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01화 (401/561)

#42. 헤드헌팅 (1)

10월 1일. 거인의 영지에 대한 세 번째 탐사를 마친 나는 예정에 없던 멕시코 행을 결정했다. 마르띠네즈 제독이 별안간 자신의 예편 가능성을 전달해온 탓이었다. 확정된 사안은 아니지만, 그래도 미리 알려두는 게 ‘좋은 친구’에 대한 예의일 것 같다면서.

얼마 전 비세 알미란떼(소장)로 진급한 마르띠네즈 제독은 소말리아 해적함대 인적자원 컨설팅의 핵심적인 인력공급자다. 이런 인물이 현직에서 물러나면 관련된 계획들이 차질을 빚을 우려가 있었다.

이 같은 우려에 비하면, 제독 휘하 멕시코 해군 ZN-8 분함대의 무기 공급 지속여부는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다.

수연은 이러한 사항을 전화로 보고하며 사과했다.

「미리 파악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됐다. 인력이 남아도는 게 아닌데 멕시코의 사정까지 완벽하게 파악할 수가 있나. 만약 이게 멕시코 정계의 내밀한 사정이 엮인 사안이라면 외부에서 내막을 파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으냐?”

「예…….」

“너는 지금 진행하는 프로젝트들이나 잘 이끌도록 해라. 제독은 내가 만나서 떠볼 테니. 어쩌면 제독의 예편은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몰라.”

제독이 현직에서 물러난다고 하여 인력공급이 반드시 끊어진다는 법은 없다. 만약 제독 본인을 스카웃할 수만 있다면 기존의 계획은 오히려 더 탄탄한 궤도에 오르는 셈.

마르띠네즈 제독은 미 해군사관학교 교환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력이 있으며, 미국과의 합동훈련 및 연합작전의 실무를 맡은 경험도 많은 최고급 인재다.

“CIA의 하청 노동자들은 잘 유도되고 있나?”

「예. 모형정원 안에서 정해진 경로를 착실하게 따라오는 중입니다.」

모형정원은 적성세력의 정보원들을 속이기 위해 위장창구들과 가짜 브로커들로 채워놓은 인위적인 무대를 의미한다. CIA의 하청노동자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노력과 추리만으로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다가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겠지.

“바쁘겠지만 항공사 인수 건도 네가 틈틈이 점검해라. 김재환이는 다른 것보다 금전적인 이익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유의하고 있습니다.」

항공사 인수를 총괄 지휘하는 건 기조실장인 수연의 몫이다. 그러나 행정적인 실무는 조직의 자산운용을 담당하는 김재환이의 업무영역이었다.

인수합병 사전심사를 신청하고,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본 계약에 앞서 회생계획안과 운영계획안, 자금조달계획안 등을 작성하여 제출하고, 노사정 위원회에 사람을 보내어 고용보장에 관한 조건들을 협의하고, 관계부처의 실무진에게 기름칠을 하거나 비공식적인 사전조율을 행하는 등.

정부는 우리가 인수에 속도를 붙이는 걸 몹시 반기는 분위기였다. 「21세기 수렵경제 구축 사업」의 성과를 빠르게 내어 현 정권의 국정운영평가를 높여놓으면, 여당의 차기 대권주자도 그만큼 자신의 위치설정을 빠르게 결정할 수 있는 까닭이었다.

같은 여당임에도 현 정권과는 거리를 둘 것인가. 아니면 현 정권의 계승자를 자처할 것인가.

현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다소 어중간한 측면이 있었다.

요컨대, 실무를 맡은 김재환이의 입장에서는 내 지시대로 속도를 내면서도 욕심을 부려볼 만한 조건인 것이다. 그렇게 욕심을 부리다 보면 일의 경중을 잠시 혼동할지도 모르는 일.

나는 짧게 당부했다.

