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93화 (393/561)

#41. 홀로 벗어난 자의 애도 (9)

모닥불을 피워놓고 식사를 마친 다음에는 남은 잔불에 대고 마시멜로를 구워 먹었다. 경태 녀석이 가져오도록 지시한 간식거리는 높은 열량과 정신적인 휴식을 함께 챙기기에 좋았다. 사람이 계속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만 있을 순 없는 법이었다.

라일라는 마시멜로 두 덩이를 연달아 태워먹었다. 이런 라일라에게 경태가 굽는 요령을 가르쳐주었다.

“아이고……. 우리 라일라 양 마시멜로 한 번도 안 구워보셨구나? 불에다가 직접 가져다대면 무조건 탑니다, 이거. 불이 살아있는 데를 피해서 숯의 열기로 굽는다는 생각으로 해야 돼요.”

“이렇게?”

“예, 그렇게. 높이는 열기에 따라 반 뼘 내지 한 뼘 정도. 살살 돌려가면서 고르게 갈색으로 변하면 그때 먹으면 됩니다. 익히는 정도는 취향 나름이고요. 참고로 우리 형님께서는 조금 바삭한 식감이 느껴지는 걸 좋아하십니다.”

“웨인이?”

“믿어보시죠. 이번엔 진짭니다.”

또 쓸데없는 바람을 넣는 경태 녀석. 라일라는 싱글거리는 경태를 미심쩍어하는 시선으로 쳐다보다가, 시키는 대로 진한 갈색이 될 때까지 마시멜로를 구워냈다. 그러고는 마시멜로를 꽂은 나뭇가지를 두 손으로 쥐고 내게 공손하게 내밀었다.

“웨인, 이거 드세요.”

이제까지는 영어로 말하다가 갑자기 한국어로 하는 존대였다. 이것도 필시 김경태가 가르친 것일 테지. 나는 속으로 혀를 한 번 차고서 나뭇가지를 받아 마시멜로를 뜯어먹었다. 내가 잘 먹는 모습을 본 라일라는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러는 동안 경태는 크래커에 녹인 마시멜로를 올리고 누텔라를 덧칠해 한입에 집어넣었다. 와작와작 헛뜨 헛뜨 소리를 내며 먹는 모습은 춘식이를 연상케 하는 측면이 있었다.

본사에 두고 온 검은 사냥개는 비서실과 전략기획실에서 밥을 먹여주고 있을 것이다. 무리 내의 서열관계에 민감한 동물이기 때문인지, 김춘식이는 수연을 제법 따르는 편이었다. 수연이 딱히 무언가를 해준 적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콜라로 입을 식히고 손등으로 입술을 훔친 경태가 이번 탐색의 의문점을 입에 담았다.

“형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냐?”

“형님께서 하신 말씀에 따르면 마녀 아줌마와 술식을 교환하신 게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은 일인데, 수천에서 수만 톤짜리 균사체들의 인지구조 내에 인간 의식의 메아리를 남기는 일이 이렇게 빨리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할 수가 있는 겁니까? 제가 마법에 문외한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휴식을 취하던 와중에 어머니와 인신공양 이야기가 나오자 라일라가 움찔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상적인 속도는 아니지.”

“마녀 아줌마가 그만큼 많은 ‘자원’을 투입한 것일까요?”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다만, 그보다는 시간이 겹친 거라고 본다.”

“시간이요?”

“그래. 그레이스의 딸들이 균사체의 인지구조에 접속하는 시간과, 환각을 본 인간들이 이 숲에 들어선 시간이 겹친다고 가정하면 많은 의문이 해소된다. 어떻게 이렇게 빠른 시일에 환각을 본 사람들이 나타났는지. 또 왜 하필 야간에만 그런 보고들이 집중되었는지.”

“아하.”

“와보기 전엔 그냥 가설일 뿐이었지만, 직접 보니 확신이 드는구나.”

경태가 머리를 갸우뚱했다.

“근데 그럼 어느 정도는 시간과 날짜에 따라 공간적으로도 집중되는 경향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보고된 사례들의 분포를 보면 공간적 분산이 너무 심하게 되어있는데요.”

“그만큼 메아리의 확산범위가 넓은 모양이지.”

이 가설이 옳다면, 복제체들이 「접신」 의식을 행하는 그 순간에는 분명 균사체들이 방출하는 침식의 파동에 유의미한 변화가 발생할 것이었다. 그 변화의 양상을 분석하고 역추적을 해나가다 보면 의식의 현장들 중 하나가 나오리라는 게 내 기대였다.

‘균사체의 인지망이 어찌 형성되어있는가에 따라 달라질 일이기는 한데…….’

