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헤드헌팅 (3)
작금의 멕시코에서, 주요 정치인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후원하는, 혹은 자신들을 후원해주는 엽사집단을 최소 하나씩은 거느리고 있었다.
이는 멕시코의 엽사집단을 지칭하는 표현에 훈타(Junta)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훈타는 사전적으로 연합·집회·모임·위원회 등을 뜻할 뿐이지만, 관용적인 쓰임새로는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군사정권(밀리터리 훈타)을 의미하는 까닭이다.
즉 정치인들과 밀월관계가 있는 엽사집단을 까사도르 훈타라고 부르는 데엔 향후 민주주의의 존속에 대한 우려가 녹아있는 것이었다.
1세계의 시민들이 보기엔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나 싶겠으나, 멕시코는 마법이 돌아오기 전 치렀던 대선과 전국선거 기간 동안 132명의 후보자들이 무더기로 암살을 당했던 나라다.
이마저도 순수하게 죽은 사람만 헤아려서 132명이고, 실제로 이루어진 공격과 테러의 합계는 무려 5백 회가 넘어간다. 약 반년에 걸친 선거기간 내내 하루에 꼭 서너 명씩은 공격을 받았다는 의미였다.
이런 나라에서 각성능력자들이 무더기로 튀어나오기 시작했으니,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들을 지지하는 각성자들이 정치인 개개인의 경호원 내지 사병(私兵)을 자처하기 시작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정치인들도 우선 자기가 살기 위해 사병을 모으려 들었고.
혹은, 정치인들과 이미 커넥션이 있던 카르텔 무장조직들이 단순히 간판을 바꿔 다는 경우도 많았다. 내 생각엔 이런 경우가 절반은 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모인 정치적 사병들은 당연히 정치깡패가 되기 쉬웠다.
다만 서로가 총을 들고 있으면 도끼를 든 야만인들의 예의가 성립하는지라, 무장한 지지자들 사이의 무력충돌은 멕시코 국민들이 일상으로 느끼는 선을 넘는 일이 드물었다. 일일 사상자 수가 평균적으로 한두 자릿수에 머물렀다는 말이다.
대신이라고 해야 할까. 정치인들과 연결된 엽사집단들은 주민들의 민원을 듣고 해결해줌으로써 정치인들의 지지도를 끌어올리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선두주자가 다름 아닌 배불뚝이 페루쵸였다. 손목에 오메가 씨마스터 시계를 찬 페루쵸는 지지자들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저 페루쵸와 「팔랑헤 데 후앙(후앙의 군대)」은 오직 조국과 국민들에게 봉사하기 위해서만 존재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고민을 저희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저희의 힘이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달갑잖게도, 후앙의 군대는 여전히 후앙의 군대였다. 내가 썼던 가명이 남긴 흔적.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페루쵸의 당여(黨與)들이 진정으로 군대에 가까운 조직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특히 당내 각성능력자들이 힘을 합쳐 창설한 엽사집단 「로스 까사도레스 데 후앙(후앙의 사냥꾼들)」은 멕시코 유수의 엽사집단들 가운데 하나로 손꼽혔다.
말은 당내 각성능력자들이라고 하나, 주요 간부들은 모두 해군 출신이다. 마르띠네즈 제독의 전역한 부하들인 것이다. 제독이 가진 팔랑헤 데 후앙의 지분을 감안하면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동안 제독이 제공한 인력·자금·무기·전투력 등을 고려할 때, 팔랑헤 데 후앙의 절반쯤은 마르띠네즈 제독의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수연은 제독의 퇴역 검토가 당내 주도권 다툼과 엮여있을 가능성을 점쳤다.
「제독이 페루쵸에게 보내었던 변함없는 후원과 지지를 돌아보건대, 스스로 물러나는 용단을 보임으로써 페루쵸의 리더십과 당의 결속력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아름다운 양보지만, 그런 양보를 함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지지자들을 손에 넣을지도 모르지요.」
“훗날 페루쵸의 뒤를 이어 당수 자리에 오르기 위한 포석일 수도 있겠지.”
「그렇습니다. 페루쵸가 대권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을 때 그를 대신해 당수가 된다면, 신 정권이 실정을 저지르지 않는 한 다음 대통령 자리는 제독의 몫이 될 공산이 큽니다. 아니더라도 대통령을 배출한 적이 있는 원내정당의 원로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테고요.」
어쨌든, 로스 까사도레스 데 후앙, 이하 LCJ가 악명 높은 티-호그 사냥에 도전하는 건 당의 지지기반을 북부로 넓히는 문제와 연관이 있었다.
다른 당의 무장조직들이 줄지어 도전했음에도 잡는 데 실패한 돼지의 목을 따버린다면, 북부의 주민들 사이에서 단숨에 인지도를 얻을 수 있을 터.
그래서 나는 엘 세르도타도를 황금 불알을 가진 돼지로 만들었다.
