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02화 (402/561)

#42. 헤드헌팅 (2)

이때의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방목이라……. 그들이 진정으로 얻고자 하는 건 금전적인 이익보다는 실적이겠군요.”

「정확합니다. 널리 이름이 알려진 각성체를 사냥한 이력은 수렵기업의 경쟁력 평가에 중요하게 반영되는 사항이지만, 그런 각성체가 흔히 나타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니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겠다?”

「예. 모르긴 몰라도, 같은 방식으로 관리 중인 자연각성체가 더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경영자의 입장에서, 때로는 금전적인 손해를 보고서라도 부풀려야 하는 것이 바로 기업의 실적이다.

같은 맥락에서, 거액의 현상금이 걸린 자연각성체를 잡은 수렵기업은 현상금 그 자체보다는 인지도와 기업가치 상승으로 더 큰 이익을 보게 되어있다. 이름이 붙은 각성체를 사냥한 이력은 돈으로도 사지 못할 가치다.

명성을 얻은 수렵기업은 보다 중요하고 안정적이며 보상이 좋은 국가 레벨의 용역활동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고, 핵심 자산인 헌터들이 더 나은 회사를 찾아 이적 시장을 기웃거릴 확률이 낮아지며, 고위험 수렵업종 특유의 불확실성이 완화됨에 따라 기업의 미래가치에 대한 기대감이 증가한다.

「구체적으로 어디라고 말씀드릴 순 없습니다만, 여기엔 몇몇 정부기관들도 비밀리에 관여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제게 접근해온 로비스트 겸 브로커가 오프 더 레코드를 요구하면서 그러더군요. 정부는 미국의 수렵경제가 세계 1위를 고수하기를 바라고 있으며, ‘새로운 시대의 서비스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아주 많은 것들을 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그러니 당신들도 내 고객들의 대열에 합류하라고. 절대로 후회하지 않게 해줄 자신이 있다고…….」

고위험 수렵업은 1차 산업과 3차 산업의 속성을 동시에 띤다.

자연각성체로부터 직접적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건 1차 산업의 속성이며, 다양한 용역을 수주함으로써 사회적인 이익을 창출하는 건 3차 산업의 속성이다. 고위험 수렵에 필요한 능력을 보유한 헌터들과 수렵기업의 활동영역은 수렵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실적은 기업에게만 중요한 게 아니지.’

정치인들은 표를 먹고 산다. 한국 정부가 21세기형 수렵 경제 구축이니 뭐니 떠들어대면서 눈에 보이는 실적을 만드는 데 혈안이 되어있는 것처럼, 미국의 현 행정부와 집권여당 또한 새로운 시대의 서비스 산업 운운하며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더턴 의용 경기병대」의 몰염치한 추락자들을 굳이 구조해주었던 것과 파이오니어 사냥꾼 여단의 창설 동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라이언 C. 닐슨은 제법 정의감이 있는 인물이다.

나는 계산적인 공감을 입에 담았다.

“그동안 터놓고 말할 상대가 없어 많이 답답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럴지도요.」

라이언은 수화기 너머에서 쓴맛이 감도는 웃음을 작게 흘렸다.

「기업을 경영한다는 건 책임지는 사람들의 숫자에 비례해 점점 더 규모가 커지는 현실타협의 연속이더군요. 선생님께서도 이런 일들을 많이 겪으셨겠지요?」

“물론입니다.”

「하하. 단호한 대답이십니다.」

“위협을 느끼셨습니까?”

「안 느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극단적으로는, 인적이 드문 산과 들에서 우리 여단의 헌터들이 경고성 살해를 당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까요. 꼭 그게 아니더라도, 그들의 질서를 어지럽히면 다방면에서 음습한 견제가 들어올 것을 각오해야 할 겁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돌아가는 사정은 대강 알겠는데, 다들 그 돼지가 멕시코 까사도르(엽사)들에게 잡힐 걱정은 하지 않는 게 이상해서 말입니다. 국경 너머로 국적이 다른 헌터들의 활동을 방해하는 데엔 분명히 한계가 있을 텐데요.”

「음……. 아까 제가 말씀드렸지요. 몇몇 정부기관들도 개입하고 있는 듯하다고.」

“예.”

