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04화 (404/561)

#42. 헤드헌팅 (4)

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에 서명한 백악관 행정명령 14027호에 따르면, 미국 본토와 국경이 닿아있는 인접국가 중 ‘동맹국이 아닌 국가’는 미국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에 피해를 준 전적이 있는 월경(越境) 자연각성체를 사냥할 때 반드시 미국의 동의를 먼저 구해야 한다.

이 동의는 미국 정부의 자격심사를 통과한 미국기업의 주도적 참여로 갈음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미국기업 주도적 참여란, 멕시코의 수렵기업이 오직 협력업체로서만 사냥에 참가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기자들 앞에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

「왜냐고요? 그런 각성체들에게는 우리 미국의 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미국 시민들이 입은 피해만큼의 지분이!」

미국 본토와 육상에서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는 캐나다와 멕시코 둘뿐인데, 캐나다는 파이브 아이즈의 일원이므로, 행정명령 14027호는 사실상 멕시코 하나만을 겨냥하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자리에 있었던 기자 하나는 공격적인 질문을 꺼내었다.

「그렇게 따지면 멕시코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에 피해를 준 전적이 있는 자연각성체에겐 멕시코의 지분이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럼 그런 각성체를 잡을 땐 미국도 사전에 멕시코의 동의를 구해야 맞지 않나요? 왜 당신의 행정명령엔 그런 내용이 빠져있는 거죠?」

놀랍게도, 백악관 미치광이에겐 나름 그럴듯한 방어논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좋은 질문이군요! 바로 답변 드리지요. 그것은 멕시코 자신의 책임입니다!」

「맙소사. 이것도 멕시코의 잘못이라고요?」

「그렇습니다, 기자 아가씨. 그들의 유해 자연각성체 구제 프로그램은 정말 한숨이 나오는 수준이에요. 인력도, 장비도, 예산도! 무엇하나 충분하게 투입되는 게 없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자기네 앞마당도 관리를 못하기 때문에 우리 미국 시민들의 피해가 더 늘어나고 있단 말입니다! 권리를 요구하려면 먼저 의무를 다해야지요!」

「실례지만, 대통령께선 국제법상의 관습과 멕시코의 주권을 무시하고 계십니다. 이대로 간다면 미국은 국제사회의 다른 나라들로부터 외교적 존중을 받을 수 없을 거예요.」

「외교적 존중을 받을 수 없다? 거꾸로 묻고 싶군요. 대체 이 세상 어느 나라가 우리 미국을 무시할 수 있단 말입니까? 미국을 배제한 국제질서는 그게 무엇이든 의미가 없는데.」

「…….」

「들어봐요. 이건 기존의 카르텔 문제와 똑같은 겁니다. 자기네 치안도 유지하지 못해서 미국에 피해를 주는 것과, 자기네 유해조수를 관리하지 못해서 미국에 피해를 주는 것! 둘 다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런 실패국가를 상대로 동등한 권리를 인정해준다? 그건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배임행위를 저지르는 겁니다!」

「멕시코가 그렇게 실패국가로 전락한 데에 우리 미국의 책임은 없다고 보시나요?」

「책임? 그런 건 없습니다.」

「진심이세요? 대통령님께서 양국의 역사를 얼마나 알고 계시는지 의문스러워집니다.」

「물론 100% 진심이죠! 나는 역사를 아주 잘 알고 있어요! 학교를 다닐 때도 항상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는걸요?」

「…….」

「하지만 역사는 그냥 지나간 일일 뿐입니다. 그들은 항상 과거사에만 매달리고 남의 잘못만 따져대니까 발전이 없는 거예요. 우리가 그동안 멕시코에 얼마의 예산을 퍼부었는지 알기나 하십니까? 또 멕시코의 기업과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 가는지는 아십니까? 더 이상은 안 됩니다. 그들은 더 이상 우리 미국의 경제를 약탈하지 못할 겁니다! 내가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겠어요! 왜냐? 내겐 언제나 미국이 첫 번째니까요!」

「돌겠군요.」

「오, 축하드립니다! 너무 기뻐서 돌아버리는 건 행복한 일이지요!」

멕시코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그러나 멕시코 공식적인 입장이 어떻든 간에, 실질적으로 멕시코에겐 미국의 행정명령을 무시할 만한 힘이 없었다.

