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홀로 벗어난 자의 애도 (3)
지금으로부터 약 스무 날 전, 천안문 광장 의거 당시, 철퇴하는 과정에서 마무르의 요구로 사로잡아온 낭랑장미 중대장의 이름은 양쉐빙(楊雪氷/양설빙)이라 했다.
철퇴가 완료된 직후 마무르는 양쉐빙 대위(상위/上尉)의 ‘교화’를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부탁했다. 과연 제대로 해내기나 할까 싶은 의구심이 있었지만, 나는 양 대위의 신병을 성전연합으로 넘겨주었다. 어차피 마무르가 아니었으면 잡지도 않았을 포로이고, 성전연합에게 떡고물을 물려줘야 이후의 협력이 원활하게 돌아갈 것이었으니까.
포로를 넘겨받은 마무르는 경건함에 가까운 태도로 말했다.
「나는 약속해요. 중국의 추수감사절(춘절)이 시작되기 전에 포로의 교화를 완료하겠다고! 그럼으로써 중국인들의 명절을 더없는 굴욕과 모멸감으로 덧칠해주겠다고! 이 마무르는 싸장님께서 그리신 불 속성 드래곤의 눈알에 완벽한 점을 찍을 것입니다!」
불 속성 드래곤 어쩌고 하는 말은 아마도 화룡점정을 뜻하는 것일 터였다. 화룡점정의 화는 불 화(火)가 아니라 그릴 화(畵)이지만, 마무르가 떠들었던 유비무환을 기억하는 나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이해했다.
양 대위의 신병을 넘긴 시점부터 춘절연휴 전날까지는 겨우 2주 남짓한 시간이 있었을 뿐이다. 하여 나는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았으나, 게임 중독자 지하디스트는 자신이 장담했던 기한을 실제로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샤히디 사령관의 뜻으로 「자유 투르키스탄의 소리」의 중국어 방송 진행을 맡게 된 전(前) 인민해방군 장교 양쉐빙이라고 합니다.」
교화를 완료한 마무르가 내게 인력과 설비의 협력을 구하여 제작한 첫 번째 영상 속에서, 양쉐빙 대위는 새로 구한 인민해방군 장교 정복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모습으로 등장했다.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저는 시청자 여러분 앞에서 한 사람의 중국인으로서 자아비판을 하고 싶습니다.」
자아비판은 이북 빨갱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마오쩌둥은 “방을 정기적으로 청소하지 않으면 먼지가 쌓이고, 정기적으로 씻지 않으면 얼굴이 더러워진다.”며 자아비판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중국의 현 국가주석은 자신의 독재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직자들의 공개적 자아비판을 부활시킨 바 있다. 이른바 민주생활회라고 부르는 연례행사다.
그런 자아비판을 반(反) 중국 프로파간다에서 흉내 내는 것은 국가주석을 비롯한 빨갱이 지도층의 심기를 아주 많이 불편하게 만들 터였다.
「아아, 저는 죄인이었습니다. 갖은 외세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극복하고 우뚝 굴기한 나라의 일원임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내 나라 내 조국이 같은 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엔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진실을 알리는 모든 목소리들을 거짓으로 치부하며 당과 국가의 선전만을 진실이라 믿고 있었습니다. 이는 제게 진위를 분간할 지성이 없었던 까닭이 아닙니다. 그저 제가 진실을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던 까닭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양쉐빙에게서는 어색함이나 두려움에 위축된 기색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누가 보더라도 강요에 의해 억지로 대본을 읽는 사람이 아니었다.
빼어난 발성과 자연스러운 시선 처리는 이해할 수 있다. 중국군 전체의 광고모델이었던 인간이니. 그러나 주어진 역할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모습은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바였다.
포로나 인질이 생사여탈권자에게 호감을 품도록 만드는 일은 쉽다. 그러나 지금껏 살아오며 굳어진 이념을 흔들고, 그럼으로써 조국을 배반하게 만드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마무르가 이 일을 정말로 해낼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았던, 혹은 해내더라도 시일이 더 필요하리라 여겼던 내겐 매우 뜻밖인 일이었다.
「일어나십시오,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는 자들이여! 자유를 원하는 모든 민족들에겐 그들만의 국가를 세울 권리가 있습니다!」
「위구르는 억압의 굴레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티베트 또한 그들이 믿는 신의 이름으로 독립을 얻을 것입니다. 홍콩은 홍콩의 시민들이 바라는 민주주의를 회복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중국은 진정한 자유와 평화의 국가로 거듭날 것입니다.」
첫 방송이 나간 후, 좀 이상하게 유능한 광신도는 내게 저가 완성한 작품에 대한 평가를 요구했다. 나는 광신도가 만족할 만큼 적당한 칭찬을 건네곤 양쉐빙을 전향시킨 방법에 대해 물어보았다. 혹시나 내가 참고할 만한 노하우가 있을까 싶은 생각에서.
광신도들에겐 광신도들의 지혜라는 게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세 사람이 길을 가고 있으면 그중 한 사람에게는 배울 점이 있는 법.
