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10화 (410/561)

#43. 고래사냥 (3)

중동과 중앙아시아 등 이슬람 권역에서의 일도 수월히 풀려가고 있었다.

여기서 의외로 힘을 보태고 있는 게 마무르였다.

그간의 공로를 평가받아 「성전연합」의 부사령관으로 영전한 마무르는 중동 전역의 지하디스트 모집 체계를 정비하는 데 참여하는 한편, 성전연합의 근거지인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샤히디 그룹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기반을 닦아주고 있기도 했다.

샤히디 그룹은 중앙아시아에 아무런 기반이 없다. 곧 흡수 예정인 동 투르키스탄 이슬람 당(ETIM)도 이 세력 저 세력을 전전하며 눈칫밥을 먹어온 게 전부인 처지.

그러니 토착세력의 도움이 없이는 중동에서 뽑아낸 지하디스트들을 전선에 배치하는 데 극심한 병목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면 중동의 왕실과 투자자들이 불만족스러워할 테고, 전사들의 정련과 옥석가리기가 지연될 테니 내게도 좋은 일은 아니다.

마무르는 자기가 선동가이자 모병관으로서 경험하는 열기에 크게 고무되어 있었다. 최근의 통화에서 마무르는 들뜬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누구의 소개를 받아 어느 움마(신앙 공동체)를 방문하든, 내가 베이징 대축제 직관한 썰 푼다고 할 때마다 무수히 많은 무자헤딘 꿈나무들이 몰려와 내 말에 귀를 기울여요.」

「천국의 꿈을 담고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그들의 눈빛은 너무나도 아름다워, 언어의 천재인 나로서도 쉽게 형언할 말을 찾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아, 나의 친애하는 싸장님께서도 이것을 보아야만 하였다.」

「알라 후- 아크바르. 가는 곳마다 무자헤딘 꿈나무들에게 천국의 대기표를 발급해주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내게는 그들의 대기 순번을 빠르게 줄여줄 의무가 있습니다. 이 마무르는 싸장님이 계획한 성전을 위해 사력을 다하고, 죽은 다음에야 비로소 멈출 것을 엄숙하게 맹세합니다.」

이런 마무르는 샤히디의 PI 작업에 대한 보수적인 이슬람 공동체들의 여론을 파악하고, 그것을 다시 PI 프로파간다에 반영하도록 해주는 외부고문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마무르는 무슬림들에겐 다소 민감할 수 있는 내용의 프로파간다에도 일관성 있는 호의를 보여주었다.

샤히디의 SNS 계정에 탈레반의 석불 파괴에 대한 입장을 올릴 때도 그러했다.

「내가 싸장님의 대본을 받고 나서 생각해봤는데, 맞는 말이기는 해요. 원래 알맹이가 부실한 자들일수록 요란하게 변죽을 올리며 자신들의 부실함을 감추려 드는 법이지 않습니까?」

「아프가니스탄의 학생들(탈레반)은 진실로 믿는 자라면 석불을 부숴야 했다고 말합니다. 그럼 석불이 부서지지 않은 동안에는 그 땅에 알라에 대한 믿음과 예배가 없었습니까?」

「아니오.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결국 그 학생들의 주장은 참된 전사들이자 믿는 자들이었던 그들의 선조들을 간접적으로 모욕하는 것이다. 이게 내가 내린 결론입니다.」

「대본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그들은 부족한 믿음을 과잉행동으로 보충하며 스스로가 신실한 전사라는 자기최면을 걸고 있는 것이에요.」

이러면서 마무르는 뜬금없이 반공(反共)을 입에 담았다.