라이언 닐슨과 통화한 날, 그가 들려준 정보와 그에 기초한 내 추측을 들은 경태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아이구야……. 제독의 부하들이 애를 먹을 만도 했네요. 딴 나라 뇌물 처먹고 비협조적으로 구는 현지 관료들, 음흉하게 겐세이를 놓는 미국의 위장사업체들, 그 위장사업체들보다 더 직접적으로 방해를 해댈 다른 정당의 엽사집단들, 여기에 후앙의 군대와 원수를 진 카르텔들까지. 성공하면 도리어 이상한 조건 아닙니까?”
경태의 말대로, LCJ의 사냥엔 훼방꾼과 경쟁자들이 과도하게 많았다.
게다가 사냥터의 환경도 좋지 못했다. 동서의 해안지대 일부를 제외하면, 미국-멕시코 접경지역은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잡혀있는 지형이었으니까. 엘 세르도타도의 무리, 그리고 사냥을 방해하려는 자들에겐 전장의 안개를 제공하는 광활한 전략적 배후지대가 존재하는 셈이었다.
사냥 첫날, 파이오니어 사냥꾼 여단과 LCJ는 시작부터 다수의 탐색용 드론을 상실했다.
「오로라 1, 로스트!」
「오로라 3, 로스트!」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다른 민병대들하고는 잘 합의 본 거 아니었어? 왜 자꾸 떨어지는 거야?」
사냥꾼 여단의 패스파인더(수색정찰 전문 헌터) 공용 채널이 소란스럽다. 그야 탐색 개시 후 채 한 시간도 지나기 전에 다섯 기나 되는 드론을 잃었으니 당혹스럽기도 하겠지. 사냥꾼 여단의 헌터들은 멕시코의 자생적인 방해세력들에 대해선 이해가 깊지 못했다.
“찾았다.”
전기추진 복엽기에 타고 전장을 감제하던 나는 드론을 연거푸 떨어뜨린 원흉을 포착했다.
원흉의 정체는 각성체 검독수리였다. 평범한 자연각성체가 아니라, 사람 손을 타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개체.
맹금류를 훈련시켜 드론 요격에 투입하는 건 세계 최강의 군대라는 미군도 진지하게 연구한 적이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걸 드론방어대책 중 하나로 정식 채택하진 않았는데, 이는 딱히 효과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맹금류의 조달과 훈련, 전문병과 육성과정 신설, 도입한 맹금류의 유지관리 인프라 구축 등에 비용이 많이 들고, 용처가 매우 한정적이며, 개체별 능력 편차도 큰 편이라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지.
하지만 마법이 돌아온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각성능력자들이 자기 몸으로 하는 매사냥이 아닌,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매사냥(Falconry) 전문가(팰커너/응사鷹師)들이 본격적으로 드론 방어 시장에 진출한 것이다.
남의 탐색을 방해하는 데엔 이런 매사냥꾼들을 동원하는 것만큼 은밀한 방법도 드물다.
‘설령 노출되더라도 발뺌을 하기 쉽고.’
막말로 매사냥꾼 측이 자기 새가 엉뚱한 표적을 잡았을 뿐이라고 우겨버리면, 그게 사실이 아님을 무슨 수로 증명한단 말인가. 법정 싸움으로 가더라도 의도를 증명하지 못하면 물질적 피해에 대한 보상이나 받아낼 수 있을 따름이다.
검독수리를 부리는 응사는 한 눈에 보기에도 몽골로이드 계통으로 보이는 황인이었다. 필시 LCJ의 견제세력이 외부에서 초빙해온 용병일 터. 세계 응사 인력시장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알타이 카자흐족이 아닌가 싶었다.
“맞출 수 있겠나?”
내 물음에 경태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저 김경태입니다, 형님.”
경태는 저속으로 비행하는 전술통제기의 측면 출입구를 통해 대구경 대물저격총을 조준했다.
록히드마틴 사(社)에서 제작한 다이아몬드형 박스드 윙(Diamond-shape boxed wing) 복엽기의 비행은 느리면서도 안정적이었다. 엔진을 꺼도 추락하지 않고, 바람을 잘 타면 정지비행까지 가능한 경량 복엽기의 특징이었다.
이런 안정적인 기반을 바탕으로, 경태는 숨을 한 번 고른 후 방아쇠를 당겼다.
투-웅!
염동차장으로 억제된 둔탁한 총성. 높은 고도에서 드론을 향해 하강을 개시하던 검독수리가 핏빛으로 폭발했다. 팍 터져 나온 깃털들이 바람결에 나풀거리며 흩어진다.
지상의 나무그늘에서 하늘을 보고 있던 몽골로이드 팰커너가 분노의 색채에 젖어 들리지 않는 고함을 내지른다. 분명 자기 새에 대해 보험을 들어놨겠으나, 임무가 임무인 만큼 보상을 청구하긴 어려울 것이다.
드론을 사냥하는 맹금류는 한 마리가 더 있었다. 이쪽은 송골매였다.
「-!」
검독수리가 맞이한 재난을 전파받았는지, 송골매를 다루는 응사가 자신의 새에게 황급히 지시를 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시를 전하는 수단은 송골매의 몸에 달아놓은 통신장치였다. 고위험 수렵업계의 매사냥은 전통을 보존·계승하는 기존의 매사냥과 목적부터가 달라, 길들인 맹금류에게 위치추적장비와 통신장비, 카메라 등을 달아놓는 게 보통이었다.
