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12화 (412/561)

#43. 고래사냥 (5)

딱히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정보원으로서의 시체인형은 사실상 무가치했다.

유사지능이 구축된 이후의 시체인형은 새로운 정보를 학습하는 능력이 극히 낮아지기에, 인형 윌리엄에게서 뽑아낼 수 있는 정보의 최대치는 생전의 기억에 국한된다. 웨스트버튼이 제 손자를 인형으로 만든 시점을 고려하면 정보의 유효기간이 한참이나 지난 셈이다.

그나마 있는 기억도 온전치는 않고, 사고능력과 의사소통능력도 부족하다. 인형 윌리엄이 아무리 잘 만들어졌다 한들 인형은 인형일 뿐. 생산적인 심문 따위 성립할 리가 있나.

심문을 단념한 나는 윌리엄을 철저하게 연구와 실험을 위해 사용했다.

생체병기로서의 윌리엄은 실전성이 많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시체인형의 마력회로로 돌릴 수 있는 마법엔 한계가 뚜렷하다. 소프트웨어로서의 술식을 하드웨어 성능이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것이다. 합성해내는 세균의 전염성과 치명률은 그다음에 논해야 할 문제였다.

윌리엄에게 내장된 미생물 합성술식으로 본격적인 역병의 기수 흉내를 내려면 나 같은 대마법사가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 즉 대마법사가 여기에 있노라 광고를 하는 수준으로 마력장을 전개해야 한다는 의미.

‘아니. 이건 내 기준이 너무 높은 것이겠지.’

내 기준과 웨스트버튼의 기준은 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 이대로도 제한적인 상황에서 효과를 보기엔 충분할 것이다. 예컨대 특정 인물들과 일정 시간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경우라거나.

내가 주목한 건 인형에 내장된 술식의 작용방식을 수정하여 인형 자신마저 병들게 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었다.

설령 인형의 몸뚱이가 페스트에 면역을 보유하고 있어도 소용없다. 내 생각대로 술식을 수정해놓으면 그 면역 체계조차 병원균을 합성하는 재료로 소모될 테니까. 면역체계가 아무리 활발히 작동해도 병원균의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기만 할 것이다.

틈틈이 진행한 실험은 2주째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다.

“읏…… 하앗…….”

자기 자신이 근원인 질병에 감염된 인형 윌리엄은 속박된 병상 위에서 고통스럽게 몸을 비틀었다. 달뜬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고, 열이 오른 이마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할……아버님……. 저…… 기분이 이상해요……. 몸에 문제가…… 생겼나 봐요…….”

이 모습을 본 경태가 진지한 어조로 헛소리를 내뱉었다.

“형님. 저도 기분이 이상해지는데 어떡하죠? 아무래도 오늘을 계기로 새로운 취향에 눈을 떠버릴 것 같습니다.”

“…….”

나는 눈을 살짝 찌푸린 채 경태를 돌아보았다. 어이없는 농담을 던진 경태 녀석은 능글맞게 웃으며 엄지를 세워 보였다.

“실험 성공을 축하드립니다, 형님. 음, 성공한 거 맞죠?”

“……일단은 그렇다.”

실험을 보조하는 의료인력들은 인형 윌리엄의 활력징후와 각종 증상의 진행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기록했다. 정상적인 병의 진행과 비교하여 어느 부분이 어떻게 다른가를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인형 윌리엄의 병증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악화되었다. 내가 변형시킨 윌리엄의 미생물 합성술식이 윌리엄 자신의 육체를 먹어치우며 작동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지금은 합성술식 자체가 페스트보다 더 강력한 질병인 셈.

얼마 지나지 않아 병증은 인형의 유사의식까지 잡아먹는 단계에 이르렀다. 눈이 풀린 인형은 온몸을 비틀고 이빨을 갈아대며 기괴한 소리를 흘렸다.

“기긱…… 기기기긱…… 항…… 문…… 섹…… 스…… 기긱…… 빠드드득…….”

인형의 흰자위는 핏줄이 터져 붉게 물들었고, 눈동자엔 통상시야로도 확인이 가능한 각막 혼탁이 나타났다. 이는 각막을 구성하는 유기물이 물리적으로 변형됨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코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피는 그 자체로 과다출혈을 유발할 양이었고, 사타구니에서는 간헐적으로 혈뇨와 혈변이 쏟아져 나왔다. 인형의 여러 내장들 또한 각막과 같은 방식으로 손상되고 있는 탓이었다.

사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벌써 생명활동이 정지했어야 정상이다. 마법으로 살아 있는 상태를 흉내 낼 뿐인 시체인형이기에 아직까지 움직이거나 소리를 낼 수 있는 것.

그러나 무의미한 움직임이고 무의미한 소리였다. 고장 난 기계에 동력이 남아 무의미하게 덜그럭거리는 꼴과 같다. 지금의 윌리엄은 인형이라기보다는 제각각의 방식으로 오작동을 일으키는 생체조직들의 누더기라고 불러야 할 무언가였다.

