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미로 속의 여인 (4)
내 조직은 현재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돈이 흘러넘치는 상태였다. 너무나 많은 자금이 쏟아져 들어와서, 세탁을 담당하는 인력을 대거 충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여의도 김씨 같은 녀석은 중역회의에서 조금 허탈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자기가 아무리 자산을 굴려 봐야 내가 직접 벌어오는 것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면서.
그렇기에 내게로 올라오는 사업기획안의 숫자도 과거보다 크게 늘어났다. 계좌마다 지나치게 많은 돈이 고여 있는 건 그 자체로 자금운용의 보안성을 저해하는 요소이므로, 기회가 닿을 때마다 예산을 집행할 구석을 만들어두는 편이 유익했다. 그렇게 계열사를 늘릴 때마다 자금세탁의 경로 역시 늘어난다.
‘조직원들에 대한 대우를 무작정 더 끌어올리기도 곤란하고.’
사람의 마음은 상설화된 보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어있다. 물론 마음의 여유와 생활의 안정감, 그리고 조직에 대한 충실한 소속감이 바로 그 당연함의 질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는 하나,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과하면 독이 되는 법.
조직원들과 준 조직원들에 대한 금전적 보상은 일반 사회의 구성원들에 대해 일정한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수준에서 유지되어야 이상적이었다.
그래서 명절마다 지급하는 휴가비도 연봉을 기준으로 최대 10%를 초과하지 않게끔 조절하고 있었다. 다만,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태에서 조직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 신입들에 대해선 예외적으로 그 이상을 주기도 했다. 어차피 연차가 낮은 인원들은 비율을 높여줘도 선배들보다 적은 액수를 받게 되니까.
나는 청와대 미래전략수석을 만나러 가는 차 안에서 사업기획안을 검토했다.
기획조정실장을 겸하는 수연이 한 차례 타당성을 확인한 사업기획안은 조직의 항공운송사업 진출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기존에 간을 보던 프라이빗 비즈니스 제트만이 아니라, 중형 이상의 화물기와 여객기를 운용하는 본격적인 항공사를 차리자는 내용이었다.
기획안의 서두는 사업 배경을 다루는 것으로 시작했다.
「조직 내 각성능력자들 중 다중각성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1년 9월 1일을 기점으로 95%를 돌파하였음. 이에 따라 조직이 보유한 발화능력자와 방전능력자의 수도 예년 동기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하였으며, 그 모두가 상업적·산업적 활용이 가능할 만큼의 출력을 낼 수 있음.」
「이들의 능력을 활용한 항공운송사업은 수익사업으로서도 훌륭할 뿐만 아니라 조직의 밀수역량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려줄 것임.」
「현재 「발화」·「방전」을 활용한 상업항공기의 개발은 과도기적 실험을 거쳐 소형기는 「발화」를, 중대형기는 「방전」으로 동력을 얻는 방식이 주류로 정착되어가는 추세임. 본격적인 양산기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이때야말로 조직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에 좋은 기회라고 판단됨.」
「과거 「HMS 드레드노트」의 출현이 기존의 모든 전함들을 쓰레기로 만들었듯이, 새로운 시대의 항공기들은 전통적인 기종들을 보유한 기존 사업자들의 지위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음. 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투자할 자금이 부족한 사업자들은 모두 도태될 것이 분명함. 넘치는 자금과 인적자원을 보유한 우리 조직의 입장에서, 세계의 하늘은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한 블루 오션과도 같음.」
이렇게 시작한 보고서의 핵심은 사업의 경제성을 분석하는 부분에 있었다.
「기존 여객기의 승객 1인당 킬로미터(PAX-Km) 에너지 소모량은 전력량으로 환산했을 때 평균적으로 124와트시(Wh) 안팎임. 400인승 광동체 여객기는 시간당 약 50킬로와트의 에너지를 소모함.」
「동력원을 전기로 바꾸고 추진계통을 교체할 경우, 시간당 에너지 소모량은 45킬로와트까지 감소.」
「조직에 속한 방전능력자들은 누구나 단독으로 이 전력량을 공급할 역량이 있음. 단, 개정된 항공사업법이 국제표준규약에 따라 한 기체당 최소 2인 이상의 검증된 동력공급자를 두고 2배율의 충전량을 충족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기체 하나당 2인의 능력자를 배치해야 함.」
「달리 말해, 항공기 1기당 단 2인의 인력을 투입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음. 투입하는 인력 대비 이만큼의 산출이 나오는 사업 모델은 거의 존재하지 않음. 위험도와 안정성까지 고려할 경우 독보적이라고 봐도 무방함…….」
나는 보고서를 쭉 읽어 내려갔다.