거대 균사체들의 물리적인 인지구조가 어떠한가에 따라, 의식이 만들어내는 메아리의 확산은 매우 불규칙한 형태로 바뀔 수가 있었다.

우리는 충분한 열량을 섭취한 후 자리를 정리했다.

이후의 야간탐색에서는 공중수색을 최대한 활용했다. 압도적인 생체질량을 지닌 균사체들의 마력장은 대마법사의 장악력마저 큰 폭으로 저해하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나 한 사람 염동비행을 하는 데엔 지장이 없었다. 딱히 고속비행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마법을 함께 쓰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빛 반사율이 제로에 가까운 위장막을 둘러 육안 관측을 차단하고, 가장 주의해야 할 레이더 감시는 지형 굴곡을 고려한 저공비행으로 회피했다.

거대 균사체들이 뿜어내는 마력은 황금기의 눈으로도 꿰뚫어보는 데 한계가 있어서, 이런 식으로 고도를 높이지 않으면 멀리까지 내다보기가 어려웠다. 균사체들이 수평적으로 펼쳐져있는 만큼 고도를 높여 얻는 이득은 크다.

시야가 조금 넓어지자 거대 균사체들의 회로와 마력운용을 관찰하는 효율도 높아졌다.

솔직히, 볼 때마다 아름다움을 느낀다.

마법사로서의 나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자평한다. 내게는 대마법사의 지식이 있고, 황금기의 눈이 있으며, 균사체의 그것과는 달리 집중된 형태로 발달한 인간의 인지구조와 사고능력이 있다. 꿈속에서조차 쉼 없이 힘을 쌓는데도 성장이 느리다면 반성해야 할 일이겠지.

그러나 거대한 균사체들의 발전은, 그 크기와 잠재력에 비하면 썩 대단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 발짝을 내디딜 때마다 내게 아주 많은 지혜와 영감을 선사하는 것이었다. 이는 전율하는 거인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사항이다.

상대가 「키요우타마히코」 정도의 체급이라면 내가 앞으로도 근소한 우위를 유지할 자신이 있다. 그러나 이처럼 격이 다른 생명들은 언제까지고 나를 압도하는 존재로 남아있을 것이다. 내가 원탁의 마스터들처럼 영생을 도모하지 않는 이상에는.

하현과 망 사이(下弦望間)의 달이 높이 뜰 즈음, 나는 처음으로 침식파동의 커다란 변화와 흔들림을 관측했다. 식어있던 혈관이 단숨에 달아올랐다.

“왔군.”

「왔다뇨? 예상하셨던 그 변화가요?」

“그래. 속도를 높일 테니 잘 따라붙어라.”

짧은 교신을 마친 나는 염동비행에 속도를 붙였다. 지상에 깔린 균사체의 밀도는 균일하지 않았고, 따라서 내 마력수급을 방해하는 균사체의 마력장이 들쭉날쭉 변화하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그럼에도 싸구려 상용드론의 순항속도보다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연비와 회로점유율만 고려한다면 염동비행보다는 달리기가 더 낫다. 그러나 원활한 관측을 위해서는 시야의 흔들림을 배제할 필요가 있었다.

귓가에 바람 흐르는 소리가 거칠다.

내 부하들은 허공을 밟는 조용한 달리기로 내 인도를 따라왔다.

각자 몸에 지닌 장비의 무게와 각성능력자의 각력(脚力)으로 말미암아 발에 가해지는 힘이 못해도 4백 kgf를 넘을 테지만, 경호실의 정예들은 마력운용의 최대치가 격감한 상황에서도 순간순간 어렵지 않게 염동발판을 빚어냈다. 마법사인 라일라는 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허공에 피어나는 염동력과 압력변화의 색채를 통해 라일라와 경태 이하의 안전을 확인한 후 비행속도를 유지했다.

내 위치는 저출력 GPS 추적기로 공유되었다. 위장막을 두른 만큼, 이게 없으면 부하들도 맨눈으로는 나를 쫓아오기 힘들 것이다.

“아아아아아아아마아겟도-온!”

파동의 흔들림을 역으로 더듬어가는 도중엔 듬성듬성 광란에 빠진 뉴에이지 좀비들의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좀비들은 겁에 질려있었지만, 공포만으로는 설명하지 못할 흥분 상태에 빠진 좀비들도 적지 않았다.

“계시다! 또다시 계시가 왔다!”

“오오, 자연이여! 영지(靈智)의 심원한 뿌리에 닿은 정신이여!”

“Et datum est illi bellum…… facere cum sanctis et vincere illos…… et data est ei potestas super omnem…… tribum et populum et linguam et gentem……!”

“바, 바, 바빌론의 성은 무, 무, 무너져야 한다! 어두운 도시엔 고, 골목마다 진노의 포도주가 너, 너, 너, 넘쳐흐를 것이다!”

