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홀로 벗어난 자의 애도 (14)
리치필드에 도착한 때는 늦은 오후였으므로, 우리는 일단 이곳에 여장을 풀었다.
현장지원팀이 예약해놓은 숙소는 공교롭게도 예전에 묵었던 바로 그 임대 별장이었다.
각성체 멧돼지가 관통하고 지나갔던 벽은 색이 다른 원목으로 말끔하게 수리되어 있었다. 고쳐놓은 자리엔 「티-호그들의 사령관 엘 세르도타도(El Cerdotado)가 들이박아 구멍을 뚫었던 자리」라고 음각한 목판을 걸어놓았다.
엘 세르도타도는 각성체 멧돼지에게 붙은 이름이었다. 목판 아래의 벽걸이 액자들은 세르도타도라는 이름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알려주는 그림과 글을 담고 있었다.
「세르도(Cerdo)는 돼지를 뜻하고 도타도(Dotado)는 재능을 뜻합니다. 즉 이 두 단어를 더한 세르도타도는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Gifted) 돼지를 의미하는 것이죠.」
「이건 원래 멕시코의 밀레니오 지(誌)에 연재되던 만화 속 초능력 돼지 히어로의 이름이었지만, 이제는 이 시대의 가장 악명 높은 각성체 멧돼지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누가 처음 이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요.」
내가 기억하기로, 유타는 원래부터 히스패닉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던 지역이었다. 이는 히스패닉 잠상(潛商)들의 활동영역 확장과 연관된 사항이라, 업계 종사자로서 귀동냥을 할 기회가 있었다.
이젠 외국인 각성능력자들에 대한 수요가 인구 유입을 가속화했을 테니, 각성체 멧돼지에게 스페인어 이름이 붙은 것도 마냥 이상하기만 한 일은 아니겠지.
다른 쪽 벽면엔 이 이름을 얻은 실존 각성체 멧돼지의 여러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해당 사진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경태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거, 전에 그 헬기 들이박은 돼지새끼 같은데요?”
“그런가?”
“예. 두상이 아주 판박이입니다. 근데 이상하네요. 이 집을 박살냈던 놈이 얘라는 증거가 있나?”
“상술이겠지.”
“아-하.”
아마 이 작은 도시에만 세르도타도가 들이박았다는 건물이 수십 채는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특산품을 파는 지역 매장들이 개나 소나 자기네가 원조라는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는 것과 유사하게.
경태는 액자들로부터 시선을 거두며 어깨를 으쓱였다.
“요즘 마르띠네즈 제독을 귀찮게 한다는 그 돼지가 이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글쎄.”
나로서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이토록 오랫동안 살아남았다면 그 돼지는 나름의 향상된 코드를 품고 있을 터이나, 내가 따로 시간을 내면서까지 획득할 가치가 있을지는 의문이었으므로.
경태가 물었다.
“거인의 영지로는 언제 들어가실 겁니까?”
“밤이 깊어지고 나서.”
“알겠습니다. 그전까진 주변 정찰과 정보수집이로군요.”
“음.”
경태는 물 흐르는 듯한 지시로 팀을 나누었다. 나 역시 경호인력과 라일라를 대동하여 직접 육안정찰에 나섰다.
리치필드의 거리엔 각성능력자쯤 되어야 맡을 수 있는 미세한 쇠 비린내가 감돌았다. 거인의 영지에서부터 밀려오는 오존의 냄새였다. 격자형으로 깔린 길엔 일정 간격으로 오존 농도를 알려주는 전광판이 서있었다.
「현재 이 지역의 오존 농도 : 0.08ppm」
「건강 보호에 적합한 안전성(adequate margin of safety)을 위한 환경보호청 오존 농도 기준은 8시간 평균 0.06ppm 미만입니다. 이 지역은 현재까지 53일 연속으로 0.06ppm 이상의 오존 농도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주민 여러분께서는 실외 활동을 자제하여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공기 중에서의 방전은 질소와 산소를 결합시켜 질소산화물을 만들어낸다. 전율하는 거인에 관한 최신 연구들은 거인이 방전을 이용하여 토양에 질소를 축적하는 방법을 학습한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생명을 기계에 비유한다면 일종의 기계학습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거인의 확장속도를 고려하면 기존에 녹아있던 질소는 일찌감치 다 고갈되었을 터. 필요한 질소의 양은 매일같이 비료를 뿌려줘도 모자랄 수준이다.
그러니 스스로 만들어내는 수밖에.
