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홀로 벗어난 자의 애도 (6)
시애틀에 도착한 우리는 시가지 내의 호텔에서 밤을 보낸 후 도시 동쪽의 워싱턴 호수로 향했다.
남북으로 수평선이 보이는 이 너른 호수의 가장자리엔 수도 없이 많은 부두들이 빼곡하게 들어차있었다.
이러한 부두들은 대부분 일반 가정집에 딸려있는 것이었으나, 1할 가량은 헌터들을 상대로 수륙 양용 비행정(Amphibious aircraft)을 비롯한 각종 장비들을 임대해주는 사업자들의 소유였다.
호수를 주기장 겸 활주로로 사용할 수 있는 비행정은, 공항이나 기타 이착륙시설의 수용한계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도심과 가까운 거리에서 이착륙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기반시설을 구축하는 비용이 저렴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유지보수 비용이 비싼 건 단점이지만, 사람은 작위에 의한 손실보다 부작위에 의한 손실에 더 너그러운 법이었다.
이런 임대사업자들의 주 고객층은 비행 능력은 있으되 개인 기체는 없는 헌터들, 그리고 레저 목적의 각성능력자 이용객들이었다.
조직 산하 공능법인의 명의로 등록된 기체를 타고 태평양을 가로질러 오는 것보다는, 위장신분으로 현지 업체의 기체를 대여하는 쪽이 훨씬 덜 눈에 띈다.
우리가 예약한 업체의 사무실은 시애틀 시가지 남동쪽의 레이니어 밸리(Rainier Valley) 호변에 자리하고 있었다. 문을 밀고 들어가자, 의자에 푹 파묻혀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늙은이가 딸랑이는 벨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예약 내역과 여권을 대조한 후 비행자격증을 확인한 늙은이는 우리를 부두로 안내했다.
“헌터 양반. 내 노파심에 당부하겠는데, 너무 무리를 하지는 마시구려.”
늙은이가 열쇠를 건네주며 하는 말에, 나는 시선을 기울이며 되물었다.
“무리라뇨?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최근 과부하 증후군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추락사고가 있었다오. 올 들어 발생한 추락이나 비상착륙 사건이 미국 서부에서만 벌써 여섯 번째인가 그렇다지.”
과부하 증후군(Overload Syndrome)이란 자신의 힘을 한계치까지 사용하던 헌터들이 갑자기 신체상태가 악화되거나 급사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의학적으로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증상들의 모임이라 증후군이라 부른다.
물론 그 원인은 과부하가 걸린 마력회로의 파열이다. 마법을 모르는 자들이 어쩌다 본질에 닿아있는 작명을 한 셈이었다. 기존에 같은 이름으로 불리던 근골격계의 질환이 있었지만, 대중적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는 건 이쪽이다.
늙은이는 라일라를 한 번 흘낏 보고서 조금 작아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반쯤 우스갯소리에 가깝기는 하오마는, 이쪽 업계에서는 여자가 끼어있는 팀을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오. 여자가 있으면 사내새끼들이 조금이라도 더 힘자랑을 하기 마련이라는 게지, 그 왜, 쭉쭉빵빵한 여자가 헬스클럽을 다니면 벤치프레스에 깔려 다치는 남자가 유의미하게 많아진다고 하질 않소.”
“…….”
라일라는 조직의 사업장들을 둘러볼 때와 같이 단독군장을 갖추고 얼굴을 가린 상태였으나, 밖으로 흘러나온 머리카락과 눈매만으로도 여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조금 전에 위장신분이 기재된 여권을 확인하기도 했고.
“이미 알고 있겠지만, 우리가 보유한 기체들은 국제 고위험 수렵협회의 항공 랠리 챔피언십에도 나가는 모델들이오. 과열에 대비한 안전장치가 있을 뿐 스피드 리미터 따윈 걸려있질 않단 말이지. 아무쪼록 스스로의 몸을 생각해가면서 안전한 비행 하시길 바라오.”
보유 기체들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에 불필요한 걱정이 섞인 말들. 나는 어이없는 기분을 느끼며 답했다.
“……유념하도록 하지요.”
“선생께서 팀의 리더이신 것 같으니, 다른 분들도 단속해주시고.”
“예.”
늙은이의 말대로, 기체의 사양은 벌써 다 숙지하고 있는 바다. 스피드 리미터가 없는 기종은 헌터로서의 신용평가등급이 낮을 경우 애초에 대여가 불가능하기도 했다.
과거 「파이오니어 사냥꾼 여단」의 멧돼지 사냥 투어를 이용했을 때와 비슷하게, 기체 대여가 임시 수렵면허와 한 묶음으로 이루어지는 옵션을 선택했으므로, 나와 내 애들이 탑승할 기체엔 나름 무장이라고 할 만한 게 달려있었다.
비록 가벼운 기관총 두 정이 전부라고는 하나,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니 이만하면 보험으로서는 충분했다. 거주지나 민감 시설 인근 공역에선 자동으로 락이 걸린다는 점도 딱히 문제가 되진 않는다.
