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92화 (392/561)

#41. 홀로 벗어난 자의 애도 (8)

「레이디 아밀라리아」와 「여신의 네 자매들」은 비교 대상이 몇 없는 거대 각성체임에도 불구하고 성격이 온화하며 위험도가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거대 균사체 콜로니를 두고 성격 운운하는 것은, 버섯을 숭배하는 광신도들의 의인화와 주 정부의 관광 홍보가 일반 대중의 보편적인 인식에 영향을 미친 결과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볼 때 위험도가 낮은 것 자체는 사실이었다. 어지간히 강한 자극이 아니고선 반응을 보이지 않을 만큼 둔감하며, 「전율하는 거인」에 비해 확장을 통제하기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전율하는 거인의 확장은 인류 문명에 대한 침공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급격하고 파괴적인 것이었다. 거인의 영토 확장을 저지하려는 모든 시도는 처참한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밀라리아와 그 자매들의 확장은 확장이 예상되는 지역에 불모지를 조성하는 것만으로도 간단히 저지할 수 있었다. 균사가 기생할 나무들을 뿌리까지 제거하고, 토양을 적당한 수준으로 파괴해놓기만 하면 된다.

아밀라리아와 그 자매들은 보통 「신발 끈(Shoe-String)」이라 불리는 균사 연결체(리조모프/Rhizomorph)를 뻗어 새로운 영토를 확보한다. 불모지의 벽에 부딪힌 연결체 다발들은 불모지를 넘어가기보다는 그 자리에서 멈추는 쪽을 택하는 편이었다.

만약 불모지의 장벽이 차단선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면, 나는 훨씬 더 먼 곳에 베이스캠프를 차려야 했을 것이다. 여신의 자매들 중 거리가 가장 가까운 A 군체는 국도(US 루트 26)로부터 채 1킬로미터도 떨어져있지 않았으니까.

본격적인 탐색을 개시하기 전, 나는 국도로부터의 접근성이 좋은 장소들을 돌아다니며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원탁의 끄나풀처럼 보이는 자들은 없는지. 또 마녀가 등잔 밑의 그늘에 숨겨놓은 제단이 있지는 않은지.

이러한 사전정찰은 소득 없이 종료되었다. 위험요소가 전무하다기보다는, 눈으로만 확인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즐비하게 늘어선 헌터들의 캠핑 사이트 어딘가엔 원탁과 연결된 정보원이 박혀있을지도 모른다는 뜻.

다만 그레이스가 등잔 밑의 그늘을 이용하지 않은 것만은 확실했다.

경태 녀석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괜찮지 않겠습니까? 원탁의 졸개들도 보는 것만으로는 이쪽의 정체를 간파할 수 있을 리 만무하고, 또 여기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우리가 뭐 총질을 하러 온 것도 아닌데 걱정할 거 없죠.”

이 당연한 말들은 사실 내가 아니라 라일라에게 들려주려고 하는 소리였다.

라일라는 지금 위험을 감지한 고양잇과의 맹수처럼 신경을 곤두세운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게, 이곳은 원탁과 칠각기사단을 동시에 경계해야 하는 장소니까.

도주와 은신이 기본인 칠각기사단의 간부 출신답게 라일라는 자신의 경계심과 긴장감을 잘 갈무리해놓은 상태였지만, 인간사냥 경험이 풍부한 경태 녀석은 라일라가 평소와 같지 않음을 쉬이 간파해냈다. 말을 하면서 내게 가벼운 눈짓들을 보낸 것이 그 신호였다.

나는 차분하게 이름을 불렀다.

“라일라.”

“응?”

“너무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다. 여기엔 내가 있지 않으냐. 설령 원탁의 대마법사라고 해도 내 눈을 피해서 접근하진 못한다.”

“아, 응. 그렇겠지…….”

