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84화 (384/561)

#40. 미로 속의 여인 (8)

황말자 노인의 열 평 남짓한 찻집 「말자 다점」은 내부에 테이블을 딱 세 개만 두고 있었다. 창가에 면한 바 테이블이 하나, 두 사람이 마주 앉을 수 있는 원형 테이블이 둘.

이렇게 작은 찻집이었지만 썩 좁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한쪽 벽이 절반 이상 와이어메시 철망으로 트여있고, 철망에 얽힌 담쟁이넝쿨 잎사귀들 틈새로 꽃집의 내부가 보이게끔 인테리어를 해놓았기 때문. 공기가 통하다보니 찻집 내부에도 그윽한 방향이 감돌았다.

둥근 탁자를 사이에 두고 나와 마주 앉은 마샤트는 탁자 아래에서 손가락을 꿈지럭대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뵈어요, 회장님.”

마샤트는 나를 대하기가 못내 어렵고 어색한 느낌이었다. 통화는 종종 했을지언정 실제로 얼굴을 보는 건 이번이 겨우 두 번째니까. 그나마 투손 남쪽에서 처음 만났을 땐 하얀 추장의 후계자로서 인사만 나누었을 따름. 제대로 된 대면 대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의례적인 질문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렇군요. 오랜만입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어떻습니까?”

“신경써주신 덕분에, 몸도 마음도 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요?”

“예…….”

되묻는 말에 대답하는 마샤트는 짧은 시간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회피했다. 시선이 떨어지는 테이블 중앙엔 작은 선인장 화분이 놓여있었다. 선인장을 보는 눈동자와 그 너머의 신경계엔 희미한 회한의 색채가 스쳐지나갔다.

나는 국화꽃잎을 띄운 찻물을 한 모금 삼키고서 차분하게 추궁했다.

“그게 사실이기를 바랍니다만, 내가 들은 것과는 조금 다르군요.”

“네? 다르다니요……?”

“부하들에게 듣기로, 마샤트 양 당신이 아직도 갈라져나간 부족원들을 설득하려 애쓰고 있다던데. 추장대행의 책임을 내려놓지 못한 것 같다고. 아닙니까?”

“…….”

마샤트의 눈길이 다시금 아래로 떨어진다.

내가 오늘 여기에 온 것은, 「사막의 사람들」을 담당하는 부하들이 마샤트에게 불씨가 남아있음을 보고한 까닭이다. 언제 꺼져도 이상하지 않을 미약한 불씨지만, 다수파가 선출한 전쟁추장 셰헤는 이 불씨에 매우 과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말이 전쟁추장이지, 권위의 계승이랄 것 없이 다수결로 선출되었을 뿐인 셰헤는 리더십의 기반이 튼튼하지 못했다. 고로 셰헤는 제 무리의 일부가 아직도 전 추장대행이나 그 무리의 연락을 받아준다는 사실 자체를 용납하기 힘들어했다.

마샤트 파의 연락을 받는 자들이 마샤트에게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다만 마샤트를 매개로 내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고,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고난의 시기를 함께한 유대감이 있기도 하여, 이들의 감정은 분노나 증오보다는 애증에 더 가까웠다. 고난이 시작되기 전까지 같은 부족으로서 쌓은 혈족의식과 동질감은 또 어떠한가.

이들은 저들끼리 술을 마실 때마다 마샤트나 소수파 부족원들로부터 온 연락을 농담거리로 삼았다. 그 여자와 그 여자의 패거리들, 머릿속이 여전히 꽃밭이더라고.

처음엔 셰헤도 이를 웃음거리로 여겼다. 그러나 마샤트 파의 연락이 계속되자 점차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 시작하여, 마침내 술자리에서 한 차례 언성을 높이기에 이르렀다. 주변의 다른 부족원들이 말리지 않았으면 주먹다짐이 벌어졌을 험악한 분위기였다.

