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14화 (414/561)

#43. 고래사냥 (7)

국적을 불문하고, 헌터들은 대단히 소비적인 집단이다.

높은 소득. 소득의 크기에 비례하는 위험도와 그 위험도에 비례하는 스트레스. 그리고 밑바닥 생활을 하다가 하루아침에 힘과 재력을 얻은 자들 특유의 허영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요소들이 시너지 효과를 이루어 빚어내는 소비적 성향은 스트레스 해소의 수단이자 자기과시욕구를 실현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게다가 대개의 헌터들은 노후를 걱정하지도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각성능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저축이 없어도 늙어서 빈한하게 생활할 우려는 없다고 봐도 좋다. 그러니,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에서 일단 오늘을 즐기고 보자는 분위기가 만연할 수밖에.

즉 이번 고래사냥은 일본정부에게 있어 거대한 소비 집단을 유치하기 위한 행사로서의 성격도 지니는 것이었다.

실제로 젊은 일본 총리는 기자와 군중들 앞에서 호기롭게 장담했다.

「이번 연합작전의 비용지출을 두고 우려가 많다는 것쯤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함대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 핵무기 투발에 들어가는 비용, 민간협력자들을 고용하는 비용 일체를 우리 일본 정부가 부담하기로 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비용들이 당장의 정부 재정운용엔 부담을 주는 게 사실입니다만, 일본 경제 전체에 대해서는 오히려 큰 이익으로 돌아올 것이 확실하니까요.」

「전 세계에서 모여든 엽사분들의 관광과 소비는 침체된 경기를 끌어올리는 하나의 모멘텀을 마련해줄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국내 주식시장과 자산시장은 벌써부터 사냥 이후에 대한 기대심리를 반영하여 상승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꾸준히 올라가기만 하던 해상 보험료율도 고래사냥이 성공하는 즉시 정상화될 예정이지요.」

「우리 정부의 경제전문가들은 연합작전 진행기간 중에 발생할 단기 이익이 직접소비 및 투자자금 유입 측면에서만 2조 7천억 엔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비용 지출이 만만치 않다고는 해도 지난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는 데 들어간 예산보다는 적고, 일본을 찾아주실 엽사분들의 구매력은 평균적으로 평범한 관광객들의 수백 배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돈이 들어오면 경제가 살아나게 되어있습니다. 왜냐면 경제는 돈으로 돌아가니까요. 우리는 곧 섹시하게 치솟는 경제지표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일본 총리는 그 자신의 상징으로 통하는 상쾌한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이 자리를 빌려 일본을 찾아주실 엽사분들에게도 호소합니다. 부디 우리 일본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주십시오. 여러분이 여러분의 즐거움을 찾는 것 자체만으로도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온 우리 국민들에게는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현재까지만 보면 일본 총리의 말이 맞아 들어가는 중이었다.

일본의 주식시장과 자산시장은 고래사냥에 대한 기대심리만으로도 심상찮은 꿈틀거림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러한 꿈틀거림엔 이웃 국가인 한국의 개인투자자들이 기여한 부분이 컸다.

어두운 경제적 현실 속에서 일확천금을 거두려는 성향이 강해진 개인투자자들은, 이전에도 불안정한 암호화폐나 TQQQ나 SOXL, SQQQ 같은 고위험 레버리지 상품에 거리낌 없이 돈을 때려 박곤 했다. 언론의 표현을 빌리면 이른바 ‘야수의 심장들’이었다.

변동성이 큰 장엔 홀짝놀음을 하려는 기관들과 일확천금을 꿈꾸는 도박꾼들이 몰린다. 그들의 자금이 등락의 신기루를 빚자, 개인투자자들은 꿀단지에 꼬이는 개미 떼처럼 일본 시장에 몰려들었다.

그 규모가 워낙에 커서 매일같이 언론 보도가 나올 만큼.

「“지금이니?” ‘조선개미’ 이달에만 日 주식 4조 원대 순매수.」

「일본 주식·자산시장 역대급 저평가. “터지기만 하면 3루타. 잘 터지면 텐 배거(Ten bagger)”라고 외치는 개인투자자들. 전문가들이 말하는 위험성은?」

「한국의 개미들이 일본에 꽂혔다! 끝없이 이어지는 빚투와 영끌. 이들은 과연 야수인가 짐승인가?」

「“핵을 쓰는데 고래가 안 잡힐 리 없다. 이것은 백 퍼센트 성공하는 투자다.”라는 개인투자자들의 믿음. 전문가들은 리스크가 없는 투자는 없다며 신중을 기할 것을 주문.」

외화가 절실했던 일본으로서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자금 유입이다. 일본 정부는 그간 별 이유도 없이 제한되어 있었던 단주매매(單株賣買)를 전격적으로 허용함으로써 들어오는 물 위에서 노를 저었다.