현재 배럴당 45달러 선인 항공유 가격을 기준으로, 기존의 광동체 여객기가 인천에서 뉴욕까지 편도로 날아가는 데 들어가는 연료비는 대략 5만 달러 정도.
이 연료비를 두 사람분의 인건비로 대체할 수 있다면, 그 둘에게 시급으로 1천 달러를 주더라도 2만 달러 이상을 남기는 장사가 된다.
더욱이 연료의 무게를 덜어내면 백 톤 안팎의 가용 하중(페이로드)을 더 확보할 수 있고, 정비와 급유에 걸리는 시간도 절감하여 운항의 경제성이 높아진다. 전기를 쓰는 덕트 팬 엔진의 정숙성 또한 장점이었다.
수준 높은 각성능력자들의 몸값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데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해서 나쁠 건 없긴 한데.’
보고서엔 가까운 시일 내로 인수가 가능한 항공사들의 목록이 첨부되어 있었다.
목록의 최상단엔 플래그 캐리어로 분류되는 5성급 항공사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마법의 시대가 돌아오기 전에 이미 분식회계와 자본잠식으로 맛이 가버렸고,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으로 추가타를 맞은 업체.
이 업체를 인수하려면 지분 확보에만 1조 4천억이 들어가고, 인수한 다음에는 2조 원의 부채를 추가로 갚아야 한다. 게다가 상업용 항공기의 패러다임 전환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신규 항공기 도입에 또다시 조 단위의 자금을 투입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이 업체는 매물로 나온 후 2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정부와 채권단의 골칫거리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조직에게는 이렇게 부실이 큰 매물도 딱히 부담스러운 먹거리가 못되었다. 하려고만 든다면 이런 매물 서너 개를 한꺼번에 소화하면서 여력을 남길 수도 있다. 부채상환이나 투자자금 집행이 일시불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니까. 부채를 부분적으로 탕감받을 여지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조직이 지난날에 비해 현격한 성장을 거두었음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이게 고작 일이 년 남짓한 짧은 기간에 이룩한 성장이란 말이지…….
나는 일단 입찰에 참가는 해두라고 지시를 남기고서 다음 기획안으로 넘어갔다. 이어지는 기획안은 인도네시아 잠비 지역에 대한 투자계획을 담고 있었다.
술타나는 마침내 비원이었던 왕국의 부활을 이루었다. 수마트라 중남부까지 내려왔던 극단주의 이슬람 반군을 박살낸 시점에서 사실상 확정된 일이었고, 그로부터 채 보름이 지나지 않아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술타나 호칭을 사용할 권리와 세습직 주지사 직위를 받아낸 것이다. 정부의 항복 선언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제 잠비엔 술타나의 왕정(王廷)이 들어섰다. 인도네시아의 독립기념일이었던 8월 17일의 일이었다. 공식적으로는 주지사 내각이라고 해야 할 터이나, 언론도, 지역 주민들도 왕정이라는 표현을 주로 썼다. 비서실에서는 내 명의로 축전과 선물들을 보내주었다.
얼마 전 수연은 내게 이렇게 건의했다.
“이만한 기반이 생겼으니, 상품을 직접 생산할 거점을 마련해보는 게 어떨까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상품이란 당연히 각종 무기와 군사 장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인도네시아의 문화적 장벽, 이슬람의 종교적 배타성, 지역사회의 폐쇄성, 술타나 왕정의 비호와 조력, 중앙군과 지방군의 다원화된 무기조달 체계, 그리고 극심한 부패에서 기인하는 불투명함에 이르기까지……. 조직의 존재감을 가려줄 장막이 이렇게까지 다층적으로 드리워진 환경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내 조직은 어지간한 상품들을 복제·생산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자체적인 대량생산 시스템을 구축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잘라내기 어려운 꼬리들이자 지워버리기도 어려운 흔적들이니까. 유통망은 철수하면 그만이지만 생산시설은 경직성이 높은 자산이다. 유동적이어야 할 유통망이 고착된다는 단점도 있었다.
인적자원 관리의 효율성 또한 문제였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목숨을 빚진 녀석들만 받아들이는 내 조직의 특성상, 단순 생산 업무에 많은 인력을 배치하는 건 아무래도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였다.
그러나 나와 견고한 동맹관계를 이룬 술타나가 양지의 권력을 틀어쥔 지금, 술타나와 합작으로 무기 공장을 차리는 건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었다. 수연이 말한 장막들의 그늘도 그늘이거니와, 보안성이 높은 생산인력 역시 술타나에게서 공급받으면 해결이니까.
그럼에도 보안사고가 터질 경우엔 술타나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우면 된다. 외부인들은 이를 인도네시아 권력자들의 생리와도 같은 부패로 인지할 것이다.