「업계 관계자들에게서 알음알음 소문을 들었을 뿐이지만, 그 개입의 수준이 비밀작전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깊은 것 같습니다. 멕시코 관료들을 매수하고, 멕시코 현지에 각성능력자 용병들을 파견해서 위장기업들을 설립했다고요. 그 위장기업들이 매수당한 관료들과 호흡을 맞춰 할 짓이라면…… 안 봐도 뻔하지요.」

한마디로 국경 너머에 멕시코 수렵기업의 탈을 쓴 블랙옵스(Black-ops) 준군사조직들을 깔아놨다는 뜻이었다.

멕시코 같은 취약국가가 자국 내 수렵기업을 육성하는 데엔 이런 위험부담이 있다. 고질적인 부패로 인해 통제도, 감시도, 검증 절차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타국에서 무장집단을 침투시키거나 카르텔 꿈나무들이 위장간판을 내걸고서 힘을 키우거나 하는 일을 단속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경찰을 못 믿어서 연방경찰을 통째로 해체해버리기까지 했던 나라인데 오죽할까.

그렇다고 법인 단위의 영리적 고위험 수렵활동을 불법화하는 건 빈대 잡자고 집에 불을 지르는 격이다.

지금 같은 경제적 혼란기에 큰돈이 되는 신산업 육성을 포기하는 꼴이거니와, 군경의 힘만으로는 자연각성체 문제나 각성능력자들의 조직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고, 각성능력자 인재 유출은 한층 더 가속화될 테니까.

결과적으로, 그렇잖아도 낮은 편이었던 국가경쟁력은 새로운 시대의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이게 단순히 각성체 몇 마리 방목하자고 벌이는 일일 리가 없지.’

그렇게 생각하기엔 영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장기적으로는 멕시코 북부 전역을 미국의 목장으로 삼아 멕시코의 자연각성체 자원을 수탈하려는 수작일 확률이 높겠다. 본래부터 국경을 넘나들던 동물들뿐만 아니라, 본래대로라면 멕시코를 벗어날 일이 없었을 각성체들을 티나지 않게 인위적으로 유도하는 식으로.

자연각성체의 악명은 사람이 죽어야 높아진다.

멕시코 국민들의 인명과 재산피해로 자연각성체의 악명을 쌓고, 그렇게 악명이 높아진 자연각성체를 국경 위로 몰아서 잡는다면, 그건 제법 효율적인 사업이 되지 않겠는가.

그 과정에서 운영자금을 확보하여 더욱 덩치를 키운 준군사조직들은 카르텔의 활동을 억제하는 수단으로 쓸 수도 있다.

어쨌든 표면적으로는 멕시코 기업인 만큼, 현지인 각성능력자들에 대한 고용을 확대하면 ‘본사’ 인력의 소모를 최소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내 조직만 해도 중국 지사가 「석벽호표」로 비슷한 일을 하고 있잖은가. 죽어나가는 건 매양 값싸게 고용한 중국인 고기방패들이다.

중남미로부터 올라오는 이민 행렬을 향해 성난 자연각성체를 몰아 대참사를 연출하거나 하는 소소한 활용법도 있겠다.

자연각성체를 잡는 과정에서 부수적 피해가 발생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 공포가 만연해지고 나면 미국의 골칫거리인 불법이민자들의 수는 유의미하게 감소하겠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시도해볼 가치가 충분한 구상이다.

이 계획을 총괄하는 건 CIA일까, 아니면 그 외의 다른 기관일까.

“그럼 다시 한 번 귀사에 투자를 하는 셈 치고 그들의 규칙에 맞춰서 놀아보도록 하지요.”

「……예?」

“브로커의 연락처는 아직 가지고 있습니까?”

「예에…….」

“그 브로커에게 연락하십시오. 어떤 중국의 대부호가 엘 세르도타도의 고환을 약재로 쓰고자 공급자 지정계약을 넣어왔다고. 기본 대가는 천만 위안. 그러나 나흘 후가 약을 짓기에 가장 길한 날이니, 그 전까지 물건을 인도하는 데 성공할 경우 기본 대가의 열 배인 1억 위안을 지불하기로 했노라고.”

