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13화 (413/561)

#43. 고래사냥 (6)

10월 18일 월요일. 일본 정부는 고래사냥을 위한 연합임무부대 CTF-W2의 출범을 공식으로 선언했다.

우리는 GHSS 컨소시엄의 이름으로 연합임무부대의 민간협력자 자격을 획득했다. 이는 예상보다 쉽게 이루어낸 일이었는데, 아프리카 평화유지활동을 중심으로 견실하게 쌓아온 그간의 실적과 이름값 덕분에 연합임무부대 측에서 먼저 계약의뢰를 넣어온 까닭이었다. 말하자면 초대장을 받고 참가한 셈이다.

AAR 항공 인수 및 기업공개 협조 건으로 우리와 제법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고 착각하는 청와대는, 우리가 받은 초대장에 또 다른 속사정이 있음을 넌지시 알려왔다.

일본 정부가 일한 관계를 더욱 개선하기 위한 선행 작업으로 민간 차원의 협력을 이제까지보다 높은 차원까지 끌어올리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수연의 보고를 받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부가 먼저 나서기보다는 민간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편승하는 구도를 만들어야 체면이 덜 깎인다 이거로군.”

“예. 그래서 한국계 업체들이 받은 초대장은 다른 나라의 업체들이 받은 것에 비해 조금 더 우호적인 조건이라고 합니다. 우리 컨소시엄 같은 우선순위 계약업체들의 경우 어지간한 일은 일본정부가 편의를 봐줄 거라고도 하더군요.”

일본이 예전부터 줄곧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꾀하는 건 당연히 바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한일 해저터널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말이 나온 사업이지만, 한국이나 일본이나 들어가는 비용 대비 실익에 의문이 있어 오랫동안 그저 실속 없는 공론(空論)으로만 그쳐왔다.

그러나 분노한 해양각성체 하나가 일본 전체의 해상물류를 실시간으로 말려죽이고 있는 지금, 한일 해저터널은 온 일본열도의 관심사가 되어있었다.

‘설령 이번 고래사냥이 성공을 거둔다 한들, 언젠가 비슷한 재난이 다시 찾아오지 말라는 법도 없지.’

와다츠미 키요우타마히코는 오늘 당장 죽음이 확인되더라도 최소 반세기 이상 일본 국민들의 트라우마로 남을 만한 생물재해였다.

한국의 여론도 예전보다는 이 사업에 호의적인 편이었다. 지금은 일본만의 재난이지만, 나중엔 또 어떤 바다괴물이 나타나 어느 나라에 피해를 줄지 모르는 일이니까. 한국 역시 이러한 위협으로부터 예외일 순 없다.

연합임무부대의 제1기항지는 도쿄로 정해졌다. 일본 연해와 근해를 통틀어 해저 음향감시체계의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 바로 도쿄만(灣)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당초 일본 정부가 몰이사냥에 적합하다고 꼽은 장소는 총 세 곳. 세토 내해(內海)와 도쿄만(灣), 그리고 이세만(灣)이다.

이중에서 세토 내해는 거센 물살이 발하는 배경소음으로 인해 다른 두 곳보다 음향감시의 최대해상도가 낮고, 내해라는 이름이 붙을 만큼 크기가 크며, 지형이 복잡하여 고래가 숨을 만한 사각지대도 많았다.

이곳에 연합임무부대의 주(主) 기항지를 두었다간 자칫 고래의 습격을 받아 역으로 임무부대의 주력이 궤멸당할 가능성까지 있다. 예전에 고래에게 피습을 당했던 구레 군항이 이 세토 내해에 위치하고 있기도 하다. 거기서 불타오르던 3천억 엔의 함대는 내게도 아직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러면 남는 후보는 이세만과 도쿄만 두 곳인데, 도쿄만의 음향감시체계가 더욱 잘 갖춰져 있는 건 단순히 도쿄가 일본의 수도인 탓이었다.

작금의 일본에서 해저 음향감시체계는 군사 인프라보다는 생활안전 인프라로 간주된다.