맹금류의 지능은 기본적인 지시를 익히기에 충분한 수준이다. 지시를 받은 송골매가 노리던 드론을 포기하고 주인이 있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투-웅!
다시금 억제된 총성이 울린 후, 송골매는 약 1초의 시차를 두고 폭발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제아무리 각성체라지만, 맹금류의 체급으로 50구경 철갑탄을 맞으면 형체를 보존하기 어렵다. 매의 죽음을 파악한 주인은 발작을 일으켰다.
경태 녀석이 반쯤 총구를 거두며 묻는다.
“더 없습니까?”
“당장은.”
내 확인을 받은 경태가 사냥꾼 여단의 패스파인더들에게 통보했다.
“어이, 친구들. 조금 전까지 드론을 떨어뜨리는 매사냥꾼들이 있었거든? 근데 있었다가 없어졌어. 그 나쁜 악당들은 방금 이 까삐딴 킴이 처리했으니까 안심하라구.”
매사냥꾼이 있었다는 말에 공용 무전망이 잠깐 동안 격한 짜증과 욕설로 얼룩졌다. 까삐딴은 이번 사냥에서 경태가 쓰기로 한 호출부호였다.
드론의 카메라는 하방에 배치되고, 드론을 잡는 맹금류는 그보다 높은 고도에서 내리꽂히기에, 당하는 입장에서는 소리가 잡히거나 육안으로 관측하지 못하면 그 존재조차 파악하기 힘들었다. 헌터들이 맹금류 사이즈의 비행체를 먼 거리에서 포착할 만큼 우수한 레이더를 가지고 다니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다고 해서 드론 상방에도 카메라를 배치하는 건 무의미한 낭비다. 평균 시속 4백 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쇄도해 들어오는 각성체 맹금류를 무슨 수로 사전에 포착하나.
무전망의 소란이 가라앉고 나서, 이번 일을 위해 경태가 친분을 더해놓은 잭이 확인하듯 질문을 던졌다.
「이봐, 킴. 처리했다는 게 혹시 죽였다는 말이야? 내 말은, 설마 매 말고 사람까지 죽여버린 건가 해서.」
“당연하지! 남의 사냥을 방해하는 건 원래 목숨을 내놓고 하는 짓이잖아?”
「…….」
“농담이야, 농담. 아무렴 드론 몇 기 떨궜다고 사람을 죽였을까. 날개 달린 파트너를 잃어서 속 깨나 쓰리겠지만, 어쨌든 잘 살아있으니 걱정하지 마.”
「농담을 너무 살벌하게 하잖아……. 아무튼 이제 괜찮다 이거지? 남은 드론을 회수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잘됐네. 이럴 줄 알았으면 나파(NAFA)에다가 협력 요청을 해둘걸.」
나파는 북미 매사냥꾼 협회(North American Falconers Association)의 약어였다. 과거엔 평범한 전통협회에 전국 단위 동호회를 더한 수준의 단체였지만, 지금은 대대적인 투자와 정책지원을 받아 그 규모와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다.
「또 어떤 방해가 있을지 모르니 계속해서 잘 부탁할게. GHSS 컨소시엄의 패스파인더 팀을 초빙해왔다더니, 실력이 정말로 좋네. 내가 듣던 명성 그대로야.」
잭은 경태가 처리했다는 말을 경태가 고용해온 인력이 처리했다는 뜻으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게 자연스럽기도 하고. 표면적으로 나는 이번 사냥에 경력이 우수한 패스파인더 팀과 전장통제팀, 그리고 일부 장비들을 지원한 것으로 되어있었다.
동승한 라일라가 경태를 보며 감탄했다.
“당신, 총 진짜 잘 쏘는구나. 칠각기사단 전체를 통틀어도 당신처럼 쏘는 사람은 없을 거야.”
경태는 먼 곳으로 아련한 시선을 던지며 답했다.
“별로 칭찬받을 게 아니라는……. 이 김경태가 총을 잘 쏘는 건 너무나 당연해서 자연의 섭리와도 같은 일이라는…….”
“……? 말투 이상해.”
지상으로는 십 수 킬로미터에 걸쳐 변변한 포장도로 한줄기 보이지 않는 황량한 산맥이 스쳐지나갔다. 엘 세르도타도의 최신 목격정보가 있는 치와와 주(州) 서부의 산악지대였다.
하늘에서 내려다볼 때, 엘 세르도타도 정도의 질량을 지닌 고 강화계수 각성체라면, 내 눈엔 멀리서도 별빛 같은 광점이 찍힌 것처럼 보인다.
더욱이 이 돼지는 저가 우두머리인 각성체 돼지들의 무리를 끌고 다닌다. 일단 내 가시거리 이내로 들어오기만 하면 놓칠 수가 없는 조건이었다.
일단 찾아낸 다음에는 냄새로 유인을 하면 된다.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해 보이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