단순하고 무식하며 한이 많은 것들은 끓는점이 낮아 별것 아닌 일로도 벌컥벌컥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소위 ‘가오’라는 게 있어 강대강으로 부딪히면 어느 한쪽이 양보하고 물러나는 일이 드물다. 고로 다수파가 다시금 쪼개지거나 리더가 갈리거나 할 가능성을 방치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샤트 파와 다수파 사이의 연락을 차단하는 게 능사는 아니었다.

대대로 차별을 받아온 부족공동체의 유대감이란 외부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깊고 복잡하면서도 미묘한 것. 연락 차단을 유지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다수파 내에서 하나둘 이상함을 느끼는 인간들이 나타날 게 뻔하다.

‘왜 연락이 되지 않지?’ ‘왜 소식을 접할 수 없지?’ ‘갈라져서 따로 살기로 한 녀석들이 잘 지내고 있는 게 맞나?’ ‘……뭔가 의심스러운데?’ 등등.

이들을 담당하는 책임자도 비슷한 맥락의 보고를 올렸다.

「평생 당하고만 살았던 친구들이라 그런지 다들 의심이 많고 병적인 피해의식이 있습니다. 마샤트 파를 싫어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그들이 외부인에게 해를 당한다면 굉장히 크게 분노할 겁니다.」

「몇 명을 상대로 슬쩍 떠봤는데, 하나같이 “죽여도 우리 손으로 죽인다.”는 대답이 나오더군요. ‘우리가 아닌 사람들’이 사막의 사람들을 죽이는 건 참을 수 없는 모욕이라고.」

즉 외부인이 부족민을 건드리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못한다는 뜻.

「이들은 지금 우리를 믿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대체 왜 자신들을 돕는가 하는 의문을 완전히 떨쳐낸 것은 아닙니다. 흠결 없는 충성과 충실함을 바라신다면 이들에게 의심의 여지를 주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이들이 우리 조직을 새로운 보금자리로 여기게 될 때까지는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여기에 왔다. 위태로이 깜박이는 작은 불씨를 확실하게 짓눌러 꺼버리고자.

그간 마샤트를 상대하고 관리하고 관찰해온 부하들은 마샤트가 내게 심적으로 많이 의지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요컨대 나 이외엔 불씨를 끌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

듣기로 마샤트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겐 칼같이 거리를 유지하는 편이라 했다. 필시 전대 추장의 가르침일 터.

나는 찻잔 손잡이를 매만지며 말했다.

“마샤트 양. 그동안 내가 당신을 왜 도와주었을 것 같습니까?”

“……할아버님과의 우정, 때문이지요?”

“맞습니다. 내가 당신을 도운 것은 당신이 내 친구의 손녀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늙은 친구에 이어 그 친구의 하나뿐인 혈육까지 불행해지는 꼴을 보기 싫었고, 단지 그 이유만으로 당신과 당신의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도움을 제공해주었지요.”

“그 점에 대해선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실례되는 말씀일지도 모르지만, 회장님께서는 제게 또 한 분의 아버지 같은 분이세요.”

실례가 맞다.

나는 갑자기 튀어나온 아버지라는 표현에 뭉근히 올라오는 거부감을 느꼈다. 내가 표정관리에 주의하는 사이, 마샤트는 두 주먹을 꼭 쥐고서 다소 긴장한, 동시에 조금은 상기된 모습으로 말을 이었다. 오랫동안 전하고 싶었던 속마음을 어렵게 꺼내는 사람의 품새이자 색채였다.

“어떤 면에서는 친아버지보다도 더 아버지처럼 느껴져요. 그도 그럴 게, 아버지께선 제가 잘 기억하지도 못하는 어린 시절에 살해당하셨으니까요.”

“…….”

“회장님께서는 제가 절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려는 순간마다 번번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셨죠. 아무런 조건도,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런 경험은, 누군가에게 한없이 의지하기만 하는 경험은 난생 처음이었어요. 할아버님조차도 제게 그런 식으로 정을 주진 않으셨거든요.”

“그랬습니까?”