“그렇다고 너무 엄격하게 대하지는 말고. 그 녀석이 너를 많이 무서워하더구나. 사람이 정신적으로 위축되면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 또한 유의하겠습니다. 먼저 가셨던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라일라 말이냐?”

「예.」

“잘되었다. 이젠 어떤 요구를 해도 기꺼이 따를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군요.」

“다른 일이 없다면 이만 끊자. 슬슬 일에 집중해야겠다.”

「예. 보중하십시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내가 말한 일이란 오래전에 마주친 적이 있는 돼지 한 마리를 잡는 것이었다.

한 나라의 해군 소장쯤 되는 인물을 헤드헌팅하려면 그 사람의 취향에 맞는 선물을 준비하는 게 기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엘 세르도타도」의 대가리는 괜찮은 선물 겸 실력과시가 될 수 있었다. 제독의 퇴역한 부하들이 꾸린 헌터 집단이 이 돼지를 상대로 번번이 허탕만 치고 있는 까닭이었다.

일찍이 시베리아 호랑이 각성체가 하루에 1천 2백 킬로미터를 움직이며 일본 열도를 휩쓸었던 것처럼, 강화계수가 높은 자연각성체의 활동 범위는 전문가들의 예측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엘 세르도타도가 바로 그러한 경우에 해당했다.

북미대륙의 광활함은 시베리아 대호보다 생체질량이 큰 티-호그 각성체 앞에서 의미를 잃어버렸다.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주파하는 데 불과 사나흘이면 족하니까.

게다가 이 슈퍼 헤비급 돼지는 국경의 개념을 학습했다. 어떤 ‘선’을 넘기만 하면 저를 쫓아오던 헌터들이 추격을 단념하고 기수를 돌리는 일을 반복해서 경험한 것이다.

동물들에게도 영역본능이라는 게 있는 만큼, 이러한 일들을 영역의 개념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었다. 인간들에겐 서로 침범하지 못하는 영역이 존재한다고.

그리하여 인간에게 원한을 품은 티-호그는 미국과 멕시코 양국의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양국의 국경과 험준한 지형을 교활하게 이용하는 돼지는 나날이 자신의 악명을 높여만 갔다. 특히 대응능력이 낮은 멕시코 북부의 피해가 막심했다.

이는 미국·멕시코 양국이 협력을 하기만 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다. 최소한의 정보공유만 해도 돼지가 빠져나가지 못할 포위망을 구축할 수 있을 테니.

그러나-

‘그게 지금 될 리가 있나.’

극도로 경색된 양국 관계는 그 쉬운 해결책조차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관계 경색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가장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은 역시 백악관을 차지한 어느 미치광이의 언행이었다. 대통령은 지지자들 앞에서의 공식 연설에서 이렇게 포효해댔다.

「멕시코는 도둑, 강간범, 살인자와 마약상으로 가득한 끔찍한 나라입니다!」

「그 나라의 모든 남성은 잠재적인 범죄자이고 그 나라의 모든 여성은 잠재적인 매춘부예요! 그들은 호시탐탐 국경을 넘어와서 마약을 팔고 우리 시민들을 죽여서 미국의 부를 훔칠 궁리만 하는 사악한 집단이지요!」

「여러분. 모든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우리 아래에 있는 이웃이 딱 그 예시입니다. 멕시코 정부는 부패와 무능으로 가득해서 자기 나라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거든요!」

「그들이 하는 일이라곤 그저 우리 미국에게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라고 칭얼대면서 나쁜 아저씨들(Bad hombres)을 국경 위로 올려보내는 게 전부예요! 정말이지 역겹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나는 내 전임자들과 다릅니다! 사람 좋은 전임자들은 이 욕심 많은 거지 떼에게 호구처럼 내어주기만 했지만, 나는 이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청구할 것입니다. 미국의 도움이 필요합니까? 그렇다면 돈을 내십시오!」

「그들이 청구서에 적힌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한, 나는 똥구멍(Shithole)과 같은 나라와의 모든 협력을 차례차례 중단해 나갈 것입니다.」

「어디 한번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라고 하고 싶군요. 미국은 여유롭게 답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재선에 성공한 미국 대통령의 대(對) 멕시코 정책이 첫 임기보다 더욱 강경해진 배경엔 멕시코 마약 카르텔들의 활동 증가가 깔려있었다.