인프라의 수도권 집중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현재 도쿄 광역권엔 5천만의 인구가 몰려있으니, 일본의 인프라 투자도 자연히 도쿄 광역권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오늘, 10월 21일, 조직 산하 무장여객선 함대의 기함 스텔라 포르투나가 도쿄만으로 들어오게 된 이유였다.

일본 정부가 봐준다던 편의는 출입국심사와 화물검사 단계에서부터 체감할 수 있었다. 스텔라 포르투나의 갑판에 오른 출입국관리과 심사관들 및 세관원들은, 얼굴에 피로가 가득한 와중에도 직업적인 미소와 전문적인 영어로 우리를 환영했다.

“GHSS 컨소시엄의 헌터분들이시군요. 일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관습과 형식, 그리고 매뉴얼에 대한 집착이 남다른 이 나라에서, 공무원들이 입항하는 모든 배들을 상대로 미처 접안하기도 전에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승선 심사를 진행하는 건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다.

심사관들과 세관원들은 사람이 아니라 장비에 대한 심사도 진행했다. 선박에 실려 있는 무기와 장비들이 사전에 신고된 내역과 정확히 일치하는지를 살펴보는 과정이었다. 이쪽의 신용등급이 높아서 그런지 밀수품 검사는 아주 간략하게만 진행되었다.

이렇게 심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심사관들은 어떠한 서식 작성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들 자신이 업무처리를 위해 들고 다니는 서류뭉치도 없었다. 경태는 심사관들이 스마트폰 단말기만 가지고서 업무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고 장난 반 진심 반인 놀라움을 내비쳤다.

“일본이…… 디지털 행정?!”

“…….”

여기에 대해선 수연도 조금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지난날 대호를 잡을 당시에도 일본 치고는 사무행정이 간편화되어있었는데, 지금은 그때에 비해서도 큰 폭으로 개선된 것이다. 아날로그의 갈라파고스가 망국의 위기에 직면해 선보이는 흥미로운 발전상이었다.

점검을 마친 공무원들은 정중한 인사를 남기고 하선했다.

“승선인원과 장비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다시 한 번 환영의 말씀을 드리며, 아무쪼록 이 시대의 재난을 극복하는 데 함께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공무원들의 인사에선 절박한 결의나 사명감이라고 해야 할 감정이 묻어났다.

스텔라 포르투나는 요코스카 동쪽 곶을 지나 만 안쪽으로 진입했다.

요코스카의 군항은 연합임무부대의 제1기항지가 도쿄만으로 정해진 또 하나의 이유였다. 일본 해상자위대 요코스카 지방대와 미 해군 제7함대를 지원하기 위해 깔아놓은 군수 인프라는 고래사냥 연합임무부대를 지원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그런 곳인 만큼, 해상시위를 벌이는 시민단체와 환경단체들의 숫자도 많았다.

「일·미·영 정부는 각성하라! 우리는 바다에서의 핵무기 사용에 반대한다!」

「고래는 인류의 적이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고래가 화를 가라앉힐 때까지 기다리며 한마음으로 사죄의 뜻을 전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이 정도는 괜찮은 방사능 오염’이라는 건 없다! 하라다 해양방재상(海洋防災相)은 망언을 철회하라!」

크고 작은 보트에 깃발을 내건 단체들은 면면이 매우 다양했다.

「원자력 규제를 감시하는 시민모임」, 「FoE 재팬」, 「더 이상 바다를 오염시키지 마 시민모임」, 「헤이와(Heiwa) 평화와 화해 재단」, 「후쿠시마 대응(Fukushima Response)」, 「지구를 대신하여(On Behalf of Planet Earth)」, 「전쟁에 반대하는 환경론자들(Environmentalists Against War)」 등.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환경단체들의 수는 눈에 들어오는 것들만 헤아려도 거뜬히 세 자릿수를 찍을 듯했다.