“예. 강해져야 한다고. 내 뒤를 이어 부족을 위한 사업을 경영하려면 어느 누구에게도 빈틈이나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고. 저는 언제나 할아버님의 가르침대로 행동하려고 노력했는데…….”

마샤트의 입가에 자조 어린 쓴웃음이 스쳤다.

“저는 너무나도 무력했어요. 열병에 걸리고 발가벗겨진 채로 길가에 버려진 아이가 된 것 같았죠. 그런 제게 무상의 호의를 베풀어주시는 회장님은…… 정말이지, 너무나…… 생각만 해도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분이셨어요. 그러다가 문득, 이런 게 아버지에게 느끼는 감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는 찻잔을 들어 기울이며 불쾌감을 삭였다. 이럴 땐 차가운 음료가 있었으면 더 나았을 것이다.

“제가 살면서 한 번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던……. 학교 수업이 끝났을 때, 부모님이 마중을 나오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궁금했던 감정…….”

무언가에 홀린 듯이, 혹은 취한 것처럼 중얼거리던 마샤트는, 말끝을 흐리며 입을 다물었다가 내가 잔을 내려놓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 죄송합니다. 옛날 생각에 너무 몰입해버렸네요.”

“그럴 수 있지.”

조심스레 눈치를 살피는 마샤트에게, 긴 숨을 느린 호흡으로 뱉은 나는 이제까지와 태도를 달리하여 말했다.

“네가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니, 나도 이제부터는 너를 조금 더 편하게 대하도록 하마. 괜찮을까?”

“앗, 네. 부디!”

우울함의 색채에 젖어 느려졌던 마샤트의 심박이 단숨에 처음의 빠르기를 회복했다. 그저 눈으로 보기만 해도 쿵쿵쿵쿵 소리가 울리는 듯한 공감각이 느껴질 만큼. 상기된 얼굴과 나를 보는 시선에선 한 조각의 경계심도 엿보이지 않았다.

이런 마샤트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스탈린이 남긴 경구 하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열린 마음은 문지기 없는 요새와 같다.

“마샤트.”

“네!”

“이제 그만 네 행복을 찾거라.”

“……예?”

나는 테이블 위로 두 손을 올려놓고 까딱이는 손짓을 했다. 잠시 당황하던 마샤트는, 다시금 내 눈치를 살피다가, 머뭇거리는 동작으로 내 손에 제 손을 포개었다. 못내 불편한 접촉이었으되 참을 만은 했다. 나는 마샤트의 손을 잡고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네가 푸에르토 바야르타의 은신처에서 병에 걸려 누워있었을 때, 내가 그랬었지. 너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그게 누구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길을 만들어주겠노라고. 거기서 무사히 데리고 나오기만 하라고. 기억하나?”

“기억하고 말고요. 그때 그 말씀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몰라요.”

“그럼, 거기까지가 네 책임이라고 생각하라 했던 것도 기억하겠지?”

“……기억해요.”

“너는 분명 내 뜻을 받아들였고.”

“…….”

“너는 이미 너의 책임을 다했다. 네 부탁이 아니었으면 나는 머리가 바뀐 다이아몬드 카지노에 예치금을 그대로 두지도 않았을 것이고, 네 슬픔이 아니었으면 네게 딸린 부족원들을 보호하고 돌봐주려 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러니 내가 성산에서의 거사 이래 너희 부족에게 준 것의 절반은 네가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런 말씀 마세요. 제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어요. 모두 회장님께서-”

“내 눈을 봐라.”

나는 마샤트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힘주어 말했다.

“네가 준 것이다.”

“그건, 아닌, 그…….”

“아니라고 부정해봐야 소용없다. 네가 아니었으면 내 도움은 애초에 주어지지도 않았을 테니까. 너는 분명히 실수를 저질렀지만,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어. 문자 그대로, 모든 노력을.”

마샤트가 없었어도 내가 원주민들을 버리진 않았겠지만, 마샤트는 그 사실을 알 방법이 없다. 금이 간 정신에 스며들 달콤한 거짓이었다.

