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홀로 벗어난 자의 애도 (13)
나흘간의 탐색에서, 내가 발견한 칠각기사단의 거점은 총 셋이었다. 가장 먼저 발견했던 A 군체의 거점 외에 B와 C 군체에서 추가로 하나씩을 찾아낸 것이다.
가장 거대한 D 군체, 즉 「레이디 아밀라리아」와 남동쪽의 E 군체에선 칠각기사단의 흔적과 마주치지 못했다. 인조여신의 정원은 지나치게 넓었고, 탐색의 마지막 순번이었던 E 군체에 대해선 긴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찾지 못했다는 것이 부재의 증거는 아니었다. 기존에 보고된 환각 경험자들의 분포만 봐도 가장 많은 수가 집중되어있는 건 역시 D 군체의 영역이었으니까.
사실, 첫 거점을 성공적으로 들이친 시점에서, 나머지 거점들을 찾아내는 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좀비들을 동원하여 연출하는 사고는 오직 한 번만 써먹을 수 있는 수법이다. 내겐 칠각기사단의 경계망을 돌파할 다른 방법을 궁리해둔 것이 없었다.
또한 첫 거점의 실험기록을 통째로 털어왔으니, 다른 거점들이 보관하고 있을 실험기록은 그만큼 매력이 떨어진 셈이었다. 물론 털어보면 새롭게 얻는 것들이 있을 터이나, 그 이익에 기회비용을 투자할 가치가 있을지는 솔직히 의문이었다.
고로 지금은 다른 거점들의 존재를 확인해두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그레이스가 이 국유림에 얼마의 자원을 투자하고 있는지 추측해볼 근거로서. 또 추후의 다른 탐색이나 감시활동의 기초자료로서. 마지막으로, 첫 거점의 습격을 칠각기사단이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확인할 정황 단서로서의 의미가.
사정이 이러하여, 탐색 사흘째부터는 탐색보다는 「침식」에 대한 내 마법적 이해를 더하는 데 더욱 주력했다. 크기가 작은 C 군체엔 한 시간 남짓한 시간만을 투자했고, D 군체엔 하루 하고도 한나절을, E 군체엔 자투리로 남는 시간을 할애했다.
그리하여 우리가 멀루어 국유림을 떠날 때가 되자, 한국에서 온 2진이 도착해 베이스캠프를 인수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회장님.”
“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별말씀을.”
2진의 주축은 국내사업부 보안과 행동타격대장인 송흥주 부장이었다. 부장급 인사가 지휘하는 국내부 행동타격대는 필요할 때 다른 부서의 인력과 자원을 동원할 권한이 있는 상설 TF로 취급되었다.
경태가 싱글거리며 인사를 건넸다.
“아이구. 오랜만입니다, 산딸기 부장님. 그동안 잘 지내셨죠?”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부탁드렸을 텐데요, 실장님.”
“단순한 별명인데 뭐 어떻습니까. 부장님은 사람이 너무 딱딱해서 이런 별명이라도 있어야 한다구요. 형님께서도 좋아하시고요.”
“……회장님께서?”
……내가?
내게로 눈을 돌린 송흥주는 이내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삼켰다.
나는 흥주가 호위해 온 조직 외 인력들을 보며 물었다.
“저게 다 연구원들이냐?”
“연구원들도 있고 보조 인력도 있고 그렇습니다.”
“네 조카는 아직도 조직에 엮이는 걸 불편해하나?”
“조직에 엮이는 걸 불편해하는 게 아니라, 회장님의 연구로 자신이 명성을 얻는 걸 불편해하는 겁니다. 조직에 대해서는 싫은 감정이 있을 리 없잖습니까. 오히려 정식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처지를 아쉬워하는 마음이 크지요.”
유니폼 필드 베스트(Field vest)를 착용한 연구 인력의 소속은 다양했다. 한국 국립수목원 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재료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등. 베스트의 형상은 동일하고, 가슴께의 로고와 등에 찍힌 문구만 서로 다르다.
송흥주의 조카 송하율은 국립수목원 연구원의 현장 책임자로 이곳에 왔다. 내게 이따금씩 연구 자료와 샘플을 받아다 자신의 이름으로-혹은 공로를 나눠줄 상급자나 동료의 이름으로-발표한 덕분에, 대학원을 졸업한 후 오래 지나지 않았음에도, 국립수목원 식물자원연구과에서 독립적인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할 권한이 있는 책임연구원의 직위까지 올라간 것이다.
송하율은 자신의 권한과 영향력을 활용해 멀루어 국유림 현장조사계획을 추진했다. 이는 송흥주의 TF 팀이 의심스러운 시선을 받지 않고 이곳에 장기간 머무르기 위한 위장막을 만드는 일이었다. 송하율에게서 연구 공로를 상납받은 상급자들은 송하율이 하는 모든 일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었다.
경태는 오늘의 인계를 위해 만든 자료들을 송흥주에게 넘겨주었다.
“요거는 송하율 양에게 전해주시고, 요쪽은 부장님이 보시면 됩니다.”
