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83화 (383/561)

#40. 미로 속의 여인 (7)

수석과의 대화는 알게 모르게 집중력을 소모했다. 한편으로는 고질적인 수면부족으로 말미암은 식곤증이 몰려오기도 하여, 나는 달리는 차 안에서 산만한 정신으로 「사막의 사람들」에 관한 지난 일들을 곱씹었다.

내 지시를 받은 부하들이 원주민들을 포섭·흡수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간단했다.

그저 보호를 제공하고 불안을 달래주며 함께하는 것.

내게 의탁한 원주민 도망자들은 모두가 인터폴의 적색수배 목록에 이름이 올라있으며, 추장대행이었던 마샤트는 미 연방수사국 최우선 수배대상 테러리스트(Most Wanted Terrorists)의 하나였다.

현시점에서, 미국 국무부가 마샤트의 목에 걸어놓은 현상금은 6백만 달러. 예전에 보고를 받았을 때보다 백만 달러가 증가한 금액이다. 추장대행을 따라 탈출한 나머지 부족원들은 평균적으로 1만 달러짜리 현상범들이 되어있었다.

여기에 성산(聖山) 와우 키울릭 테러의 희생자 유가족들이 비영리재단을 만들어 내건 사적 현상금(Private bounty)도 있다. 유가족들의 각출과 전국적인 모금으로 재원을 마련한 사적 현상금의 총액은 90만 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재단은 유가족들이 직접 출연하는 광고를 내어 눈물로 호소했다.

「우리 재단은 FBI의 공식 확인을 받은 ‘사냥’에 대하여 공적 보상금의 액수에 비례하는 사적 보상금을 지급할 것을 약속합니다. 미국의 헌터와 히어로 여러분. 그리고 이능을 가진 해결사 여러분. 바라건대 이 세상에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보상들을 고려할 때, ‘마샤트 그룹’을 모두 사냥하는 데 성공했을 때의 기대이익은 최대 8백만 달러를 넘어간다. 이 정도면 현상금 사냥꾼 노릇으로 먹고 사는 헌터들이 팀이나 작은 법인 단위로 매달릴 만한 일감이었다.

관련 제도와 규범이 정비됨에 따라, 현상금 사냥꾼들의 활동 범위는 세계적으로 확대되는 추세였다. 이런 추세 속에서 사냥꾼들은 나름의 국제협회를 창설하여 공권력과의 공생을 꾀했다. 인터폴과 각국 군경으로부터 정보협조와 행정지원을 받는 대신 수익의 일정 비율을 상납하는 계약 관행을 만들어낸 것이다. 명목상의 관리감독을 받아들임은 물론이다.

공권력의 입장에서도 나쁠 건 없다. 각성능력자 범죄자들을 상대하는 위험을 외주로 떠넘기는 동시에, 그 범죄자가 외국에서 도망쳐온 수배자일 경우 본래대로라면 있지도 않았을 금전적인 이득을 거둘 수도 있으니까.

언젠가 경태는 이런 흐름을 두고 가볍게 논평했다.

“뭐, 높으신 분들 입장에서도 불가피한 타협이었겠죠. 철밥통을 찬 경찰공무원들을 각성능력자로 대체하는 데엔 한계가 있고, 그렇다고 예산이 무한한 것도 아니고, 각성능력자들이 낀 강력사건에 비능력자 경찰들을 투입했다간 사사건건 바디 백 신드롬이 터질 판이니.”

바디 백 신드롬(Body bag syndrome). 시체 가방(바디 백)이 늘어날수록 사회 전체가 보이는 피로감과 집단적 히스테리 증상.

“어차피 헌터들을 보조 인력으로 쓸 거라면 바운티 헌터(현상금 사냥꾼)를 제외할 이유가 있나요.”

현상금 사냥꾼들의 동기부여는 월급쟁이 경찰들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므로 작금의 세계에서, 현상범에 대한 추적은 과거보다 훨씬 더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형태로 이루어졌다. 추적 대상이 미국의 현상범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원주민 도망자들은 잦은 은신처 변경을 당연한 조치로 받아들였다. 때로는 비행기를 타고, 때로는 화물선을 타고, 때로는 차량을 이용하거나 도보로 걸어서 새로운 은신처로 이동하는 일을.

