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16화 (416/561)

#43. 고래사냥 (9)

빅 사이트 통합지원센터엔 일본 총리도 얼굴을 내밀었다. 총리대신관저에서 항만까지의 거리가 고작 7킬로미터 남짓에 불과했으므로, 헬기를 띄운다 치면 3분 이내에 주파가 가능했다.

현장에 배치된 공무원들은 미리 통보를 받았는지 놀라지 않았지만, 외국인 헌터들에게는 사전에 알리지 않은 기습적인 방문이었다.

나로서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일본의 현 총리 고이즈미는 한국의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이상하게 컬트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총리의 수행원들은 총리가 한국의 헌터들과 악수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고 사인을 해주는 등의 친근한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뒤이어 그는 연단에 올랐다. 예정에 없던 방문이라 보기엔 지나치게 준비가 잘 되어있는 연단이었다.

「일본과 인류의 위기에 맞서는 싸움에 동참해주신 내외 귀빈 여러분. 일본국의 총리대신을 맡고 있는 고이즈미가 인사드립니다.」

프롬프터까지 가져다 놓고 시작한 총리의 ‘즉석’ 연설은 역시나 고래의 위협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현재까지 초질량 불사암괴의 존재가 실제로 확인된 사례는 없습니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자연계의 『대각성』이 시작된 후 경과한 햇수가 짧기 때문이며, 또한 인류의 해저 관측능력이 지극히 제한되어있는 까닭으로, 실제 사례를 관측할 수 있게 되었을 땐 이미 손쓰기 늦은 시점이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견해입니다.」

「바다 속 심연에서 무한히 증식하는 불사암의 존재는 사람의 질병으로 치면 췌장암과도 같습니다.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악화되고, 증상이 발현될 즈음이면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공통점이 있지요. 오로지 조기 발견과 예방적 조치들로만 물리칠 수 있는 질병인 것입니다.」

「해양 생태계에서 자연 발생하는 불사암 덩어리들은 바닷물의 부영양화(富營養化)와 잦은 적조 발생, 용존 산소량 감소 등의 원인을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초질량 불사암괴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초질량 불사암괴도 어쨌든 생명체로서의 대사활동을 하기는 하고, 이러한 대사과정에서 아주 많은 양의 유기 노폐물들을 방출하게 되어있는 까닭입니다. 그런 노폐물들은 아주 많은 분해자들에게 영양을 제공하겠죠. 그리고 그 분해자들은 산소를 대량으로 소비합니다.」

「살아있는 고래가 인류 문명의 적이라는 사실에도 논쟁의 여지가 없습니다. 당장은 일본과 노르웨이를 비롯해 일부 국가들만의 문제처럼 보일지라도, 앞으로 계속해서 개체수가 증가할 거대 바다괴물들이 언제 어느 나라의 재난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부터 연합전선을 이루어 인류 공동의 적에 맞서는 노하우를 축적해놔야 합니다. 이번 고래사냥은 그 숭고한 연대의 첫걸음으로서……」

평소의 이미지와 다르게 논리적이고 유창한 연설이 끝난 다음에는 질의응답을 위한 시간이 있었다. 여기서도 총리는 계속해서 물 흐르는 듯한 답변을 이어갔다. 진행자가 질문자의 손이 올라오는 즉시 골라내는 걸 보면 이 역시 짜고 치는 연극일 것이었다.

줄기차게 무시당한 어느 기자가 빽 소리를 질렀다.

“여기! 제 질문도 좀 받아주세요! 왜 제게는 발언 기회를 주지 않으시는 건가요?!”

흐름이 끊어지고 시선이 집중되자, 진행요원들의 제지를 뿌리친 기자는 발언을 허락받지도 않고서 빠른 속도로 질문을 쏟아냈다.

“아카하타 신문의 하루노 스미레(春野寿美礼)입니다. 총리께서는 초질량 불사암괴 가설을 마치 과학적으로 확실한 사실처럼 말씀하고 계시는데요, 실제로는 어떤 공신력 있는 기관도 해당 가설을 「실질적으로 확실함(Virtually certain)」이나 「극도로 가능성이 높음(Extremely likely)」으로 분류하지 않습니다. 이 가설에 대한 국제포경위원회의 공식적인 입장은 어디까지나 「가능성 낮음(Unlikely)」에 불과하죠.”