설령 그레이스가 제 자식들의 영혼을 갈아 넣은 ‘불투명함’을 두르고 오더라도 마찬가지다. 거리를 두고 다른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섞여있다면 모를까, 일정 거리 이내로 가까이 접근해올 경우엔 그 불투명함으로 인해 오히려 더 눈에 띄게 되어있으니. 내가 일찍이 하늘에서 내려다본 596의 이상성을 본능의 영역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라일라는 과도한 긴장에서 좀처럼 벗어나질 못했다. 경태를 비롯한 다른 부하들과 달리, 내 눈에 의지해 위험지역으로 들어오는 게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일 것이었다. 이전에 탄자니아 전역(戰域)에서 전투관제를 받은 적이 있긴 하나,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강력한 육체를 쓰고 있었고, 어머니의 품에서 달아나기도 전이었으니.

라일라의 손끝이 가늘게 떨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 원탁보다는 어머니가 더 두려운 까닭이 아닐는지.

“크흠.”

괜히 헛기침을 한 경태가 라일라의 사각에서 나를 보며 쓸데없이 제 머리를 만지작댔다. 참으로 의미를 알기 쉬운 동작이었다.

‘하는 짓이 진짜로 춘식이를 닮았군.’

김춘식이가 사람의 탈을 쓰면 딱 김경태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관상이 비슷하다던 말이 혹시 이런 뜻이었나 싶어지는 순간.

“잠깐 와 봐라.”

내키지는 않았으나, 나는 경태의 조용한 조언에 따라 라일라에게 손을 까딱였다. 그러고는 순순히 다가온 라일라의 방탄헬멧을 벗기고 느린 손길로 머리를 빗질해주었다.

“어……?”

조금 당황하는 티를 내기를 잠시. 내 의도를 알았는지, 눈을 반개한 라일라는 긴 날숨을 내쉬고서 호흡을 고르기 시작했다. 극히 불안정하게 튀던 여러 바이탈 사인들이 신기할 정도로 빠르게 안정화되어갔다. 정수리에서부터 쓸어내리는 촉감은 춘식이보다 나았다.

“이제 됐어. 괜찮아.”

라일라는 제 머리를 쓸어내리던 내 손을 붙잡아 내렸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몇 초간 더 꼭 붙잡고 있다가 감사를 담은 미소를 머금고 놓아주었다.

“신경써줘서 고마워, 웨인.”

지도를 보며 계획을 세운 우리는 늦은 오후부터 본격적인 탐색에 돌입했다.

첫 번째 탐색대상은 당연히 거리상 가장 가까운 A 군체였다. A 군체를 관통하는 길은 드라이 포크 클리어(Dry fork clear)라는 이름의 여울을 따라 나있었는데, 이 여울은 그물처럼 얽힌 균사 연결체에 뒤덮여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균사 연결체의 입체적인 그물은 그 위로 전술차량이 달려도 괜찮을 만큼 튼튼했다. 특정 구간 내에선 물길과 나란히 깔린 비포장도로보다 더 오가기가 편한 길이다. 미 국립공원관리청은 여기에 「여신들의 산책로」라는 별명을 붙여놓았다.

탐색 도중엔 종종 산책로를 걷는 버섯교회의 신도들과 마주칠 수 있었다. 이들은 이러한 당부가 적힌 팻말을 들고 돌아다녔다.

「순례자와 여행자들에게 알립니다. 여신과 그 자매들에게 불경을 범하지 마십시오.」

「경건하게 길을 걷고, 조용하게 머물다가, 가지고 왔던 것들만을 그대로 가지고 선량한 모습으로 떠나십시오.」

「여신께서는 자비로우시나, 그게 당신이 성체(聖體)의 일부를 떼어가도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도둑질한 성체를 복용하여 영육에 이로운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여신들의 정원에서 삼림욕을 하는 쪽이 더 건강에 유익할 것입니다.」

기독교의 성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상징하는 빵이지만, 버섯교회가 말하는 성체는 문자 그대로 여신의 일부를 의미했다. 예나 지금이나 버섯을 몰래 뜯어가는 불법 채취꾼들이 끊이질 않는다는 방증.

