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홀로 벗어난 자의 애도 (12)
1077의 정신이 약기운으로 혼미해지고 난 후, 라일라는 봉독대의 실험기록과 제대에 저장된 유골들을 차례로 살펴보았다.
유골의 저장 상태는 정갈함과 거리가 멀었다. 골수 속 양분을 끌어당기는 균사 연결체의 인력 때문이었다. 악마숭배자들 입장에선 유해를 수습하기가 편했을 것이다. 사망 후 조금만 내버려둬도 피와 살이 말끔하게 사라지고 뼈만 남았을 테니까.
“…….”
라일라는 두개골 하나를 손에 들고 빈 눈구멍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은 담담했으나, 그 아래 소용돌이치는 감정정보의 신호들은 복잡하면서도 채도가 낮았다.
그레이스가 제 딸들에게 주입한 세계관은 빛과 어둠이 선명하게 갈리는 이분법적 세계관이다.
그런 세계관 속에서 평생을 살아온-비록 그 평생의 기억이 오롯이 자신만의 것은 아니지만-라일라에게, 자신이 속한 울타리의 안팎을 뚜렷하게 구분 짓는 건 새가 날갯짓을 하고 물고기가 헤엄을 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삶의 양식일 터.
저 이탈리아의 마피아 가문들이 그러하고, 구 유고슬라비아 국가들의 문화가 그러하며, 또 카프카스 북부의 관습과 중국인들의 꽌시가 그러하듯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사회 환경에서, 위험에 노출된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집단적 생존방식. 그레이스의 가정교육은 결국 이 같은 생존방식을 보다 극단적인 형태로 강화시켜놓은 것에 불과하다.
나는 라일라의 세계관을 부수려는 게 아니다. 세계관의 중심을 내 형편에 좋게 바꾸고 울타리의 지주를 옮겨 심으려는 것이지.
울타리 바깥에 있는 존재는 둘 중 하나다.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죽여야 하는 적이거나, 울타리를 보강하고 울타리 내부를 기름지게 하는 데 보탬이 되는 사냥감이거나.’
사람이 품는 모든 연민은 자기 자신을 출발점이자 기준점으로 삼으며, 어지간해서는 울타리의 경계를 넘어가는 법이 없다. 넘어가더라도 상한선이 그어지거나 억제되기 마련이고. 다만 라일라에게는 자신과 판박이인 자매들이 예외일 따름이다.
묵묵히 선 라일라의 모습에서, 나는 그레이스에게 남아있던 몇 개의 지주가 내게로 마저 넘어왔음을 직감했다. 앞서 내 조직을 밀도 높게 경험한 만큼 이 현장의 온도가 더욱 차갑게 느껴졌겠지. 예전엔 당연하게 여겼을 차가움이 이제는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그레이스는 확실하게 라일라의 울타리 바깥에 있다.
“라일라.”
“응?”
“이제 나가야 할 시간이다.”
“……응.”
기사단원들을 잠재우고 벌어놓았던 여유가 이제는 십오 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발자국을 지우고, 밟힌 잡초들을 일으켜 세우고, 드나든 경로에 불량품 좀비들을 적절히 흩어놓으려면 남은 시간을 아껴서 써야 한다.
실험기록은 전부 카메라에 담아 놨으니 나중에 천천히 분석해볼 수 있을 것이다. 1077이 실제로 접신을 행하는 것까지 보고 떠난다면 술식 분석 측면에서는 더 유익하겠지만, 지금 거기까지 욕심을 내는 건 다 완성한 그림을 망치는 난잡한 붓질이었다. 차라리 남은 탐색기간 중에 추가적인 관측 기회가 있기를 바라는 편이 낫다.
라일라는 쥐고 있던 두개골을 제대 안에 되돌려놓고 나를 뒤따랐다. 예배당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 돌아보는 시선엔 약간의 미련이 묻어있었다.
“웨인.”
“뭐지?”
“저 자매를 데려가는 건 어려울까? 설득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데. 1077도 분명 당신과 당신의 조직을 좋아할 거야. 당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기도 하고.”
“부담이 너무 크다.”
지금이라도 연출의 방향을 원탁의 습격으로 돌린다면 1077을 빼내는 건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얻는 건 접신에 최적화된 그레이스 복제체 하나가 전부. 그나마도 뇌손상이 상당히 진행되어있다. 마약성 진통제의 영향일지, 아니면 거듭된 접신의 부작용일지.
