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홀로 벗어난 자의 애도 (15)
밤이 깊었을 때, 우리는 수륙 양용 비행정을 타고 다시 한 번 하늘로 날아올랐다.
전율하는 거인이 빚어내는 공간굴절은 전파의 진행마저도 비틀어 놓는다. 효과 면에선 마녀가 내게 공유해주었던 「환시」의 발전가능성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 하겠다.
해가 진 이후에도 넓은 공역을 채운 굴절 영역이 유지되고 있었으므로, 여기서 비롯되는 전파혼란지대와 험준한 자연지형을 이용하면 거인의 영지와 가까운 곳까지 은밀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착륙지점은 전율하는 거인의 외부 경계에서 약 20킬로미터 떨어진 산중의 작은 저수지였다.
이 저수지는 자연각성체 수목들의 영역확장으로 인해 사실상 버려지다시피 한 곳이었다. 지상이야 어찌 경계를 지킨다 쳐도, 땅 밑으로 뻗어와 물을 빨아가는 뿌리들까지 차단하기란 어려운 노릇.
규모가 좀 있거나 규모와 무관하게 중요도가 높은 취수원이라면 다소의 지출을 감수하고서라도 지켜낼 방안을 강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저수지엔 그 정도의 가치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쓸 수 있는 동안에는 쓰고, 수위가 너무 낮아지면 그대로 방기해버리는 쪽이 싸게 먹히는 그런 곳이었다.
저수지의 종축은 대략 250미터 가량이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3백 미터가 넘었다고 기록되어있으니 많이 줄어든 것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소형 전기 비행정이 착륙하기에 충분한 길이다. 수상에 착륙하여 기체를 주기한 우리는, 소수의 경계 병력을 남겨두고 동남동 방향으로 경로를 잡았다.
외진 산간과 야지를 가로지르는 동안 우리는 어느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황금기의 눈에 잡히는 인간의 생명도 전무했다.
거인의 영지가 인간의 문명을 밀어내는 접경지대엔 대부분의 주민들이 떠난 작은 마을이 놓여있었다. 전성기에도 인구가 3백은 넘지 않았을 듯한 황량한 거주지. 지금은 고작 여덟 명의 주민들이 남아있을 따름이다.
남은 자들은 모두가 노인이었고, 모두가 빈한했으며, 모두가 건강하지 못했다.
이렇게 퇴락한 마을의 진입로엔 빛바랜 나무 표지판이 서있었다.
「쿠샤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SETTLED 1875」
이 마을의 지형지물과 동쪽에 흐르는 물길은 유사시 퇴로를 확보하기 좋은 조건들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딱히 적성세력이 있는 건 아니어도, 퇴출로에 대한 보호대책을 마련하는 건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경태 녀석이 가볍게 경례했다.
“그럼 저희는 여기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조심히, 그리고 오붓하게 다녀오십시오.”
“오붓하게는 뭐냐.”
“사전적인 의미는 ‘홀가분하면서도 아늑하고 정답게’ 입니다, 형님께서도 당연히 알고 계시겠지만요.”
“…….”
나는 이 녀석의 사고 흐름을 따라가기를 단념했다.
공기 중에 감도는 오존 냄새는 갈수록 짙어졌다. 휴대용 오존측정기의 숫자는 0.11ppm까지 증가했다. 여기에 숲이 붙잡아놓은 안개가 더해지면 미약한 산성을 띠는 스모그가 된다. 일반인보다 내성과 재생능력이 우월한 강화능력자라도 장시간의 노출은 가급적 피하는 편이 유익한 대기질이었다.
“슬슬 마스크를 쓰도록 하지.”
“응.”
지금은 외기혼합비율을 80%까지 높여도 무방했다. 바깥 공기 8할에 산소 2할이면 실질적으로 호흡하는 공기의 오존 농도는 리치필드에서 겪었던 수준으로 떨어진다. 각성능력자에겐 무해한 수준이다.
내 말에 따라 호흡기 마스크를 착용한 라일라가 물었다.
“있잖아, 웨인.”
“음?”
“아까 그 노숙자는 뭐였어? 감히 당신을 노려봐서 불쾌했는데.”
“그랬나?
“응. 그건 가장 저급하고 쓸모없는 살인자의 눈이었어. 클리블랜드나 그레이터맨체스터, 머지사이드(Merseyside) 같은 지역의 빈민가에서 비슷한 눈들을 자주 봤지. 아니, 절반 이상은 그런 기억을 물려받았다고 해야 하겠지만, 아무튼.”
“저급하고 쓸모가 없다니?”
