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91화 (391/561)

#41. 홀로 벗어난 자의 애도 (7)

「계룡산 작두만신」을 자칭하는 김연화가 세계적인 유명인사의 반열에 오른 이래, 한국의 계룡산 일대는 온갖 국적의 주술사들이 신통(神通)을 갈고 닦으려 몰려드는 성지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미신에 이끌린 세계 각국의 여행객들도 영험하기로 이름 높은 산에서 신령한 땅의 기운을 받으며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어 했다.

그리하여 지역경제는 대단한 호황을 맞이했다.

여기까지는 좋은 이야기였지만, 계룡산 내에 위치한 대한민국 3군 통합본부(계룡대)는 끊이지 않는 불법침입으로 몸살을 앓았다.

원인은 물론 김연화가 퍼트린 엉터리 믿음이었다.

김연화의 가르침에 홀린 주술사와 수행자들은 한결같이 괴악스러운 논리를 전개했다. “군은 화력으로 충만한 집단이다. 따라서 육해공 삼군의 본부가 집중되어있는 곳이야말로 가장 강하고 순수한 양기가 모여 있을 것이 분명하다!”라고.

가뜩이나 계룡대가 들어선 신도안(新都案)은 무속인들의 모 필독서에서 진인(眞人)이 나라를 세울 십승지지(十勝之地)인지 뭔지로 짚었던 곳이라 하여, 원래부터 자리를 깔고 있었던 무당이니 도령이니 하는 사이비들이 약을 팔기가 용이했다. 사이비들의 말을 들은 외국인들은 계룡대를 ‘구세주가 나타나 천년왕국의 도읍으로 삼을 땅’ 비슷한 것으로 이해했다.

당연히 계룡대는 계룡산 일대의 주술사들을 다 쫓아내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그 요청을 들어주지 못했다.

그러기엔 너무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 멀루어 국유림 인근 지역에서는 그와 유사한 맥락의 혼란이 훨씬 더 거대한 규모로 벌어지는 중이었다.

상식적으로, 거대 자연각성체가 존재하는 숲에서 장기간에 걸쳐 집단적인 환각 증상이 보고되었다면, 연방정부는 즉시 재난지역을 선포한 후 민간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조사단을 파견했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지금의 미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백악관 청원에 대한 답변이 완료된 이후로도 논란이 끊이질 않자, 대통령은 보다 단호하게 입장을 밝혔다.

「중요한 건 경제라니까, 이 멍청한 사람들아!」

「환각을 보았다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는 보고는 받은 바가 없다. 누가 죽거나 다쳤다면 모를까, 그냥 헛것 좀 본 걸 가지고 왜들 그렇게 호들갑을 떠나? 애초에 이걸 재난이라고 할 수는 있나? 재난지역은 재난이 있는 곳에 선포하는 것이다!」

「생계비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지금, 단지 근거가 부족한 우려만으로 그런 굉장한 관광지의 문을 닫아버리면 지역 주민들의 생활은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나는 지역 주민들에게서 희망을 빼앗는 대통령이 되지 않겠다!」

굉장한 관광지.

대통령의 말처럼, 세 번째로 찾아온 멀루어 국유림 일대엔 두 번째와는 또 달라진 번화함과 혼잡스러움이 깔려있었다. 마치 골드러시 당시의 전성기가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산맥과 국유림의 경계 바깥까지 존재감을 투사하는 「레이디 아밀라리아」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주술사와 관광객들을 끌어들였다. 집단 환각 사태에 겁을 먹은 사람들보다는 호기심이 동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모양이다.

하기야 지역경제 침체를 우려한 주지사와 주 상원의원이 차례로 방문하여 삼림욕을 즐기는 모습을 공개했으니,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이 한창일 때도 파티를 열고 피크닉을 즐겼던 자들에겐 별것 아닌 위험으로 보였겠지.

무전망에 경태 녀석의 탄성이 흘렀다.