아카하타 신문이라면 일본 공산당의 일간 기관지다. 현 총리와 고래사냥을 두고 비국민(非國民)스러운 논조를 고수하는 몇 안 되는 일본 언론.

학술적인 용어로서의 「실질적으로 확실함」은 99에서 100%의 가능성을, 「극도로 가능성이 높음」은 95% 이상의 가능성을, 「가능성 낮음」은 0에서 33%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나마 일본이 영향력을 행사한 결과가 「가능성 낮음」이니, 실제로는 「매우 가능성 없음(Very unlikely)」이나 「극도로 가능성 없음(Extremely unlikely)」이라고 봐야겠지.

“자연계의 대각성이 시작된 이래 해수의 용존산소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습니다. 또한 연구자들은 수중환경의 특성이 동물성 불사암의 발달을 저해한다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초질량 불사암괴 가설을 반박하는 연구와 관측결과들이 그밖에도 많은데, 총리께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총리의 대답은 거의 즉각적이었다.

“사전에 접수된 질문이 아니므로 답변을 거부하겠습니다.”

“예? 무슨 소리입니까, 총리? 답변 거부라뇨?”

황당해하는 기자를 향해, 총리는 상쾌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것이 약속이니까요.”

기자는 눈을 찌푸리며 따지려 들었으나, 그 목소리는 영문을 알 수 없는 한국 헌터들의 환호와 갈채에 파묻혔다. 기자는 아연함에 젖은 시선으로 한국인들을 돌아보았다.

경태에게 설명을 요구하니, 방금 총리가 한 말이 그를 상징하는 밈(Meme)의 하나였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로서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대충 개그맨이 자기 유행어를 말한 느낌인가?’

아무래도 총리는 여기까지 내다보고서 계산적인 헛소리로 기자의 입을 막은 것 같았다. 어쩐지, 앞서 유창하게 말을 할 땐 한국인 청중들 중에 아쉬운 티를 내는 자들이 있다 했다.

진행요원들은 시간이 다 되었다는 핑계로 질의응답을 종료했다. 일본 총리는 헌터들과 사진 몇 장을 더 찍고서 웃는 얼굴로 현장을 떠나갔다.

웅- 웅-

품속에서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액정을 보니 중국 국안부의 거짓 대자들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문자 내용을 본 나는 통화를 할 만한 조용한 장소를 찾았다.

국안부의 경감들은 내 지시에 따라 일본이 보유한 고래의 음향 데이터를 확보하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지금 받은 SNS 문자는 그 중간보고인데, 아무래도 가망이 없어 보인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쪽으로는 좀 기대를 하고 있었건만.

일본 해상자위대엔 이미 중국 관전무관들이 들어가 있다. 일본은 중국의 협조를 구해야 하는 입장인 만큼, 관전무관들이 정보 제공을 요구하면 고래에 대한 연구 자료를 나름 성의 있게 공유해줄 수도 있다고 보았다.

이동하는 중에 사정을 들은 경태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지? 중국의 요구를 그렇게 칼같이 거부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어쩌면 고래의 언어체계에 대한 연구에서 획기적인 진전을 거두었을지도 모르지.”

“음, 근데 그게 가능한 일일까요?”

“글쎄.”

일본이 이렇게까지 감추는 이유가 있기는 있을 것이다. 일본만 한 체급의 국가가 사활을 걸고 연구에 매달렸다면 뭔가 남다른 성과를 거두었을 법도 하고.

내 호출에 응한 것은 후샨량이었다. 통화가 연결되자, 후샨량은 몹시 면목이 없다는 투로 사과했다.

「그쪽에 나가 있는 게 해군 인력인지라 저희가 협조를 구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게다가 주석님과 당 중앙군사위의 관심이 온통 영국의 공중초계함에 쏠려있어서, 그 외의 분야에 할당할 자원이 많지 않기도 하고요.」

“그렇군.”

「그나마 전략지원부대 망락계통 제4국이 힘을 빌려주고는 있습니다만, 원하시는 데이터를 조기에 확보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단 알겠소. 어렵더라도 계속 노력해주시오. 성공하기만 하면 섭섭잖게 사례할 테니.”