멕시코 수출의 80%를 미국 시장이 차지하는 상황에서, 백악관 미치광이가 다음 규제로 관세인상 카드를 만지작대고 있었으니까. 작금의 멕시코엔 손실을 감수하면서 대안적 경제체제를 구축할 만한 체력이 남아있지 않다.

여하간, 그 행정명령으로 인해 사냥이 까다로워진 면이 있는 반면, 편해진 부분도 없잖아 있었다.

경태 녀석이 중얼거렸다.

“어디선가 분명히 정보가 샜는데……. 직접적인 공격은 없네요.”

이쪽이 드론을 투입하기 무섭게 매사냥꾼들이 나선 것으로 미루어, 페루쵸와 마르띠네즈 제독을 견제하는 자들은 일찌감치 이번 사냥의 정보를 입수하고 대기 중이었다고 봐야 한다.

정보를 입수한 경로는 부패한 관료들일 수도 있고, 후앙의 군대 내부의 첩자들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쯤 내가 탄 이 전장통제기를 향해 대공미사일이 날아왔어도 이상하지 않다. 아니면 식별부호가 없는 공중기병들이 달려들거나.

그러나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진 않았다. 이 통제기는 미국 국적의 항공기이고, 이 기체가 격추당하는 건 곧 외교 문제가 되어버리는 까닭이다.

경태가 낮게 큭큭거렸다.

“힘세고 돈 많은 진짜 광기 앞에선 카르텔들도 분노조절 잘하는 가짜 광기가 되어버리는군요.”

현 미국 대통령은 예전부터 멕시코 마약 카르텔들을 테러단체로, 또 멕시코를 테러지원국가로 지정하고 싶어 했다.

마약과의 전쟁이 테러와의 전쟁으로 업그레이드되면 그때는 미군이 미국의 헌터들과 함께 멕시코 영토로 밀고 들어오는 수가 있었다. 아니면 진짜로 순항미사일을 쏘고 공격용 드론과 폭격기를 띄우거나.

정치인들이나 정치인들과 긴밀하게 엮인 카르텔들도 이 정도 위험부담을 감수하긴 싫겠지. 자기네 본업과 본거지가 위협을 받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나는 전술통제기의 콘솔로 미끼를 배치할 좌표를 찍어주었다. 미끼 설치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비행이 가능한 드론 바이크 기수들이 담당했다.

「1번 미끼 원, 설치 완료.」

돼지를 유인하기 위한 미끼는 세 종류로 구성되어있었다.

하나는 지난날 나와 함께 헬기 추락현장에 진입했던 헌터들의 체취가 밴 옷가지들.

또 하나는 맥주에 옥수수를 넣어 발효시킨 알코올 함유 습식 미끼.

마지막 하나는 옥수수 150파운드에 설탕 8파운드와 효모 1팩, 그리고 인공적인 과일향을 첨가하여 열흘간 발효시킨 평범한 습식 미끼.

지형과 바람을 읽고, 각성체의 흔적을 더듬거나 주요 이동로를 파악하여 미끼를 배치하는 능력은 패스파인더의 기량을 가늠하는 하나의 척도다. 나는 황금기의 눈만 가지고도 최고의 기량을 지닌 패스파인더 팀을 흉내 낼 수 있었다.

「미끼 원 감시화면이 들어옵니다……. 지금.」

통제 콘솔에 미끼 원 곳곳을 비추는 카메라 화면이 떠오른다. 이 화면은 헌터들의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TAK/Team Awareness Kit)으로도 확인 가능했다. 본래는 미군이 쓰려고 개발했다가 기능을 제한한 버전을 민간에 풀고, 그것을 다시 개량하여 헌터들을 위한 기능을 추가한 어플리케이션이었다.

