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미로 속의 여인 (1)
9월 14일, 샤히디는 우즈베키스탄의 한적한 소도시 자라프숀(Zarafshon)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로 가는 프라이빗 제트에 탑승했다.
이 프라이빗 제트는 초대장을 보낸 사우디 왕족의 개인 전용기였다. 그 왕족의 대리인이 먼저 항공편을 어디로 보내주면 좋을지를 물어왔으므로, 내 부하들은 마무르와 성전연합에게 협조를 구해 샤히디의 행적을 세탁했다.
기념비적인 ‘순회공연’의 첫 번째 목적지를 리야드로 정한 것은, 성전의 스폰서가 되어줄 법한 국가들 중에서 가장 정국이 불안정한 곳이 바로 사우디였던 까닭이다.
사우디는 마법의 시대가 돌아오기 이전부터 와하브파 광신도들이 왕궁에 총질을 해대던 나라다. 사우디 이슬람의 주류이자 수니파 극단주의의 총본산이라고 해도 좋을 와하브파는, 이슬람 최고의 성지 가운데 하나인 예언자 무함마드의 무덤(예언자의 모스크)마저도 파괴해야 할 우상이라 주장하는 꼴통들이었다.
‘여러모로 홍위병들과 겹치는 면모가 있단 말이지.’
극과 극은 통한다. 극단주의 무신론자 집단인 홍위병들과 극단주의 이슬람 광신도 집단인 와하비스트들 사이엔 상당한 유사성이 존재했다.
이 꼴통들이 보기에,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은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위해 왕국을 바르지 못한 길로 이끄는 죄인들이었다. 기독교 세계의 맹주 미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 여성에게 남성 보호자의 동행 없이 혼자서 외출할 권리를 허락한 것, 여성할례를 장려하지 않는 것, 공교육에서 이교도들의 언어(외국어)를 배제하지 않는 것 등.
물론 같은 와하브파라고 해도 도시에 사는 주민들은 종교지도자들의 극단적인 주장과 거리를 두는 편이다.
그러나 그게 언제까지 지속되겠는가. 사회 전반에 드리우는 불황의 그림자가 짙어질수록, 극단주의자들의 세력은 점점 더 강성해지기만 할 터였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왕국이 신정국가로 바뀔 날이 온다.
자라프숀으로 떠나기 전에 있었던 대화에서, 샤히디는 그들의 대(大) 무프티(최고 법학자)가 최근 성지 메카의 검은 돌 「알-하자르 알-아스와드」를 우상으로 규정했다는 말을 듣고 몹시 어이없어했다.
“미친놈들입니까?”
메카의 검은 돌은 대천사 지브릴(가브리엘)이 최후의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가져다주었다고 전해지는 성물(聖物)로서, 많은 무슬림들은 이것이 본래 하나님께서 최초의 예언자 아담에게 내려주셨던 제단의 일부였다고 믿는다.
애초에 이 신성한 돌이 없으면 무슬림들의 의무인 성지순례도 절반의 의미를 상실한다.
비록 지금이 이슬람 달력으로 순례의 달(둘 힛자)은 아니지만, 기왕 사우디로 가는 김에 성지 메카와 메디나를 순례할 생각으로 들떠있던 샤히디 그룹 구성원들은 와하브파의 원리주의자들에게 여과 없이 불편한 감정들을 드러냈다.
샤히디가 내게 무릎을 꿇은 것을 시작으로, 샤히디 그룹의 다른 구성원들 또한 차례차례 나를 스승으로 섬기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로써 샤히디는 내가 공인하고 다른 구성원들이 수긍하는 ‘제자들의 맏형’이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독립투사들의 스승으로서 당부했다. 그런 극단주의에 마음을 주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고. 그것은 위구르 민족의 독립에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고. 그렇게 되면 나 역시 그대들과 인연을 끊으리라는 경고는 덤이었다.
샤히디와 다른 위구르 원리주의자들은 내 뜻을 잘 이해했다.
