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천안문 의거 (7)
나와 마주앉아 사과주스가 든 잔을 만지작대던 샤히디는 머뭇거린 끝에 이렇게 말했다.
“오마르 알 바시르. 당신은 내 기도를 들으신 알라께서 위구르 민족을 위해 보내주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으로 이어진 것은 나름 진정성이 묻어나는 사과였다.
“그동안 내가 당신에게 보였던 무례한 태도들을 사과하고 싶다. 나와 내 형제들은 줄곧 당신을 의심하고 경계해왔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비록 마음속에 의혹이 있다 할지라도, 도움을 주고 또 주었을 뿐인 사람에게 오직 심증만 가지고 그 의혹을 드러내는 건 그저 나와 내 동료들의 꼴사나운 나약함에 지나지 않았어.”
“신경 쓰지 마시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나약함이오. 내게 다른 이해관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고.”
적당히 받아주는 내 말에 샤히디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 사과해야 한다. 위구르의 자주독립은 누구나와 같은 나약함을 가지고서는 추구할 수 없을 과업이니까. 지난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는다면 나 자신을 새롭게 하기 위한 첫걸음조차 떼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메리옘을 언급하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궁금해졌다. 과연 저가 수용소에서 주도했던 마녀사냥에 대해서도 같은 자세를 보일 수 있을까 하고. 정말로 찔러볼 가치까지는 없는 사소한 궁금증이었다.
샤히디는 오른손을 심장 위에 얹고서 눈을 감으며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그리고, 늦었지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당신이 나와 내 형제들, 나아가 위구르 민족 전체에게 베풀어준 모든 것들에 대하여.”
“머리를 드시오. 사과를 받아들이리다.”
내가 사과를 받아주자, 느리게 자세를 바로잡은 샤히디는 숨을 깊이 들이쉬며 몸을 긴장시켰다. 나는 시선을 기울이며 물었다.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소?”
“……알 바시르. 나는 당신을 내 평생의 스승으로 삼고 싶다. 부디 허락해주겠는가?”
“스승?”
샤히디는 이제부터가 본론이라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건대, 당신이 내게 설파했던 투쟁의 방법론은 장차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길의 핵심을 관통하는 것이었다.”
“투쟁의 방법론이라면…… 그대가 나와 처음 대면했을 때 오간 대화를 말하는 거요?”
“그렇다. 식견이 짧고 보는 눈이 어두웠던 나는 당신의 가르침에 모멸감을 느꼈다. 존경하던 독립투사들의 투쟁과 희생이 한없이 작고 무의미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이 비참하고도 한심한 약자의 자위행위에 지나지 않았음을.”
이렇게 말하는 샤히디의 목소리엔 묘한 열기가 묻어났다.
“내세울 게 그것밖에 없기에, 작고 볼품없는 성취들을 애써 미화하고 신성시하는 정신적 자위행위……. 약자는 결코 자신이 처한 비극에 도취되어선 안 된다. 아무리 절망스러운 현실이라 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만 하는 것이다.”
말은 좋다. 허나 내가 보기에, 이 인간은 자기 손으로 아주 많은 빨갱이들을 죽여보고 나니 독립투사들의 싸움이 눈에 차지 않게 된 것에 불과했다. 다채로운 수사와 꾸밈이 붙기 이전의 본심은 ‘이젠 내가 그 독립투사들보다 윗줄에 있다.’쯤이 되지 않을는지.
스스로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겠지만.
샤히디의 말이 이어졌다.
“그것을 깨우쳐준 것만으로도, 당신은 나와 내 형제들에게 다시없을 큰 스승이라 해야 할 사람이다. 당신이 허락해준다면, 나는 당신을 스승으로 받들며 앞으로도 계속 가르침을 구하고 싶다.”
“앞으로도 계속, 이라.”
“제자가 스승의 지혜를 배우고 따르는 것은 누구에게도 부끄러울 게 없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여기서 핵심은 ‘배우고 따르는 데 부끄러울 게 없다.’는 부분이었다. 요컨대, 샤히디는 내게 변칙적인 형태의 충성서약을 제안하고 있는 것.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이만큼 긴장을 할 이유가 있나. 수용소에서조차 정치질을 했을 만큼 간교한 인간이.’
이슬람 문화권에서의 충성서약(바야/بَيْعَة)은 서약의 상대에게 반드시 합당한 종교적 자격이 있어야 성립한다. 즉 무슬림이 비 무슬림에게 행하는 충성서약은 이슬람 교리를 기준으로는 그 자체로 거의 배교행위에 가까운 것이다.
고로 샤히디가 나에 대해 종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면, 이 관계가 다른 지하디스트들에게 노출될 경우 무슬림으로서의 체면을 지킬 명분을 미리 갖춰둘 필요가 있었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샤히디는 자신의 리더십을 보강하기 위해서라도 나와 새로운 관계 설정을 해놔야 했다. 사실 더 중요한 건 이쪽일 터.