발효된 곡물의 향기는 인간의 체취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로 퍼지며, 또한 야생 돼지들이 매우 좋아하는 냄새다.

나는 먹이에 이끌린 돼지들이 2차적으로 인간의 체취를 맡을 수 있도록 미끼를 배치했다.

내가 생각하기로, 엘 세르도타도가 그간 파이오니어 사냥꾼 여단과 마주치지 않았던 원인은 전율하는 거인의 존재감이었다. 원한을 잊은 것은 아니지만, 사냥꾼들과 격돌했던 장소로 돌아가 보려 할 때마다 점점 더 거대해지는 거인의 존재감에 가로막혔던 게 아닐까 하고.

그러니 거인의 영향권 바깥에서 원수들의 냄새와 마주친다면, 도망을 치기보다는 일단 냄새의 근원을 파악하는 걸 우선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다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망설임으로 그 주변을 맴돌기만 해도 내 목적은 달성되는 셈이다. 그렇게만 되면 내 눈의 이상성이 드러나지 않는 자연스러움으로 사냥을 이끌어갈 수 있을 테니.

「2번 미끼 원, 설치 완료.」

「3번 미끼 원, 설치 완료.」

차례차례 미끼 원들이 설치된다. 나는 들어오는 화면들을 보며 생각했다. 독 먹이를 쓸 수 있다면 조금 더 일이 편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나 독 먹이 사용은 불가능하다. 특정 동물만을 유인해서 죽일 수 있는 독 먹이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생태계 보호 차원에서 금지되어있는 까닭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명목상 부산물을 얻기 위한 사냥에서 독을 쓰는 건 어불성설이다. 독을 먹고 죽은 돼지의 불알을 어떤 미친 인간이 약으로 쓴단 말인가.

같은 맥락에서 독이 아닌 다른 약물들도 같은 맥락에서 사용하기가 곤란하다.

‘불알 두 쪽에 천사백만 달러를 쓰는 부호라면 약재의 정순함에 대한 집착 역시 남달라야 정상이겠지…….’

돈 많은 의뢰인들이 공급자 지정계약을 넣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부분에 있다. 각성체 부산물이 최상의 상태로 인도되기를 바라는 마음. 이러한 유형의 의뢰인들은 자기가 받은 상품의 성분 분석도 빠트리지 않는다.

다만 미끼에 알코올을 첨가하여 사냥감의 판단력을 흐리는 일은 가능했다. 발효의 베이스인 맥주의 알코올은 금방 기화되어 사라지지만, 젤라틴 정제 알갱이에 들어있는 알코올은 야지에 두어도 제법 긴 시간 동안 보존된다.

미끼에 알코올을 넣는 건 선진국에선 사냥감을 난폭하게 만들어 부수적 피해를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금지되어있는 행위지만, 여기는 그런 규제가 존재하지 않는 멕시코 땅이었다.

라이언 닐슨은 이것을 또 하나의 작은 현실타협으로 받아들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가 설치한 미끼 원들은 다양한 동물들을 끌어들였다.

육상동물 중에서는 베어드 맥(Baird's tapir)이나 사향 돼지(페커리), 설치류, 토끼 따위가 주로 꼬였는데, 이 땅의 토착생물들은 맥과 들소를 제외하면 대체로 생체질량이 작은 편이어서 우리가 찾는 외래종과 구별이 잘 되었다.

티-호그의 무게는 사향 돼지의 열 배 이상이다. 엘 세르도타도쯤 되면 아마 스무 배까지도 차이가 날 것이다.

각각의 미끼원들은 수십 킬로미터의 거리를 두고 설치되었다.