공급자 지정계약은 특정 헌터 집단에게 특정 자연각성체의 부산물을 조달해줄 것을 의뢰하는 계약이다. 시장에 유통되는 자연각성체 부속은 진위를 가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보니, 부자들은 브로커를 통해 신용도가 높은 헌터 집단을 물색하여 의뢰를 맡기는 경우가 있었다.

일찍이 아프리카에서 331의 육체를 운반할 때 이용했던 냉각 운송 서비스도 그런 시장의 수혜를 받으며 성장했던 것.

라이언은 말문이 막힌 듯 침묵하다가 되물었다.

「그런 부호가 실제로 있는 건 아니겠지요?」

“짐작하는 대로, 방금 내가 꾸며낸 사람입니다.”

「돼지 불알 두 쪽에 천사백만 달러라고요?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지금 세상에 이상한 게 어디 한둘입니까? 중의학에선 예로부터 돼지 불알을 신장과 호흡기 질환을 고치는 약으로 써왔습니다. 가끔은 정력제로 쓰는 경우도 있고요.”

「해박하시군요.」

“내가 돼지 불알 분말이 들어간 약용주(藥用酒)를 뇌물로 줘봐서 압니다. 상대는 발기부전에 걸린 공산당 간부였지요.”

「하……하하…….」

“그래서, 어떻습니까?”

「결국 돼지 불알은 그럴싸한 시나리오에 불과하다는 말씀이신데……. 고환을 뺀 나머지 부산물에 대해서는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조건입니까?」

“일단은 그렇습니다.”

나머지는 사냥 권한을 따낸 다음에 조정해도 늦지 않다.

「그럼 다른 수렵기업들의 양보를 받아내기가 쉬울 겁니다. 브로커가 수수료와 분담금을 얼마나 요구하느냐가 관건이겠지만,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들어온 지명의뢰이고, 날짜 제한도 빡빡하게 걸려있으니 그쪽도 지나친 욕심을 부리진 않겠지요. 돼지 불알을 천만 달러가 넘는 가격에 팔 기회가 흔히 오는 건 아니니까요.」

그 브로커라는 인간이 정부기관과 닿아있는 게 사실이라면, 해당 기관의 관계자들은 이번 거래를 성사시키는 데 관심이 많을 것이다. 보고서에 적어 넣을 ‘새로운 시대의 서비스 산업’ 진흥 실적을 크게 부풀릴 기회가 아닌가.

그러니 이 부정한 담합을 이루는 나머지 수렵기업들에게도 나름의 압력을 넣어 자제하도록 해주겠지.

“이쪽에서 협상장에 참관인을 보내는 정도는 이해주시기 바랍니다.”

「이해하고 말고요. 이건 사업이지 않습니까. 브로커에겐 구매자의 대리인이라고 소개하면 됩니다.」

내가 사람을 보내겠다는 건 브로커가 아니라 라이언 쪽에서 욕심을 낼 경우를 대비하겠다는 뜻이었다. 지닌 바 성품답게 라이언은 일말의 불쾌함도 없이 승낙했다.

「그보다 한 가지 여쭤 봐도 될는지요?」

“얼마든지 물어보십시오.”

「투자를 하는 셈 치겠다고 하셨는데, 돼지 하나 잡는 데 이렇게 많은 돈을 쓰시는 이유가 궁급합니다. 저희야 회사 프로필에 적을 내용이 늘어나니 좋습니다만, 당신께는 대체 어떤 이득이 있는 것인지……. 나중에 돼지 불알을 살 사람을 찾는다 해도 비용을 다 회수하진 못할 텐데요.」

순수하게 액수만을 본다면 1억 위안의 지출이 대단해 보이겠으나, 라이언의 상식적인 예상과 달리, 내게는 그 지출의 대부분을 회수하거나 심지어 이익을 창출해낼 방법이 있었다.

천안문 광장 테러가 발생한 후의 일이다. 격노한 중국 주석은 대대적인 책임자 처벌과 관련 부처들의 물갈이를 단행했다.

어떤 의미로는 숙청의 명분을 잡았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위기는 곧 기회. 주석에게는 이 기회에 반대파를 쓸어내지 않으면 자신의 권좌가 위험해진다는 위기의식이 있었을 터였다. 현 주석의 독재권력은 아직 완전하지 못하고, 공산당 내부엔 아직 반대세력이 남아있다.