「물론입니다. 그보다 회장님께서 인도해주신 미국 중앙정보국의 첩자들에 대해 말씀드릴 것이 있는데-」

후샨량은 수연이 꾸민 모형정원을 거쳐 중국으로 넘어간 CIA 하청 노동자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심문의 진행상황이나 현재 상태 등의 잡다한 내용들을 제외하면, 핵심은 내 뜻에 따라 내게 그들의 신병을 양도할 준비가 끝났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는 중국 지사를 통해 다 보고받은 내용이다. 수연의 지시에 따라 현지에서 실무를 맡고 있는 게 미주니까.

그럼에도 후샨량이 굳이 이 주제를 꺼낸 이유는, 모처럼 나와 통화가 연결된 김에 내 입으로 확인을 받고 싶어서일 것이다. CIA 하청 요원들을 내게 넘기는 대신 자신들이 받기로 한 대가를. 이는 욕심의 발로라기보다는 불안의 해소라고 해석해야 더 어울릴 일이었다.

나는 후샨량이 바라는 확언을 주었다.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약속한 일 중에 무엇 하나 이루어지지 않은 게 있었소? 망가지지 않게 잘 보관하고 있으시오. 조만간 화물을 수령할 사람을 보내리다.”

샤히디의 입으로 공언했던 드론 테러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는 중이었다. 내 거짓 대자들은 내가 드론에 의도적으로 넣어놓은 주파수 결함을 발견하여 공을 세웠고, 실존하지 않는 위구르 정보원들의 네트워크로 드론 밀수정보를 입수하여 자잘한 실적들을 채워나갔다.

신경증이 도진 중국 주석의 채찍질에 경감들이 초조함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나, 그들의 지위가 지금 당장 위태로운 것은 아니었다.

통화를 마친 이후엔 일본 공무원들을 상대로 탐색전을 이어갔다.

통합지원센터에 배치된 공무원들은 반쯤은 상품을 팔기 위해 나온 영업사원이나 다름없었다.

“어떤 수렵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장비는 해당 기업이 수주 가능한 의뢰의 범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지요.”

“그런 의미에서, 수중활동 및 탐색에 특화된 장비를 확충하는 것은 수렵기업의 미래 성장 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필수적인 투자라 할 수 있습니다.”

“고위험 수렵업계에서의 바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블루 오션이지 않습니까? 이번 고래사냥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라도 이런 장비들을 보유하셔야-”

일본이 개발한 해양활동 장비들을 팔아먹으려는 공무원들.

“잠깐 여기를 좀 봐주시겠습니까? 이 고 투 트래블(Go to travel) 포인트와 고 투 잇(Go to eat) 포인트는 일본 관광청이 신용을 보증하는 것으로, 일본의 모든 관광지에서 현금과 똑같이 사용할 수 있는 전자화폐입니다.”

“연합임무부대의 구성원 및 민간협력자분들께서는 고래사냥이 진행되는 기간에 한하여 이 전자화폐들을 50%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일단 구입해놓기만 하면, 향후 일본이 정상화되었을 때 무조건 백 퍼센트의 수익률을 찍을 투자 상품인 셈이죠.”

일본 중앙정부가 각 지방 도도부현에 우회적으로 지급하는 관광보조금을 투자상품으로 포장하여 팔아먹으려는 공무원들.

“일본의 첨단기술과 장인정신이 깃든 이 무기들은 여러분의 가장 위험한 순간들을 함께하기에 충분한 성능과 신뢰성을 겸비하고 있습니다.”

“예. 인정합니다. 가격은 다소 비싼 측면이 없지 않지요.”

“하지만 무기는 거친 자연과 흉악한 범죄자들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헌터들의 첫 번째 전우이자 여벌의 목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금액의 높고 낮음만으로 그 가치를 평가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세계 고위험 수렵업계의 무기 시장에 일본산 무기의 지분을 확보하려 애쓰는 공무원들에 이르기까지.

일본 정부는 꽤나 음습한 판매 전략을 준비해놓았다.