보수 우익들이 “일본의 귀중한 자산들이 한국인들의 손에 넘어가선 안 된다!”라며 생난리를 치고 있었지만, 어쨌든 이러한 외환 유입이 빈사상태였던 일본 경제에 일정한 활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관광과 소비 측면에서도 일본 총리가 세운 목표는 제법 현실성이 있어 보였다.

디즈니랜드 옆, 바다에 면한 호텔들은 벌써부터 3분의 1 가량의 객실이 차있었다. 일본 정부가 무장여객선 등 별도의 거처가 없는 헌터들을 주요 관광지 및 상권과 가까운 호텔들에 묵도록 유도하고 있는 탓이었다.

헌터들의 지갑을 열겠다는 의도가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행정이라 하겠다. 이게 아니고선 휴업 상태였던 디즈니랜드가 재가동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무료로 제공되는 숙소가 따로 있기는 하다. 이번 사냥의 제반비용은 일본 정부가 대기로 했고, 숙소의 제공은 임무 수행을 위한 기본적인 요소니까. 호텔은 헌터들이 더 나은 숙박환경을 바라는 경우에 한하여 정부가 나서서 주선해주는 것일 뿐.

그러나 무료 숙소를 택하는 헌터들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대체 누가 골판지 침대에서 자고 싶어 하나…….’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 때부터 유명해진 일본 정부의 골판지 사랑은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들은 뉴스 보도에 따르면 골판지 침대 조달가는 매트리스를 제외한 프레임으로만 2만 5천 엔. 조달 수량은 연합임무부대 관계자들 및 민간협력자들의 숫자보다 20% 가량 더 많았다. 일본 정부의 높으신 분들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사리사욕을 채운 것이다.

“…….”

수연은 제법 긴 시간에 걸쳐 디즈니랜드가 있는 방향을 응시했다. 거리가 제법 멀고 바다에 호텔들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어, 통상시야에 보이는 거라곤 유원지 남쪽 구획의 아스라한 실루엣에 그쳤음에도 그러했다.

나는 주변을 살핀 후 흡음결계를 둘러쳤다.

“수연아.”

내 부름에, 수연 녀석은 눈을 뜬 채로 자다가 깨어나는 사람처럼 반응했다.

“……부르셨습니까?”

“혹시 수혁이를 생각하고 있었던 거냐?”

이 건조한 녀석의 내면에 유원지에 대한 동경 따위가 자리하고 있을 줄은 몰랐지만, 만약 그런 게 있다면 그 색채는 다소 우울한 것일 수밖에 없다.

‘제 오라비와 함께 가지 못했던 장소에 대한 미련이겠지.’

수연이 예전에 들려주었던 자신의 가장 우울했던 생일에 대한 회상 속에서, 이제는 죽고 없는 오라비와 더불어 정말로 가고 싶었다던 장소가 에버랜드였다.

그게 꼭 에버랜드를 가고 싶었다기보다는 좋은 유원지를 가고 싶었던 것이라면, 이 녀석이 지금 보여주는 모습도 설명이 되었다.

수연은 뭔가를 말하려다 말고 도로 입을 다물었다. 내게는 이것이 충분한 대답이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일정을 돌려본 후 이렇게 다시 물었다.

“이곳에서의 일이 마무리되면 하루나 이틀쯤 시간을 내어 다녀오는 것이 어떠냐? 혼자 가기 뭐하다면 경태를 데리고 가도 좋겠고.”

이에 수연은 나를 조용히 응시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습니다. 가족과 함께가 아니라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냐.”

“예.”

나는 별생각 없이 손을 들어 올리다 말고 멈칫했다. 김춘식이, 라일라, 그리고 메리옘 그룹의 광신적 구성원들에 이르기까지. 요즘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를 바라는 인간과 축생의 수가 워낙 많다 보니 수연에게도 무의식중에 같은 짓을 할 뻔했던 것이다.

황당한 일이었다. 나는 주먹을 꾹 쥐고 손을 내리며 말했다.

“아직 시일이 남았으니,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이야기하도록 해라. 나는 네가 좀 쉬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연의 눈길이 내려가는 내 손에 잠시 머무르다 떨어졌다.

스텔라 포르투나는 와카쓰 섬 북쪽의 정박지에 닻을 내렸다. 본래는 건설자재를 하역하는 부두였으되, 이제는 모든 야적장이 텅 비어있는 상태였다.