“더 보여줘! 내게 더 많은 것들을 보여줘!”

“대답해주십시오……! 세상이 멸망한다면…… 그 전에 인버스를 사야 하는 것입니까……?! 제 삶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습니다……! 아아, 나의 아름다웠던 TQQQ……!”

누구 하나 상태가 멀쩡한 인간이 없다. 나는 이들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우회하며 이들의 행태를 눈여겨보았다.

좀비들의 행태는 보고서와 현장의 차이를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보고서엔 오직 공포만이 적혀있었잖은가.

하기야 마약중독자도 마약중독자 나름이다.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만큼 망가져버린 시한부 인생들의 혼란 가득한 법열(法悅)은 언론과 경찰의 관심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높으신 분들에게도 정직한 통계는 달갑지 않을 테고.’

그러니 현장에 직접 인력을 파견하지 않는 한, 부하들의 조사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침식파동의 흔들림을 추적하는 과정은 해적 전파의 발신원을 쫓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거대 균사체의 인지구조를 타고 번지는 파동의 확산 양상이 전파의 진행처럼 직관적이지는 않다는 점.

광범위하고 복잡하게 얽힌 균사 연결체 조직을 보았을 때부터 예상했던 바, 강도가 높아진 침식파동은 여기저기서 기괴한 굴절과 회절(回折)을 일으키며 추적을 까다롭게 만들었다. 고도를 높였다지만 완전히 트이지는 않은 시야도 발목을 잡았다.

내가 속도를 줄인 끝에 정지하자, 뒤따라 감속하여 땅을 밟은 경태가 의아한 무전을 보낸다.

「왜 멈추십니까?」

“흔들림이 사라졌다. 우리가 이동한 시간이 얼마나 되지?”

「잠시만요. 음, 3분 17초네요.」

긴 시간은 아니다. 그러나 A 군체의 면적과 우리의 이동 거리를 비교할 때, 구불구불 휘어진 추적경로를 감안하더라도 흔들림의 근원이 멀리 있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냄새를 맡을 차례다.

거대 균사체의 인지 네트워크에 접속할 때마다 스스로를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그레이스의 딸들은, 필연적인 생리작용으로서 모공을 포함한 신체의 모든 구멍을 통해 체취가 밴 분비물을 흘릴 것이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게, 균사체가 뻗은 마법적 촉각(觸角)이 뇌를 헤집는데 육체의 항상성이 정상적으로 유지될 리가 있나.

그 냄새를 제거하거나 차단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터였다. 한 장소에서 반복적으로 의식을 거행한다면 그곳엔 무조건 악취가 배게 되어있다. 그렇다고 매번 장소를 바꾸기도 어려운 노릇이고.

땅으로 내려선 나는 부하들에게 말없이 코를 두드려 보였다. 고개를 끄덕인 경태가 제 아랫것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부하들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과 지형을 고려하여 진로를 변경하고 간격을 넓혔다.

‘미리 냄새를 각인시켜두길 잘했군.’

시에라리온의 아기공장에서 목이 매달린 그레이스-331의 유해를 발견했을 때, 부하들에게 그 체취를 기억하도록 지시한 보람이 있다.

지금은 331의 몸을 이어받은 라일라가 동행하고 있으니 바로 옆에 추적용 샘플이 있는 셈이지만, 평소에도 추적방지대책을 꼼꼼하게 취하며 육체에 대한 생체강화 제어까지 행하는 라일라는 언제나 체취가 약한 상태를 유지했다. 칠각기사단과 마주칠 가능성이 있는 지금은 염동력까지 써서 편집증적인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고로 부하들이 331의 냄새를 모르고 있었다면 라일라에게 조금 곤란한 요구를 해야 했을 것이다.

나와 내 부하들이 후각에 집중하며 느린 이동을 개시하자, 라일라는 긴장한 와중에도 못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냄새를 쫓는 거야? 어떤 냄새를……?”

소리죽여 묻던 라일라가 말끝을 흐린다. 그레이스의 머리를 물려받은 라일라는,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가 추적 가능한 냄새가 무엇인지 빠르게 깨달았다. 우리가 알고 있을 만한 후각적 단서가 과연 무엇이 있을는지를.

“앗……! 아앗……!”

“…….”

“호, 호, 호, 혹시…….”

“쉿. 조용히.”

라일라가 방출하는 적외선이 강해졌다. 얼굴과 목덜미의 온도가 특히 더 뜨거워진 라일라는 울상을 지은 채로 나를 바짝 뒤따랐다.

잠시 후, 나는 칠각기사단의 것으로 보이는 청음초(聽音哨, Listening Post)들을 포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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