“염려치 마십시오, 위대한 승리의 스승이시여. 저희는 당신의 지도를 따르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넓은 시야를 얻었습니다.”
“저희는 이제 압니다. 위구르 민족의 진정한 자주독립은 오직 국제적인 인정과 지지 위에서만 성립할 수 있음을. 그런 신성모독적인 믿음에 올라타 세력을 키우는 건, 당장의 자그마한 세력 확대에 눈이 멀어 더욱 커다란 연대를 내던지는 짓임을.”
“저희는 결코 이슬람 국가를 자칭했던 어리석은 무리(ISIS)의 전철을 밟지 않겠습니다.”
온 이슬람 세계에서 지하디스트들을 긁어모으려면, 샤히디 그룹이 치를 성전은 다소 국제적인 성격을 띠어야 한다. 이는 나의 런던 공략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고로 동 투르키스탄 공화국의 독립은 내부적으로 이슬람 국가의 건설과 동일시되어야 하며, 해당 과업을 추구하는 와중에도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에 무력을 투사함으로써 「믿는 자들의 대전사(代戰士)」를 자임해야 했다.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ISIS와 같은 길을 걷기 쉬워진다.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써먹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많이 불편해지는 게 사실이었다.
대전사로서의 데뷔 무대는 예멘이 적당하리라는 게 경태와 수연 공통의 의견이었다.
경태는 말했다.
“솔직히 후티 반군만큼 패기 좋은 상대도 없잖습니까. 종파가 시아파라 같은 신앙의 형제들을 죽인다는 비판을 받을 일도 없고, 온갖 망신을 다 당하면서 지긋지긋한 싸움을 이어온 사우디는 왕실이나 민중이나 좋아서 죽으려고 할 거고, 사우디를 지원하던 미·영·프 세 나라도 ‘야, 이 샤히디 그룹이란 새끼들은 중국에서나 여기서나 아주 예쁜 짓만 골라서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겠지요.”
후티 반군(안사르 알라)은 말이 반군이지 사실상 국가라고 봐야 하는 조직이다. 예멘 인구의 7할이 직간접적으로 이들의 통치를 받으며,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돌아가는 연립정부와 그런 정부의 통제에 따르는 군사조직을 보유하고 있으니까. 헌법상의 수도인 사나마저 이들의 수중에 떨어진 지 오래. 시아파 광신도들답지 않게, 살라프파(수니파의 분파) 부족들과도 일부는 공존 협정을 맺고 있다.
이들을 때려잡으면 싫어할 것은 반군의 후원자이자 시아파의 사령탑인 이란밖에 없다. 미국, 영국, 프랑스와 같은 나라들이 후티 반군의 불행을 즐거워할 이유였다.
경태가 제안한 건 제한적인 규모의 참수작전이었다.
“거기는 형님께서 힘을 쓰시기에 편한 환경이니, 나중에 한 이틀? 길게 잡아도 사나흘 정도만 출장을 다녀오셔도 사우디 정규군의 몇 년 치 싸움을 부끄럽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러고 나면 샤히디 그룹은 다시 한 번 전설이 되겠죠. 아랍권 한정으로.”
지난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 내전에 개입할 것을 천명한 이래, 아랍 세계 최강을 자부하던 사우디의 군대는 무장 수준이 형편없는 반군집단을 상대로 졸전에 졸전에 졸전만을 거듭해왔다.
졸전의 가장 큰 원인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군 지휘부의 무능이다.
사우디군의 고위 장교와 사령관들은 능력이 아니라 배경과 혈통, 그리고 귀족사회에서의 정치질로 현재의 자리를 차지한 자들. 왕족과 귀족 출신이 대부분인 이들은 위험한 싸움을 치르기엔 너무나 귀하신 몸들이었다.
여기에 예멘 서부 산악지대의 전장은 아라비아 반도 속의 작은 아프가니스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지형이 험악하다. 이런 곳에 멍청한 지휘부가 숙련도 낮은 기갑부대를 밀어 넣었으니, 넣는 족족 패배하여 값비싼 서구권의 차량과 장비들을 노획당하는 결과만 낳았을 따름.
