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15화 (415/561)

#43. 고래사냥 (8)

일본이 슈퍼 크립 가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에게 연구자금을 지원한 건, 당연히 미지에 대한 공포를 확산시켜 고래사냥을 지지하는 여론을 만들어내기 위함이었다. 해당 소재를 다루는 공포영화나 저질 다큐멘터리에 제작비를 댄 것 역시 같은 목적에서 행해진 일이었고.

이런 노력들이 선행되지 않았다면, 고래사냥에 관한 미국과 영국의 의사결정은 지금처럼 빠르게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나머지 국제사회와 민간 영역에서도 포경 및 핵무기 사용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지금보다 훨씬 더 거세게 터져 나왔을 터.

명분은 중요하다. 대중에게 내세울 그럴듯한 변명거리가 준비된 시점에서, 세계 각국의 위정자들은 일본이 제공하는 로비를 보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한국에 들어간 로비자금의 규모에 대해서는 내가 일본 정부 다음으로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잠수정 정박지를 구할 때의 인연으로, 「로쿠다이메 야마구치구미(六代目山口組)」의 의뢰를 받아 브로커 역할을 수행한 게 내 부하들이었으니까.

한국엔 일본 정부가 오랫동안 공들여 육성해온 친일파 브로커들이 많다. 그럼에도 이 일감이 내 조직에게로 넘어온 건, 그들이 이번 일에 앞서 한일해저터널 관련 로비를 벌이다가 언론사의 취재에 꼬리를 밟힌 탓이었다.

「뜻있는 세계시민 여러분! 우리 아이들에게 안전한 바다를 물려줍시다! 우리 아이들에게 희망의 바다를 만들어줍시다! 괴물들에게 빼앗긴 인류의 바다를 되찾읍시다!」

서로 진영이 갈려 상대 진영의 목소리를 자기네 목소리로 묻어버리려 애쓰는 시위대들. 이러한 시위대들 사이에선 심심찮게 다소 거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야야, 저기 우익들끼리도 싸운다.”

“진짜냐? 씨발 존나 웃기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앳된 나이의 한국인 헌터들이 키득거리는 소리. 이들의 손엔 녹화 기능을 켠 핸드폰이 들려있었다.

이들의 말대로 고래사냥을 지지하는 쪽과 고래사냥에 반대하는 쪽엔 모두 우익 시위대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마에 욱일기 머리띠를 두르고 팔에도 욱일기 완장을 찼으며 깃발마저 욱일기를 들고 있는 터라, 시력이 멀쩡한 사람이라면 이들의 성향을 몰라볼 수가 없었다.

고래사냥에 반대하는 우익들의 동기는 왜곡된 역사관과 그로부터 비롯된 피해의식인 듯했다. 「일본은 세계 유일의 원폭 피해 국가」이기에 일본의 바다에서 핵이 터지는 꼴은 절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바다괴물은 우리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야! 일본은 어디까지나 첫 번째 피해자일 뿐! 그런데 왜 일본의 영해에서 핵을 터트려야 하지?! 세계는 언제까지 일본에게만 희생을 강요할 셈이냐! 우리들은 그런 폭거를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이런 우익들이 환경보호, 고래보호를 외치는 좌익 및 진보진영과 불편한 연합전선을 이루는 광경은 코미디 그 자체였다.

여기는 일본이고, 시위대의 규모는 고래사냥 찬성파가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찬성파와 반대파의 힘겨루기는 의외로 팽팽한 균형을 이루었다. 반대파 진영엔 전 세계에서 몰려든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까닭이다.

이런 시국에 세계 각지의 환경단체들이 일본으로 원정을 보낼 활동가라면 높은 확률로 강화계수가 높은 각성능력자다. 요컨대, 고래사냥 반대파는 훨씬 더 많은 군중의 무게를 순수한 힘으로 버티고 있는 셈이었다.

타앙!