이렇듯 얻는 것이 적은 데 반해 내가 대비해야 할 부정적인 파급효과는 크다.
바지런히 걸으며 골똘히 생각하던 라일라가 다시금 조용히 물었다.
“부담이 크다는 건…… 그 ‘인간의 메아리’를 남기는 일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뜻이겠네?”
“비슷하다. 나름의 성과를 거둘 가능성은 보인다, 라고 해두지.”
“음, 그럼…… 그 가능성이 원탁에게 노출되었다고 판단되면, 어머니는 이 숲에 더 많은 전력을 급파하실 테고……. 그 이후 원탁의 추가적인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으면 그때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겠지. 그때까지 낭비되는 전력도 문제고. 맞아?”
“이해가 빨라서 좋구나.”
여기서 논하는 가능성을 파악하는 것도 이번 북미행의 중요한 목표였다. 만약 그레이스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을 경우, 나 역시 거기에 맞춰 대응방안을 준비해야 했으니까.
방금 읽어본 실험기록에 기초하여 예상하는 바, 앞으로도 지금처럼 자원을 투입한다는 전제하에, 그레이스가 밝혔던 목표 중 하나인 환각을 통한 광신도 증식은 충분히 해볼 법한 일이었다. 균사체의 인지구조에 계속해서 새겨지는 메아리는 언젠가 외치는 사람 없이도 무한히 울려 퍼질 날이 올지 몰랐다.
거대 균사체에게 파괴적인 ‘충동’을 부여하는 건 역시 성공할 확률이 희박해 보였다. 단, 이를 시도하는 주체가 원탁으로 바뀐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치르는 의식의 정보가 원탁에 넘어갔다는 의심이 들면, 그레이스는 무척이나 과민하게 반응할 것이 분명하다.
예배당에 괜히 소각장치가 깔려있는 게 아니었다.
라일라는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
“많이 아쉬운가?”
“아쉽다기보다는…… 안타깝지. 이런 마음이 드는 게 이상하기도 하고. 전에도 말했지만, 어머니 아래에 있을 때의 나는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거든. 내가 콜레로의 뱀이 되어 죽음을 앞두고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래도 담담하군. 예전의 너와 겹쳐서 보는 것 같던데.”
“나, 어머니의 딸이고 칠각기사단의 간부였어. 작전현장에서 이 정도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할 만큼 미숙하지 않아. 마음이 흔들릴 때 냉정을 찾는 훈련을 받기도 했고. 웨인이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과거의 내겐 생사가 달린 문제였어. 어머니와 언니들이 그렇게 가르쳤지.”
라일라는 어머니의 딸이고 칠각기사단의 간부였다는 말을 하나로 묶어 과거형(was)으로 이야기했다. 단순한 비문이나 말실수는 아닐 것이었다.
“무엇보다-”
라일라가 내 옷자락을 꽉 쥐어왔다.
“당신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당신은 내게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야. 저 자매가 안타깝긴 해도, 만약 웨인이 저 자매의 죽음을 바란다면 나는 당장이라도 돌아가서 목을 꺾어버릴 수 있어.”
“아무런 이유 없이?”
“당신이 바라는데 달리 무슨 이유가 필요해? 내게는 당신이 곧 모든 것의 이유인걸.”
“그런가.”
“응. 그렇게 살기로 다짐했어. 오늘, 다시 한 번.”
흔적을 정리하고 철수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군데군데 뿌려둔 불량품 좀비들에겐 그들이 생전에 좋아하던 차이나 화이트를 주입해주었다. 시체인형이라고는 해도 어쨌든 살아있는 상태를 모방하는 것이라, 마약의 작용은 살아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수명을 길게 잡지 않았으므로, 시체인형들의 상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빠지게 되어있었다. 마약의 효과가 다할 즈음이면 금단증상에 시달리는 고장난 생체기계로 전락할 터.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 하나둘 작동을 중지할 것이다.
일부 좀비들에게는 휴대식량을 배불리 먹여놓았다. 악마숭배자들에게 붙잡힌 상태에서 구토를 하고 똥오줌을 지려주면 좋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칠각기사단은 어이없고 더럽기까지 한 사고를 당했다고 여기겠지. 역겨움에서 비롯된 짜증은 사태를 더욱 경시하도록 만들어줄 조미료다. 그저 재수가 옴 붙은 날이었을 뿐이라고.