핵심은 무장보다는 속도에 있었다. 나나 내가 직접 회로를 열어준 부하들의 역량이면 어지간한 적은 기동력만 가지고도 농락하는 게 가능하다.
내 부하들 몫의 열쇠를 차례로 넘겨준 늙은이는, 이쪽이 기체의 취급 방법과 주의사항을 제대로 숙지하고 있는지 확인한 다음 사무실로 돌아갔다. 나는 부하들이 탈 기체들의 정비 상태를 눈으로 점검한 후 고갯짓을 했다.
“모두 탑승해라. 라일라는 나와 함께 타지.”
“응.”
끄덕이는 라일라는 안색이 조금 굳어있었다. 어젯밤, 호텔에서 내가 이 여행의 목적을 알려준 까닭이다. 아밀라리아의 숲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고, 마녀와 나 사이에서 어떤 술식의 교환이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로 내가 어떤 의심을 품고 있는가를.
그레이스-596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다. 전율하는 거인의 뱃속에서 발생했던 예기치 못한 조우와 596의 오해에서 비롯된 추격전, 그리고 내게 붙잡힌 그녀의 자살에 이르기까지.
나는 내가 596에게 선공을 가한 경위도 있는 그대로 털어놓았다.
이는 도구적인 솔직함이었다. 때로는 내게 불리한 사실을 감추지 않는 것이 신뢰를 더하는 방편이 되기도 하니까. 칠각기사단의 684번이었던 라일라의 사고방식으로는 당시의 내 행동이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지리라는 계산이 있기도 했고.
실제로, 이야기를 들은 라일라에게선 나를 탓하거나 원망하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슬프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을 따름이다.
“웨인은 정말로 좋은 사람인데……. 596번 자매도 그걸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라일라가 말하는 ‘좋은 사람’은 어디까지나 자신을 구원해주었으며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라일라는 어젯밤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딱히 감시를 한 것은 아니지만, 뇌와 신경계, 그리고 육체 전반에 묻어나는 피로의 색채를 보면 알 수 있었다. 내가 때때로 잠에서 깨었을 때마다 각성 상태의 뇌파가 눈에 들어오기도 했고.
내가 탑승한 기체의 동력케이블은 안쪽에 와이어 전극선이 그물처럼 노출된 팔뚝보호대 형태의 절연 커버에 연결되어 있었다.
한쪽 팔뚝을 걷어 커버를 착용한 후 버클을 조이고 방전을 흘려 넣자, 계기판의 충전 표시등에 녹색 불이 들어온다. 개인 소유 기체의 경우엔 전극이 내장된 전용 전투복을 구비하여 동력선을 연결하는 게 보통이지만, 범용 임대 기체는 이런 충전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원격 투사가 용이한 발화능력자들의 동력공급방식과는 차이가 있는 부분.
각성능력자로부터 동력을 얻는다고는 해도, 사고 예방이나 전력 품질의 균일성 유지, 평시의 관리 등을 위해서는 일정 용량의 배터리-또는 슈퍼 커패시터-를 탑재해야 했다. 이런 축전장치들은 에너지 소모가 큰 이륙 과정에 보조동력을 제공하거나, 탑승한 각성능력자들의 역량을 초과하는 급가속이 필요할 때에도 기능을 발휘한다.
커패시터 충전상태를 나타내는 계기 아래엔 관리직원이 손으로 직접 쓴 듯한 안내가 붙어있었다.
「주의 : 반드시 완충해서 반납할 것!」
부팅이 완료된 글래스 콕핏엔 동료 기체들의 정보가 순차적으로 떠올랐다. 부하들이 탑승한 기체의 정보는 사전에 등록이 끝난 상태였다.
워싱턴 호수의 수상활주로 구역들은 중부와 북부에 집중적으로 몰려있었다. 도시 남쪽에 자리한 공항들과 안전거리를 두기 위해서였다.
전투임무를 고려한 복좌식 기체는 두 개의 좌석이 직렬로 배치되어 있었다. 후방 좌석에 앉은 나는 조종권한을 가져온 후 수상비행장으로 설정된 구역을 향해 기체를 북상시켰다. 물살이 하얗게 갈라지는 내내, 계기에 표시되는 전력소비량은 2~3킬로와트시 사이를 오갔다.
내 기체가 비행장에 접근하자 머서 아일랜드(Mercer Island) 북쪽의 관제소로부터 무전이 들어왔다.
「등록번호 N1909B, N1909B에게 알립니다. 귀 기체에게 할당된 활주로 번호는 30L, 30L이며, 대기 순번은 없습니다. 메이든바우어 W2 포인트를 경유하여 출발점에 진입하여 주시고, 이동시 다른 대기구역이나 수상활주로 구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의 내용을 확인했다면 답신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반적인 공항에서 이루어지는 관제에 비하면 단순하면서도 여유롭다. 내게 할당된 수상활주로는 정북을 기준으로 300도, 즉 서북서 방위로 이륙하게끔 되어있었다.