그 과정에선 다량의 오존이 생성되었다.
인구가 1만도 되지 않는 작은 도시엔 전에 보지 못했던 종탑들이 많이 늘어나있었다. 전율하는 거인을 신성시하는 종교단체들의 교당(敎堂)들이었다. 종탑들의 높은 밀도는 편의점보다 숫자가 많다는 한국의 교회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곳은 현시점에서 전율하는 거인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실질적인 관문 역할을 하고 있는 거주지다. 다른 거주지들은 규모가 너무 작거나 기반시설이 취약하여 관문 역할을 맡기에 부적합했다.
그러므로 이곳은 원탁의 사냥개들이 거점을 두기 적합한 장소였다.
‘여기도 딱히 눈에 띄는 놈들은 없군…….’
만약 원탁이 정예한 사냥개들을 배치했다면, 보유한 마력회로의 완성도만으로도 내 눈에 띄어야 정상이다. 원탁의 정예들에 비해 수준이 떨어지는 피에르프란체스코조차 내 눈을 피하진 못했으니까.
그러나 만약 원탁이 마스터의 품을 들이지 않은 저급한 하수인들만을 배치해 놓았을 경우, 내 눈만 가지고는 그 하수인들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인조여신의 정원에도, 그리고 전율하는 거인의 영지의 입구에도 정예를 배치해 놓지 않은 걸 보면, 로더필드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마스터들이 겁을 집어먹고 정예를 아끼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어쩌면 내 스승새끼의 개입을 의심하는 중일지도 모르고.
정찰을 마친 후, 나는 부하들 일부와 함께 중심가의 식당에 들어섰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엔 소문도 모이게 되어있으니, 끼니를 때우는 김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도 괜찮을 터였다.
경태는 식당 간판을 보고 반가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오, 여기. 여기가 제가 전에 음식을 포장해갔던 바로 그곳입니다. 파이오니어 사냥꾼 여단 사람들도 이곳에서 만났었죠.”
라일라는 가라앉아있던 와중에도 내 과거 행적에 관심을 내비쳤다. 이곳에서의 내 과거는 높은 확률로 596과 엮여있는 것일 테니까. 경태는 라일라의 관심을 달가워하며 당시 내가 뜻밖의 조우에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웠는가를 줄줄이 늘어놓았다.
“그랬구나……. 웨인도 두려운 마음이 들었던 거구나.”
“에이, 두려워했다기보다는 신중을 기했다고 해두죠.”
“응.”
경태의 이야기는 596과 실제로 마주쳤을 때 내가 취했던 행동에 대한 당위성을 보충해주는 것이었다. 그레이스가 선사하는 두려움을 누구보다도 깊게 느끼고 있을 라일라이기에, 경태의 이야기는 물에 녹는 설탕처럼 먹혀들었다.
우리가 안내받은 자리 옆엔 「토미 리 존스가 여기에 앉았었음.」이라고 쓰인 목판이 붙어있었다. 그밖에도 여기저기 다수의 목판들이 붙어있는 걸 보면, 이 작은 도시 역시 앞서 들렀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관광특수를 누리고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점점 더 나빠지는 거주환경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유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는지.
식당 천장의 TV에선 지역 방송의 시사 프로그램이 흘러나왔다. 진행자와 비스듬히 마주 앉은 게스트는 눈에서 미묘한 광기가 느껴지는 인간이었다.
「여러분이 익히 보아온 소설이나 영화 같은 것들을 떠올려보십시오. 외계로부터 도래한 존재의 침략은 지구의 대기를 자기네에게 맞게 재조정하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그렇게 재조정된 대기엔 우리 인류에게 해로운 성분이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고요.」
「전율하는 거인은 우리 인류에게 있어서 외계의 존재나 다름없습니다. 우리는 놈을 이해할 수 없고, 놈도 우리를 이해할 수 없어요. 놈은 우리의 것과는 뿌리부터 다른 혐오스러운 지성을 가지고 있지요. 뿌리, 뿌리부터요.」
「놈이 끊임없이 퍼뜨리는 오존을 보십시오.」
「오존의 별명이 뭔지 아십니까? 조용한 살인마입니다. 거인은 인류문명을 공격하고 있어요. 놈에게 그럴 의도가 없다고 해도 우리는 공격을 받고 있단 말입니다. 존재 자체가 사악한 그 거인은 인류와 공존이 불가능합니다.」
「이렇듯 전율하는 거인이 계속해서 새로운 방법으로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그냥 손을 놓고 있어요. 어째서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사전에 계획되어있었기 때문이죠.」
「캠트레일, 51구역, 인공강우, 은폐된 UFO와 비밀 우주 프로그램. 그리고 MK 울트라와 정부의 대중 심리조작 작전(PSYOP)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들이 다 하나의 거대한 음모를 이루는 조각들이었단 말입니다!」
「나는 그 음모에 맞서 미국을 구원해줄 사람이 트○프라고 믿었어요. 하지만 백악관에 들어간 그는 표를 던진 나의 믿음을 배신했죠. 그도 세계를 비밀리에 지배하는 그림자 정부와 한패가 되어버린 거예요.」
「대각성 지도(Great Awakening Map)를 보면 25,900년마다 거대한 태양의 빛이 찾아온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인간 의식의 르네상스가 시작되며 인간들에게 특별한 힘이 생기지요. 우리는 지금 바로 그 시대를 살고 있는 겁니다. 이제 먼 옛날에 있었던 황금종족(The Golden Race)의 시대가 다시 돌아와-」
영양가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시사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코미디 프로그램에 더 가깝다고 해야겠다.