그러나 돌아온 답은 실망스러웠다.
「여자에 관한 대부분의 문제는 남자의 잘생김으로 해결된다.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잘생김이 부족한 것이거나 진정한 잘생김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에요. 나는 그냥 잘생긴 것도 아니고 굉장히 잘생겼기 때문에 어지간한 무리수가 다 프리패스로 먹힙니다. 상대 여자가 샤이탄(사탄)의 저주를 받은 동성애자만 아니라면.」
「더욱이 내게는 크고 예쁜 고추가 있습니다. 나의 고추는 알라의 축복을 받은 고성능 고기방망이다. 이 우수한 방망이로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마사지해주면 어떤 여자라도 봄날의 눈처럼 녹아내리게 되어있어요. 양쉐빙은 내 네 번째 아내가 되고 싶어 한다. 조만간 개종을 결심할 확률이 높아요. 이로써 나는 또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했습니다. 아, 알라께서는 위대하시다!」
요컨대 스톡홀름 신드롬 유도에 미인계를 더해서 썼다는 뜻이었다.
같은 내용을 말하더라도 좀 다른 표현을 쓰라고 면박을 주자, 영상통화 화상 속의 마무르는 몹시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고추라는 표현이 마음에 안 들어요? 그러면 자지!」
겪어보며 느낀 바, 이 인간의 광기는 원래 가지고 있던 기질을 도구적으로 활용하는 것일 뿐 없는 광기를 꾸며내는 것이 아니었다.
미인의 죽음은 대중을 단결케 하고 공분을 이끌어낼 양질의 소재다. 그 미인이 죽기 전에 너른 인지도를 바탕으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하여 영상이 공개되기 전까지 양쉐빙이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갈가리 찢어져 죽었다고 믿고 있었던 중국 공산당은, 양쉐빙을 베이징 테러 희생자들의 아이콘으로 만들어 추모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열심이었다. 이러한 선전은 확실한 효과를 거두고 있었고, 비극에 도취된 인민들은 당의 편에 서서 피의 복수를 맹세했다.
그런 와중에 공개된 「자유 투르키스탄의 소리」 첫 방송은 공산당과 중국인들의 체면에 다시 한 번 뿌려진 똥물 같은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거세게 끓어오르고 있었던 중국인들의 반 위구르·반 이슬람 정서는 이날을 기점으로 돌이키지 못할 선을 넘어갔다. 위구르 자치구의 혼란은 편집증적으로 강화된 보안장벽에 막혀 아주 제한적으로만 흘러나왔지만, 중국 전역에 의외로 많이 분포하는 청진사(清真寺/모스크)들의 수난은 감춘다고 감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슬람은 마교다! 이슬람은 마교다!」
「마교도들을 죽여라! 자라 새끼 같은 마교의 공포분자들을 인민의 심판대에 올려라!」
「무한머더(穆罕默德/무함마드)는 예언자가 아니다! 이슬람은 발정난 연동벽(恋童癖/소아성애) 사기꾼이 만든 짐승의 종교에 불과하다!」
「오직 짐승들만이 짐승의 종교를 믿는다! 짐승들은 아무리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
폭도들이 말하는 인민의 심판대란 문화대혁명 때의 인민재판(批斗大会)을 빼닮은 공개적 군중재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성난 폭도들은 각성능력자의 힘으로 모스크를 때려 부수고, 예배를 드리거나 신을 찾아 대피했던 신도들을 끌어내어 폭행 또는 살해했다.
예배를 주관하던 각지의 이맘들은 목에 이슬람 짐승(绿绿禽兽)이라고 새겨진 목판이 걸린 채로 난폭한 조리돌림을 당했다. 이들이 살아남으려면 「穆罕默德主的使者(무함마드는 신의 사자다)」라 적힌 현판을 짓밟고 스스로의 손으로 쿠란을 찢으며 배교를 맹세해야 했다.
약탈자들이 회교도(무슬림)들의 집과 상점을 털어가는 동안 공안은 그저 손을 놓고 방관하고만 있었다. 대로 한복판에 거열(車裂)을 당한 시체들이 나뒹굴고, 중인환시에 집단강간이 벌어지며, 범죄조직들이 회교도들을 노예로 사고팔아도 공안이 출동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 이면에 깔린 계산은 알 만했다.
‘대중의 분노가 어떤 식으로든 해소되어야 한다고 판단했겠지.’
그 분노가 당과 국가를 향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라고. 굳이 폭도들을 가로막아 그 분노를 나누어 받을 이유가 무어냐고. 높으신 분들의 사고방식이야 새로운 것도 없었다.
물론 이러한 선택엔 대가가 따른다. 대표적인 것이 이슬람 국가들과의 관계 악화. 그리고 추가적인 테러 발생 가능성의 증가. 그러나 정권 유지가 최우선인 공산귀족들의 관점에서, 이는 손해보다는 이득이 더 큰 일이다. 온 세상이 중국을 적대한다는 환상은 중국인들의 생존본능을 자극하여 정권에 대한 지지를 강화해줄 터이므로.