개중엔 「젠더와 방사선 영향 프로젝트(Gender and Radiation Impact Project)」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 이름을 가진 단체도 있었다. 나로서는 젠더 문제가 방사능 오염과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일본의 해양방재상은 내각부 특명담당대신(内閣府特命担当大臣)의 한 사람으로, 해양각성체의 위협과 해상물류 경색 문제를 총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일본의 재난관리(방재/防災)는 본디 방재상의 몫이었으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원자력 방재가 독립적인 장관부처로 떨어져 나오고, 마법이 돌아온 이후에는 생물방재와 해양방재가 차례차례 독립 부처로 분리되어 나왔다.

초대 해양방재상으로 임명된 하라다 요시아키(原田義昭)는 현 총리 이전에 환경상을 역임했고, 그다음엔 원자력 방재상을 지냈던 인물이다.

“이 정도는 괜찮은 방사능 오염이다.”라는 발언은 바로 이런 이력을 가진 인물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나는 이 발언이 포함된 브리핑을 스텔라 포르투나 탑승 전날 생방송으로 들었다.

「이번 고래사냥 작전에서 다수의 핵무기 사용이 예정되어있다는 점으로 인해 방사능 오염에 대한 우려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 정도는 괜찮은 방사능 오염입니다.」

「수중 핵폭발이 대기 중에서의 폭발에 비해 많은 방사능 오염물질을 만들어내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오염은 이제까지 있었던 다른 오염들에 비하면 정말로 대단치 않습니다.」

「예컨대 소련과 소련의 뒤를 이은 러시아는 과거 일본과 한국 사이의 바다에 거의 30년에 걸쳐 방사성 폐기물을 무단으로 투기했던 전적이 있지요. 그렇게 쏟아버린 폐기물들은 베크렐로 환산할 때 자그마치 6백조 베크렐에 해당하는 양이었습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현장에서 지금까지 발생하거나 방류한 오염수의 오염 총량이 대략 9백조 베크렐 가량 됩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후쿠시마 사고 쪽이 더 심각해 보이겠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언제나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충실하게 의무를 이행하는 우리 일본과는 달리, 러시아가 투기한 폐기물들은 일체의 정화작업을 거치지 않았으니까요. 그들은 심지어 다수의 잠수함용 원자로까지 버려버렸지요.」

「이 원자로들은 오염량 계산에 포함되어있지 않습니다. 일단은 납으로 포장해서 버렸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과연 그 봉인이 해저에 충돌하고도 멀쩡했겠습니까……? 결과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여하간,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럼에도 일본과 한국 사이의 바다에선 방사성 물질의 농도 변화가 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위대한 자연과 거대한 바다가 품고 있는 정화능력의 한 단면이라고나 할까요?」

「이런 사실들을 고려하면 저위력 핵폭뢰를 좀 쓴다고 해서 위험한 수준의 오염이 발생하진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우리 연합임무부대는 핵폭뢰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며-」

이 브리핑에서 느닷없이 유탄을 맞은 러시아는 주일 대사의 항의표명을 통해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일본인들은 혹시 자신들의 과거를 잊고 남 탓만 하는 게 특기인가?」

「우리가 지난날 6백조 베크렐의 방사성 폐기물을 버렸던 것? 그래,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의 과오를 이미 인정했고, 그것을 번복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그때 ‘동해’에 폐기물을 버렸던 게 우리만의 일이었나?」

「당신들이 망각한 것 같으니 우리가 상기시켜주겠다. 당신네 일본은 1977년부터 2007년까지 30년간에 걸쳐 4천 5백조 베크렐에 달하는 방사성 폐기물을 ‘동해’에 쏟아버린 전적이 있다. 그리고 당신들도 그 사실을 인정했었다.」

「4천 5백조 베크렐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발생한 해수 오염보다 아홉 배나 많은 수치다. 한마디로, 일본은 ‘동해’에 후쿠시마 발전소 사고를 아홉 번이나 터트린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대체 누가 누구의 과거를 지적하는가?」

하라다 요시아키 해양방재상은 난징대학살과 종군위안부를 완전히 부정하는 강경파 우익 인사다. 그런 인사가 일본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일본과 한국 사이의 바다’라고만 에둘러 말한 데엔 한일관계 개선을 향한 일본정부의 의지가 녹아있는 것이었다.