아밀라리아의 성체는 암시장에서 약재나 주술의 촉매로 거래된다. 과거의 약재 수요는 태반이 중국인들에게서 비롯된 것이었으나, 요즘은 미국의 시궁창 같은 의료보험으로 인해 미국인들의 수요도 굉장히 많아졌다. 미신, 그리고 대체의학에 빠진 미국인들에게 버섯 여신의 성체는 마지막 희망과도 같은 것이었다.

물론 그 외에도 수요는 존재했다.

지나가는 사람 하나하나를 빈틈없이 살펴보던 라일라는, 산책로 곳곳에서 좀비처럼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보고 중얼거렸다.

“여기, 마약 하는 사람들이 많네……. 저기 있는 그룹은 코카인이랑 펜타닐을 섞어서 맞은 것 같아. 아니, 코로 흡입을 했구나. 주사를 놓은 게 아니라.”

그레이스의 딸이자 칠각기사단의 전 간부이기도 한 라일라는 여러 마약에 두루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칠각기사단의 방계 조직들을 통제하는 수단 중 하나가 바로 마약이고, 기사단의 주요 수익사업 중에도 마약 밀매가 포함되어 있으니까.

그런 만큼 보는 눈도 정확했다. 순수하게 펜타닐만 맞은 인간과 코카인을 섞은 칵테일을 맞은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작은 차이들을 어렵지 않게 포착해낸 것이다.

버섯의 숲을 배회하는 마약중독자들은 「뉴에이지 좀비」, 「언데드 히피」 따위의 별명으로 불렸다.

세상 만물에 신이 깃들어있다는 뉴에이지의 범신론은 자연각성체들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폭발적인 중흥을 맞이했다. 시대의 저편으로 사라졌던 히피들 또한 보다 난잡하고 괴기스러운 형태로 다시 부활했다.

말린 버섯 분말을 마약에 섞어 흡입하는 행태는 「거룩하신 레이디 아밀라리아의 교회」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사용하는 약의 종류와 교리, 그리고 의식(儀式)의 상세에 차이가 있을 따름.

이따금씩 지나가는 버섯 교회의 신도들은 뉴에이지 좀비들을 보고 혐오감을 감추지 않았으나, 넓게 보면 버섯 교회도 뉴에이지의 일부에 속했다. 어느 쪽이든 버섯을 신격화하여 섬기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좀비들 중엔 같은 좀비들에게, 그리고 관광객들에게 약을 파는 소매상들도 섞여있었다. 나는 순도 높은 펜타닐을 보유한 소매상을 발견할 때마다 꾸준히 약을 사 모았다. 진짜 상인인지 경찰의 끄나풀인지는 눈으로 보면 알 수 있었다.

소매상들은 처음엔 자신들을 곧바로 찍어내는 우리를 경계했지만, 아주 많은 돈을 내밀자 자기가 거래하는 도매상과 그 아랫것들로부터 추가 물량을 받아오는 열의를 보여주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추적을 회피하기 위해 취하는 조치들은 나름 전문적이라면 전문적인 것이었다.

경태가 슬쩍 묻는다.

“어떻습니까? 쓸 만할 것 같습니까?”

“음.”

나는 가볍게 끄덕여 긍정했다.

여기서 말하는 쓸모란 시체인형의 소재로서 뉴에이지 좀비들의 쓸모였다.

본디 지독한 마약중독자들은 시체인형으로 만들기에 적합한 소재가 아니다. 시체가 마법의 힘으로 살아있는 상태를 흉내 내려면 생체기계로서의 기능이 최대한 온전하게 남아있어야 이상적이니까.

예컨대 방부제에 절여진 모택동이는 복구가 불가능할 만큼 망가져버린 생체기계다.

같은 맥락에서, 마약중독자를 시체인형으로 만들어봐야 마약에 절여진 저성능 불량품이 탄생할 뿐.

그러나 이곳에서는 바로 그 불량품들이 필요했다. 인신공양의 제단을 찾았을 때, 의심스럽지 않게 경계망을 무력화할 수단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탐색을 계획하는 단계에서 검토한 바, 그런 수단이 사방에 널려있는 것은 이번 탐색의 긍정적인 요소였다.