사냥에 참가하는 기업들- 파이오니어 사냥꾼 여단과 멕시코 LCJ의 헌터들은 그보다 더 넓은 영역에서 체공하며 강습 및 차단선 전개를 준비 중이었다. 여차하면 하루에 1천 킬로미터 이상을 달리기도 하는 자연각성체를 잡기 위해선, 때로는 종심이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몰이와 기동 포위가 필요하기도 한 까닭이었다. ‘상식적으로’ 국경 양쪽에 예비전력을 두어야 하는 이유다.

“온다.”

나는 일찌감치 포착한 다수의 광점들이 계곡을 타고 올라오는 과정을 주시했다. 유난히 밝은 하나는 어지간한 불곰을 능가하는 생체질량이었다. 역시나, 돼지들의 무리는 미끼의 냄새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내가 좌표를 찍어주자, 지상에서 분산 추적을 실시하던 부하들 중 일부가 드론 바이크 팀의 수송지원을 받아 신속하게 위치를 변경했다. 보는 눈들을 위한 상황 연출이었다.

표적 정보는 실시간으로 공유되었다. 패스파인더 채널을 통해 사냥꾼 여단과 LCJ 양측으로부터 질문이 들어왔다. 목표를 발견한 게 맞느냐고.

경태가 무전기를 쥐고 대꾸했다.

“이제부터 그걸 알아봐야죠! 자, 다들 움직입시다. 고, 고, 고!”

각성체 돼지 무리는 숲의 그늘과 계곡지형을 통해 주로 이동했다. 무리를 이끄는 개체에게 하늘에 대한 경계심이 있는 탓일 것이다. 새끼들을 죽인 원수들부터가 하늘을 나는 적이었고, 그날 이후로도 하늘의 적에게 쫓긴 경험이 많을 테니까.

돼지는 기본적으로 시력이 좋지 못하다. 안력이 강화된 각성체라도 인간 기준으로는 그냥저냥 나쁘지는 않은 수준에 머물 만큼.

그리고 목뼈의 구조적 한계로 인해, 돼지의 시야각은 위쪽으로 최대 65도까지가 한계다.

그러니 엘 세르도타도가 하늘을 편집증적으로 경계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각성체 돼지의 청각을 고려하면, 공중으로부터의 추적과 감시는 고도를 높게 잡아야 안전했다.

「표적을 확인했습니다.」

지상 풍하(風下)의 매복 팀으로부터 들어오는 육안관측 보고.

내 눈엔 돼지들의 허기가 선명하게 보였다. 틈날 때마다 인간 거주지를 습격하는 폭력적인 돼지 무리는 그 활동량 때문에라도 배가 쉽게 꺼질 수밖에 없었다.

엘 세르도타도로 추정되는 개체는 선두에서 무리를 이끌었다.

항상 엄폐물을 확보하며 전진하고, 그때마다 머리를 휙휙 돌려가며 냄새를 맡는 모습은, 이 식인 티-호그가 그저 인간들의 정치적 사정과 행운만으로 여태껏 살아남은 게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먹이의 냄새를 맡은 돼지 무리가 콧구멍을 벌렁거린다. 몇몇은 성급하게 튀어나가려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덩치 큰 티-호그는 거칠고 위협적인 움직임으로 무리를 진정시킨 후, 습식 미끼가 배치된 지점 주변을 돌아다니며 위험의 유무를 살폈다. 살피는 반경은 대략 백오십 미터 가량. 염동력을 넓게 퍼뜨려 지면에 가벼운 압력을 가하는 식의 행동은 필시 곰덫 같은 트랩을 학습한 결과일 터였다.

「쿠륵-! 쿠륵-!」

「푸르릉-」

우두머리의 허락이 떨어지자 돼지 무리가 일제히 미끼에 달려들었다. 숨겨진 카메라를 통해 기뻐하는 짐승들의 숨소리가 전해졌다.

이 와중에 세르도타도는 홀로 거리를 두고 제 무리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머리를 돌렸다.

바람이 불어오는 저편엔 사냥꾼들의 체취가 밴 옷가지들이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