각성능력자 전력을 확보한 마약 카르텔들은 예전보다 토벌하기가 더 까다로워졌다.

위험의 증가는 곧 대응예산의 증가를 의미한다. 각성능력자를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쪽에서도 각성능력자를 투입하는 것인데, 군경에 속한 각성능력자들은 숫자가 부족하고, 카르텔에 맞설 만한 헌터들의 몸값은 저렴하지 않다.

그리고 미국의 현 대통령은 이런 쪽의 씀씀이가 매우 인색한 인간이었다.

대통령은 또다시 SNS에 인생을 낭비했다.

「그냥 멕시코 영토에 미사일을 쏴버리면 안 되나? 그 뭐냐…… 패트리어트 같은 걸로.」

패트리어트는 지대공미사일이다.

군 통수권자로서 군사적 무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대통령은 딱히 부끄럽지도 않은 느낌으로 자신의 발언을 정정했다.

「내가 국방장관도 아닌데 헷갈릴 수도 있지! 요점은 미사일로 폭격을 하는 게 더 싸게 먹히지 않겠느냐는 거다. 헬기나 드론에 달아서 쏘는 작은 미사일 말고, 우리 본토에서 편리하게 발사해서 살인자와 마약상들의 본거지를 단번에 파괴할 수 있는 크고 강력한 걸로!」

「미사일 가격이 헌터들 몸값보다 비싸다고 하는데, 이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나는 오래전에 아버지로부터 아주, 아주, 아주 적은 돈을 빌렸다. 나는 그것으로 거대한 부동산 제국을 일궜다.」

「이 말은 즉 내가 투자와 경제의 전문가라는 의미다!」

「미사일 가격이 비싸더라도, 한 번에 확실하게 해결을 볼 수만 있다면 장기적으로는 헌터들을 고용하는 것보다 적은 예산이 들어가지 않겠는가?」

「아니면 폭격기를 띄워서 폭탄을 뿌리고 오는 것도 좋겠다. 특히 우리 미국의 폭격기들은 쓸데없이 가격이 비싼데, 그 비싼 폭격기들을 가만히 놀려두고 있는 게 너무나 아깝지 않은가? B-2인지 뭔지는 자그마치 22억 달러나 한다더라.」

「나는 이게 정말로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참모들과 논의를 해보고 나서 멕시코 정부에 정식으로 제안을 해볼까 싶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무지와 문제로 가득한 발언들이었다.

타국 영토를 폭격하는 건 전쟁에 준하는 도발행위이고, 장거리 정밀타격이 가능한 순항미사일의 값은 한 발 한 발이 평이한 수준의 육체강화 능력자 1개 분대를 1년간 고용할 금액이며, 폭격기가 뿌리는 폭탄들은 오폭 가능성이 지나치게 높으니까.

여기에 폭격기의 연료비와 유지보수 비용, 그리고 폭격기가 카르텔 공중기병들에게 격추당할 위험성도 고려해야 한다. 카르텔이 비싼 돈을 들여 붙잡아두고 있는 고급 각성능력자들 중엔 폭격기의 비행고도에 도달할 수 있는 이중각성능력자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었다.

따라서 폭격기엔 호위기가 붙어야 하고, 호위기가 붙으면 그만큼 비용이 상승한다.

차라리 비행능력을 보유한 각성능력자들이나 드론을 무더기로 밀어 넣는 편이 훨씬 더 경제적이라는 뜻이었다.

대통령은 쏟아지는 비판에 발끈했다.