산책로엔 일정 간격으로 거리표시와 함께 연방 정부가 세운 경고판들이 서있었다.

「본 국립공원에서는 방문객들이 야간에 공포를 유발하는 환각을 경험한 사례가 다수 보고된 바 있습니다. 비록 환각이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에 따라 트라우마가 남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방문객 여러분께서는 가급적 일몰 이후의 출입을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듣기로 이런 경고판들은 일련의 법정 싸움이 있고 나서 세워진 것이었다. 소송의 나라인 미국답게, 환각을 겪은-혹은 겪었다고 주장하는-자들이 주정부와 연방정부가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 피해를 보았다며 집단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고판들은 알록달록한 색채들로 칠해진 데다 글씨마저 동글동글하여 도무지 경고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경고는커녕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지는 사람의 본성을 자극하는 느낌. 어떻게든 관광수입을 유지하고 싶은 관계당국의 몸부림이었다.

나는 슬슬 황혼에 물드는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아직은 잔잔한데…….’

「접신」을 쓰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환각이 보였다면, 거대 균사체들이 방출하는 침식의 파동엔 유의미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

지금 내 눈에 들어오는 파동은 예전에 보았던 것처럼 잔잔하여, 평범한 비각성자들을 상대로도 깊게 파고들지 않는 수준이었다.

이런 수준이라면 일반인이 균사 연결체에 직접 접촉한다 한들 이상을 체감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침식의 마법적 완성도는 전보다 훨씬 향상된 상태였다. 나는 그 향상의 핵심들을 집요하게 관찰했다.

일몰이 가까워지자, 국립공원 순찰대(Park Ranger) 소속 각성능력자들이 ATV를 타고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숲을 나가라고 권유했다.

스스로 몸을 가누는 자가 드문 뉴에이지 좀비들은 순찰대원들의 골칫거리였다. 내버려두면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인간이 여럿일 테니까. 지금은 가을의 초입이고, 이곳의 해발고도는 1,400미터를 넘나든다.

좀비들은 순찰대원들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의외로 각성자들이 제법 섞여있는 터라 강제력을 행사하기도 곤란했다. 거대 균사체의 압도적인 마력장이 각성능력자들의 힘을 억누르고 있을지라도, 각성능력자는 어쨌든 각성능력자다. 이들의 존재는 각성자가 아닌 관광객들이 꼭 에스코트를 동반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산책로 가장자리의 쉼터에 모여 있던 좀비 그룹의 영적 인도자쯤 되는 자가 순찰대원들을 향해 침을 튀기며 외쳐댔다.

“종말이 다가온다! 종말이 다가와! 영지(靈智)를 얻은 자연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라! 어두운 도시에서 악마들의 군세가 때를 기다리고 있다! 오오, 도시! 도시는 인간의 문명이다! 우리는 이곳을 벗어나선 안 돼! 더 많은 계시를! 더 많은 보호를!”

순찰대원은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알겠으니 이 모포나 받으십시오. 전에 준 건 대체 어디다 내다 버린 겁니까?”

“몰라!”

“……몇 시간마다 와서 장작을 드릴 테니 여기서 머무십시오. 전처럼 아무 데나 불을 피우면 안 됩니다. 불은 쉼터의 정해진 곳에서만 피우라고요. 알겠습니까?”

“몰라!”

“제기랄.”

“섹스!”

순찰대원은 넌더리를 내면서도 좀비들에게 모포를 나눠주었다. 거대 자연각성체의 영역에서 인간의 시체가 빠르게 분해된다고는 하나, 그래도 유골은 남기 마련. 좀비들의 뼈가 아무 데나 굴러다니면 관광지고 뭐고 때려치워야 한다.

펜타닐에 중독된 이상 오래지 않아 죽을 목숨들이지만, 최소한의 관리라도 해주면 죽음의 밀도를 낮출 수 있다.

우리는 이 쉼터의 한쪽에서 식사를 추진 받은 후 야간탐색을 이어가기로 했다. 라일라는 조금 피로한 느낌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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