나는 TV에 대한 관심을 껐다. 식당을 찾은 헌터들과 주민들의 대화를 엿듣다보니 우리 몫의 음식이 나왔다.
내가 시킨 건 이탈리아 사람이 보면 화를 낼 것 같은 생김새의 ‘이탈리안 스타일’ 스파게티였다. 그래도 간이 다소 센 것을 제외하면 맛은 괜찮았다. 곁들여 나온 치즈 토스트와 미트볼도 입맛에 맞았다.
“경태야.”
“예, 형님.”
“야채도 먹어라.”
내 부하들과 라일라가 주문한 메뉴들은 마치 야채가 멸종한 세계의 요리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샐러드를 추가로 시키지 않았다면 식탁 위에 녹색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
“라일라 너도.”
“……응.”
혐오스러운 섬나라의 파괴적인 식단에 익숙한 라일라는 여기서도 자연스럽게 아메리칸 브렉퍼스트를 선택했다. 달걀 프라이 네 개, 베이컨 네 줄, 구운 소시지 네 줄, 핫케이크 네 장에 덩어리진 해시브라운 두 장. 여기다 벌꿀 버터 토핑까지 잔뜩 쳐서 먹는 고열량 식사였다.
각성능력자에게 부담스러운 열량은 아닐지언정 그래도 영양소의 균형은 맞춰줘야 건강에 이롭다. 막히는 혈관은 내가 뚫어줄 수 있어도, 호르몬 분비나 장내미생물총의 균형은 내 힘으로 어떻게 해주지 못하는 영역이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개개인의 전투력과 임무수행능력은 이렇게 사소한 부분에서도 저해될 수 있었다. 눈에 보일 땐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다.
식당에 모인 헌터들은 전율하는 거인에 얽힌 소문이나 과장이 들어간 경험담, 사건사고 및 의뢰 동향 등을 이야깃거리로 주워섬겼다. 이쪽은 지역방송보다는 영양가가 나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크게 건질 만한 정보는 없었다.
「전율하는 거인의 수액엔 불사암 예방효과가 있다더라.」
「전율하는 거인의 열매를 복용하면 사람의 영혼에 조금씩 신비한 기운이 쌓인다더라.」
「전율하는 거인의 외피로 술을 담가 마시면 정력이 강해진다더라…….」
사람의 신비감과 외경심을 자극하는 위험한 비경(祕境)은 온갖 종류의 환상들을 빚어냈다. 그 같은 환상엔 대개 인간의 욕망이 투영되어있기 마련이라, 불로장생의 선약(仙藥)을 찾아 해동 땅으로 사람을 보내었던 진시황과 같이, 환상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한 탐사에 거액을 투자하는 부호들이 많았다.
헌터들에게는 거액이라고 해도 억만장자들에겐 그리 큰돈이 아니다. 또한 보상금은 성과가 나와야 지급하는 것이기도 하니, 실제로 나가는 건 활동지원비와 사망보상금 정도가 전부였다. 자본주의의 정점에 있는 부호들에겐 하나의 취미생활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잠시 후 식탁 위의 모든 그릇이 말끔하게 비었다. 나는 부하들과 라일라의 위장이 충분히 찼는지 확인하고서 고갯짓을 했다.
“다 먹었으면 그만 일어나지.”
