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05화 (405/561)

#42. 헤드헌팅 (5)

모두 배가 고픈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돼지들은 과식을 하지 않았다. 오직 욕심을 부리던 몇몇 개체들만이 성난 우두머리의 제지를 받았다.

무리를 통제한 세르도타도는 아주 소량의 먹이만을 섭취했다. 잠깐 입을 대고 끝내는 수준의 가벼운 열량보충이었다.

이후 세르도타도는 원수들의 냄새가 흘러오는 방향으로 주도면밀하게 접근했다. 절대로 풍하(風下)를 벗어나지 않는 노련함과, 주변 지형지물을 미리 확인해두는 교활함. 이는 경험이 풍부한 사냥꾼의 면모였다.

세르도타도의 입가에서 끈적한 타액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나는 초능력 돼지의 신경계에서 번뜩이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보며 생각했다.

‘원수들의 피와 살로 배를 채우기를 기대하는 건가?’

1킬로미터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것이라 해상도가 그리 높지 않았으나, 상황적인 맥락으로 미루어 유추 가능한 욕망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돼지는 때때로 다른 동물들을 사냥하여 잡아먹기도 하는 포식자다.

그리고 그 다른 동물의 범위엔 드물게나마 인간이 들어간다.

야생의 멧돼지나 혼종들은 물론이고, 농가에서 키우는 집돼지조차 주인을 살해하여 시체를 뜯어먹은 사례들이 보고된 바 있다. 마법의 시대가 돌아온 이후로 헌터들과 각국의 유관부처들 사이에서 중요도의 재평가가 이루어진 사례들이. 그래서 미국 농무부는 요즘 축산농가들을 대상으로 돼지 치아 관리의 중요성을 홍보하는 중이다.

세르도타도의 무리는 수십 건에 달하는 식인과 가축 사냥 전적으로 악명이 높았다.

사람을 사냥하는 경우엔 성인보다는 혼자 있는 어린아이들을 선호했다. 전속력으로 들이받아 단번에 쳐 죽이고, 그 자리에서 갈기갈기 찢어 무리가 나누어 물고 가는 식이다.

살해현장에 남기는 건 흥건한 핏자국과 희생자의 머리통이 전부였다. 한번은 CCTV에 세르도타도가 희생자의 머리를 앞발로 밀어 세우고 작품을 감상하듯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떠나는 모습이 잡히기도 했다.

돼지는 돌고래만큼이나 지능이 우수한 동물이다. 사람을 기준으로는 여덟 살 아이와 비교 가능한 수준.

그러니 현장에 머리통을 꼭 세워놓고 가는 건 아이의 순수에 야생의 잔혹함이 더해진 악성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매 인간사냥이 이런 식이니 접경지대의 지역사회가 격앙될 수밖에 없었다. 주지사를 비롯한 멕시코의 정치인들은 주민들에게 호언했다.

「우리는 그 식인 괴물이 반드시 죗값을 치르도록 할 것입니다! 모든 상황이 정부의 통제 아래에 있으니, 주민 여러분께서는 안심하시고 생업에 종사하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사태는 해결되지 않았다.

참다못한 주민들이 치와와의 주도(州都) 치와와 시에서 자경단을 결성했으나, 결성식 당일 연쇄적인 폭탄 테러가 터지면서 자경단의 핵심간부들과 핵심 각성능력자들이 모조리 핏물로 화해버렸다.

이 사건으로 구심점을 잃은 자경단은 얼마 못가 흐지부지 해체되고 말았다. 누구도 지도부의 공백을 채우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 이후 기자를 만난 전(前) 자경단 관계자는 자신이 정체불명의 세력으로부터 경고를 받았음을 증언했다. 총대를 메면 죽을 것이라고.

인터뷰를 했던 관계자는 다음날 자신의 집 문 앞에서 괴한의 총격을 받아 숨졌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기자가 연방 방위군(Guardia Nacional/멕시코 헌병군)에 신변보호를 요청했지만, 그로부터 불과 일주일 후 대로변 가로등에 목이 매달린 시체로 발견되었다.