그러한 물갈이의 과정에서, 본디 「화성무련」의 련주였던 미주는 「중국엽민협상회의 전국위원회(中国猎民协商会议全国委员会)」, 이하 「전국엽협」의 위원장으로 지명되었다. 위원회의 별명이 정파무림맹이다 보니 세간에선 무림맹주라는 별명으로 더 자주 불리는 자리다.

국안부의 경감들을 통해 듣기로, 이는 주석이 당에 대한 충성심과 능력주의를 강조하며 직접 결정한 인사였다고.

처음에 미주는 내 허락을 구하고서 이 자리를 고사했다. 민감한 시기, 자칫 중앙의 권력투쟁과 엮인 위험한 사건에 휘말릴 수도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직을 고사하는 게 오히려 마음에 들었는지, 주석의 의지는 갈수록 강고해졌다. 같은 권고가 세 번이나 내려오자 미주도 더는 거부할 재간이 없었다.

‘주석의 심기를 거스르면 그것도 재난이니.’

결국 무림맹주 자리에 오른 미주는 맹의 감찰부서부터 장악했다. 맹 내부의 단속만 철저히 해도 괜한 빌미를 잡혀 허무하게 목이 날아갈 일은 없을 터이므로.

갑작스럽게 중앙에 진출한 외인(外人)임에도 불구하고, 미주는 맹주로서의 초기 지도력을 구축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석벽호표」와 「화성무련」의 기명제자 프랜차이즈에 속해있던 ‘제자’들이 열성적인 지지자가 되어준 덕분이었다.

베이징 기득권 용팔이들 사이에선 화북(华北) 무림이 중남(中南) 무림에 삼켜졌느니 어쩌니 하는 불만들이 나오고 있으나, 이 또한 오래지 않아 잠잠해질 것이다.

여하간 그래서, 지금의 내 수중엔 바란 적이 없었던 무림맹주라는 패가 있다.

이럴 때 써먹기 용이한 패가.

중국 전국엽협의 역할은 다른 나라의 고위험 수렵협회와 같고, 실제 권한은 그 이상이다. 그런 전국엽협이 수행하는 기능 중엔 자연각성체 부산물의 감정과 거래에 관한 것도 있었다.

돼지 불알과 다른 부속들을 동인당(同仁堂)이나 호경여당(胡慶餘堂), 백탑사약점(白塔寺药店) 등의 유명 약방에 넘긴 후 다른 재료들과 섞어 중국인들이 요즘 환장하는 영약(灵药)을 빚는다면, 과도하게 지출한 원가쯤은 충분히 회수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감수해야 할 실질적인 지출은 제로에 가깝다.

나는 상대의 성격에 맞는 거짓을 지어 돌려주었다.

“마음의 불편함을 덜기 위한 지출이라고 해두지요.”

「마음의 불편함……이요?」

“예. 그 엘 세르도타도라는 놈, 우리와 구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생김새가 비슷하다는 생각은 저도 해봤습니다. 하지만 멧돼지 혼종은 다 그놈이 그놈처럼 생기지 않았습니까?」

“글쎄요. 제가 데리고 다니는 경호원은 생각이 다른 것 같더군요. 저는 그 친구의 눈썰미를 믿습니다.”

「혹시 그 경호원이 미스터 킴입니까? 우리 잭과 죽이 잘 맞던 분 말입니다.」

경태가 당시에 사용하던 가명의 성씨는 본명과 같은 김이었다.

“맞습니다. 기억하시는군요.”

「음…….」

“세르도타도에 대한 정보를 접한 이후 줄곧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때 우리가 놓친 돼지가 사람들을 해치고 다니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솔직히 좀 불편하더군요. 잠자리에서도 종종 떠오르고. 아마 당신도 어느 정도는 그랬으리라 생각합니다만, 틀렸습니까?”

「…….」

“그러니 한번 확인해봅시다.”

「확인이라니, 어떻게 말씀이십니까?」

“만약 엘 세르도타도가 우리가 쫓았던 그놈이라면, 놈은 헬기 추락현장에서 맡았던 우리의 냄새를 높은 확률로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제 새끼들을 쏴 죽인 원수들의 냄새를 말이죠.”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아내에게 연락해두십시오. 세탁물 바구니를 비우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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