「N1909B, 이제 이륙해도 좋습니다.」
나는 엔진의 출력을 급격히 끌어올렸다. 뒤로 쏠리는 중력가속도가 느껴지고, 계기에 뜨는 전력소비량과 모터의 회전수가 날카롭게 치솟는다. 잔잔하게 물결치는 호면과 먼 시가지의 풍경이 이내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시애틀에서 버섯 여신을 품은 멀루어 국유림까지는 대략 480킬로미터 즈음이었다. 전력을 쏟아 부어 기체의 성능을 한계까지 끌어내면 30분 내로 주파 가능한 거리였으되, 나는 한 시간 정도가 걸리게끔 속도를 조절했다. 미국의 대공감시망과 기체의 블랙박스에 비정상적인 기록이 남는 걸 피하기 위해서였다.
“…….”
소풍을 나온 아이처럼 들떠있던 어제와 달리, 전방 좌석에 앉은 라일라는 비행이 이어지는 내내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내게로 오고 나서부터는 밝은 변화에 가려져 좀처럼 드러날 일이 없었던 그늘진 알맹이였다.
“혹시 나를 원망하나?”
“……응?”
라일라는 뒤를 돌아보며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원망? 내가? 웨인을? 왜?”
“조금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말이지. 네 어머니에게 「접신」의 코드를 알려줌으로써 다른 자매들을 위험하게 만든 것이나, 의도치 않았다고는 해도 596이 자결을 결심할 상황을 만든 것에 대해서.”
“절대로 아니야!”
아닌 걸 알면서 던진 질문이다.
라일라는 오해를 피하고 싶은 사람처럼 황급히 말을 이었다.
“「레이디 아밀라리아」에 대한 정보는 어머니가 먼저 요구한 거라면서? 어머니는 분명 당신이 모를 리가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물어봤을 거야. 황금기의 눈을 가진 당신이 거대 자연각성체가 얽힌 특이현상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건 이상한 일이잖아.”
“그래. 알고 묻는 뉘앙스이긴 했다.”
“그런데 당신이 어떻게 모른다고 할 수 있었겠어. 당신에겐 어머니와의 협력이 필요하고, 부하들의 죽음과 먼저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어렵게 동맹을 이루었는데. 만약 그때 답을 피했다면, 어머니는 당신에 대한 경계와 불신을 되새겼겠지.”
기대했던 대로,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라일라의 관점은 철저하게 내 입장을 옹호하는 쪽으로 경도되어 있었다. 나를 믿고 내게 의존하는 마음이 깊은 덕분이다.
인간의 감정은 사실관계를 무시하고 작동할 때가 많다. 그러므로 충분한 사전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객관적인 사실과 책임소재가 어떠하든 간에, 라일라는 이번 일로 나에 대해 일말의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을 수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간 내 조직의 운영방식을 상세히 경험한 라일라인 만큼, 아프리카에서 죽은 부하들이 내게 얼마나 가치 있는 자산이었는지를 알 것이기도 했다. 그런 비용을 치러가며 체결한 동맹을 중요도 낮은 정보공유 거부로 금이 가게 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호흡을 한 번 정돈한 라일라는 이어지는 말에서 속도를 덜어내고 진중함을 더했다.
“596번 자매의 일도 당신 잘못은 크지 않아. 그 자매가 정신적으로 그렇게까지 몰려있었던 것도, 그 자매가 당신을 추적대로 착각한 것도 결국은 어머니에 대한 두려움이 원인인걸. 당신과 그 자매 사이엔…… 그저 불운하고 우울한 오해와 사고가 있었을 뿐. 당시 어머니와 협력을 맺기 전이었던 당신으로선 그렇게 행동하는 게 합리적이었고.”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애초에,”
말이 잠시 끊어지는 여백에 나직이 새어나오는 한숨.
“내가 다른 자매들의 일로 이렇게 심란해하는 것부터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예전엔 이렇지 않았거든……. 거의 대부분의 자매들은 사실 서로에 대한 친애가 깊지 않은 사이니까. 596번만 하더라도 나와는 직접 만난 적이 없고.”
“그래도 만나보고 싶어 하지 않았나.”
“응.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어. 하지만-”
“하지만?”
“그 자매는, 당신이 아니라 내가 눈앞에 나타났어도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을 게 뻔해. 아니면 곧바로 총부터 쏘거나. 어느 쪽이든 정상적인 대화는 불가능했겠지.”
라일라는 자신의 말을 스스로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가 그 처지였어도 똑같이 행동했을 거야. 어머니로부터 달아난 곳에서 마주친 자매의 말은 일단 속임수라고 의심하는 게 먼저지…….”
이 씁쓸하게 흐리는 말을 끝으로, 라일라는 시선을 앞으로 떨어뜨린 채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