끝없는 도피생활은 사람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더군다나 원주민들에게는 내 호의의 유효기간도 근심거리였다.

대가를 받지 않는 보호가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내가 각자 원하는 대로 살아갈 길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고는 해도, 보증도 뭣도 없는 구두약속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근심을 앓는 인간들은 본능적으로 보호자의 호의를 갈구하게 되어있다. 내가 저들에게 버려지지 않기를. 나아가, 나 또한 저들의 울타리에 들어갈 수 있기를.

게다가 이들은 이미 내 조직이 지닌 힘과 역량을 경험했다. 도망자들 사이에서 내 조직에 대한 동경이 열병처럼 끓어오르는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조직의 수장인 나는 부족 전체의 은인이기까지 하다.

원주민 도망자들은 자신들을 관리하는 내 부하들의 호의를 얻으려 애썼다. 그리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특정 대상에 대한 적개심을 공유하는 것.

폐쇄적인 공동체에서 살아온 탓에 외부인과의 진정성 있는 소통엔 미숙한 원주민들은, 내 부하들에게 쭈뼛거리며 다가와서는, 그들의 속에 박혀있는 울분의 응어리를 가지고 공감대 형성을 시도했다.

그런 원주민들에게 내 부하들이 보여준 공감은 원주민들의 울분이 체념과 무력감에 삼켜지지 않도록 보존해주는 방부제 역할을 했다. 내 부하들도 저마다 하나씩은 맺힌 한이 있는 녀석들이어서, 그러한 공감이 딱히 도구적인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나와 수연 녀석이 예상한 범위 내에 있었을 따름.

보존된 울분은 가면 갈수록 거세게 불타오르는 공격성으로 꽃피었다. 원수들에 대한 증오는 길어지는 도피기간에 비례하여 깊어져만 갔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하나둘 자신을 조직에 받아달라는 의사를 내비치기 시작하는 원주민들에게, 내 부하들은 사전에 매뉴얼로 정해두었던 답을 돌려주었다.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안 됩니다. 우리 회장님께선 마샤트 님을 여전히 추장대행으로 인정하고 계시니, 본사의 입사절차를 밟기를 희망하신다면 먼저 마샤트 님의 동의를 받아오시기 바랍니다.」

모병관 역할을 담당하는 부하들이 이런 식으로 응대하는 동안, 나는 종종 마샤트와 통화를 하며 마샤트가 소망하는 깨끗한 새 출발을 약속해주었다. 원한이 사무친 부족원들과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추장대행 사이에 균열이 깊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안가(安家)마다 설치된 감시 장비들은 격한 갈등의 장면들을 포착했다.

추장대행으로서의 책임감을 놓지 못한 마샤트는 번번이 성난 부족원들을 설득하려 애썼다.

「우리는 실패했어요. 신성한 산을 되찾기는커녕 부족의 현실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죠.」

「하지만 아직 모든 게 끝나버린 건 아니에요. 우리에게는 아직 우리들 자신이 남아 있잖아요. 여기 있는 여러분은 부족 내에서 가장 뛰어난 전사들이고, 또 각성능력자들인걸요. 우리가 힘을 합치면 부족의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어요.」

「이름 없는 회사의 회장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신분과 또 한 번의 기회를 약속해주셨어요. 정말로, 정말로 어떻게 보답하면 좋을지 모를 만큼 감사한 분이죠. 이 험한 세상에 어찌 이토록 친절하고 관대한 분께서 계시는지……. 이분과의 우정이야말로 추장님께서 부족을 위해 남겨주신 가장 큰 유산일 거예요.」

「그런 분께 은혜를 받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복수가 아니라 사업이에요.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테러조직이 아니라 각성능력자들의 힘을 밑천으로 삼는 기업이란 말예요!」

「신성한 산? 중요하죠. 조상들의 영이 깃든 선인장들의 땅? 당연히 중요해요. 대대로 살아온 부족의 터전 역시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고요. 하지만 그 무엇도 우리 부족의 미래만큼 중요하진 않아요!」