식당에서 나온 우리는 고위험 수렵용품 매장에 들러 미리 예약해 놓았던 산소통(봄베)과 마스크, 휴대용 오존 측정기 등을 찾았다. 슬슬 가게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던 주인은 우리가 받아 가는 산소통의 용량을 보고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10리터 싱글도 어지간해선 찾는 사람이 없는데, 10리터 더블탱크라……. 선생님들, 그거 지속 사용시간은 알고 있습니까?”
“압니다.”
“정말로요? 70% 외기(外氣) 혼합이면 거의 이틀을 연속으로 쓸 수 있는데요?”
바깥 공기에 산소를 좀 섞어주기만 해도 숲속에서의 호흡에 부담이 없어진다.
이런 준비는 내게도 필요한 것이었다. 나라고 해도 유해한 공기에 장시간 노출되면 두통이나 메스꺼움을 느낄 가능성이 있으니까. 긴급 상황에서 벗어던질 때 벗어던지더라도, 일단은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산소통을 챙기는 게 맞았다.
내가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자, 주인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좀 깊은 곳까지 들어가시려나 봅니다. 다 쓴 용기를 반납하시면 싱글 탱크 하나당 백 달러씩 드리니 꼭 돌아와서 반납해주십시오.”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군요.”
“뭐, 그렇지요. 정부에서 발표하는 거랑은 많이 다릅니다. 장사하는 입장에서야 물건만 팔면 그만이긴 합니다만…… 음…… 에이. 괜히 불길한 소리 해서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위험한 곳이라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요.”
“손님들의 행운을 빌겠습니다. 만족스러운 수확을 거두고 돌아오시길.”
이런 준비과정을 거쳐 일단 숙소로 복귀하던 중에, 나는 길가에서 어쩐지 낯익은 느낌이 드는 노숙자를 하나 발견했다. 회로에 결함이 없는 각성능력자인데도 노숙 생활을 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수신호로 일행을 멈춰 세워놓고서 유심히 들여다보기를 잠시. 나는 길가의 노숙자를 언제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해냈다.
발소리를 내며 다가가자, 토막 친 드럼통 속의 불에 포플러 종자솜털을 무더기로 털어 넣던 노숙자가 퀭한 눈을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제게 무슨 용무라도?”
노숙자 앞엔 구걸용으로 쓰는 통조림 캔이 놓여있었다. 캔 안에는 10센트와 25센트 동전 몇 개가 들어있을 따름. 품속에 따로 챙겨놓은 돈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지갑에서 백 달러 지폐 한 장을 꺼내어 캔 속으로 떨어뜨려주었다.
노숙자는 팔랑거리며 떨어진 고액권을 멍하니 내려보다가, 기쁨이 묻어나지 않는 메마른 음성으로 의례적인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주께서 선생님을 축복해주시기를.”
얼굴을 그때의 생김새로 되돌려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이쪽을 알아보지 못하는 모양새다. 나는 노숙자에게 물었다.
“우리, 전에 만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글쎄요.”
“잘 돌이켜보십시오. 우리는 숲과 가까운 안개 속에서 서로 마주쳤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당신은 아들을 데리고 거인의 순례길을 걷고 있었지요. 당신은 자식이 끼니를 거르고 있다며 내게 도움을 요청했고, 나는 그런 당신에게 음식을 나눠주었습니다. 기억나지 않으시는지.”
“아……!”
노숙자의 표정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나는 상대의 내면에서 들끓어 오르는 부정적인 감정들의 색채를 엿보았다. 내 예상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색채를.
‘후회하고 있나.’
분노의 색채도 있었으되, 그 분노는 상당 부분 자기 자신에게도 향하는 듯했다. 이 두 감정을 조합해보면 이유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나는 시선을 기울이며 물었다.
“왜 나를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내가 뭔가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나를 보는 노숙자의 눈엔 짐승 같은 살의가 깃들어있었다. 질문을 받고 흠칫 어깨를 떤 노숙자는, 이내 죄를 지은 사람처럼 시선을 피하며 “아니요. 아무것도…….”라고 중얼거렸다.
이는 이 노숙자가 그동안 어떤 후회를 하며 살아왔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때 품속에 있던 콜트 리볼버를 꺼내어 나를 쐈더라면. 나를 죽여서 돈을 털고 그 돈으로 아들을 병원에 데려갔더라면. 그랬다면, 아들은 아직도 살아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
사람은 사람을 잡아먹는 동물이다.
나는 지갑에서 또 한 장의 지폐를 꺼내어 캔 속에 넣어주었다. 내가 보리라 예상했던 것을 그대로 보여준 대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