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86화 (386/561)

#41. 홀로 벗어난 자의 애도 (2)

마법이 돌아온 작금의 세상에서, 각성능력자 대응 의료체계 구축은 많은 나라들의 해결되지 않는 고민거리였다.

능력의 발현을 어느 정도 의지대로 조절 가능한 내 부하들과는 달리, 자질이 특출한 소수의 천재나 마력운용의 감을 잡은 베테랑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자연각성능력자들은 자신이 지닌 마법적 힘을 조절하는 방법을 모른다. 의식이 있을 때도 조절을 하지 못하니 무의식 상태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문제의 핵심은 생체강화. 평범한 인간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수술도구들을 가지고는 각성능력자들에게 제대로 된 외과적 처치를 해주기 어렵다. 각성능력자를 상대로는 주삿바늘 하나조차 별도의 소재와 기준과 규격을 정해서 써야 한다.

여기에 생체강화가 불균형하게 이루어진 경우, 사전에 실시한 정밀검사를 토대로 개개인에게 맞춰진 처치와 처방을 수행할 필요가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검사 또한 일반인보다 높은 빈도로 실시해야 데이터의 유효성을 담보할 수 있다.

또 하나. 고 강화계수 각성능력자를 위한 수술실은 환자의 마력장을 억압할 의료용 불사암 컨테이너를 구비해놔야 한다.

말이 의료용이지, 병원에 배치되는 불사암 컨테이너는 본질적으로 선박에 실리는 크립 밸러스트와 동일한 물건이었다. 즉 컨테이너를 코앞에 두고 수술을 진행하는 의료진은 그만큼 불사암 발병 가능성이 증가한다. 이런 환경에 의료진을 붙잡아두려면 아주 높은 급여를 지급하는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러한 관계로, 각성능력자 대응 의료체계 구축은 국가의 보건의료예산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나 마찬가지였다.

한국은 이 문제에 대한 초기대응을 행정명령 하나로 때워버렸다. 앞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유행 당시에도 그러했듯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진 못하더라도, 급한 불을 끄는 데엔 역시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만 한 것이 없었다.

덕분에 조직이 소유한 병원에도 조직에 속하지 않은 각성능력자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긍정적으로 보자면 인재 탐색 및 영입의 창구가 그만큼 활발하게 가동된다고 볼 수도 있었다.

「이제 내리셔도 됩니다.」

헬기는 병원 인근의 수직이착륙 비행장에 착륙했다. 경호실 인력이 탑승한 호위기 두 대도 앞뒤로 나란히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병원 옥상에도 헬리포트가 있었으나, 그곳은 인근 주민들의 소음피해 민원으로 말미암아 응급상황이나 비상시에만 사용하도록 규정해놓았다.

헬기나 제트 바이크, 드론 바이크 따위가 뜨고 내리는 수직이착륙장은 높은 방음벽을 이중으로 둘러놓아 민원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비행장에 발을 디딘 라일라는 개인화기를 단단히 쥔 채 예리한 시선으로 주변을 훑었다. 칠각기사단의 일원으로서 배양해왔을 기본적인 행동양식이었다. 진지함을 담아 하는 말은 자연히 영어로 나왔다.

“웨인. 여기, 느낌이 안 좋은 사람들이 많아.”

“신경 쓰지 마라. 다 시답잖은 조무래기들이다.”

“나쁜 눈으로 우리를 봐.”

“신경 쓸 것 없대도. 살의를 품는 놈은 내 눈을 피하지 못해.”

나는 라일라가 쓴 방탄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라일라의 눈매가 대번에 누그러졌다.

비행장에서 서성대는 각성능력자들 가운데 자기 기체를 보유한 파일럿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나머지는 돈을 내고 남의 기체를 얻어 타려는, 혹은 자신이 속한 법인의 기체를 기다리는 급수 낮은 헌터들이 대부분이었다.

라일라가 말한 ‘나쁜 눈’이란 중무장 용팔이들이 보내는 질시의 시선들이었다. 내가 타고 온 헬기엔 공능법인 개마의 로고가 찍혀있고, 내 부하들은 예외 없이 갑종장비들로 무장했으니, 누적 공공의뢰점수가 달리는 용팔이들로선 아니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삐딱한 자세로 이쪽을 보던 한 잡것이 시선을 돌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예미 쒸불……. 대구경 자동소총에 액세서리에 헬리콥터에……. 빈부격차 아주 좆되는구만.”