폭탄 테러와 연이은 암살의 배후가 누구인지는 밝혀진 바가 없었다.

‘정보기관의 하청업자들일까, 아니면 이 땅의 마약영주와 터줏대감들일까.’

내가 보기엔 어느 쪽이 범인이어도 이상하지 않다.

주민들 사이에도 각성능력자들이 많으니, 일찌감치 무력감을 학습시켜 놔야 앞으로의 계획에 지장이 없겠다고 판단한 하청업자들의 소행이었을 가능성.

그리고, 비슷한 맥락에서, 주민들의 자체적인 무장이 달갑지 않은 카르텔 및 정치세력들의 예방적 선제타격이었을 가능성.

후앙의 군대에 속한 LCJ의 까사도르들이 괜히 이 먼 곳까지 북상해 올라온 게 아니다.

돼지 무리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경태가 지상에서 자욱이 일어나는 흙먼지를 보며 감탄했다.

“오, 저게 말로만 듣던 북미 돼지들의 집단 더스트 볼링인가 보네요. 위에서 내려다보니 제법 장관인데요?”

더스트 볼링(Dust Bowling)이란 일부 자연각성체들이 사용하는 연막차장 수법을 말하는 것으로, 어원은 당연히 옛 미국의 중부대평원을 휩쓸었던 황진현상(더스트 볼)이다.

생체질량이 큰 돼지들은 인간에 비해 단위시간 대비 각성확률이 현저하게 높다. 수명의 차이가 있는 만큼 평생에 걸친 각성확률을 따진다면 격차가 줄거나 비슷해지겠지만, 마법이 돌아온 후 몇 년 흐르지 않은 지금은 그런 식의 비교에 의미가 없었다.

각성확률이 높다는 건 이중각성체나 다중각성체가 출현할 가능성도 높다는 뜻이다. 염동력을 가진 개체가 의외로 드물지 않은 이유였다.

무리 중 염동력을 가진 돼지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넓게 퍼뜨려 먼지를 일으키는 데 사용했다. 건조한 고지대의 메마른 흙은 가볍게 긁고 흔들어주기만 해도 누렇게 뭉글거리는 먼지구름을 뿜어냈다.

단연 돋보이는 건 역시 우두머리인 엘 세르도타도.

이놈은 단순히 먼지구름을 일으키는 선을 넘어, 흙먼지를 끌어올리는 회오리를 장막처럼 두른 채로 움직였다. 이제껏 벗어난 적이 없었던 풍하(風下) 지대를 고속으로 이탈하여, 커다란 원을 그리는 형태로 풍상(風上)을 우회한다. 원의 가운데엔 최종미끼인 옷가지들이 존재했다.

회오리는 기본적으로 상승기류다. 회오리의 중심인 티-호그가 폭을 크게 잡고 지그재그로 달리자, 높게 일어난 흙빛 불투명함은 최종미끼를 둔 지점을 바람 부는 속도로 집어삼켜갔다. 각성능력자들을 제외한 그 어떤 인위적인 연막차장수단도 이 정도의 효율로 전장을 뒤덮긴 어려울 것이었다.

불투명한 전장은 후각이 뛰어난 돼지들이 인간을 상대하기 좋은 환경이다.

세르도타도가 지그재그로 달리며 그리던 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안쪽을 향해 서서히 조여드는 나선의 형태로 변화했다. 이렇게 하면 지속적으로 연막을 차장하면서도 원수들의 냄새가 원 안에 남아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무리와의 접촉을 유지하는 건 물론이다.

「솨아아아-」

지향성 집음기가 땅을 긁는 상승기류의 소음을 잡아냈다. 염동력의 흐름과 거친 입자들을 품은 바람은 평범한 바람과는 발생하는 소음의 결이 달랐다.

흙빛 회오리의 직경은 약 20미터 가량이었다. 내부의 공간은 돼지가 자신의 호흡과 감각기관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일 터.