가까운 곳에 있는 민간 요트클럽의 부두도 을씨년스럽게 비어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고래의 잦은 습격에 시달리는 나라에서 요트 항해를 즐기는 미치광이가 많을 리가 없다. 전혀 없지는 않더라도, 시설을 유지할 채산성은 나오지 않을 것이었다.

연합임무부대 민간협력자들을 위한 지휘소 및 통합지원센터는 도쿄 빅 사이트 컨벤션 센터의 동관 7개 홀과 황거(皇居) 앞 도쿄국제포럼센터에 분할 설치되어있었다.

CTF-W2 함대의 최고지휘소는 미 7함대 요코스카 기지에 있으니, 어느 한 곳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다른 곳에서 즉각 모든 기능을 이전받을 수 있다.

한국 민간협력자들은 도쿄 빅 사이트 동관의 여섯 번째 홀을 할당받았다. 현 정박지에서 직선거리로 3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곳이므로, 고속단정을 내리든 날아다니는 탈것을 띄우든 불과 몇 분이면 오고 갈 수 있다.

‘일단 가보기는 해야겠지……. 예멘 출장을 조금 미뤄야 할지도 모르겠군.’

미·영·일 함대야 이전에도 종종 합동훈련을 하곤 했으니 지휘체계를 조율하는 데 큰 진통을 겪지 않을 것이다. 중국 관전무관들이 괜히 생트집을 잡는다면 모를까.

그러나 민간협력자들은 사정이 다르다. 저마다 경력이 다르고 체계가 다르며 인원과 장비도 제각각인 수렵기업들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 운용한다는 게 쉬운 일일 리가 있나. 각자가 더 유리한 임무를 수행하려고 기 싸움을 해댈 게 뻔한 마당에.

연합임무부대 CTF-W2는 이제 막 출범했을 따름이다. 하루라도 더 빨리 고래를 죽여 해상물류 난맥을 타개하고 싶어 하는 일본 정부가 담당 공무원들에게 과로를 강요하겠지만, 최소한의 질서를 잡는 데만도 족히 사나흘은 더 걸릴 것이다.

나는 수연과 경태를 동반하여 헬기를 타고 이동했다.

헌터들을 위한 수직이착륙장은 일본 암 연구재단 아리아케(有明) 병원의 맞은편과 빅 사이트 컨벤션 센터 동쪽 부두에 각기 하나씩 마련되어 있었다.

병원 방면 수직이착륙장과 빅 사이트 동관 사이엔 왕복 7차선 대로와 넓은 다목적 광장 하나가 끼어있었는데,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광장과 도로엔 수많은 인파가 몰려있어 눈으로만 봐도 그 소란스러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인파의 대부분은 제각각의 성향을 지닌 시위대와 군중들이었다. 헬기가 착륙하자, 인파가 자아내는 소음들이 한층 더 선명하게 귀에 들어왔다.

「일본은 세계 유일의 원폭 피해 국가다! 이런 일본에서 또다시 핵을 터트린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아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환경을 위해서나 사람을 위해서나, 핵은 절대로 써서는 안 되는 물건이다! 우리는 일본 정부의 각성을 촉구한다!」

「닥쳐, 이 바보 녀석들아! 고래를 죽이는 것이야말로 일본이 살아날 유일한 길이다! 대안도 없이 사냥에 반대하는 놈들은 모두 비국민이야!」

「환경을 위해서도 고래는 죽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 깊은 바다 속 어디선가 초질량 불사암괴(超質量 不死癌塊)가 꿈틀거리고 있을지 몰라요! 고래는 인류의 적일 뿐만 아니라 자연의 적이기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초질량 불사암괴, 다른 말로 슈퍼 크립(Super Creep)은, 인류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증식을 거듭한 불사암이 언젠가 그 거대한 크기로 말미암아 재난을 초래할 가능성을 경고하는 가설이다.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불사암들은 그저 자연계에 추가적으로 공급되는 영양이자 열량에 불과하다. 코끼리 같은 대형 육상동물이 불사암으로 죽는 경우에도, 체급이 있는 각성체 육식동물들이 불사암 덩어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러나 슈퍼 크립 가설은 해저에선 사정이 많이 다를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예컨대 고래처럼 거대한 각성체가 불사암으로 죽어, 그 사체가 이렇다 할 중대형 포식자가 없는 심연으로 가라앉을 경우 어찌 되겠느냐는 것이다.

그 결과를 인류가 관측할 수 있게 될 즈음이면 암세포 덩어리의 질량은 전율하는 거인을 압도할 것이며, 그로부터 파생되는 이상 현상은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형태의 재앙이 되리라는 게 이 가설의 핵심이었다.

일본은 이 가설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밀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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