그러면서 부끄러운 것을 감추듯 자신의 무기를 등 뒤로 숨긴다. 일곱 개의 총열이 육각형으로 묶인 셉튜플 배럴 샷건이었다.

탄창을 사용하는 화기는 그렇지 않은 화기에 비해 분류등급이 높다. 총열 숫자가 기형적으로 많은 샷건은 이런 규제를 피해 화력을 늘리고 싶어 하는 하급 헌터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는 상품이었다.

다른 한쪽에선 공중 응급이송 운임을 놓고 말싸움을 벌이는 놈들도 눈에 들어왔다. 부상당한 동료를 실어온 것까진 좋은데, 에어 앰뷸런스 파일럿이 과도한 비용을 매긴 모양.

“야 이 개 씨-발 좆같은 새끼야! 여기 킬로미터 당 십만 원을 받아 처먹는 애미 뒤진 씹새끼가 너 말고 또 있겠냐? 깡통 기체에다가 앰뷸런스 딱지만 붙인다고 앰뷸런스가 되는 줄 아나, 빡대가리 새끼가.”

“타기 전에 가격을 안 물어본 니들 잘못이죠? 억울하면 더 좋은 보험을 들었어야죠? 앰뷸런스 허가는 나라에서 내준 건데 뭐 어쩌라고 병신 좆거지 새끼야. 대가리에 총 맞고 뒈지기 싫으면 닥치고 돈이나 내놔,”

말로는 서로를 죽일 기세인데 실제로 총을 겨누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곳엔 총을 가진 사냥꾼의 수가 너무 많았다. 함부로 총질을 해댔다간 다른 사냥꾼들의 돈벌이로 전락할 따름. 바디캠으로 녹화한 영상은 경찰로부터 현행범 체포 보상을 타내기에 충분한 증거물이다.

비행장을 빠져나가는 내내 사방에서 들려오는 좆, 좆, 좆, 좆. 그리고 씨발, 씨발, 씨발, 씨발. 라일라는 눈을 찌푸렸다.

“천박해.”

나는 가벼운 의아함을 담아 물었다.

“이 정도는 익숙하지 않나?”

라일라가 몸담았던 칠각기사단은 구성원들의 질이 결코 좋지 않은 집단이다. 물론 그들도 그레이스의 복제체에게는 공손했을 터이나, 그래도 라일라는 하류층 출신이 많은 악마숭배자들의 조직문화가 익숙할 것이었다.

“응.”

라일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금은 웨인이 듣고 있으니까. 마음에 안 들어.”

“……그래.”

이착륙장의 방음벽 바깥은 주차장이었고, 주차장을 가로지르면 병원의 현관이었다.

병원으로부터 나와 우리와 교차하는 자들 중엔 세상을 다 잃어버린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들이 몇몇 있었다. 절망, 비탄, 분노, 부정. 이런 감정에 물들어있는 인간들은 여지없이 말기 불사암 환자들이었다. 불사암이 불사암으로 끝나지 않고 다른 암세포들을 만들어내는 단계에 진입한 시한부 인생들.

개중 하나가 맨바닥에 무릎을 꿇고 절규했다.

“상태창! 상태창! 상태차아아아앙!”

의미 모를 단어를 연달아 외친 예비 시체가 엎드려 흐느끼며 침을 질질 늘어뜨렸다.

“상태창…… 왜 안 뜨는데…….”

죽음의 공포에 살짝 맛이 간 것인가? 주변을 지나가는 다른 헌터들이 흐느끼는 예비 시체를 보며 키득키득 비웃는다. 나는 나란히 걷던 경태에게 물었다.

“상태창이라는 게 뭐지?”

“아, 우리 형님 상태창 모르시는구나!”

질문을 받은 경태는 전등에 불 들어오듯 반색을 했다.

“이 상태창이라는 게 원래는 게임에서 게임 내 캐릭터의 능력과 상태를 보여주는 인터페이스를 뜻하는 건데 말이죠, 이걸 현실에서 보면서 게임의 성장 시스템을 현실의 나에게 적용받는 내용의 소설과 만화가 유행하고 있거든요. 형님께서 신뢰해 마지않으시는 이 김경태의 관점을 말씀드리자면, 계속해서 실패와 좌절만을 주는 어려운 현실을 보다 쉽고 간명하며 친숙한 보상체계로 치환하여 극복하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이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켜-”

죽 듣다 보니 대충 의미는 알겠다. 삶이 팍팍한 시대가 낳은 유행이라는 말 아닌가.