그러한 내막을 잘 아는 주일 러시아 대사는 동해라는 표현에 반복적으로 강조를 넣어가며 일본인들의 심기를 긁어댄 것이었고.

그 사이에 낀 한국의 입장에선 똑같이 좆같은 짓을 한 놈들끼리 누가 더 좆같은 짓을 했는가를 두고 대결을 벌이는 꼴이었다.

하라다 방재상이 먼저 러시아에 시비를 건 배경엔 최근 경색일로인 양국관계가 깔려있었다.

러시아는 지금 카자흐스탄에서 거하게 국력을 갈아먹는 중이었다. 카자흐에서 민주화 시위가 발생하여 친러 성향의 정부가 전복될 위기에 처하자, CSTO 평화유지군 딱지를 달고 들어가 시위를 유혈진압했다가 끝이 보이지 않는 소모전의 늪에 빠져버린 탓이다.

카자흐스탄은 몽골처럼 유목전통이 살아있는 국가다. 각성체 전마 7만 마리를 굴린다고 알려진 시민군은 부실한 무장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군을 상대로 높은 교환비를 유지하고 있었다.

러시아가 군사와 외교 양면에서 깊은 수렁에 빠지자, 일본은 북방영토(쿠릴열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강화했다. 국민들의 불만을 바깥으로 돌리기 위해 외부의 적을 만드는 전형적인 전략이었다.

「다른 선박의 진로에 끼어들지 마십시오! 다른 선박의 항행을 방해하지 마십시오! 다른 선박의 항해안전을 중대하게 위협하는 위법 선박에 대해서는 화기사용을 포함한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스텔라 포르투나와 멀지 않은 수상에서 경고방송이 울려 퍼진다. 연합임무부대와 그 민간협력자들의 배를 에스코트하는 해상보안청 순시선의 방송이었다. 선수의 현측엔 PL-10이라는 번호가 적혀있다.

감시체계가 조밀하게 깔려있는 만 안쪽이어서 그런지 순시선은 일본어와 영어 경고방송을 병행하고 있었다. 두려움이 아예 없지는 않은지 지향성 스피커를 사용하고 있기는 해도.

이에 맞서듯이, 커다란 배들의 사이를 날렵하게 달리는 환경단체의 고속정은 붉은 글씨가 인쇄된 커다란 깃발을 펼쳤다.

「오만한 인간들이여! 타이지 마을의 수몰과 페로제도의 비극을 기억하라!」

타이지 마을은 돌고래들이 일으킨 국지적 쓰나미에 파괴당한 그곳이고, 페로제도 역시 타이지와 비슷한 참사를 겪은 고래사냥의 중심지다.

나는 해저에 깔려있는 감시체계의 밀도를 보며 조금은 감탄했다.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처바른 건지 모르겠군.’

음향 감시체계만이 아니라 수류변화를 감지하는 체계를 같이 설치해놓은 게 인상적이었다. 수류변화(Wake) 감지기·수동형 음파탐지기(Passive Sonar)·근거리 수중레이더를 탑재한 채 돌아다니는 드론도 다수 눈에 띄었다.

겉모습을 잘 위장해놓은 프로브(Probe) 드론들은 고래의 선공을 쉬이 받지 않는 유용한 탐색수단이었다. 배터리 충전이 필요하면 수상으로 부상하여 신호를 발산하고, 그 신호를 포착한 방전능력자가 해당 위치로 날아가 비접촉 원격충전을 해주는 식으로 운용되는 물건.

스텔라 포르투나에게 할당된 부두는 도쿄 디즈니랜드와 마주 보는 인공 섬 와카쓰(若洲)의 북쪽 터미널이었다.

섬의 지저엔 대량의 쓰레기가 묻혀있었다. 준설토가 아니라 쓰레기를 부어 기반을 다진 섬인 모양이다. 도쿄의 인공 섬이 대부분 이런 식이기는 하지만.

“…….”

스텔라 포르투나가 와카쓰 섬의 동쪽을 도는 동안, 수연 녀석은 우현 너머 멀리에 보이는 디즈니랜드에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