나는 이어질 일에 대비해 몇 걸음 물러나 거리를 확보했다.

“끄으어……!”

덜컹덜컹덜컹-!

인형의 전신 근육이 격렬한 수축과 이완을 거듭함에 따라, 곳곳이 찐득하게 물러진 피부가 여기저기 터지고 갈라지고 찢어지며 붉은 속을 드러냈다. 무리하게 비틀리는 관절마다 으직으직 위태로운 소리들이 났다.

그러다가 마침내 손목 관절이 끊어져, 채찍처럼 휘둘러지는 팔의 단면으로부터 피와 살점이 부채꼴로 쫙 뿌려졌다.

“엄마야!”

의료용 안면보호구에 오염된 핏물을 맞은 의료인력 하나가 경기를 일으키다시피 엉덩방아를 찧었다. 내가 잠깐 돌아보자, 가까이 있던 동료가 넘어진 인원을 얼른 붙잡아 일으켜주었다. 일어나는 쪽이나 도와주는 쪽이나 상당히 겁을 집어먹은 상태였다.

끔찍한 몰골의 외상환자를 자주 접하는 의료인력은 시각적인 흉물스러움에 내성이 있으리라 생각했건만, 실시간으로 마법적 변성에 잡아먹히는 시체인형의 몸부림은 그런 내성으로도 감당하기 버거운 끔찍함이었던 모양이다.

「삑삑삑삑삑삑삑-」

바이탈 사인을 체크하는 모든 기기들의 수치가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러다가 몸에 붙여두었던 센서들이 하나둘 떨어져, 날카롭던 경고음들이 평이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의료인력이 내 눈치를 보며 쭈뼛쭈뼛 다가가려 하기에, 나는 손을 들어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주었다.

“그냥 둬라. 더 이상의 측정은 의미가 없다.”

“예…….”

필요하다면 내가 염동력을 쓰면 될 일. 의료인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뒤로 빠져 벽에 들러붙다시피 했다.

콰당탕!

약해진 관절들을 하나하나 끊어가던 인형 윌리엄이 수술대에서 요란하게 굴러떨어졌다. 덩달아 떨어진 손과 발이 제멋대로 꿈틀거리다가 멈추었다.

윌리엄의 체내에서 다량의 엔돌핀이 분비된다. 살아 있는 상태를 모방하는 시체인형이 보여주는 죽음의 징후였다.

“끄으…… 히이이…….”

인형의 혼탁한 눈알이 데굴데굴 구른다. 인공의식이 부분적으로 돌아오기라도 했는지,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느낌이었다. 쩌억 소리를 내며 벌어지는 입안엔 성한 이빨이 두 개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인형은 팔꿈치까지밖에 남지 않은 오른팔을 들어 올리며 입을 우물거렸다.

“하…… 라…… 버…… 님…… 사…… 랑…… 해…… 요…….”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 멀쩡할 때의 중성적인 미성(美聲)은 온데간데없다.

이 말을 끝으로, 인형술사의 역작은 완전히 작동을 멈추었다. 웨스트버튼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사전에 새겨진 유사의식구조의 가장 중요한 알맹이였을 것이다.

의료인력들을 잠시 내보낸 경태 녀석이 인형 윌리엄의 유해를 요리조리 들여다보며 물었다.

“이제 형님께선 콜레로의 뱀 같은 외부확장회로를 이런 식으로 파괴하실 수 있는 겁니까?”

“마력장을 중화할 수 있을 만큼 거리가 가깝다면.”

“흐음. 뭐, 수중의 카드는 많을수록 좋은 것이긴 한데, 과연 공중전투함을 상대로 그런 간합을 확보할 기회가 올까요?”

“힘들겠지.”

나는 조금 생각한 끝에 다른 말을 덧붙였다.

“가능하다고 한들, 감염된 부분을 물리적으로 분리해버리면 피해는 한정적일 테고.”

“에이. 그럼 당장은 별 쓸모가 없겠군요. 좀 아쉽네요.”

“이번 일본행에 공중전투함이 뜬다고 확정된 것도 아니잖으냐. 그레이스의 첩보는 어디까지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래도요. 언젠가는 상대해야 할 적이니까요.”

오늘 확보한 기술에 연계해서 쓸 수 있는 카드들이 몇 개 더 있긴 하다.

그러나 그 카드들도 마력장 중화와 침식이 가능한 거리까지 접근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들이었다. 항모전단과 함께 움직이며 육상 발진 요격기들과 방공망의 엄호를 받을 공중전투함을 상대로는 쓰지 못할 카드들이라 하겠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콜레로의 뱀 같은 것과 다시 교전한다면, 예전에 라일라와 처음 싸울 때처럼 칼질에만 의존할 일은 없을 것이다.