겉보기엔 저기 엎드린 예비 시체가 하는 짓이 우스꽝스럽지만, 사람은 죽음이 임박하면 그런 환상에라도 매달려야 할 만큼 절박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절박함은 병원 의료진의 인재영입을 원활하게 해주는 하나의 원동력이다.

세상엔 저렇게 절박한 인간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인력충원의 효율도 효율이거니와, 내 각성능력자 부하들이 비교우위를 느낄 대상이 흔해지는 셈이니까.

‘사람에게는 비교에서 나오는 행복이라는 게 있지.’

각성능력을 아무리 써도 불사암에 걸릴 걱정이 없다는 것. 이 이점을 부하들이 체감하면 체감할수록, 나에 대한 부하들의 충성은 튼튼하게 다져질 것이다.

“-거기에 추가로 나 혼자서만 특별하고 우월한 기능의 수혜자가 되고 싶은 욕망, 빠른 성장을 통해 독보적인 존재로 거듭나 주변의 우러름과 찬사를 받고 싶은 욕망, 그렇게 되는 과정에서 노력을 하기는 함으로써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최소한의 당위성을 갖추고 싶은 욕망 등이 하나가 되어-”

라일라는 경태를 이상한 사람처럼 바라보았다.

나는 경태의 수다스러운 주절거림을 들으며 병원으로 들어섰다. 의료용 불사암 컨테이너의 마력장을 감지한 라일라가 흠칫 경계하는 반응을 보였으나, 내가 태연한 것을 보고 이내 신경을 이완시켰다.

화물용 컨테이너와 유사한 크립 밸러스트의 표준 규격을 기준으로, 불사암 컨테이너의 용적이 0.5TEU만 되어도 어지간한 각성체 아프리카 코끼리에 버금가는 규모의 마력장이 형성된다. 이 병원의 특별병동엔 합계 6유닛 3TEU의 불사암 덩어리들이 비치되어있으니 라일라가 경계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병원의 의료진과 행정인력들은 미리 준비를 갖춰놓은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료진이 유대감을 쌓아가며 신중하게 선별한 예비 입사자들은 본사 취조실과 동일한 구조로 설계된 면접실에서 최종 테스트를 받았다.

면접실엔 두 개의 방이 있고, 둘 중 조명이 더 밝은 쪽엔 면접관과 예비 입사자가 서로를 보고 마주앉는다. 나머지 하나의 방은 면접을 총괄하는 책임자-지금은 나-가 면접 과정을 지켜보며 면접관에게 지시를 하달하는 컨트롤 룸이다.

두 방을 나누는 벽에 단방향 투과성 거울(매직 미러) 같은 알기 쉬운 장치는 없었다. 황금기의 눈을 가진 내겐 그딴 수단이 불필요하고, 부득이하게 내가 아닌 다른 중역이 책임자를 맡을 때도 달리 숨겨진 관측수단들을 이용한다.

“와…….”

라일라가 컨트롤 룸에 가득한 화면들을 보며 탄성을 흘렸다.

“웨인은 새로운 부하들을 이런 식으로 받는구나…….”

면접실 내의 여러 집기와 장식물에 숨겨진 카메라들은 면접관과 ‘면접자’의 모습을 다각도로 비춰주었다. 각각의 카메라들은 적외선 센서를 내장하고 있으며, 피부 온도는 물론이고 알고리즘을 이용해 추정한 심부체온까지 보여주었다.

호흡을 하는 간격, 호흡으로 내뱉는 공기의 양과 온도 역시 관측대상이다. 특정 스펙트럼의 광파장만을 감지하는 특수 카메라들은 기본적인 맥박을 포함하여 면접대상자의 혈관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들을 감지해냈다.

면접자의 얼굴에 초점을 맞춰놓고 감정을 분석하는 카메라도 있다. 평범한 이미지 기반 분석이 아니라, 적외선 라이트필드 카메라로 3차원 열화상 이미지를 구축하여 활용한다.