「우리는 부족의 정신과 계명(제웨 크 힘닥)을 이어나갈 새로운 터전을 꾸려야 해요. 부족의 은인이신 회장님께 조금씩 빚을 갚아가면서, 우리의 후손들이 평화롭게 후일을 도모할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요.」

「그러니 우리 이제 복수는 단념하기로 해요. 신성한 산과 성스러운 매장지는 그리움의 세월 속에 묻어두고, 다 함께 힘을 모아 부족의 미래를 만들어나가자고요. 날로 심해지는 박해 속에서 고향에 남아있는 동포들도 언제든지 우리에게 의지할 수 있도록.」

「부족의 역사가 끊어지지 않는 한, 부족의 정신이 단절되지 않는 한, 우리의 후손들은 언젠가 조상들의 옛 땅으로 돌아가 마땅한 권리를 되찾을 수 있을 거예요.」

이렇게 온건하고 건설적인 추장대행의 설득은, 원한이 골수까지 스민 부족원들에겐 큰 호소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사람이 욕망에 반하는 행동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능력은 성장기의 환경 및 교육수준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대부분의 원주민 각성능력자들은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이나 중학교 중퇴 정도에 머물러있었고, 빈곤과 마약과 범죄가 흘러넘치는 환경에서 자라났다. 이런 부족원들의 눈높이는, 전대 추장의 보호 아래 대학까지 졸업한 마샤트와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예전이었다면 부족 내에 드문 고학력자에 대한 존중이 있었을 것이다. 하얀 추장이 지목한 후계자를 함부로 무시하지도 않았을 터.

그러나 지금은 형편이 많이 달라졌다. 문자 그대로 ‘무식하고 화가 많으며 충동적인’ 원주민 각성능력자들은 자신들이 처한 현실의 책임이 전적으로 마샤트에게 있다고 믿었다. 성산 거사 당일에 추장대행의 엄명을 어기고 인질을 처형했던 건 바로 자신들임에도 불구하고.

「그쪽이 뭔데 부족의 미래 어쩌고 하는 소릴 지껄이지? 우리는 당신 말을 따르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아직도 자기가 잘난 줄 알고 이래라저래라 하고 있네. 뻔뻔한 년.」

한 부족원이 던진 도발적인 언사는 마샤트의 낯빛을 창백하게 만들었다. 적게나마 남아있는 온건파가 마샤트를 두둔했으나, 온건한 소수의 목소리는 이내 거칠고 난폭한 다수의 공명에 파묻혔다.

「그래, 이 더러운 갈보년아! 우리는, 우리 부족은 너 때문에 끝장난 거야! 다 네가 똑똑한 척 하며 세운 계획들이 망쳐놓은 거라고! 근데 어디서 또 같잖은 계획을 들이밀어! 양심은 니 엄마 자궁에 두고 나왔냐?」

「추적자들이 올 때마다 다 버리고 도망쳐야 하는데 기업을 만들긴 무슨 기업을 만들겠다는 거야!」

「복수를 단념해? 조상들의 땅을 잊고 새롭게 시작해? 좆같은 소리 집어치워! 진정한 사막의 사람이라면 절대로 그딴 소리를 할 수 없어! 너 같은 튀기가 이런 마음을 이해하기는 해? 아니! 못하겠지! 넌 순수하지 않으니까!」

「애초에 저런 혼혈 잡종이 추장대행이 되면 안 되었던 거야! 백인 새끼들의 더러운 피가 어디 가겠느냐고! 지금도 씨발 존나 백인들 같은 말을 하고 있잖아!」

마샤트가 물려받은 피에 대한 비난은 백인과 백인 문명 전체에 대한 증오를 담고 있었다.

원주민들의 원수는 물론 미국이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세계전도를 펼쳐놓으면 미국이 어디에 있는지 짚어내기도 힘들어하는 자들이었다. 일기예보 등을 통해 전미 지도를 접하기는 하나, 그런 지도는 대체로 미국 땅만 뚝 잘라서 보여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

아주 가난한 원주민 가정의 집엔 TV가 없거나 전파가 닿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혹은 애초에 전기가 들어오지를 않거나.

그래서 이들이 품은 미국에 대한 증오는, 그 막연함으로 말미암아, 백인들이 지배하는 바깥세상에 대한 증오와 거의 동치(同値)를 이루었다. 말로는 미국이 싫다 하지만, 실제 감정은 백인을 보기만 해도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것이다.