“어머니가 쓰던 표현이야……. 필요해서도 아니고, 즐거워서도 아니고, 그냥 맹목적인 원망이 쌓여서 사람을 죽이는 망가진 인생들. 그렇게 사람을 죽일 때마다 만족감이 아니라 비참함과 자기혐오만을 느끼면서도,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는 걸 멈추지 못하는 자학적인 살인자들.”
마스크의 전성판에 걸러진 음성은 조금 둔탁한 느낌이었다.
“그런 부류들보다는 차라리 쾌락살인마가 더 생산적이라는 게 어머니의 가르침이었지. 이쪽은 적어도 사람을 죽이고 나서 얻는 게 있지 않느냐고.”
“그레이스다운 가르침이로군.”
“내가 보기엔 아까 그 노숙자가 딱 그런 느낌이었어. 웨인은 그 사람과 어떤 일이 있었던 거야? 접점이 생길 일이 전혀 없을 것 같아 보였는데.”
“별것 아니다. 거기서 말했던 게 다야.”
나는 두 번째로 거인의 숲에 왔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연히 마주친 후 흔적을 남기지 않을 요량으로 살인멸구를 고려하다가, 나답지 않은 변덕을 부려 간단한 시험으로 생사를 결정했노라고. 결과적으로 원하던 도움을 베풀어준 것 외에 다른 일은 없었노라고.
라일라는 서늘한 음색으로 내뱉었다.
“내장을 긁어내서 그걸로 목을 졸라 죽여주고 싶어지네.”
“사람이 원래 그런 동물인 거지. 나 역시 예외가 아니고.”
“……웨인도?”
“이성은 정념의 노예다. 욕망의 중대한 좌절을 겪으면 이성도 뒤따라 오작동을 일으킬 수밖에.”
“당신도 그랬던 경험이 있어?”
“왜 없겠나. 아주 많았다.”
“정말로?”
“너는 미숙했던 시절의 내가 얼마나 추하고 못난 존재였는지 상상하지 못할 거다.”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
“항상 경계하고 있으니까.”
나는 내 욕망의 무절제한 확장과 다변화를 경계한다. 우선순위가 낮은 욕망에 대한 집착과 좌절은 내 의식의 합리성을 저해하고, 그럼으로써 나를 잡기 쉬운 사냥감으로 전락시킬 것이라 믿는다.
믿는다기보다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두렵다고 해야 더 정확하겠지만.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세상이고,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세상이다.
나 같은 대마법사라도 불식간에 날아온 흉탄 한 발에 머리가 터질 수 있으며, 내가 이제껏 쌓아올린 모든 것들이 잠깐의 번뇌와 방황으로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린들 이상할 게 없는 그런 세상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합리성을 간직해야 한다. 지금의 내가 추구할 수 있는, 추구해도 되는, 추구해야만 하는 욕망은 오직 하나뿐이다.
“으음…….”
라일라는 내가 계산적으로 드러낸 진솔함을 진지한 침묵으로 곱씹었다.
거인의 영지 주변의 식생은 생기가 별로 없었다. 말라 죽어가는 초목이 한둘이 아니다. 거대 포플러 클러스터가 양분이란 양분을 다 빨아가 버리는 탓이었다.
오존에 의한 조직손상도 식생의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거인 자신은 격이 다른 생체강화로 버텨내는 독성이었다.
결정적으로, 거인이 마법적인 인력(引力)을 발휘하는 대상엔 다른 식물들의 종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종자 속의 양분에 대해서도 인력이 작용하는 탓에, 씨앗들이 전부 거인의 영지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비록 양분을 당기는 인력이 씨앗 하나하나를 일일이 부수는 수준은 아니지만, 성장에 불리한 환경으로 끌려간 씨앗들은 거인이 죽기 전까진 발아할 일이 없을 터였다. 그리고 긴 시간이 흐르면 씨앗의 단단한 외피에도 피로 누적으로 인한 손상이 발생할 것이다.
이는 비단 거인의 영지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각성한 수목이 많은 숲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그저 규모의 차이가 있을 따름.
그래서 학자들은 산림의 노령화와 함께 ‘조용한 대멸종’이 진행 중이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각성한 수목의 수는 계속해서 늘어만 가고, 그것들이 지닌 힘도 강해져만 가니, 언젠가는 숲에서 더 이상 새로운 싹이 트지 않는 날이 올지 모른다고. 그러니 일찍부터 인위적인 관리를 시작할 필요가 있노라고. 패스파인더를 지향하는 헌터들에겐 새로운 블루 오션의 출현이었다.
우리는 언제 세워졌는지, 또 누가 세웠는지도 모를 경고판을 지나쳤다.