각성능력자나 특정 술식에 특화된 복제체로만 이루어진 현장인력의 판단은 딱 그 정도에서 머물 수밖에 없다. 시체인형을 판별할 능력을 보유한 고위마법사가 와서 주의 깊게 조사를 진행하지 않는 한에는.
“오늘 일이 보고가 올라갈까?”
“보고?”
“그레이스에게로.”
질문을 받은 라일라는 곰곰이 숙고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 현장 책임자 선에서 잘릴 거라고 봐. 죽은 사람이 없고, 원탁의 습격 같지도 않고, 실험 진행에 차질이 생긴 것도 아니니까. 큰일이 아닌데 굳이 보고를 올려서 질책을 당하기는 싫겠지……. 당분간 경계를 강화하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까 싶어.”
“의외로군. 광신으로 뭉친 집단이라 다를 줄 알았다만.”
“물론 무조건적으로 보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단원들도 있을 거야. 하지만…….”
“하지만, 뭐지?”
“어머니의 분노는 무서워. 보고가 올라가면 그때야말로 없던 사망자가 생길지 몰라. 기사단원들 입장에서는 메시아를 실망시킨 채로 맞이하는 죽음이고, 내 자매들 입장에서도 혼날 일은 숨기고 싶어지는 게 보통이지. 나만 하더라도 사소한 실수는 몇 번 숨긴 적이 있어.”
“그런 규율을 가지고 이제껏 원탁을 상대해온 게 놀라운데.”
“정말로 중요한 일, 숨겼다가 나중에 더 크게 터질 것 같은 일은 공포 때문에라도 숨기지 않는걸. 특히 숨겨서 어머니에게 해가 될 확신이 드는 정보는 절대로 감추지 않아. 내 자매들에게, 그리고 기사단원들에게 어머니는 자기 자신보다 더 중요한 존재니까. 보통은 내가 다치는 공포보다 어머니가 잘못되는 공포가 더 크지.”
“그런 거로군.”
“응. 다만 사소한 일로 그 중요한 사람의 분노를 사고 싶지 않은 것뿐이야. 만약 어머니가 직접 물어보면 감히 거짓을 고할 사람은 없어. 자매들이든 기사단원들이든……. 특히 기사단원들은 그들의 신앙이 곧 그들의 감시자야.”
“믿음은 견고하나, 감시자가 자신의 안에 있으니 최소한의 융통성은 있다 이건가.”
“그렇다고 보면 돼.”
라일라의 말은 얼마 전 미국 대통령이 SNS에서 주워섬겼던 영미권의 경구를 떠올리게 하는 측면이 있었다. 양심의 가책이 있으면 고발자가 필요 없다. 광신도 악마숭배자들의 양심이라는 게 보통의 양심은 아닐지라도.
‘모든 단원들이 잠재적인 고발자이기도 하고.’
이렇게 생각해보면 정말로 중요한 일은 감출 수 없는 구조가 맞았다. 중대한 사안을 숨겼다간 누가 언제 고해를 할지 모르는 노릇 아닌가. 광신자들로 이루어진 종교집단이란 만인이 만인의 잠재적 고발자인 감시사회와 같다.
어쩌면, 기사단의 조직문화에 존재하는 약간의 느슨함은 그레이스가 조직의 지나친 경직성을 피하고자 암묵적으로 용인한 바일지도 몰랐다.
우리는 거리를 두고 악마숭배자들이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할 때까지 지켜보다가 물러났다. 혹시라도 이들이 깨어나기 전에 사람 맛을 아는 짐승 따위가 나타나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베이스캠프로 복귀한 후, 나는 부하들에게 정오까지의 휴식과 재정비를 허가했다. 탐색 첫날에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으니 잠자는 시간까지 아낄 필요는 없었다.
잠자리에 누운 나는 마법적인 수면유도를 사용하기 전까지 라일라의 상태를 지켜보았다.
라일라는 오늘도 편한 잠을 자기는 힘들 것 같았다.
내게는 자매의 목을 꺾어버리느니 어쩌니 했어도, 지난날의 자신과 겹치는 자매의 모습을 단시간에 망막에서 지워버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겠지.
내 입장에선 달가운 노릇이었다. 혼자만의 시간, 조용한 애도가 불러올 부정적인 감정의 창끝은 전부 그레이스를 향할 터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