바다 속으로 사라지리라는 게 이 믿음의 핵심이었다.

재미있는 건 이러한 믿음에 대한 일본인들의 이중적인 태도였다. 한편으로는 고래를 죽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키요우타마히코를 신격화하는 믿음에 매달려 초월적 존재가 분노를 가라앉히기를 바라고 있지 않은가.

부우우우웅-

내가 멀찍이 지켜보는 가운데, 검은 밴 한 대가 부두 도로를 따라 달려와 쿠지라즈카 앞에 멈춰 선다. 부하들이 밴에게 집음기의 초점을 맞췄다.

「어이, 내려!」

문이 열리고, 몸뚱이에 요란한 이레즈미(문신)를 도배해놓은 각성능력자들이 마츠오 카즈오를 차에서 끌어냈다. 곳곳에 멍이 들고 잔뜩 위축된 전직 연구원은 겁먹은 초식동물처럼 부들부들 떨면서 주변을 살폈다.

「뚜루루루루-」

전화기의 벨소리는 내가 든 전화기와 집음기에 연결된 스피커에서 이중으로 흘러나왔다. 둘 사이엔 아주 미세한 시차가 끼어있었다.

저편에서 울리는 벨소리는 우리가 쿠지라즈카의 신단(神棚/봉헌물을 올리는 단) 위에 미리 가져다놓은 선불 전화기의 것이었다. 마츠오가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보인다.

상품의 팔을 붙잡고 있던 날카로운 인상의 야쿠자는 찌푸린 눈으로 주변을 확인하고는,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종이장식(고헤이) 사이로 손을 뻗어 선불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물건 주문하신 분이오?」

“그렇소. 전화기는 그 사람에게 넘겨주고, 당신들은 이만 돌아가 주시기 바라오.”

「어……. 우리는 상품을 직접 넘겨주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꼭 그래야 할 필요가 있소? 내 말대로 하시오. 나중에 불완전 배송으로 항의하는 일 따윈 없을 테니.”

「…….」

전화기를 귀에서 떼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던 야쿠자는, 이내 혀를 한 번 차고는 전화기를 마츠오에게 넘겨주었다.

「자, 돌아간다!」

차에서 내렸던 야쿠자들이 다시 우르르 차에 올라탔다. 마츠오는 전화기를 엉거주춤하게 귀에 댄 채 저를 두고 떠나가는 검은 밴을 눈으로 뒤쫓았다.

“마츠오 카즈오 씨 되시오?”

「예?!」

내 목소리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란 마츠오는, 이내 허둥거리며 대답했다.

「아, 예. 제, 제가 마츠오 카즈오입니다. 그런데 당신께선 대체 누구신지……?」

“누구겠소. 생명의 은인이지.”

「…….」

“내색하지 말고 들으시오. 당신은 아직 야쿠자들의 감시를 받고 있소. 당신 같은 이를 돈 주고 사가는 사람이 누군지 많이 궁금했던 모양이오.”

「힉!」

겁먹은 마츠오가 이리저리 눈알을 굴려댔다. 나는 조용히 타이르듯 말했다.

“내색하지 말라니까 말을 안 듣는구려. 살고 싶지 않은 거요?”

「죄, 죄송합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야쿠자들의 감시는 거짓이 아니었다. 마츠오를 싣고 온 차는 떠나갔지만, 하늘엔 여러 대의 드론들이 떠있고, 멀지 않은 곳엔 호버 바이크에 올라탄 각성능력자 추적조가 대기 중이다. 야쿠자들 입장에선 자기네 나와바리(縄張り/구역)에서 극단적 환경주의자들이 암약하고 있을 가능성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마츠오를 배송하는 경로를 추적하다 보면, 극단적 환경주의자들이 차려놓은 대(對) 일본 전진기지가 나올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이제부터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간단하오. 쿠지라즈카 뒤쪽의 바다로 뛰어드는 것이지.”

「……예?」

“물이 탁해서 보이진 않겠소만, 수면 아래엔 수중침투장비를 지닌 구조대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소.”