송하율 몫의 자료는 연구가치가 있는 표본의 위치와 그 표본에 맞춰 학계에 내놓을 새로운 이론들을 담고 있었다. 표본들 중 일부는 처음부터 내 손으로 만들었다. 사정을 모르는 자들은 정말로 귀중한 표본을 찾았다고 생각할 터.
그리고 송흥주 몫의 자료엔 내가 찾아낸 칠각기사단의 거점 정보가 들어있었다. 자신들이 이미 노출되었음을 모르는 악마숭배자들은 원거리에서의 은밀한 감시에 무방비하게 노출될 것이다. 만약 국유림 상공의 비행제한구역에서 연구목적으로 드론을 운용할 허가를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었고.
고도 백 미터 안팎에서 비행하는 소형 드론은 강화계수가 높은 각성능력자의 눈과 귀로도 포착하기 까다롭다. 장소가 시야를 가리는 게 많은 숲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경태가 또다시 헛소리를 지껄였다.
“세금도 잘 내고 골치 아픈 문제들도 해결해주면서 귀중한 지식을 나눠주기까지. 한국 정부는 우리 형님한테 진짜로 고마워해야 하는데…….”
내가 송하율과 그 주변인들을 통해 세상에 내보낸 지식들은 당초의 목표를 티나지 않게 달성하고 있었다. 원탁을 보유한 영국의 독주를 방해한다는 목표를.
현재 한국은 식물성 불사암의 정형화 제어(크립 컨트롤) 및 식물 자연각성체의 산업 활용 분야에서 유의미한 지분을 보유한 국가로 통했다. 내가 제공한 지식을 재료로 삼아 국제 공동연구 프로젝트에 주요 참가국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내가 준 지식들은 그 자체로는 실용성이 크지 않으나 연구자들에겐 많은 영감을 주는 것들이었다. 말하자면 정답으로 길을 이끌어주는 단서들이라 하겠다.
사실 불사암 정형화 제어는 근시일 내에 실현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다. 영혼을 다루는 마법의 거장 크로우허스트의 지식을 계승·발전시킨 나조차, 영적인 다형성 군체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고 나서야 비로소 수일 이내의 한시적인 정형화와 제어가 가능해졌으니.
그러나 내가 목표를 이룰 때까지 원탁을 방해하는 데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또 아는가. ITER에서 핵융합로 가동 시간을 천천히 늘려가듯, 불사암 정형화 제어도 착실하게 유효시간을 늘려 언젠가는 실용화 궤도에 안착할는지.
나는 송흥주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럼 뒷일은 맡기겠다. 네가 어련히 잘하겠지만, 어떤 경우에도 들키는 일이 없게끔 해라.”
“맡겨두십시오. 바로 떠나실 겁니까?”
“글쎄. 기왕 이렇게 만났으니, 헤어지기 전에 식사라도 한 끼 같이 하는 게 어떠냐?”
“혹시 제 조카가 합석해도 되겠습니까?”
“원한다면.”
부분적으로나마 내 이상성을 알 정도로 비취인가 등급이 높긴 해도, 송하율은 기본적으로 준 조직원 취급의 협력자이자 피고용인이었다. 내게 목숨을 빚지지 않은 인력은 아무리 유능해도 정규 조직원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이 원칙의 하나뿐인 예외가 비서실장 겸 기조실장인 수연 녀석인데, 나는 두 번째의 예외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수연 녀석만큼의 각오와 충성심, 그리고 유능함을 보여줄 인재가 다시 나타날 것 같지도 않았고.
송흥주는 제 조카를 데려와 내게 인사시켰다. 내가 그새 얼굴을 바꾸었으므로 나를 보는 흥부의 눈엔 이채가 서렸다.
“송하율입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회장님.”
연구원들은 따로 떨어져 나오는 송하율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에스코트를 맡은 공능법인에 수석연구원 송하율의 친척 어른이 있고, 그 어른의 호의로 시세보다 낮은 값에 의뢰를 맡겼다고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어려워하며 인사를 올렸던 송하율은, 식사 도중 간간이, 또 조심스럽게, 자신의 연구 분야에 관해 평소부터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았다.
그러나 정규 조직원조차 아닌 자에게 분에 넘치는 정보를 알려줄 수는 없는 노릇. 내 답변은 어디까지나 기존에 공유해주었던 지식의 이해를 돕는 수준에 머물렀다.
흥주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조카를 가만히 나무랐다.
“정식으로 조직에 들어오지 않은 네가 이만큼이라도 들을 수 있는 걸 감사히 여겨라. 우리 조직에서는 준 조직원조차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야.”
“알아요……. 그렇지만, 큰아버지께서 비밀유지를 보증하셨는데도 더 많은 것들을 알기엔 부족한 거네요…….”
흥주가 비밀유지를 보증했다는 말은, 송하율이 나와 조직에 대한 비밀을 누설할 경우 그 대가를 흥주가 함께 치르기로 했다는 의미였다.
그 대가는 당연히 흥주 본인의 목숨을 포함한다.