「와……. 미리 정보를 받긴 했지만, 이건 좀 개판인데.」

국유림 인근의 공역에선 다수의 날아다니는 탈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도그파이팅을 연상케 하는 추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비록 기총을 발사하거나 하는 기체는 없었으나, 언제 공중충돌이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협적이면서도 위태로운 비행들이었다.

주파수를 잠시 공용 무전채널에 맞추자, 무전기에선 욕설과 고성, 그리고 시끄러운 찬송가가 한데 뒤섞인 소음이 흘러나왔다.

「신은 유일하시다! 신은 유일하시다!」

이슬람 테러리스트나 외칠 법한 구호. 그러나 이 구호를 외치는 자들은 십자가를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고 있었다. 각각의 기체들마다 커다랗게 십자가가 그려져 있다.

경태의 말마따나, 이 혼란은 이곳에 오기 전부터 보고를 받아 알고 있었던 바다. 레이디 아밀라리아의 존재 자체를 신성모독으로 받아들이는 극성맞은 기독교 민병대들이 수시로 기체를 몰고 나타나 공항의 이착륙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버섯숭배자들의 모임인 「거룩하신 레이디 아밀라리아의 교회」는, 마약에 취해 항문성교를 즐기는 이상한 집단이라는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다. 여기에 아밀라리아의 이상 현상 발현까지 더해졌으니, 원리주의 기독교 교단들이 얌전히 있으면 오히려 이상할 노릇.

그래도 균사의 왕국을 직접 공격하려는 기체는 보이지 않는다. 일찍이 제초제를 살포하다가 벼락의 해일에 휩쓸려 죽은 얼간이들이 강렬한 교훈을 남긴 덕분일 것이다.

“다른 곳으로 가자.”

나는 여기서 순번을 기다리기보다는 다른 착륙지점을 물색하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하고 기수를 돌렸다. 관광수요도 많고 각성능력자들의 방문도 잦은 탓에, 국유림 주변 지역엔 카운티 공항이 아니더라도 기체를 내릴 활주로가 여러 개 더 존재했다.

정 내릴 곳이 없으면 사유지의 활주로를 이용하는 수도 있다. 개인 소유 항공기에 익숙한 미국인들은 자기 소유의 땅에 활주로와 수직이착륙장, 그리고 야외 주기장과 헛간을 닮은 격납고를 만들어 장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전을 이용한 탐색과 짧은 흥정 끝에, 우리가 새롭게 고른 착륙지점은 원래 이용하려던 그랜트 카운티 공항으로부터 동북동으로 20킬로미터쯤 떨어진 소도시, 프레리 시티의 사유지 내 활주로였다.

활주로에 내리자마자 보이는 도로(U.S. Route 26) 가장자리엔 커다란 표지판이 서있었다.

「아밀라리아의 관문, 프레리 시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밀라리아의 관문이라는 부분엔 몇 번이고 지워졌다가 덧칠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해당 표현의 사용을 두고 다른 도시와 마찰이 있었겠지 싶다. 일전에 투어 가이드를 맡았던 「노던 딕시」인가 하는 헌터집단은 캐니언 시티를 아밀라리아의 관문이라 했으니까.

‘버섯과의 거리만 놓고 보면 이쪽이 더 가깝긴 하지.’

예전에 경유지로 삼았던 캐니언 시티가 멀루어 국유림의 정식 입구 취급이기는 하지만, 균사의 왕국은 입구로부터 동북쪽으로 한참 떨어져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16마일(25.7km)쯤 나아가 남쪽으로 빠지는 산길(FS-2635)을 8마일(12.8km) 가량 올라가면 버섯 군체(클론 콜로니)의 영지에 도달할 수 있다. 다른 어떤 경로보다도 더 가까운 길이다. 캐니언 시티에서 출발하는 탐사 에스코트도 최단거리를 주파할 땐 이곳을 경유하는 경우가 많았다.