보다 못한 경찰이 공포탄을 발포했다. 갑작스러운 총성에 양측 진영 모두가 본능적으로 움츠러든다. 타앙! 탕! 두 발을 더 발사한 경찰은 마침내 혼란스럽던 공원과 도로에 헌터들이 지나갈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확성기를 든 경관이 위축된 군중을 통제했다.

「질서를 지켜주십시오! 여러분들은 지금 도쿄도의 집회·집단행진 및 집단시위운동에 관한 조례를 위반하고 있습니다! 사전에 허가를 받지 않은 시위는 모두 불법입니다!」

명색이 민주주의 국가인 만큼, 일본의 가두행진과 시위는 원칙적으로 신고제가 기본이다. 그러나 합리적이고 명확한 기준이 있을 경우엔 허가제가 합헌이며, 특히 공공의 안전에 대한 ‘명백한 현재의 위험(明白かつ現在の危険)’이 있을 경우엔 허가를 내주지 않아도 합헌이다.

와다츠미키요우타마히코는 명백한 현재의 위험이고, 그 위험에 대한 대응을 방해하는 모든 행사는 공공의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겠다는 게 일본 정부의 입장이었다.

과연 유사 민주주의의 대표주자답다고 해야 할까.

이걸 총리가 방송에서 대놓고 선언했으니, 일본 정부는 사실상 고래사냥에 반대하는 어떤 시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당장 해산하십시오! 불법 시위의 주최자들과 선동자들에게는 1년 이하의 자유형(自由刑)과 30만 엔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단순 가담자 역시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게 되며, 외국인이라면 강제퇴거 및 입국금지 처분까지 내려집니다!」

나는 경찰이 교통정리를 끝내기를 기다렸다. 허공을 밟고 지나가도 되겠지만, 그러다 고래사냥 반대파의 이목을 끌면 시위대에 포함되어있는 각성능력자들이 들러붙을 게 뻔했다. 저들의 목표 중엔 이번 작전의 민간협력자들을 가로막는 것도 포함되어 있을 테니까.

이런 자리에서 폭력사태의 당사자가 되면 뒷일이 영 귀찮아진다.

눈썰미가 좋은 경태 녀석이 내게 속삭였다.

“형님. 저-짝에 좀 심상찮은 놈들이 섞여있는 것 같지 말입니다.”

“나도 안다. 숫자가 꽤 되는구나.”

총성이 울려 퍼지는 와중에도 군중의 동요에 휩쓸리지 않고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던 환경운동가 진영의 각성능력자들.

이들에게선 위험에 익숙한 자들 특유의 색채를 엿볼 수 있었다. 나름 정예라고 해도 좋을 환경전사들일 것이었다. 품속에 총을 든 요정의 휘장을 지닌 자들도 눈에 띈다.

‘저것들은 이번 일에서 얼마나 변수가 되려나.’

직접 와서 현장의 분위기를 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연합임무부대가 민간협력자들을 고용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환경전사들의 방해나 공격을 차단하는 것.

에코 테러리스트들은 대부분이 민간인 신분이고, 도덕적 우월감에 도취된 지지층을 등에 업고 있으며, 환경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일반 대중에게도 쉬이 동정과 이해와 공감을 받곤 한다. 그러니 임무부대가 이들과 직접 충돌하는 것은 정치인들에게 매우 해로운 일일 수밖에.

그러니 외주를 주는 것이다. 이쪽 업계에 흔한 악명과 오명의 외주화다.

물론 그 악명과 오명을 꼭 우리가 뒤집어써야 하는 건 아니다. 손대기 싫은 일들은 재하청을 줘버리면 그만이니까.

정보수집 역시 우리가 먼저 나설 이유는 없다. 일본 정부가 눈에 불을 켜고 감시를 하는 중일 테니, 우리는 1차 협력업체로서 그 정보를 받아보는 게 우선이지 않겠나.