명시적인 안전장치는 이 정도면 족했다. 비밀서약을 하는 준 조직원은, 자신이 서약을 어겼을 때 과연 보증인 하나만 죽고 끝날까 하는 생각을 할 테니까. 서약인이 체감하는 위협의 수위를 조절하면서도 서약의 안전성을 보강하는 ‘점잖은’ 방편이었다.
흥주의 말처럼, 내 조직은 준 조직원으로 들어오는 문턱도 낮지 않다. 근속연수가 5년을 넘는 정규 조직원의 추천을 받아야 하는 까닭이다.
추천인은 자신의 근무평정과 목숨을 담보로 잡히는 것은 물론이고, 일정 액수 이상의 자산을 조직 산하 저축은행이나 투자신탁에 맡겨놓아야 한다.
그렇게 까다로운 추천을 받아서 들어온 준 조직원은, 별도의 허가가 떨어지기 전까진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추천인에 대한 정보를 노출해서는 안 되었다.
이는 추천인의 직위고하가 같은 준 조직원들 사이의 우열을 낳는 사태를 막기 위한 조치이자, 새로 들어온 준 조직원들의 보안의식을 함양하는 교육과정이기도 했다.
만약 어떤 준 조직원이 사소한 것이라도 다른 준 조직원의 추천인에 대한 정보를 알아냈을 경우, 이를 보고하기만 해도 근무평정의 가산점과 소정의 포상을 받을 수 있다. 추천인 정보를 노출한 쪽은 그 경위를 따져 처분의 수위를 결정한다.
반대로 장기간에 걸쳐 추천인의 정보를 흘리지 않았다면, 추천인에게나 준 조직원 본인에게나 소소한 근무평정 가산점이 주어진다. 추천인에게는 기본이 되어있는 인재를 추천해주었다는 명목으로. 준 조직원 본인에게는 기초 시험 하나를 통과했다는 명목으로.
송하율은 흥주가 자식처럼 키우다가 성인이 되자마자 추천을 올린 케이스라고 들었다. 동생 내외가 사고로 죽고서부터 거두어 키웠다고.
그런 만큼, 송하율은 진심의 색채가 넘실거리는 학구열에도 불구하고 선을 넘지 않는 절제력을 보여주었다.
다만 식사를 마치고 나서 다시 한 번 이렇게 아쉬워하기는 했다.
“회장님께서 가지고 계신 지식들이 조금만 더 풀려도 인류문명은 큰 전기(轉機)를 맞이할 수 있을 텐데……. 저는 회장님과 조직의 적들이 뭐하는 집단인지 잘 모르지만, 회장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연구자로서 그들이 하루빨리 무너지기를 기원하고 있겠습니다.”
“고맙구나. 그렇게 될 것이다. 반드시.”
헤어지기 전, 나는 흥주에게 조용히 당부했다.
“노파심에 당부해두겠다만…… 항상 경계를 늦추지 마라. 향후 균사체가 보여주는 환각의 변화양상에 따라 원탁의 수색대가 증파될 가능성이 있으니.”
파견이 아니라 증파다. 비록 내 눈에 띄지는 않았을지언정, 이 국유림 인근에 원탁의 촉각이 박혀있지 않을 확률은 매우 희박했다.
이후 흥주의 팀과 헤어진 우리는 수상기를 주기시켜 놓은 프레리 시티의 개인 활주로로 향했다.
프레리 시티에서 유타 주(州) 리치필드까지는 통상적인 속도로 1시간 40분 가량이 걸리는 거리였다.
이번에도 라일라는 나와 같은 기체에 탑승했다. 나는 밤잠을 설친 라일라에게 잠시 눈을 붙여도 좋다고 해주었지만, 전방 좌석에 앉은 라일라는 “아니야. 괜찮아.”라며 고개를 가로젓고서 지상에 흐르는 황량한 풍경을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오리건 남동부와 네바다, 유타 동북부에 이르는 드넓은 황무지를 지나자 두 줄기의 산맥 사이에 낀 침식분지가 나타났다.
본래대로라면 여기서는 「전율하는 거인」의 존재감을 간접적으로만 느낄 수 있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이 시점의 거인은 독특하면서도 웅장함이 흘러넘치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중이었다.
라일라의 입이 경외감으로 벌어졌다.
“저거…… 거인이 저렇게 하고 있는 거지?”
“그래.”
“맙소사. 화면으로는 몇 번 봤지만, 이렇게 보니 정말…….”
거인의 영지가 자리한 곳, 동쪽 산맥 너머의 하늘은 거대한 빛의 굴절을 보여주고 있었다. 직경이 30킬로미터는 넘을 듯한 마법적인 공간왜곡이었다.
왜곡된 공간은 물리적 실체가 없는 다수의 집광렌즈처럼 작용하여, 거인의 영지에 내리쬐는 태양광의 집적도를 끌어올렸다. 어둑한 영역과 밝은 영역의 비율을 눈대중으로 어림잡아보건대, 대략 1할 가량은 끌어올리는 듯하다.
순수한 힘 대결로 들어가면 인간 대마법사 따위 벌레처럼 눌러 죽일 수 있을 거대 자연각성체의 위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