캐니언 시티가 기존에 존재하던 공항 인프라와 유권자들의 머릿수를 무기로 투자를 선점하지만 않았어도, 아밀라리아 파생경제의 최대 수혜자는 이곳 프레리 시티의 주민들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대로변에서 본사 현장지원팀이 예약한 차량들을 기다렸다. 현장지원팀에서 분산 예약을 넣은 장비대여업체들은 모두 캐니언 시티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으나, 아까 공중에서 기수를 돌린 시점에서 경태가 연락을 넣었으므로 차량들이 배달되기까지는 10분 남짓한 기다림으로 충분했다.

배달을 나온 대여업체 직원들은 우리가 가진 신분증과 서류들을 꼼꼼히 확인한 후 차량을 인도해주었다.

“확인 끝났습니다. 다들 신용등급이 높으시군요. 그럼 좋은 사냥 하시기를 바랍니다.”

좋은 사냥 하라는 말(Good hunting)은 미국의 헌터들 사이에서 다양한 상황에 쓰이는 관용적인 인사말이었다.

인도받은 전술차량들은 다수의 캠핑 트레일러를 달고 있었다. 전번에 비해 탐색기간을 길게 잡았기 때문이다. 부하들은 전술차량에 탑재된 화기들의 기능점검을 수행한 후 경태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내었다.

우리는 최근에 확장된 듯한 왕복 4차선로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여, 26번 국도와 7번 주도(州道)의 분기점 부근의 캠핑장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다른 헌터 집단들은 우리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원탁의 끄나풀은 없는 것 같았다.

캠프 설치를 완료하니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이었다. 도로 인근 휴게소(Rest area)에 관광객과 헌터들을 상대하는 매장이 있었으므로 휴대용 간편식을 까먹을 필요는 없었다.

나는 뻑뻑한 질감의 버터 스카치 밀크셰이크를 마시며 지도를 띄운 전술 태블릿을 들여다보았다. 경태 녀석은 이런 나를 보며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걸로 식사가 되시겠습니까?”

“안 될 게 뭐냐.”

“저희들 먹는 건 엄청 신경 쓰시면서…….”

“지금은 단 음식이 당겨서 그렇다.”

“아하.”

헌터 사이즈랍시고 파는 밀크셰이크는 사람의 평균적인 위 용적을 꽉 채우고도 남는 양이었다. 어지간한 전투식량을 가볍게 상회하는 열량이니 끼니를 때우기에 부족함은 없다.

“우리 형님 조금 스트레스받으시나 보네.”

경태가 이상한 오해를 중얼거렸으나, 나는 굳이 정정해주지 않았다.

멀루어 국유림엔 다섯 개의 거대 균사 군체(클론 콜로니)가 존재했다. 미국 국립공원 관리청(NPS)은 국도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군체를 A 군체라 부르며, 이 A 군체에서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나아가며 B, C, D, E의 식별부호를 붙여놓았다.

이 중에서 「레이디 아밀라리아」의 이름을 얻은 인조 여신은 다섯 군체의 분포중심을 기준으로 7시 방향에 자리한 D 군체였다. 가장 크고, 가장 무겁고, 가장 오래되었으며, 가장 강력한 균사의 왕국이다.

그러나.

‘그레이스 입장에선 다른 군체들도 가치가 있어.’

거의 9천 년을 살아온 레이디 아밀라리아에 비하면 손색이 있긴 하지만, 나머지 군체들도 대체로 4천 년에서 5천 년의 시간을 견뎌온 오래된 생명들이며, 현시점의 수평 면적이 120에이커(48헥타르)에 불과한 C 군체조차 나이가 거의 천 년을 헤아릴 것으로 추정된다. 영혼의 질이 굉장히 좋다는 이야기다.