「수중침투장비라고요?」

“다이버 추진 장비(Diver Propulsion Device) 말이오. 해양 연구원이었다면 알고 있을 텐데. 당연히 당신이 쓸 공기통과 레귤레이터도 있으니, 당신은 그냥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서 부두 너머로 뛰어내리기만 하면 되오. 그다음은 우리 인원들이 알아서 도와줄 거요.”

주춤거리며 쿠지라즈카 옆으로 다가선 마츠오는, 모난 콘크리트 바깥에서 파도치는 바닷물을 흠칫거리며 내려다보았다. 들은 말을 내색하지 말라는 소린 금세 또 까먹은 듯했다. 정신이 극도로 위축된 일반인에겐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구조대와 구조대상 사이의 거리는 고작 15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는 물이 더럽기로 유명한 오다이바(お台場)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수중의 구조대가 보일 리가 없었다.

“무섭소?”

수화기 너머에서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났다.

「솔직히, 그렇습니다. 물도 너무…… 역겹고요.」

일본 사람 치고 오다이바 앞바다의 악명을 모르는 이는 드물다. 지난 도쿄 올림픽의 야외 수영장이 바로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바다는 온 일본의 불명예였다.

나는 의식적으로 어조를 차갑게 했다.

“당신을 구하러 온 사람들은 그 역겨움을 참고 있는 거요.”

「앗, 그, 죄, 죄송합니다!」

수질이 가장 악화된다는 우기가 거의 다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부두에 부딪혀 탁한 포말을 일으키는 바닷물의 더러움은 도가 지나칠 정도로 심각했다.

이렇게 된 원인은 도쿄 광역권의 인구 과포화와 쓰레기 매립지 관리 부실이었다. 다른 지역에서 상경한 피난민들로 인해, 도쿄 광역권의 인구는 단기간에 5백만 이상 폭증했다. 하수처리는 물론이고, 매립지에도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다.

당장 내가 있는 위치에서도 그 매립지가 눈에 들어온다. 동남쪽으로 고작 몇 킬로미터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곳이다.

스텔라 포르투나가 닻을 내린 인공 섬 와카쓰도 그랬지만, 도쿄 광역권의 연안지대는 태반이 쓰레기 매립으로 조성된 뭍이다. 바다에 콘크리트로 울타리를 둘러친 후 쓰레기를 붓고, 그 위를 다시 콘크리트와 흙으로 덮어 땅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원래는 매립지 사용연한을 늘리고 침출수 오염을 줄이고자 고온소각시설을 가동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경제가 악화됨에 따라 소각시설은 가동을 멈추었다고.

일본 수도권 5천만 인구가 쏟아내는 쓰레기를 태우지도 않고 쏟아버리는 중이니, 알량한 콘크리트 장벽만으로 침출수를 다 막는 게 가능할 리가 있나.

CTF-W2 연함임무부대의 제1기항지가 도쿄로 정해진 이유 중 하나가 이 더러운 수질이라는 사실은, 임무부대 관계자와 일반인을 가리지 않고 모르는 사람이 오히려 드물 만큼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설령 도쿄 만(灣)을 사냥터로 내주더라도, 부두와 도시만큼은 수질오염의 가호를 받아 고래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다.’라는 기대.

나는 문득 불쾌함을 느꼈다. 사고의 흐름이 디즈니랜드에 스친 탓이다.

수연이 바라보던 그 화려한 유원지 역시 두껍고 거대한 부패의 지층 위에 서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내색하지는 않았으나, 수연 녀석이 수평선 부근을 아련하게 응시하던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속이 살짝 얹힌 듯한 불쾌감을 느꼈었다.

‘내가 이걸 왜 불편해하는지 모르겠군.’

돌이켜보면, 수연 녀석이 빛바랜 꿈을 담아 바라보던 장소가 실은 쓰레기더미 위에 서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도 같았다.

나는 마츠오를 재촉했다.

“감시자들이 이상을 눈치챌 때가 됐소. 살고 싶다면 당장 뛰시오. 더러운 바닷물을 조금 마시게 되겠지만, 죽는 것보다야 가볍게 속병 한 번 앓는 편이 낫지 않겠소?”