얼마나 인심 좋게 장비를 가져다 바쳤는지, 후티 반군 내에 미제 차량과 기갑장비로만 무장한 부대가 존재할 지경.
경태는 다시 이야기했다.
“형님께서 야간 침투로 반군 지휘관들의 머리를 다 따버리시고 보급과 지휘통신체계까지 작살내놓으시면, 이제 샤히디가 지하디스트들을 이끌고 후속타로 들어와서 초고속 전과확대를 하는 거죠. 지역점령은 사우디 정규군이랑 예멘 정부군의 역할로 넘겨주고요. 솔직히 가오슈센 죽일 때보다 훨씬 더 손쉬울걸요?”
어차피 병신과 머저리들의 싸움터에서 거두는 압승이다. 서구권 정보기관들이 관심을 가지기야 하겠으나, 전투의 상세한 경과를 알아내고자 편집증적인 노력을 기울일 일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내 힘을 쓰기 편한 환경이라는 경태의 말은 바로 이런 의미를 담고 있었다.
‘실제로는 폭격유도만 해줘도 충분할 가능성이 높지만.’
구석구석 무능과 나태가 흘러넘치는 사우디군에서 공군은 그나마 정상적인 전투력을 발휘하는 편이다. 내가 황금기의 눈으로 좌표를 따주기만 하면, 사우디 공군은 후티 반군을 반신불수로 만들어줄 수 있을 터였다.
샤히디 그룹의 순회공연 일정을 고려할 때, 예멘으로의 출장은 빨라도 10월 하순이나 11월의 일이 될 것이다. 10월 중순엔 무함마드의 탄신일(마울리드)이 끼어있어, 여러 이슬람 국가의 종교지도자들과 자연스럽게 자리를 만들기 좋았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첫 번째 행선지로 정한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와하브파 꼴통들은 예언자의 탄생을 기념하는 행위조차 우상숭배라고 믿는 까닭.
9월 15일. 샤히디는 보안채널을 통해 자신이 리야드에 도착했음을 알려왔다. 스승에 대한 문안인사의 형식을 빌린 보고였다.
나는 오랜만에 돌아온 조직 본사의 사무실에서 이 보고를 열람했다.
「존경하는 스승님. 강녕하신지요. 언제나 알라의 평화가 스승님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저는 지금 리야드의 의회와 왕궁의 담장이 보이는 호텔에서 여장을 풀고 있습니다. 이곳의 호화로움은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하여, 벌써부터 전사로서의 예기가 무뎌질까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왕궁 바로 옆에 거대한 군사기지가 있음을 보지 못했다면, 그리하여 「신성한 두 사원의 수호자」를 자칭하는 자들의 영화가 살얼음처럼 얄팍하고 위태로운 것임을 느끼지 못했다면, 저희는 지금쯤 생전 경험해본 적이 없었던 향락에 정신이 팔려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군의 주둔지가 도시를 짓누르는 듯한 풍경은 저희들로 하여금 머나먼 고향을 떠올리게 합니다. 두 땅 사이에 많은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왕궁 바로 옆에 있는 거대한 군사기지란 사우디아라비아 왕실근위대 「이맘 무함마드 빈 사우드 기계화 여단」의 주둔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저희는 내일 왕궁으로 들어갑니다. 저와 제 형제들은 철저하게 스승님의 가르침에 따라 협상에 임하겠습니다. 비록 스승님께서는 믿는 자가 아니시지만, 그래도 제자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에게 스승님을 보내주신 알라께서는 분명 스승님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주실 것입니다…….」
나는 군더더기가 많은 암호화 메일을 속독으로 읽고 삭제해버렸다. 지하드 스폰서십 계약의 진행과 결과는 샤히디의 보고보다는 동행한 내 부하들의 보고를 통해 파악하는 편이 더 상세하고 정확할 터였다.