시위현장을 카메라에 담으며 아까부터 낄낄대고 있는 어린놈들은, 높은 확률로 지저분한 재하청을 받아먹으러 온 중소업체 소속의 초짜들일 것이었다.

“야야, 바로 올려. 이건 무조건 베스트 게시판 간다.”

“가만 있어봐. 제목을 잘 써야지. 「일본 극우 원숭이들 집단 패싸움 현장」 어때?”

“노잼.”

“예스잼 씹련아.”

“응, 니 엄마.”

하는 말들의 품새를 보니 과연 용팔이 꿈나무들이구나 싶다.

멕시코에서 돼지를 방목하던 자들이 보여주었듯이, 악명 높은 자연각성체 사냥에 참여한 이력은 때론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얻을 필요가 있는 무형의 자산이다.

의뢰 수주에 어려움을 겪는 영세 엽사집단이나 경력이 짧은 프리랜서 헌터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하물며 이번 사냥의 목표는 바다의 신(와타츠미)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최악의 해양각성체다.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을 단기간에 존망의 기로로 몰아넣었고, 순수한 악명으로만 따지면 리바이어던과 더불어 전율하는 거인을 능가하며, 일본인들은 ‘나라를 멸망시키는 바다짐승(滅国の海獣)’이라고도 부르는 거대한 괴물.

이런 괴물을 잡는 다국적 연합작전은 그저 합류하기만 해도 어디에서나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한 커리어가 된다.

고로 이번 사냥에 합류한 엽사집단 및 프리랜서 헌터들 중엔 거의 자원봉사에 가까운 조건으로 계약을 한 경우가 꽤 있었다. 혹은, 그나마의 계약조차 없이 콩고물이 떨어지기만을 기대하며 일본행을 결정한 조무래기들도 있었고.

곳곳에서 드물지 않게 풋내기들이 눈에 띄는 이유다.

타당! 탕!

경찰의 공포탄 사격이 이어졌다. 각성체 전마에 올라탄 기마경관까지 출동하자 고래사냥에 반대하는 시위대는 일단 물러나는 쪽을 택했다. 기마경관들의 부대마크엔 도쿄 경시청 제3방면 교통기동대(第三方面交通機動隊)라는 글씨가 수놓여 있었다.

「와아아아아아-!」

고래사냥 찬성파 시위대는 전투에서 승리한 군대처럼 함성을 질러댔다. 기마경관들은 반대파를 밀어낼 때에 비하면 몹시 온건한 움직임으로 이들을 해산시켰다.

우리는 비로소 대로를 건널 수 있었다.

컨벤션 센터 입구에선 여학생들이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이방인들을 환영했다. 현수막 아래엔 무슨무슨 학교 서예부, 무슨무슨 학교 테니스부 따위의 클럽 이름들이 적혀있었다.

“한국의 헌터 여러분! 일본에 잘 오셨습니다! 부디 힘내서 고래와 싸워주세요!”

“우리는 한국을 좋아해요! 앞으로 일본이랑 사이좋게 지내요!”

여학생들이 입을 모아 외치는 소리에 한국산 용팔이 꿈나무들이 헤벌쭉 좋아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나는 이들이 풍기는 분위기로부터 대호를 잡으러 왔을 때 마주쳤던 고중량 사회부적응자 ‘캉코꾸노 한타’를 떠올렸다. 경기도 시흥의 영웅 뭐시기라고 했었는데.

이 와중에 헌터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는 사내가 눈에 익었다. 안경을 쓴 초라한 행색의 사내는 헌터들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간절한 어조로 부탁했다.

“이걸 꼭 읽어주세요. 슈퍼 크립 가설은 거짓입니다. 우리는 고래와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사내의 이목구비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저 낯짝을 어디서 보았더라?

답은 경태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형님. 뭘 그렇게 유심히 보시는…… 어라? 엑스포 다리 아저씨네.”

“엑스포 다리?”