「죽은 부처보다 해로운 것이 살아있는 빨갱이들입니다. 진정한 알라의 전사라면 누구나 멸공의 큰 뜻을 흉중에 품고 있어야 한다.」

「멸공……. 그것은 신의 은총으로 지음 받은 모든 생명들의 공통된 사명…….」

「빨갱이들을 상대로 하는 싸움은 그게 무엇이든 성전이 됩니다. 왜냐면 빨갱이들은 국가권력을 탈취하여 신앙을 말살하려 드는 사악한 세력이기 때문에. 그 무뢰한들은 낫으로 목을 따고 망치로 대가리를 깨서 다시는 공산주의를 못 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이 인간이 왜 갑자기 이런 소리를 하나 했는데, 알고 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천안문 의거에는 후속편이 필요해요.」

마무르는 진지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알림 샤히디에 대한 믿는 자들의 지지는 아직 열화와 같이 뜨겁습니다. 그러나 이 뜨거움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대중의 관심과 애정은 영원하지 않아요. 아주 열성적인 일부를 제외하면, 나머지 다수의 대중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성전에 대한 갈망을 잃어버릴 게 분명하다.」

「이것은 너무나도 유감스러운 일이다. 지금이라면 우리는 각성능력자 무자헤딘 백만 대군이라도 꾸리는 게 가능해요. 안타깝게도 당장은 그만큼의 대군을 운용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을 뿐. 그러나 이대로 시간이 1년쯤 더 흐르고 나면, 모집 가능한 인원은 아마도 십분의 일 이하까지 줄어들 것입니다.」

「싸장님의 걸작인 알림 샤히디는 결코 원 히트 원더로 끝나선 안 된다.」

「따라서 나는 싸장님에게 후속편 제작을 주문하는 바입니다. 성공적인 시리즈물은 전편의 인기요소를 계승하는 것이 기본이므로, 나는 후속편의 핵심 소재로 멸공을 가져가는 게 좋다고 봐요. 말하자면 이것은 흥행의 보증수표다.」

내가 근시일 내로는 중공을 칠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고 답하자, 마무르는 애꿎은 한국인들을 욕했다.

「나는 화가 나요. 한국인들은 어째서 북진통일을 하지 않는 것?」

「잘하는 거라곤 게임과 편 가르기 정치질밖에 없는 게을러터진 한국인들 같으니! 이게 다 나보다 못생긴 한남 한녀들이 알라를 믿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만약 한국인들이 알라를 믿었으면 어땠겠습니까? 평양은 진즉에 불바다가 되었을 것이고, 김○은은 제 고모부처럼 갈가리 찢어져 돼지먹이가 되었을 것이며, 그 동생인 김○정은 알라의 전사들을 위해 개같이 봉사함으로써 그동안 지은 죄를 속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뿐입니까? 썩은 고기를 탐하는 하이에나처럼 북한 땅을 뜯어먹으려 기어들어오는 중공 빨갱이들의 군대를 격파한 후, 그대로 만주까지 밀고 나아가 고구려 에미레이트를 건설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중공 빨갱이들도 지금처럼 믿는 자들을 탄압하거나 할 여유가 없었을 텐데……. 한국인들은 왜 알라의 은총을 받아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는 데 앞장서지 않습니까? 이 마무르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 원래 천재의 머리로는 바보들의 어리석음을 이해하기 어려운 게 정상이긴 하지만…….」

나는 광기의 둑이 터진 마무르가 제풀에 지치기를 기다려 예멘 출장계획을 흘려주었다. 마무르는 대번에 기운을 되찾았다.

「과연 싸장님에게는 다 계획이 있습니다. 알라께서 깔아두신 전사의 융단다운 훌륭함이다. 그곳에서 시아파 이단자들을 상대로 장대한 군사적 승리를 거두기만 한다면, 이 마무르가 장담하는데, 사우디아라비아에서만 백만의 각성능력자 전사들을 뽑아내는 건 일도 아니게 될 것입니다.」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인 중동국가들은 그렇지 않은 국가들에 비해 각성체의 위협이 현저히 낮아, 자연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헌터의 수요 역시 적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주요 선진국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각성능력자 인력 유출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이때, 중동국가들은 거꾸로 각성능력자들이 안 나가서 골치를 썩이는 중이었다.