마오쩌둥의 수급은 샤히디와 함께 사우디아라비아로 날아갔다. 그것은 공개된 참수 영상이 조작이 아니라는 증거로서, 그리고 열성적인 ‘팬덤’을 더욱 열광케 할 무대소품으로서 기능할 예정이었다.
‘어쩌면 어느 아랍 부호나 유력자의 소장품이 될 수도 있겠고.’
참수에 쓴 줄피카르 기병도와 방부처리된 빨갱이의 머리통은 특별한 후원자들에게 건네주기 적합한 선물이었다. 국가주석으로부터 테러리스트들을 잡아 죽이고 마오쩌둥의 유해를 되찾아오라는 명령을 받은 경감들에겐 조금 유감스러운 일이라 해야 할 것이다.
천안문 광장에서 테러가 터진 다음 날, 분노한 중국 국가주석은 국안부 핵심 관계자들의 목을 줄줄이 날려버렸다.
이는 내 거짓된 대자들 입장에선 인사적체가 단숨에 해소된 것이었다.
거대한 관료제의 피라미드 내에선, 올라갈 자리가 없어서 승진을 못하거나, 계급이 올라가도 보직은 그대로 유지되거나 하는 등의 적체가 아주 흔하게 발생한다.
내 가짜 대자들은 후자에 가까운 경우였다. 3급 경감을 달면서 비취인가 등급이 올라가고 여러 부수적 권한들도 생겼지만, 공산귀족으로서의 위상과는 별개로 공식적인 직함만큼은 계급에 비해 손색이 있었던 것. 구색을 맞추기 위해 신설된 직제들은 국안부의 주류에서 겉도는 감이 없잖아 있었다.
가오슈센을 정리하고 계파를 갈아타는 데 성공했다지만, 그것은 서로 다른 계파간의 갈등과 견제가 계파 내부에서의 권력투쟁으로 대체되었음을 의미했다. 국가주석의 총애를 다투는 사냥개들 사이의 경쟁.
만약 이 같은 인사적체가 없었으면 필시 내 가짜 대자들이 불벼락을 맞았을 것이다.
경감들에게 마오쩌둥의 수급과 몸통을 줄 순 없다. 그러나 그를 능가하는 다른 공적을 안겨주는 건 가능했다.
지난날 샤히디가 극도의 경의를 표했던 독립운동가들, 「동 투르키스탄 이슬람 당」의 전통 있는 위구르 투사들은 천안문 광장 테러가 터진 후 많은 후원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샤히디 그룹이 촉발한 긍정적인 낙수효과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샤히디 그룹의 명성을 이용해 후원을 구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샤히디의 눈에선 어두운 불꽃이 튀었다. 내게는 굉장히 마음에 드는 불꽃이었다.
샤히디는 이렇게 으르렁댔다.
「스승님께 가르침을 받은 것은 저와 제 형제들입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에 따라 침략자들을 징치하고 승리를 거둔 것도 저와 제 형제들입니다. 스승님의 지혜를 나눠받은 저희들만이 위구르의 독립을 성취할 길을 알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많은 시간과 자원을 무가치하게 낭비했고, 독립투쟁이라는 미명 하에 자아도취적인 우행을 되풀이하며 동포들에게 불필요한 고통만 안겨주었을 뿐인 자들. 그 어리석은 자들은 그들의 것이 아닌 명예로 이익을 취해선 안 됩니다.」
「저는 그들을 막아야겠습니다. 위구르 민족의 모든 힘이 올바른 길을 아는 단 한 명의 지도자 아래 모이도록 할 것입니다.」
「만약 끝까지 어리석음을 고집한다면…… 그들은 배제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제가 사용하는 모든 수단은 위구르 민족의 독립이라는 결과로 정당화되겠지요.」
나는 이 음습한 말들을 흡족하게 듣고서 짤막하게 대답해주었다.
이번에도 내가 당신을 도와주리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