이런 와중에 샤히디는 나와 내 부하들의 지도에 따라 지속적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지도자의 언행을 노출시켰다.
「내가 꿈꾸는 투르키스탄은 차별과 억압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다.」
「예언자께서는 종교엔 강요가 있어선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만약 나와 내 형제들이 압제자 중공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위구르 땅의 자주독립을 성취한다면, 그 땅에선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한다. 나와 내 형제들은 죽는 날까지 이교도와 무신론자들에게 참되고 올바른 신앙을 권면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지만, 그들에게 총과 칼로 신앙을 강요하거나 종교에 따른 불이익을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나와 내 형제들이 유일하신 하나님의 위대함을 의심치 아니하며, 그분께서 예언자를 통해 내려주신 가르침이야말로 한없이 우월한 진리임을 굳게 확신하는 까닭이다.」
「우리의 신앙이 진실로 우월하다면, 우리는 믿음의 실천을 통해 그 우월함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이교도와 무신론자들을 감화시킬 수 있을 터이다. 만약 그들이 감화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 믿는 자들의 실천이 부족한 탓이니 더욱 정진하고 노력을 더해야 할 일이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기가 싫어 남을 채찍질하는 자는 진정한 무슬림이라고 할 수 없다.」
「누구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자는 결국 무슬림이 되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나는 전 세계에 있는 신앙의 형제자매들에게 고한다. 지금 이슬람 세계가 일치단결하여 맞서야 할 적은 종교가 다른 자들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의 압제자들이다.」
「보라. 지금 이 순간에도 믿는 자들을 죽이고 그 재산을 강탈하며 알라께 바쳐진 사원들과 신성한 책들을 불태우는 중국의 야만성을. 이는 중국 공산당이 적극적으로 조장한 바라. 단언컨대, 공산당의 압제자들은 믿는 자들의 적이자 평화의 적이며 평화를 사랑하는 자유로운 세상 만민의 공적이다.」
샤히디가 언급한 종교 강요 금지는 이슬람 교리의 주류 해석과는 거리가 멀었다. 꾸란엔 분명 예언자가 “종교엔 강요가 있어선 안 된다.”라고 말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나, 나중엔 그와 상반되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
서로 상반되는 내용이 있을 땐 보다 나중에 나오는 쪽을 올바른 기준으로 삼는다는 원칙에 따라, 주류에 속하는 다수의 신학자들은 종교의 강요가 이슬람의 율법으로 권고 내지 용인되는 행위라 해석한다.
그러나 샤히디가 읽은 대본은 이슬람 세계에서 이렇다 할 반발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극단주의의 본진인 사우디에서조차, 몇몇 원리주의 신학자들이 점잖게 “정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을 따름.
이슬람 세계에서 샤히디의 인기가 그만큼 높고, 또 중국의 대대적인 이슬람 박해가 무슬림들을 격노하게 만든 덕분이었다.
이는 한편으로 아랍권과 서구 국가 지도자들의 가려운 등을 긁어주는 내용이기도 했다. 아랍권의 사정이야 예전과 같고, 서구권의 지도자들 역시 국내에 분포하는 무슬림들의 적의를 중국으로 분산시켜 테러에 대한 불안을 덜고 싶어 했으니까.
물론 그런다고 해서 갈등의 불씨가 꺼질 리는 없다.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위안을 구할 수 있을 따름. 그러나 정치인들에게는 그 일시적인 안정도 의미가 있었다.
아랍권의 지도자들은 중국의 폭동 방조를 규탄했고, 서구권의 지도자들도 소극적인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이와 관련된 메시지들을 올렸다.
「종교를 존중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이 좋은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더욱 평화로운 곳으로 변해갈 거다!」
「요즘 바다 건너에 있는 어떤 나라가 좀 많이 평화롭지 못한 것 같던데, 그들의 불행은 스스로 자처한 부분이 크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식민지를 경영하고 종교를 박해한단 말인가? 그들이 시대의 흐름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내가 들었는데, 요즘은 이슬람 테러리스트 중에서도 다른 종교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나왔다더라. 바다 건너의 어떤 나라는 테러리스트들보다도 유행에 뒤떨어져있는 모양이다.」
중국 대사가 공식 계정을 통해 대통령의 언행을 비판하자, 대통령은 추가로 능청스러운 메시지를 업로드했다.
「이전의 멘션에서 나는 그 나라가 어디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 나라 사람들은 내게 화를 내고 있다. “양심의 가책이 있으면 고발자가 필요 없다.(A guilty conscience needs no accuser/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격언이 이렇게 잘 맞아떨어질 수가 없다.」
이에 중국 대사가 다시금 거품을 물고 자판을 두드리고, 국내에서도 대통령의 실언을 근심하는 목소리가 나오니, 귀찮아진 백악관 미치광이는 자신의 계정에 짤막한 의성어 하나만 올려놓았다.
「야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