산유국의 복지에 익숙한 중동국가의 국민들은 일을 해서 먹고산다는 개념 자체가 희박하다.

중동의 맹주이자 산유국의 대표주자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전 국민의 70%가 세계 최저의 노동생산성으로 놀다시피 월급을 받아가는 공무원들이고, 청년 인구의 30%는 보조금만으로 먹고사는 백수들이며, 대부분의 국민들이 평생에 걸쳐 소득세라는 걸 내본 경험이 없다.

집은 기본적으로 나라에서 주는 것이고, 차도 기본적으로 나라에서 주는 것이며, 결혼비용·교육비·의료비 또한 기본적으로 나라에서 대주는 것이다. 여기에 거의 전 국민이 받다시피 하는 생활보조금을 더하면 일을 하지 않아도 최저한의 생활이 가능하다.

이런 나라에서 태어나 평생을 자라온 사람이, 어느 날 각성능력자가 되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근로의욕 같은 게 생겨날 리가 있나.

하물며 헌터 노릇을 하려면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 몸을 쓰는 일이니 육체적으로 힘이 드는 건 물론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각성능력자들 입장에선 대체 왜 그런 고생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나 싶어지는 게 당연하다.

경태는 이를 두고 묘하게 구체적인 예를 들면서 웃었다.

“어머니가 “너도 좀 나가!”라고 울면서 외치고 있는데도 꿋꿋이 방에 들어앉아 게임만 하는 백수 아들을 보는 것 같네요.”

비유가 다소 이상하긴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을 어머니에 비유한다면 결코 좋은 어머니라고 하긴 어려울 터였다.

발화능력자나 방전능력자들은 그래도 사우디 국내에서 수요가 있다. 발전소를 돌리고, 해수담수화 설비를 가동하는 데 투입하면 되니까. 제트 바이크를 간신히 띄울 수준의 발화능력자를 담수화에 투입하면 백 톤이 넘는 깨끗한 물을 뽑아낼 수 있다. 하루 8시간 노동이 기준이니, 초과근무 여하에 따라 그 이상이 될 수도 있고.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는 각성능력자들 중 이중각성능력자와 다중각성능력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세계평균보다 다소 낮은 국가였다.

‘능력들을 좀처럼 쓰질 않으니 발전도 뒤처질 수밖에.’

자연적으로 열린 마력회로는 사용할수록 굳어지고 확장되며 흐름이 최적화된다. 그만큼 병신이 될 확률과 불사암 발병확률이 높아지는 건 감수해야 할 테지만.

여하간, 이런 나라에서 하루하루 불만만 많아지는 각성능력자들을 자발적으로 ‘나가게’ 만들 유일한 구실이 바로 지하드(성전)다. 사우디 국왕이 샤히디를 괜히 왕궁으로까지 초대했던 게 아닌 셈.

마무르가 집착하는 지하디스트 백만 대군은 내게도 무척이나 매력적인 것이었다. 수연 녀석은 담담한 어조로 평했다.

“형님께서 처음 이슬람 극단주의 진영과의 연합전선 구축을 계획하실 때만 하더라도 이 일이 이렇게까지 큰 성과를 거두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이대로만 간다면 더 이상 칠각기사단과의 불균형을 우려할 필요는 없겠지요.”

수연이 말하는 불균형은 전투원 동원능력의 불균형이었다.

주술사 왕의 동군연합 왕국들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그레이스와 나의 전투원 동원능력은 하루가 다르게 격차가 벌어져가는 중이었다. 군수체계만 제대로 갖춰진다면 그녀는 각성능력자 백만 대군을 어렵잖게 뽑아낼 수 있다.

그에 반해 나는 직접적으로 동원 가능한 전투인력의 규모가 너무 작았다. 정예화와 핀 포인트 침투타격을 추구한다 한들, 가장 중요한 런던 공략의 기여도에서 격차가 생기고 마는 것이다.

내게는 머릿수를 채워줄 자원이 필요했다.