“그 왜, 구레의 이자카야에서 변장한 수연 누님에게 낚여 파닥거렸던 해양연구소 연구원 말입니다. 여자 앞에서 자기 전공 이야기를 열심히 늘어놓는 모습이 안타까운 쪽으로 훌륭했던 사람이요. 이름이 뭐였더라?”

이 질문엔 수연이 대답했다.

“마츠오.”

“맞다. 마츠오. 크, 누님의 기억력이란.”

나는 두 측근의 도움으로 기억을 되살려낼 수 있었다.

‘해양연구소 연구원이었던 인간이 지금은 왜 저런 일을 하고 있지?’

당시 저 마츠오라는 사내는 혹등고래 각성체의 음향정보에 접근할 권한을 지닌 연구원이었다. 그랬던 인물이 지금은 고래사냥에 반대하는 책자를 나눠주고 있으니, 그간 과연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행색을 보건대 지금도 연구원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마츠오는 부지런히 유인물을 나눠주면서도 주변에 있는 경찰의 눈치를 보았다.

경찰들은 짜증스러운 시선으로 마츠오를 지켜보고 있었다. 유인물을 나눠주는 건 시위가 아니니 강제로 연행할 수 없다.

경태가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물었다.

“감시를 붙여둘까요?”

나는 짧게 생각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따라준다면 무언가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 하다못해 연구소 내부의 사정만 청취해도 허탕을 치는 건 아니다.

마츠오는 우리에게도 유인물을 나눠주고 갔다. 가면서 마스크를 착용한 수연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한 건 덤이었다. 수연 녀석이 그때처럼 위장용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으니 희미한 기시감을 느끼는 게 고작이었을 것이다.

내 부하 둘이 은밀하게 마츠오의 뒤를 밟았다. 이제 곧 스텔라 포르투나에서 증원이 나올 것이었다.

컨벤션 센터 내부의 행사는 예상대로 많이 번잡하고 혼란스러웠다. 파견을 나온 일본 공무원들은 통역을 끼고 외국인 초능력자들을 상대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현 총리가 웹 3.0 장관 같은 특명담당대신직을 신설하면서까지 의욕적으로 디지털 행정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고는 해도, 과거의 관성에서 단기간에 벗어나는 데엔 역시 한계가 있었다.

불과 도쿄 올림픽 때만 하더라도 사이버 보안 장관쯤 되는 인물이 “나는 인생에서 한 번도 컴퓨터를 사용해본 적이 없다”고 했던 나라가 일본이지 않은가.

그러므로 일본정부에 대한 협조 요청은 대면상담과 접수가 필수인 분야가 많았다. 필요한 서류의 양이나 처리에 걸리는 시간이 대폭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나는 현장에 나온 정보협력사무관에게 고래에 대한 심층적인 자료 제공을 요청했다.

답변은 역시나 거부였다. 전형적인 캐리어 관료(キャリア官僚/상급갑종 시험 또는 I종 시험 합격자 출신)로 보이는 젊은 사무관은 곤란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고래를 유인하거나 추적하기 위한 음향 데이터라면 얼마든지 제공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음향들의 세분화된 의미 분석 정보는 일본정부의 귀중한 연구 자산으로서-”

음향 자체는 숨길 수가 없다. 고래를 유인하려면 수중에 해당 음향을 퍼트려야 하는데, 그렇게 퍼지는 음향은 인근 해역 어디에서나 녹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고래들이 동족 간의 초장거리 의사소통에 활용하는 소파 채널(SOFAR Channel/음속이 가장 느려지는 깊이의 수평 해수층)에서라면 태평양 반대편에서도 유인용 음향을 감지할 수 있다. 넓은 바다 어디에 있을지 모를 고래를 일본 연근해로 유인하려면 이 채널을 이용하는 건 필수였다.

즉 음향 데이터라면 얼마든지 제공하겠다는 사무관의 말은, 어차피 줄 수밖에 없는 걸 가지고 생색을 내는 것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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