경태가 무전을 날렸다.

“표적의 살상지대 진입까지 앞으로 약 30초.”

미끼의 배치는 냄새를 확산시킬 바람만을 고려한 게 아니다. 최종미끼를 들이받는 시점에서, 돼지는 저에게 가장 불리한 지형에 들어서게 되어있다.

최종미끼, 즉 사냥꾼들의 옷가지를 입혀놓은 마네킹들은 가발과 특수분장 마스크까지 씌워 멀리서 보기엔 사람과 구분이 가지 않았다. 사냥꾼 모형답게, 각각의 마네킹들은 등에 총기를 질러 메고 있었다.

화약과 금속의 냄새는, 1차적으로는 돼지들의 접근을 느리고 신중하게 만들어줄 장치였다. 그럼으로써 이쪽의 헌터들이 각자의 위치를 확보할 시간을 조금 더 길게 잡을 수 있게끔.

그리고 2차적으로는 사냥터에 미리 화기(火器)의 냄새를 깔아놓기 위한 장치였다. 이렇게 해놓으면 돼지들은 새로운 화기의 냄새에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당소 헤페 안토니오, 위치에 도달.」

「당소 헤페 부르고스, 위치에 도달.」

「당소 헤페 까르멘, 위치에 도달…….」

이쪽에서 지정한 지점들을 윙슈트 호킹(Hawking) 공중강습으로 신속하게 확보하는 헌터들은 예외 없이 스페인어 호출부호를 쓰고 있었다. 가장 앞에 나서서 근접포위를 담당하기로 한 게 LCJ의 까사도르들인 까닭이다.

정치적 목적이 다분한 사냥이기에, LCJ의 까사도르들은 현장의 영상을 담기 위한 헤드 캠을 줄줄이 달고 있었다. 기껏 식인 돼지를 잡아도, 정치적 경쟁자들이 언론과 인플루언서들을 동원해 악의적으로 진위를 물고 늘어지면 고생한 만큼 재미를 보지 못할 테니까.

통신중계 기능이 있는 전술통제기에선 분할 모니터를 통해 그러한 캠 화면들을 제한 없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현장 화면을 연결하자 스피커에서 멕시코인 헌터들의 거친 숨소리들과 숨죽인 대화들이 흘러나왔다.

「후우, 후우……. 빌어먹을. 저 회오리 보여? 진짜 사람 난감하게 만드는 사냥감이로군.」

「누가 아니래? 이래서 내가 대전차지뢰로 지뢰원을 깔자고 했던 건데.」

「정신 차려, 이 빡대가리(Cabrón)야. 대전차지뢰가 터지면 부산물이 남아나겠냐? 저 돼지새끼의 가죽만 경매에 부쳐도 푸에르토 바야르타의 모든 애들을 한 끼씩 먹일 돈이 나올 텐데. 우리는 이제 까사도르야. 이제 그놈의 군인 뇌를 좀 버리라고, 하사.」

군 시절의 계급이 사무장(Maestre)이 아니라 하사(Sargento)인 것으로 미루어, 하사라고 불린 자의 현역 시절 소속은 항만보안대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곳은 해군 소속임에도 육군의 계급을 준용한다.

험준한 산악지형에서 호킹을 하는 것만 봐도 보통은 아닌 인력들이다.

나는 기내무전으로 파일럿에게 지시했다.

“사냥감이 미끼를 덮치면 곧바로 상대고도 6백 피트까지 하강해라.”

「예.」

일단 본격적인 교전이 시작된 다음에는 저공비행을 해도 무방하다. 이는 몰이의 수단이자 관측의 방편이었다. 당초엔 우선순위가 낮다고 생각했지만,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돼지가 부리는 재주에서 쓸 만한 코드가 있는지 보기는 해야 할 것 아닌가.

너무 낮게 내려가면 유탄(流彈)을 맞을 우려가 있으므로, 관측 고도는 6백 피트(182미터) 정도면 괜찮을 것이다.