이 모든 것들은 거짓말 감지기의 기능을 겸한다.

화면들 중엔 본사의 인사(HR) 직군 부하들과 연결된 것도 있었다. 인사관리팀에 속한 프로파일러 겸 신체언어 해독 전문가들이 원격으로 면접자를 보면서 실시간 분석을 제공하는 화면이었다. 면접자의 사소한 몸짓들이 담아내는 심리상태를.

면접자들은 이미 장기간의 관찰을 통해 성향과 사연을 면밀히 파악해놓은 상태이므로, 이런 식의 분석도 자연히 정확도가 높아진다. 대부분의 면접자들은 이 자리에 오기 전 종합심리검사까지 받는 게 보통이었다. 여기는 병원이고, 필요하다면 어떤 핑계라도 댈 수 있다.

해당 분석 화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던 라일라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당신은 이런 거 필요 없지 않아?”

“이 기회에 인사팀의 업무수행능력을 점검해보는 거다. 녀석들의 분석 정확도가 떨어진다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겠지.”

“아아.”

끄덕인 라일라는 텍스트가 갱신되는 화면을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 사람들, 지금 긴장 많이 되겠다.”

당연히 긴장되겠지. 그러나 그런 긴장 상태에서 얼마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도 인사평가의 기준이 된다. 고작 내가 지켜본다는 이유만으로 업무능력이 감소하는 녀석은 장차 고급 간부로 삼기에 하자가 있었다.

귓속에 초소형 수신기를 넣어놓은 면접관은 내 지시에 따라 면접을 진행했다. 검증에 검증에 검증을 거친 자들답게, 면접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죽음이 아니었다.

테스트를 통과한 최종합격자들에겐 마침내 조직의 비밀이 부분적으로 공유되었다. 혼란스러워하던 합격자들은 나와 대면하여 한 사람 한 사람씩 개별적으로 계약을 체결한 후 조직원으로서 두 번째 삶을 살 기회를 획득했다.

같이 있던 의료진과 병원 관계자들은 계약이 이루어질 때마다 눈물을 흘리고 박수를 치며 축하해주었다. 자격이 있는 자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준다는 자부심은 병원에 배치된 부하들의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 요소였다.

입사자들도 감격에 겨워 울기는 마찬가지였다. 새 생명을 얻은 기쁨은 군중심리에 휩쓸려 극대화되었다. 이 순간이 감동 깊게 새겨질수록, 냉정해졌을 때 조금이라도 조직에 대한 의구심을 품을 확률이 제로에 가까워진다.

이 모든 과정을 진지하게 지켜본 라일라는, 전체 면접이 마무리된 후 살짝 붉어진 눈으로 온화한 미소를 머금었다.

“굉장히 인상적이었어.”

“그러냐.”

“말로만 듣던 계약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걸 보니…… 느낌이 이상해.”

“나쁜가?”

“그럴 리가 없잖아.”

도리질을 치는 라일라.

“그동안은 이 조직에 대해 알면 알수록 기분 좋은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어. 좋기는 하지만, ‘이게 정말로 현실인가?’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거든. 누군가가 진짜 현실에 있는 나를 툭 건드리면 모든 게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그런데?”

“이제는, 음……”

미간을 찌푸리고 고민하던 라일라가 툭 내뱉었다.

“견고해졌어.”

라일라는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끄덕였다.

“맞아. 조직이 운영되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보고 들을 때마다, 언제든지 사라질 것만 같았던 것들이 점점 더 견고함을 더해가는 느낌이야. 안심이 돼. 마음이 편안하고 따뜻해져.”

“그건 잘 됐군.”

“응.”

고개를 끄덕인 라일라는, 나를 바라보며 미소의 순도와 밝기를 더했다.

“난 당신이 만든 조직이 당신이라는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생각해. 나, 당신에 대한 앎이 깊어진 것 같아서 기뻐.”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라일라가 미묘한 불안감을 품고 있다는 것쯤은 일찍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내 눈이 있었고, 부하들의 관찰 보고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라일라를 현장순시에 동행으로 데려왔다.

이는 낙차(落差)를 키우기 위해서였다. 충분히 큰 낙차를 만들어놓았으니, 이제는 떨어뜨리기만 하면 된다.

나는 라일라를 균사의 왕국과 거인의 영지로 데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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