어차피 이번 일본행에서 바라는 건 일본이 보유한 고래연구 데이터의 습득과 공중전투함에 대한 관측기회가 전부다.

‘언젠가 쓸모가 생길지 모를 원천기술을 하나 확보한 셈 쳐야겠지.’

그 외의 부수적인 소득도 있었다. 인형 윌리엄은 인형술사가 생전에 지녔던 모든 지혜의 결정체라 할 만한 역작이었으므로, 나는 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보다 고품질의 시체인형을 만드는 데 필요한 여러 노하우들을 습득했다.

10월 셋째 주 목요일.

고래사냥에 관한 새로운 정보는 의외로 중국에서 날아들었다. 수연은 국안부 채널을 통해 들어온 내용을 보고했다.

“영국이 공중전투함 투입 정보를 협상의 지렛대로 썼다고 합니다.”

중국이 고래사냥 연합임무부대 CTF-W2의 활동과 관련한 협상에서 서방진영의 더 많은 양보를 바라며 시간을 끌자, 영국이 협상 테이블에 대뜸 룰러 급(級) 공중우세 초계함 투입 정보를 까버렸다는 이야기였다.

영국 왕립공군의 공중전투함은 이 세상 모든 군사관계자와 정보당국자들의 뜨거운 관심사다. 일본으로부터 이미 CTF-W2에 관전무관을 파견할 권리를 약속받은 중국의 입장에서, 연합임무부대에 공중전투함이 합류한다는 사실은 굉장히 큰 의미가 있었다. 대놓고 정보를 수집할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중국이 분명 욕심을 부렸을 텐데.”

“예. 아비터와 트라운서, 둘 중 하나에 중국군 관전무관을 탑승시켜달라고 요구했답니다. 그러면 중국 해군도 CTF-W2의 임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고.”

“그래서?”

“영국은 그럴 거라면 공중전투함 파견을 재고하겠다고 응수했습니다. 중국에게 관전무관을 파견할 권리를 약속한 건 일본이지 영국이 아니라는 이유로요. 결국 중국 정부는 해상자위대와 동행할 관전무관에 더해 정보수집함을 보내는 선에서 만족하기로 했다는군요.”

“고래사냥과 공중전투함 파견이 모두 확정된 건가.”

“그렇습니다.”

영국이 이번 고래사냥을 공중전투함의 데뷔 무대로 삼으려는 건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세계 최악의 자연각성체 중 하나를 상대하는 싸움만큼 훌륭한 데뷔 무대를 또 언제 어디서 다시 찾아볼 수 있을까.

본격적인 군사임무로 데뷔하는 것에 비해 정치적·외교적 부담이 가볍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에도 좋으며, 군 예산에 더욱 많은 자연각성체 대응비용을 반영하거나 공포경제에 몰려 있는 자금을 빨아들이는 데에도 유리해진다.

여기서 말하는 공포경제는 자연의 거대한 것들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파생된 경제영역을 의미했다.

대자연의 위협에 맞서는 인류문명의 노력. 그 노력의 시대적 아이콘으로서 공중전투함을 각인시킬 수만 있다면, 영국 정부와 원탁이 합작으로 세워놓은 위장기업은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영국 정부가 그간 원탁의 활동을 지원하느라 무리를 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마스터들의 연이은 죽음에 영국 정부 또한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고.

수연이 물었다.

“칠각기사단 측에도 이 사실을 알릴까요?”

“그렇게 해라. 정보의 출처는 알리지 말고.”

“예.”

정보의 출처는 함부로 공유해선 안 된다. 내 밑천을 노출시키는 꼴이니까.

그리고 내가 출처를 밝히지 않는다면, 그레이스는 섣부른 움직임을 삼갈 것이다.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는 정보를 무턱대고 신뢰할 순 없잖은가. 이는 나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쌓였는가와는 별개의 문제다.

‘이쪽에 전력을 할애할 여유가 있는지도 의문이고.’

주술사 왕의 동군연합을 정비하는 것만으로도 인력 소모가 만만치 않을 텐데, 그 와중에 「레이디 아밀라리아」와 그 자매들에게 인간의 메아리를 남기고자 라일라 같은 복제체들을 소모하고 있는 그레이스다.

내게는 마녀와 칠각기사단이 더 이상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지양하고 동군연합 정비에 집중해주는 편이 이익이다. 내가 국내 2위 항공사를 인수하면서도 유휴자금이 넘쳐나는 배경엔 아프리카에서 행하는 천연자원 무역중개가 있으니까.

주술사 왕의 동군연합이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내 조직이 얻는 금전적 이익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그레이스와 나 사이의 무게균형은 조금씩 내 쪽으로 기울게 되어 있었다. 주술사 왕의 진영에 타산적인 이유로 합류했을 뿐인 고독의 완전체 역시 자신이 관할하는 분야에서 내 편의를 봐주는 중이다.

내가 주술의 장막 너머의 경제에 행사하는 영향력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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