세간에서 레이디 아밀라리아의 어린 자매들이라 부르는 이 군체들은, 그레이스의 눈엔 조금 더 메아리를 남기기 쉬운 목표들로 보일 것이었다.

나는 일찍이 아밀라리아의 「침식」이 다른 생명에 기생하는 균사체의 생태와 깊은 연관성이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넓게 기생하고 있던 숲 곳곳에서 속속 각성수들이 출현하면서, 생존을 위해 그 마력장을 중화할 능력이 필요해졌을 것이라고.

요컨대, 침식은 아밀라리아 고유의 특질이 아니었다.

따라서 내가 칠각기사단의 꼬리를 밟으려면, 아밀라리아만이 아니라 다섯 자매들 모두를 대상으로 탐색을 진행해야 한다.

문제는 「접신」을 사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는 점.

군체의 침식이 닿는 영역 내에서라면 어디에서든 접신이 가능한 까닭에, 그레이스의 딸들이 스스로를 바치는 인신공양의 제단은 국유림 동쪽의 어느 곳에라도 존재할 수 있었다. 내가 탐색 기간을 괜히 길게 잡은 게 아니었다.

햄버거를 먹던 경태가 콜라로 입을 헹구고는 아쉬운 목소리를 낸다.

“항공탐색이 막힌 게 유감이네요.”

“별수 없지. 이 세상엔 이상한 방향으로 정신이 나간 저능아들이 너무 많으니까.”

균사의 왕국 위로 제초제를 살포했던 멍청이들로 인해, 국유림 상공은 비행제한구역으로 설정되었다. 비행기를 타고 편하게 돌아다니며 지상을 훑어볼 수가 없다는 의미다.

비행제한구역 설정은 명목상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그 저변엔 걱정과 두려움이 깔려있었다. 중요한 관광자원 겸 생물자원이 상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과, 레이디 아밀라리아가 「와다츠미 키요우타마히코」처럼 인간을 적으로 인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거대 균사체 콜로니의 인지구조는 동물과 근본적으로 다르며, 그 인지구조가 과연 인간을 주변 환경과 구분하여 해로운 요소로 인식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지극히 희박한 가능성이라 할지라도 조심하는 것이 맞는 선택이었다. 공중으로부터의 화학적 테러는 지상에서의 그것에 비해 여파가 너무 크다.

어쨌든, 그런 연유로, 통상적인 항공정찰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낮에는 도보로 수색을 하고, 밤에는 야음을 틈타 염동비행으로 지상을 조감해보는 수밖에.

달리 구상해둔 추적방식이 하나 더 있긴 하나, 불확실한 가설에 기초한 구상이라 실제로 가능할지는 의문이 있다.

내가 칠각기사단 꼬리 밟기에 할당한 시일은 나흘.

운이 나쁘면 나흘을 다 쓰고 나서도 인신공양의 제단을 발견하지 못하는 수가 있었다.

‘코드 수집과 보강만 잘해도 시간 낭비는 아니겠지만…….’

부하들의 능력은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다. 수연과 경태 녀석만 하더라도 이제는 사중각성 능력자다. 마력장을 중화할 능력을 미리미리 키워두지 않으면, 부하들이 부상을 당하거나 회로에 문제가 생기거나 했을 때 대응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만약 내게 침식의 코드가 없었다면 라일라의 이식수술 때도 더 어려움을 겪었을 터. 원탁이 만들어낼 조립식 외부확장회로에 대해서도 침식은 유효한 공략수단이 되어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마녀의 제단을 꼭 찾아내고 싶었다. 그레이스에 대한 라일라의 감정에 최후의 쐐기를 박아 넣기 위하여.

어머니의 품을 떠나 내게로 오기까지의 여백에서, 뱀의 허물을 쓴 라일라는 조용한 바다의 해수면 아래에 몸을 웅크린 채 짧지 않은 시간을 번민했다. 그 번민에서 그레이스는 과연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을까.

라일라는 완벽하게 내 것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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