요컨대, 이들의 관념 속 미국은 ‘바깥에 있는 백인들의 세상’의 유의어였다.

「우리는 백인들에게 복수해야 한다!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건 평화추장이 아니라 전쟁추장이다!」

「전쟁추장은 선조들의 의지를 이어 부족을 지키는 사람이야! 선조들을 버리자고 입을 터는 배신자년에겐 전쟁추장의 자격이 없어!」

이렇게 갈등이 깊어지던 어느 날엔 마침내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저 씨발년을 죽여 버려!」

마지막까지 설득을 포기하지 않았던 마샤트는 하마터면 정말로 목숨을 잃어버릴 뻔했다. 내 부하들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험한 꼴을 당한 끝에 비참하게 죽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부하들에게 만에 하나라도 마샤트가 죽는 일이 없게끔 하라고 당부해놓았었다. 분위기에 휩쓸려 살해에 가담한 자들 중엔 피가 식고 나서 후회하는 일부가 반드시 있을 테고, 또 죽은 자는 쉬이 미화되기 마련이니까.

그날, 도망자들은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마샤트의 추장대행 직위를 박탈하기로 합의했다. 동포들의 폭력에 충격을 받은 마샤트에겐 이의를 제기할 정신이 남아있지 않았다.

일찍이 내가 했던 권고를 들었다면 괜히 다칠 일이 없었을 것이다. 도망자들을 피난시키는 선에서 추장대행의 책임을 내려놓으라는 권고를.

마샤트를 끌어내리고 다수파 도망자들의 전쟁추장으로 추대된 인물은 스스로를 셰헤(Sheh'e)라고 새롭게 자칭했다.

이 인간이 제 무리에게 제시한 비전은 간단했다. 내 아래에서 각성능력자 무장집단으로 일을 하며 내게 진 빚을 갚고, 그러면서 힘과 실력을 길러 설욕의 기회를 노리겠다는 것. 셰헤의 무리는 모두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복수를 이루겠다고 맹세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게 공식적인 인정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그룹 분화에 대해서든, 내 아래로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든. 나는 이들의 요청에 대한 답을 보류해놓았다.

현재 마샤트와 마샤트 파벌에 속한 소수의 원주민들은 한국의 은신처에 분리 수용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마샤트가 머무는 곳은 최고령 조직원 황말자 노인이 명목상의 소유주로 등록되어있는 3층짜리 상가주택.

이 상가주택은 전대 추장이 들어가 있는 요양시설과 거리가 가까웠다. 마샤트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기에 적절한 입지라 하겠다.

인근 상권이 몹시 보잘 것 없는 지역이라, 상가주택의 1층은 황말자 노인이 운영하는 꽃집과 자그마한 찻집을 제외하면 공실로 남아있었다. 2층부터는 조직원들을 위한 사택(社宅) 내지 안가(安家)로 쓰이는 공간이다. 황말자 노인의 거처는 2층에, 마샤트의 임시 생활공간은 3층에 각각 위치했다.

차량이 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은 건물과 인구의 밀도가 많이 낮아졌다. 서울과 수도권 인근 공역에 비행제한이 걸려있지만 않았어도 순식간에 주파했을 거리인데.

차의 속도가 줄어들었다. 나는 읽는 둥 마는 둥 하던 전자문서를 닫았다. 운전석의 부하가 짧게 보고했다.

“도착했습니다.”

「사막의 사람들」의 전 추장대행은 앞치마를 두르고서 황 노인의 일을 돕는 중이었다. 화장법만 바꿔도 위장효과를 보기에 충분하거니와, FBI 지명수배자가 이런 데서 잡일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할 사람은 없을 테니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었다. 손짓발짓에 번역기를 섞어 쓰면 언어 문제도 어떻게든 극복이 된다.

내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자, 조금 늦게 나를 발견한 마샤트는 놀라움이 9할에 기쁨이 1할쯤 되는 표정으로 가슴께에 손을 모았다. 곧장 박동이 빨라지는 심장은 나를 보았을 때의 김춘식이나 라일라를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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