새로이 발굴해낼 첫 번째 병력자원이 바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분노한 청년세대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인구의 70%는 청년층이다. 이는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6~7을 넘나들었던 높은 출산율의 결과물.

앞으로 줄어들 일만 남은 복지혜택으로 말미암아, 사우디의 청년세대는 기성세대를 향한 원망을 키우고 있다. 당신들은 가장 좋았던 시절에 가장 좋았던 혜택을 누려놓고, 아무 대책 없이 애만 자꾸 싸질러서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었노라고.

삶이 팍팍해지면 증오와 분노를 부추기는 세력이 힘을 얻는다. 나는 이 분야의 경쟁에서 기존의 지배적 사업자였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능가할 자신이 있었다.

승리. 성취. 그리고 욕망의 해소. 여기에 종교적 영광과 사후의 천국까지 약속해주겠다는데 어느 불나방이 뛰어들지 않고 배기겠는가.

제 한 몸 땔감으로 보태는 나방들이 많아질수록 성전의 불길은 더 화려하게 타오르고, 그렇게 화려해진 빛은 다시 더 많은 나방들을 끌어들이는 선순환을 이룰 것이다.

마법의 재래가 초래한 이슬람 세계의 종교적 동요는 내 계획에 힘을 실어주는 배경적 요소였다.

이슬람 세계에서 무슬림 각성능력자를 부르는 호칭은 「축복(바라카)을 받은 자」, 혹은 「무함마드의 빛(누르 알 무함마디)을 품은 자」였다. 인도네시아처럼 이슬람 국가이면서도 별개의 호칭을 쓰는 나라가 제법 있긴 하나, 종교계에서 널리 쓰이는 호칭은 그러했다.

이슬람 종교계의 심층적인 변화를 주시하고 내게 전달해주는 건 메리옘의 소임이었다.

“바라카(بركة)는 알라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흐름입니다. 알라는 모든 바라카의 유일한 근원이며, 자격이 있는 피조물을 선택하여 카라맛(کرامات)…… 그러니까, 기적을 행할 수 있는 힘을 흘려보내주는 거지요.”

메리옘은 덧붙였다. 이러한 바라카의 개념은 사실 이슬람 근본주의가 아닌 수피즘(이슬람 신비주의)에서 일반적이었던 것이라고.

“주류에 속하는 법학자들은 바라카를 받은 자들의 우열을 나누는 것이 힘의 크기가 아니라 힘의 행사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알라에게 받은 힘으로 어떤 일을 해냈느냐가 진정으로 그 사람에 대한 알라의 총애를 드러낸다고 보는 관점이지요. 다만 그 총애가 믿는 자들 사이의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힘의 크기가 곧 신의 총애인 건 아니라는 가르침엔 필시 법학자들의 교활한 생존본능이 녹아있을 것이었다. 법학자들 중엔 원시마법을 각성하지 못한 자들이 더 많은데, 그런 법학자들이 자신들의 지위와 권력을 보전하려면 그럴듯한 방어논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 잘 빠진 방어논리에 따르면 이슬람 세계의 각성능력자들은 여전히 “이 힘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신의 축복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법학자들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다.

“그들은 불이나 전기처럼 물리적인 현상을 빚는 기적이 기적 중에서 가장 하등한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참된 기적은 문맹이었던 예언자가 알라의 계시를 문자로 기록했던 것과 같이 정신과 영혼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고등한 힘이고, 그런 힘을 가진 자만이 진정으로 알라의 높은 뜻을 세상에 펼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공손하게 말을 올린 메리옘은 이어 샤히디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런 맥락에서, 샤히디가 거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베이징 성전에서의 승리는 샤히디가 알라의 총애를 남다르게 받는 자라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신께서 샤히디의 이름으로 퍼뜨리는 선전이 종교적으로 다소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을 때도, 원리주의 법학자들이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자신들이 만든 방어논리에 자신들이 묶여 있는 셈입니다.”

메리옘의 이러한 분석은 프로파간다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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