중요한 건 신뢰인데, 내가 어지간한 해악을 끼치지 않는 한 술타나가 이제 와서 나를 배신할 것 같진 않다…… 라는 게 수연의 의견이었다.
“우리의 대규모 투자는 술타나의 왕정이 과시할 또 하나의 경제적 성과가 될 것입니다. 왕정을 지지하는 민심이 지금보다 더 강해지면, 왕정이 관료들과 지방군을 장악하기도 한층 더 수월해지겠지요.”
“투자금을 집행할 땐 양광백포를 위장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들어온 투자는 외부인들의 눈엔 전형적인 일대일로 사업으로 보이겠지요. 적당히 손을 쓰기만 한다면 중국 정부마저도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술타나가 지방군을 장악한 연후엔 명목상 지방군에 속하는 함대를 창설하도록 권유하는 게 좋겠습니다. 선박을 이쪽에서 조달해주겠다고 하면 술타나도 기쁘게 받겠지요. 중국 해군이 퇴역시킨 함선들을 몇 척 빼내기만 하면 됩니다. 주력으로는 053급 프리깃이 무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중국이 쟁여둔 퇴역 함선들은 어차피 무상공여로 뿌려질 확률이 높은 것들. 관계자들에게 기름칠을 좀 해주면 서울에 있는 아파트 두세 채 값으로 작은 선단을 꾸릴 수도 있다. 술타나처럼 합법적으로 군함을 운용할 얼굴마담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인도네시아 지방군에는 본디 해상전력이 없다. 있다고 해도 강상 순찰을 위한 건 보트(Gun boat) 정도가 전부.
인도네시아처럼 섬이 많고 지방색이 강한 나라에서, 중앙군의 해군력 독점은 국가의 분열을 막기 위한 중요한 장치다. 그러나 지금처럼 오대양이 해적과 자연적인 위협으로 넘쳐흐르는 시대라면, 중앙정부의 관료들도 다소의 융통성을 발휘할 준비가 되어있을 것이다. 이쪽으로도 아파트 두세 채 값 정도면 족하지 않을는지.
어차피 민간 엽사집단들도 무장여객선을 굴리지 않는가. 지방군이 치안 유지를 위해 그보다 나은 군비를 갖추겠다는데, 거기다 대고 무작정 반대만 하는 것도 이상한 노릇. 중국의 외교적 영향력 확대를 경계할 수는 있겠지만.
뇌물 살포에 더해, 전시통제권이 확실하게 중앙군에 있음을 천명한다면 큰 반대는 없을 것이다. 영주로서, 또 바다에서도 음지의 사업을 벌이는 사업가로서 해적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술타나 역시 흡족해하겠지.
수연은 함대 창설에 따르는 주요 이익을 세 가지로 꼽았다.
첫째. 술타나의 해역통제가 강화되면 자연히 잠수정 밀수 허브의 안전성도 강화된다.
둘째. 함대함미사일이나 함대공미사일, 어뢰처럼 희소성이 높은 상품들을 안정적으로 수급할 경로가 추가된다. 이는 주술사 왕의 함대를 무장시키는 데에도 필요하다.
“……셋째로, 같은 맥락에서, 왕의 해군의 전문인력 육성을 위한 위탁 승선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외국의 각성능력자를 고용하는 건 흔한 일인 만큼, 교육생들의 인종적 차이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내내, 수연은 내 허벅지 위에 웅크린 김춘식이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보느냐고 묻자, 녀석은 짧은 잠에서 깨어난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별것 아닙니다. 그저…….”
“그저?”
“조금, 좋아 보였을 따름입니다.”
좋아 보였다는 건 어느 쪽의 이야기였을까. 나와 까만 사냥개 중에서.
두 번째 기획안에 메모와 전자서명을 넣을 즈음, 내가 탄 차는 간송미술관 앞을 지나 대사관이 밀집한 거리로 들어섰다. 최종 행선지는 한옥으로 지어진 유서 깊은 한정식집이었다. 청와대로부터는 삼청로를 타면 10분도 걸리지 않을 위치.
그럼에도, 약속장소에 먼저 도착한 건 내 쪽이었다.
차를 마시며 술식에 대한 묵상을 하고 있기를 잠시. 미리 인상착의를 확인해둔 미래전략수석은 약속시간보다 7분 늦게 나타났다. 차에서 급하게 내려 잰걸음으로 주차장을 가로지르는 품새를 보건대 일부러 늦은 건 아닌 듯했으나, 애초부터 내키지 않는 회동이었으므로, 나는 들어오는 수석을 폭사시키는 상상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