“다시 말하마. 내가 베풀어준 모든 도움은 너를 위해 주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도움을 주면 네가 버거운 짐을 내려놓고 네 삶을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 하지만 너는 여전히 짐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구나. 내게는 무척이나 유감스러운 일이다.”

“죄송, 죄송해요.”

“죄송해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이라도 네가 너의 행복을 찾기만 한다면.”

“아…….”

“나는 마지막까지 약속을 지킬 거다. 네게 의지하여 내게로 온 자들이 각자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 그러니 너는 더 이상 네게 의지하지 않게 된 자들을 잊어라. 그들은 더 이상 네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도 바라지 않고, 나도 바라지 않아.”

“그렇지만, 그들이 원하는 삶이라는 건-”

“마샤트.”

“…….”

“따라 해라. 그들은 더는 나의 책임이 아니다.”

쌕쌕거리는 숨소리를 내던 마샤트는 조금 멍한 표정으로 내 말을 따라 했다.

“그들은…… 더는…… 나의 책임이…… 아니다…….”

“다시. 그들은 더는 나의 책임이 아니다.”

“그들은 더는…… 나의 책임이 아니다…….”

“한 번 더.”

“그들은 더는 나의 책임이 아니다…….”

한 번의 반복이 이루어질 때마다, 마샤트의 눈은 조금씩 빛이 꺼지는 것 같았다. 내가 의도한 그대로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빛이 이렇게 쉽게 꺼진다는 사실에 다시금 불편함을 느꼈다. 또 한 사람의 아버지 운운하는 개소리가 남긴 잔향이었다.

“네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그들이 나쁜 것이다. 그러니 너를 떠난 자들은 그들끼리 알아서 살라고 두고, 너는 네 할아버지를 보살피며 네 곁에 남은 자들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해라. 그러겠다고 약속해줄 수 있겠지?”

“……네. 약속할게요.”

“그래. 착하구나. 네 달라진 모습을 기대하고 있으마.”

마샤트가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떨어져나간 다수파 원주민들이 내 아래에서 험한 꼴을 당할 가능성은 처음에 비해 많이 낮아졌다. 본래는 그들을 모두 전투원으로 투입할 계획이었으되, 마녀와의 동맹이 이루어지고 이슬람 지하디스트들의 대대적인 수급이 예상되는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으니까.

마녀와의 협력이 확대되면 확대될수록, 그리고 지하디스트 동원체계가 궤도에 오르면 오를수록, 조직은 더욱 견고한 통신보안체계를 갖춰야 한다. 그러므로 사막에서 도망쳐 온 원주민들의 역할은 당분간 순수하게 코드 토커(Code talker/비주류 언어 암호화 통신병)로만 한정해도 무방했다.

나는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가며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전과를 확대했다. 마샤트는 친애하고 존경하는 웃어른을 대하는 고분고분함으로 내 말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한마디 한마디 물들일 때마다 마샤트는 최면에 걸린 사람에 가까운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심지가 충분히 물들었다는 확신이 섰을 때, 나는 마샤트에게 앞으로의 구상을 물었다. 마샤트는 조금 허전한 미소를 머금고 답했다.

“한동안은 이곳에서 일을 도우며 지내고 싶어요. 고향에서 지낼 땐 살아있는 꽃을 보기가 몹시 힘들었던지라.”

“그랬겠지.”

“언젠가, 제가 어렸을 때, 사막에 제법 많은 비가 내린 적이 있었어요. 그로부터 거의 보름 동안, 사막은 정말로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었죠. 눈 닿는 곳마다 이름도 모르는 꽃들이 한가득 피어있었거든요. 그 모든 꽃들이 결국 사막의 태양 아래 시들기 시작할 무렵에는 얼마나 슬펐는지 몰라요.”

“그래서 이곳이 마음에 드나?”

“예. 그 이후 단 하루도 그 풍경을 잊어본 적이 없어요. 할아버지의 뜻이 아니었다면, 저는 아마 저만의 꽃집을 차렸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것도 좋았겠지.”