마츠오가 마음을 굳히기까지는 십여 초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고, 들이쉬었다가 또 내쉬기를 반복한 끝에, 폐를 한껏 부풀리고서 두 눈을 질끈 감고 바다로 몸을 던지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뒤늦게 날아든 드론들이 악취 지독한 바다 위를 맴돌았으나, 야쿠자들에겐 수중으로 들어간 표적을 추적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군경에 협조를 요청할 수 없는 이상 야쿠자에겐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다. 나는 급하게 달려오거나 날아온 야쿠자들이 바닥에 침을 뱉는 모습을 일별한 후 현장에서 철수했다.

와카쓰 북쪽 부두에서 건져 올린 마츠오는 꼬박 이틀간 심한 고열과 배앓이에 시달렸다. 식도를 타고 넘어간 더러운 바닷물도 바닷물이거니와, 그 전에 벌써 몸이 많이 쇠약해진 상태였던 탓도 있었다. 불안정한 생활, 궁핍한 경제 사정, 부실한 식사와 극심한 심리적 소모, 구조 직전까지 야쿠자들에게 당한 폭력적인 심문 등. 몸이 망가진 이유는 한둘이 아니었다.

그나마 이틀 만에 상태가 호전된 것도 내가 틈틈이 마법적인 치료를 베풀어준 덕분이다. 정신이 혼미할 때, 그리고 잠이 들었을 때 행사한 마법은 환자에게 질병을 극복할 힘을 부여해주었다.

축적된 열량만 충분하면 즉석에서 완치까지 가능한 외상과는 달리, 세균성 장염은 마법으로도 직접적인 치료를 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리하여 사흘째엔 간단한 심문을 진행했다. 건강상태를 고려할 때 본격적인 심문까지는 무리였으되, 이 인간이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별하는 정도는 무리가 없었다.

“에, 고래의 언어…… 입니까?”

일본정부가 고래의 언어, 특히 키요우타마히코가 속해있거나 상호작용을 하는 혹등고래 집단의 언어에 대해 얼마나 진전을 보았는지를 묻자, 아직 열이 다 내리지 않은 마츠오는 망연히 되물었다가 미친 사람처럼 신경질적인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웃던 마츠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겁먹은 동물처럼 움츠러들었다. 혼미한 머리로 자신이 요란하게 웃을 처지가 아님을 조금 늦게 자각한 것이다.

마츠오는 웃는 듯도 하고 우는 듯도 한 낯으로 답했다.

“굳이 말하자면, 예. 진전이 있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아주 큰 진전이 있었다고 해야겠네요. 완전한 무지로부터 벗어나, 이제껏 인류의 이해가 닿은 적 없었던 미답지에 첫 번째 발자국을 찍었으니까요.”

환자의 진술은 우울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걸…… 그걸 진전이라고 해도 좋은 걸까요? 지금까지 의미를 추정해내는 데 성공한 음원의 태반이 「아파」, 「슬퍼」, 「그만해」, 「살려줘」, 「도망쳐」, 「죽여줘」, 「죽지 마」, 「위험해」, 「숨 막혀」, 「무서워」 같은 끔찍한 비명들로만 가득한데도?”

마츠오는 일본정부가 연구 데이터 공개를 극구 거부하는 이유가 체면과 외교 때문이라고 굳게 믿었다. 이런 데이터가 공개되고 나면 일본의 이미지가 큰 폭으로 실추될 게 뻔하지 않느냐고.

그리고 마츠오는 이야기했다.

“예? 음원을 들으면 의미를 떠올릴 수 있겠느냐고요? 어, 그, 가능…… 할 것 같습니다. 아니, 확실히 가능해요. 연구소를 나온 이래 꿈에서도 고래들의 노래를 들을 정도였으니까요. 그 노래들을 잊을 수가 없었죠. 그러니 제가 나올 때까지 확인된 의미들이라면…… 음, 확인되었다기보다는 높은 확률로 추정하는 거지만…… 아무튼 음원과 대응시킬 수 있습니다. 고래들의 노래에서 의미소의 파형을 분리하는 공식도 기억하고 있고-”

이 말을 할 때의 마츠오에게선 거짓의 색채를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시간과 품을 들여 건져온 인간에게 쓸모가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10월 26일 화요일.

아무런 조짐도, 예고도 없이, 도쿄 앞바다 상공에 두 척의 공중전투함이 기습적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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