「폭격이 어째서 전쟁을 의미하나? 멕시코 정부가 동의하기만 한다면, 폭격은 전쟁이 아니라 특별 치안활동이 될 것이다.」

「오폭에 의한 피해 따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면 우리가 폭격할 지역은 인구 10만 명 당 살인범죄율이 무려 5백에 육박하는 곳이니까! 쉽게 말해, 오폭 맞아 죽을 사람들은 우리가 폭격을 안 해도 어차피 죽을 사람들이다!」

「살인자들을 폭격으로 해치워서 살인범죄율을 떨어뜨리면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모두에게 이익이지 않은가? 모르면 공부해라. 이것이 바로 공리주의라는 것이다.」

「사실 멕시코가 동의를 안 해줘도 된다. 우리 폭격기는 스텔스라서 레이더에도 안 보이고 사람 눈에도 안 보인다. 알리지 않고 들어가서 때리고 나와도 멕시코 사람들은 알 수가 없다. 알 수가 없으면 문제를 제기할 수도 없다.」

「뭐? 스텔스가 사람 눈에는 보인다고? 거짓말! 그럼 그게 왜 스텔스야! 미군은 그런 쓸모없는 것에 예산을 낭비하고 있었단 말인가?!」

중국산 폐병 환자에게 손 소독제를 주사해서 병균을 죽이자고 했던 천재답다고 해야 할까.

미국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내려 민간 차원의 협력마저 까다롭게 만들어놓았다.

「미국을 최우선으로! 사상 최악의 티-호그는 미국인 사냥꾼의 손에 잡혀야 한다!」

백악관의 사령탑이 이 모양인 한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협력은 헛된 망상에 불과했다.

여하간, 일반적인 몰이사냥으로 엘 세르도타도를 잡으려면 국경 양쪽에 걸쳐 활동할 세력과 능력을 마련해야 한다.

물론 내가 직접 나서는 사냥에선 그런 준비에 의미가 없다. 그냥 찾아서 죽이면 끝인 것을.

그러나 나는 제독에게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자 했다. 정예한 타격대를 거느린 밀수조직의 우두머리가 아니라, 합법적인 영역에도 연줄이 닿아있으며 필요하면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는 사업가의 모습을.

그러기 위하여, 이틀 전, 나는 파이오니어 사냥꾼 여단의 CEO 라이언 C. 닐슨에게 연락했다.

매우 반갑게 내 연락을 받았던 라이언은 내 용무를 듣고 조금 껄끄러워하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이쪽은 순수하게 몰이꾼 역할을 맡아 국경 위쪽을 틀어막고, 타겟을 잡을 기회는 가급적 멕시코의 까사도르 훈타(Cazador junta/엽사집단)에게 양보해 달라……. 일찍이 경영엔 간섭을 하지 않겠다 공언하셨으니 이건 의뢰라고 봐야겠군요.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수고비는 시세보다 두 배를 쳐드리지요.”

「음…….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돼지는 함부로 건드리기 민감한 구석이 있는 사냥감입니다. 정부와 엮이는 부분도 있고, 말하기 부끄러운 업계의 속사정도 있어서요.」

“업계의 속사정?”

라이언은 짧게 침묵한 뒤에 이야기했다.

「비밀을 지키겠다고 약속해주시면 말씀드리지요. 경영권과 의결권에 관한 약속도 지금까지 줄곧 지켜온 분이시니.」

“약속하겠습니다. 그래서, 그 속사정이라는 게 뭡니까?”

「전미 고위험 수렵협회는 아직 엘 세르도타도의 죽음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제껏 잡을 만한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의도적으로 사냥을 중단했어요. 심지어 국경 너머 멕시코 사냥꾼들의 추격도 은밀하게 방해해 왔습니다.」

“어째서?”

「악명이 높아질수록 현상금과 부산물의 가격도 높아지니까요. 업계에서는 이걸 방목이라고 부릅니다.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보다 사업이 더 중요하다는 거지요.」

라이언이 하는 말엔 나직한 한숨이 묻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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