「당신이 만약 타우 파워(Tau-Power)에 눈뜨지 못한 일반인이고, 당신을 잡아당기는 보이지 않는 힘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숲이 당신을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숲이 당신을 잡아먹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글쎄. 거인에게는 잡아먹는다는 인식조차 없을 텐데. 잡아먹는다는 표현은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인 이해다.
경고판은 숲을 향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다. 기울어진 경고판 주위로 포플러의 종자솜털이 어지러이 흩날리거나 굴러다녔다.
거인이 양분을 끌어당기는 인력에서 유독 거인 자신의 종자솜털만이 자유로운 원리는 황금기의 눈을 가진 내게도 미지였다.
타탕! 타타탕!
북북서에서 아득하게 울려오는 연속적인 총성들. 잇달아 울리는 다른 총성들은 적어도 세 종류 이상의 자동화기가 동원된 소대 규모의 교전임을 알려주었다.
국지적 편차가 큰 습도는 음속에 따른 거리측정을 어렵게 만들었지만, 적어도 내 가시거리 이내에서 교전이 벌어진 건 아니었다. 그리고 경태 녀석들은 서쪽에 있으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나는 신경을 곤두세우는 라일라를 수신호로 진정시켰다.
여기서 총질을 할 만한 집단은 수를 헤아리는 게 무의미할 만큼 많다.
이런 종류의 말썽은 그냥 엮이지만 않으면 그만이다. 총성을 무시하고 발걸음을 재촉한 우리는 마침내 거인의 영지에 들어섰다. 포플러 숲의 경계까지는 아직 거리가 좀 남아있으나, 거인의 마력장 탐지 해상도가 위험수위로 높아지는 선을 통과한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마력장의 반경을 1단계로 줄여라.”
숙소에서 출발하기 전에, 나는 라일라의 마력장 반경을 눈으로 봐가면서 단계를 정해주었다. 해상도가 달라질 때마다 마력장 반경을 달리해가며 통과하기 위해서였다.
거인의 영지는 부하들을 데리고 들어오기는 위험하지만, 라일라는 마력장을 제어하는 능력과 유틸리티성이 높은 마법사였다. 일반 각성능력자와는 가장 차별화되는 부분.
이게 아니더라도 한 명 정도는 내가 어떻게든 감당할 방법이 있다.
「우웅-」
황금기의 눈이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탐색의 그물이 우리를 훑고 지나갔다. 그물눈 사이로 빠지거나, 그물눈을 건드리는 정도가 미약하면 거인은 우리를 감지하지 못한다.
“방금 그거, 느꼈나?”
라일라는 조금 긴장한 채로 끄덕였다.
“으응. 그게 탐색이었나 보네……. 미리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몰랐을 거야.”
거인이 지배하는 영역은 전에 왔을 때보다 더 넓어져있었다. 그러나 마력회로의 근간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으므로, 길을 찾아 나아가는 데엔 큰 지장이 없었다.
다만 내가 찾는 길은 생명의 위협이 적거나 없는 경로일 뿐 사전적인 의미의 길과는 거리가 멀어, 마력장 축소로 인해 생체강화의 출력이 제한된 상황에서는 나아가기가 결코 편하지 않았다.
그렇잖아도 원래부터 경사가 져있던 땅. 여기에 힘이 넘쳐흐르는 거인의 뿌리들이 수직으로 들어 올린 단층과 수평 방향으로 밀어버린 이상 지형들이 더해진 결과, 길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만큼 기복이 거친 경로가 탄생했다.
나야 대마법사이니 그냥 좀 불편한 정도지만, 나보다 회로밀도가 낮고 마력운용 효율도 떨어지는 라일라는 금세 숨이 거칠어지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산소봄베의 무게만 22킬로그램이니 일반적인 마법사에겐 힘든 것이 당연했다.
높이 5미터가 넘는 단층 위에서 손을 내밀어 라일라를 끌어올려준 나는, 무릎을 짚고 숨을 몰아쉬는 라일라에게 짧은 휴식을 권했다.
“잠시 쉬었다 가지.”
“아직…… 괜찮아…….”
“무리할 필요 없다. 어차피 금방 회복되지 않나.”
“그래도-”
“내 결정이다. 쉬어라.”
“……응.”
비록 마력장을 축소한 상태라고는 하나, 라일라는 마법사다. 가용 마력을 생체강화에 몰아주면 단시간의 휴식만으로도 거의 완전한 체력회복이 가능하다.
나는 손수건을 꺼내어 라일라의 이마를 닦아주었다. 마샤트에게 선물 받았던 그 손수건이다. 미로 속의 사내 문양이 라일라의 땀에 젖어 짙은 색으로 도드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