“……가실 때 제가 가꾼 아이들을 회장님께 좀 드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괜찮지 않을 이유가 있나. 고맙게 받겠다.”

나는 차를 한 잔 더 마신 연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를 꽃집으로 이끈 마샤트는, 저가 가꾼 작은 화분들을 이것저것 내보이며 내 취향을 물어보았다. 하나하나 특성과 돌보는 방법을 설명하는 모습에선 확실히 식물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조그마한 화분에 뿌리를 내린 관상식물들은 설령 각성체라 해도 사람에게 해를 끼치기 어려운 생체질량이었다.

관심도 없고 시간도 아까웠으나, 나는 끝까지 주의를 기울이는 시늉을 했다. 그리하여 고른 몇 개의 화분들은 부하들의 손에 들려 차로 옮겨졌다.

“저어, 이것도 회장님께 드릴게요…….”

작별을 고할 때가 되자, 마샤트는 자수가 들어간 손수건 하나를 내게 건네주었다. 수놓은 문양은 원형의 미로에 갇혀있는 한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회장님을 뵈면 드리려고 직접 만들었어요. 거기에 있는 건-”

“미로 속의 사내, 창조신 이이토이로군.”

“아, 아시네요.”

“네 할아버지와의 사귐이 길었으니까. 너희 부족의 설화도 대충은 알지.”

“그렇군요…….”

마샤트는 낯빛에 쓸쓸함이 남아있는 와중에도 약간의 수줍음을 담아 말했다.

“할아버님께서는 신의 미로가 인간의 삶을 상징한다고 하셨어요. 미로의 중심에는 꿈이 있고, 사람은 그 꿈을 이루고자 미로에 들어서죠. 삶의 중대한 갈림길과 마주쳤을 때, 신과 선조들의 가호를 받는 사람은 세상과 조화를 이루어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사람이 꿈을 이루는 건 신께서 그 사람과 함께한 결과라고…….”

“그런가.”

“회장님께도 무언가 꿈이 있나요?”

“있다. 꿈이라기보다는 목적이라고 해야 맞겠다만.”

“그럼, 당신께서 그 목적을 이루시는 날까지의 모든 갈림길에 신과 선조들의 가호가 있기를 기도할게요.”

“그런 가호는 네게 더 필요하지 않으냐?”

“저는 괜찮아요.”

마샤트가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미소를 머금었다.

“제 미로의 중심엔 이제 회장님께서 계시거든요. 아프신 할아버님과 함께.”

“…….”

“바쁘시겠지만, 시간이 나시면 종종 들러주세요. 언제나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래. 잘 지내고 있어라. 필요한 게 있다면 내 부하를 통해 연락하도록 하고.”

“네. 살펴가세요. 오늘은 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길가로 배웅을 나온 마샤트는, 내가 탄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오도카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오후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린 모습은 어디로 가야 좋을지를 몰라 발걸음을 멈춘 피로한 여행자 같은 인상을 주었다.

본사를 향해 달리는 차 안에서, 나는 방금 받은 손수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미로 속의 사내라.

삶의 중대한 갈림길과 마주쳤을 때, 세상과 조화를 이루어 바른 길로 나아가게 이끌어주는 신?

이제껏 마샤트가 걸어온 길은 마샤트 자신이 선택한 것이다. 내가 폭탄제조와 폭파공학에 관한 컨설팅을 거부했어도 결과가 크게 달라지진 않았겠지. 인디언 보호구역의 매미들은 차별과 억압이 씌운 허물을 벗고 우화하여 한 철의 시끄러움을 빚어냈을 것이다. 그것은 미국의 원죄와 제국주의가 마법의 시대와 어우러져 만들어낼 필연의 여름이었다.

이 세상에 사람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선한 신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고독이 바글거리는 무더운 계절이 있을 뿐.

어쨌든, 마샤트와 마샤트의 곁에 남기로 한 소수파 원주민들은 그들이 소망하는 삶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원한다면, 기업을 일구어 부족의 미래에 보탬이 될 기회 역시도.

나는 이들에게 내어주었던 약속을 굳이 어길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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