살상지대에 들어선 돼지는 흙빛 회오리를 흩어버렸다. 이미 넘실거리는 불투명함만으로도 총화기로부터의 안전을 확보하기 충분하니, 연막을 더하는 데 마력회로의 점유율을 낭비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먼지구름을 걷어내는 바람보다 느리게 움직이지만 않으면 된다.

세르도타도는 이제 발굽을 지면으로부터 살짝 띄운 채로 달리기 시작했다. 중국인들은 허공답보라고 부르고, 영미권에서는 윈드 워킹 내지 윈드 러닝이라 칭하는 능력.

‘재주도 많군.’

처음 조우했을 때, 돼지가 맡은 내 냄새는 다른 사냥꾼들의 냄새와 뒤섞여있었다. 그때도 나는 냄새 지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니, 돼지는 나보다 다른 사람들의 체취를 더 강하게 기억할 것이었다. 내 냄새를 아예 맡지 못했을지도 모르고.

즉, 돼지는 그때 경험한 내 존재감과 내 체취를 일대일로 연결 지을 재간이 없다.

고로 이번 사냥에 미끼로 투입한 내 몫의 체취는 진짜가 아니었다. 당시에 함께 있었던 다른 사냥꾼들의 체취만으로도 충분할 거라 여겼기에.

내 존재감을 위장하는 건 마네킹들을 각성수 아래에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마침내 나무 아래의 목표물들을 포착한 티-호그는 혈중 아드레날린 농도의 색채가 급격하게 짙어졌다. 색채의 변화는 마네킹이 총을 손에 들고 있지 않음을 확인한 순간 절정에 이르러, 폭발적인 가속과 포탄 같은 돌진으로 터져 나왔다.

마네킹들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진다. 요란하게 비산하는 파편들 속에서, 돼지는 자지러지게 놀라 울부짖었다.

「뀌이이이익-!」

속았다는 걸 깨달은 돼지가 스프링처럼 몸을 튕기며 방향을 꺾어 달아난다. 덩달아 소스라친 나머지 무리 또한 전력질주로 우두머리를 뒤따랐다.

그러나 무리의 위치는 이미 불리한 지형 속 모든 퇴로가 차단된 사지(死地)의 한가운데였다.

「¡Fuego! ¡fuego!」

흙먼지 자욱한 사냥터를 향해 다양한 구경의 사격이 집중되었다.

사격을 시각적으로 유도하는 지표는 전술통제기에서 비스듬히 내리쏘는 적외선 레이저다. 통제기 하단에 탑재된 고출력 표적지시기는 자욱한 흙먼지 속으로도 제법 선명한 빔을 쏘아 보낼 수 있었다.

지상에 배치된 인력들은 이 빔이 가리키는 지점을 쫓아가며 화력을 집중하기만 하면 된다.

비록 빔의 말단까지는 보이지 않아 사격의 정확도에 한계가 있었으나, 그 오차는 통제기에서 전송하는 보조적인 데이터들과 무전을 통한 지시들로 보정 가능했다.

「뀌익! 뀌이이익!」

무리 내의 돼지들이 연달아 죽어 넘어진다. 중량감 넘치는 몸뚱이들이 관성으로 구르거나 미끄러지고, 몇몇 시체는 신경계의 오작동으로 반복해서 허공을 걷어찼다. 비탈을 따라 굴러 내리다가 날카로운 돌부리에 걸려 배가 찢어지는 시체도 있었다.

국경 양쪽에 걸쳐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초장거리 추적을 대비하긴 했지만, 나는 돼지 한 마리 잡는 걸 그렇게까지 길게 끌 생각이 없었다. 파이오니어 사냥꾼 여단은 내 영향력을 보여주는 들러리 역할만 해주면 족하다.

그러나 잠시 후, 엘 세르도타도는 상처 하나 없이 최초의 살상지대를 벗어났다.

사냥이 이대로 끝날 것을 확신했던 경태 녀석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머리를 갸우뚱했다.

“뭐지? 버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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