상품을 구입해주면, 고래사냥이 종료되었을 때, 일본 정부가 발간할 공식 보고서에 당신네 기업에 대한 평가를 좋게 써주겠다는 은밀한 유혹. 그리고 이번 고래사냥에서도 조금 더 비중 있는 임무를 할당해주겠다는 비밀스러운 약속. 상대하는 입장에선 어느 쪽이든 떨떠름함을 느낄 협상 수단이었다. 은근한 협박이나 다름없으니까.

경태가 농담조로 평했다.

“겉으로는 예의 바르게 웃고 도와달라고 사정하면서, 실제로는 알맹이가 시꺼먼 것이 과연 일본 정부의 공무원이다! 이렇게 정리할 수가 있겠습니다. 다이닛뽄의 음습함 스고이!”

그러더니 혼잣말하듯 덧붙이는 말이 이러했다.

“근데 옛날과는 다른 유능함이 보이긴 하네요. 나라가 아직 안 망한 이유가 있네. 고래한테 당하느라 독기가 올랐다고 해야 하나…….”

일본 정부가 준비한 또 하나의 전략은 미인계였다. 고전적이지만 이것만큼 잘 먹히는 전략도 드물다.

공무원증을 목에 걸고는 있으나 정말로 공무원인지는 의심스러운 여성들은, 그냥 거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허영과 과시욕이 강한 헌터들을 상대로 유효한 협상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모든 준비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팔리질 않는 것이 일본의 무기였다.

일본의 무기들은 예전부터 가격이 비싸기로 악명이 높았다. 발주·생산·유통의 전 과정에서 높으신 분들이 숟가락 하나씩 꽂아놓은 일본 방산업계는, 일본 내수시장 이외의 수요가 없기도 하여 개별 상품들의 판매단가가 높게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기는 단순히 카탈로그 스펙이 높은 쪽보다는 사용자가 많고 신뢰성이 검증된 쪽이 더욱 선호된다. 무기 수출에 대한 법령을 개정하고 나서도 수출 실적이 전무에 가까운 일본 무기들은 헌터들에겐 기피 대상인 게 당연했다.

무기 판촉을 담당한 공무원의 말처럼, 무기는 첫 번째 전우이자 여벌의 목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요컨대 지렛대로 삼기엔 이쪽이 좋다는 거지.’

죽을 쑤고 있는 무기 판촉 담당자들에게 있어 우리와의 거래는 아주 눈물겨운 실적이 될 것이다.

이를 지렛대로 삼으면, 무언가를 얻어내지는 못하더라도, 겉과 속이 다를 게 뻔한 일본정부의 음습함으로부터 우리의 활동을 지켜낼 보호막을 얻을 순 있겠구나 싶었다.

계약 파기를 당하기 싫으면 알아서들 잘 행동하겠지.

나는 수연과 팀을 나누어 무기 판촉 담당자들을 상대했다.

마츠오에게 붙여놓았던 감시들로부터 경태를 통해 뜻밖의 보고가 들어온 게 바로 이때였다. 나는 대화를 나누던 담당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물러나 현장과 통화를 연결했다.

“타겟이 야쿠자들에게 납치를 당했다고?”

「예. 현재 위치를 추적하는 중입니다.」

“개입하지 않은 이유는?”

「순사부장(巡査部長) 1인 이하 일곱 명의 경찰 각성능력자들이 길목마다 분산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야쿠자들을 위해 현장을 통제해주고 있더군요. 그 때문에 저희들 외엔 납치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없습니다. 타겟 한 사람을 위해 준비된 함정이었습니다.」

“확실한가?”

「납치가 완료되자 경찰도 곧바로 철수했습니다.」

“과연.”

「스텔라 포르투나의 서버에 영상을 올려두었습니다. 필요하시다면 한번 확인해 보십시오.」

“알았다. 조금 더 수고해다오.”

「예.」

나는 전화를 끊고 영상을 확인했다. 드론이 촬영한 영상 속에서, 야쿠자들이 마츠오를 붙잡아 밀어 넣는 검은 밴 안엔 최소 둘 이상의 피랍자가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손발이 묶인 채 입에는 재갈을 문 자들이 설마 야쿠자의 공범들일 리는 없잖은가.

아무래도 이 나라에선 고래사냥에 앞서 비국민(非國民) 사냥이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이런 일은 확실히 외주를 쓰는 게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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