무슬림들이 이루는 신앙공동체엔 반드시 그 공동체의 예배를 주관하는 이맘(إمام)이 존재한다. 이맘은 그 역할로 말미암아 보통 사제로 번역되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의 평범한 신도에 지나지 않는다. 각자가 대등한 평신도들이 모여 새로운 공동체를 이룬다 치면, 신도들 사이에서 믿음의 깊이와 경전에 대한 지식, 무슬림 사회에서의 명망과 지위 등을 따져 누가 예배 절차를 진행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샤히디는 샤히디 그룹의 첫 번째 이맘이었다.
그러나 첫 번째가 반드시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는 법 같은 건 없다. 내가 구조한 위구르인들이 수니파와 시아파로 갈리고, 수니파 내에서 다시 각성 유무와 성향으로 패가 갈렸을 때, 샤히디는 운 좋게 적당한 마력장과 경전에 대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을 따름.
나는 새로운 권위의 원천이다.
천안문 광장에서의 승리가 오롯이 나에게서 나왔고, 샤히디 그룹이 가진 바 능력만으로는 명성에 걸맞은 활동을 유지할 수도 없으니, ‘오마르 알 바시르의 첫 번째 제자’라는 타이틀엔 다른 형제들을 납득시키기에 충분한 힘이 있을 것이다.
“알라의 전사가 무슬림이 아닌 사람을 스승으로 섬겨도 괜찮은 거요?”
내가 확인차 묻자, 샤히디는 망설임이 없어 미리 준비한 느낌이 짙은 대답을 내놓았다.
“나는 알라의 전사인 동시에 위구르 민족의 투사다. 알라의 전사는 무신론자를 투쟁의 스승으로 삼을 수 없지만, 위구르 민족의 투사는 누구에게든 겨레의 앞날을 위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 내가 가진 두 입장이 서로 상충하지 않는 동안에는.”
“내가 아직 마각을 감추고 있으면 어쩌려고?”
“우리 민족은 더 이상 빼앗길 것이 없다. 나와 내 형제들도 마찬가지지. 설령 그런 게 있다손 치더라도, 당신이 이미 준 것보다 더 가치 있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고서, 샤히디는 내 앞에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알라의 이름으로 맹세하겠다. 스승이 된 당신은 내게서 사람이 사람에게 받을 수 있는 최대의 존중과 존경을 받으리라고.”
이슬람의 율법은 사람이 사람에게 무릎을 꿇는 것을 금한다. 오직 충성서약의 대상이 되는 사람만이 예외일 뿐.
나는 나를 올려다보는 샤히디에게 까딱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좋소. 이제부터 그대는 내 제자요. 스승의 가르침을 성실하게 배우고 실천하는 현명한 제자가 되기를 바라겠소.”
오른손을 다시금 심장 위에 올리며, 샤히디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예의로 머리를 숙였다.
“절대로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스승님.”
“예를 차리는 건 그만하면 됐소. 일어나시오.”
나는 새로 거둔 제자를 원위치로 돌려놓고 향후의 일정을 논의했다.
당장의 일정은 이슬람 문화권의 국가들, 특히 아랍권을 집중적으로 순회하며 성전의 후원자가 되어줄 부호와 명사, 그리고 권력자들을 만나보는 것이다.
그들이 내어놓을 자금은 중요치 않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건 그들 자신이다. 후원자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내가 이슬람 세계에 영향력을 투사할 창구도 넓어지는 셈이니.
이쪽에 먼저 비밀스러운 만남을 요청해온 예비 후원자들 중엔 아랍 제국(諸國)의 유력한 왕족과 왕위계승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샤히디에게 그들의 동기를 헤아려보라고 요구했다. 스승이 제자에게 능동적인 사고를 주문하듯이.
“그대가 한번 생각해보시오. 그런 거물들이 정녕 순수한 동경과 호의만으로 시간을 내어 당신을 초대했을 것 같소?”
샤히디 그룹의 위구르인들은 해외를 전전하는 동안 전투 이외의 분야에서도 필요한 교육들을 이수했다. 그리고 샤히디는 그 모든 교육과정에서 항상 순위권의 성적을 기록했다. 남들보다 뒤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서는 이맘의 자리를 유지하기 어려우니까. 머리도 머리지만, 리더 자리에 대한 집착과 욕심이 한몫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잘하면 시세를 고려한 바른 답이 나올 것도 같았으나, 고민하던 샤히디는 조심스럽게 시선을 낮추었다.
“모르겠습니다. 모자란 제자에게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의자의 팔걸이를 톡톡 느린 박자로 두드리며 새롭게 물었다.
“지금 그들의 가장 큰 근심거리가 무엇일 거라고 보시오?”
“……유가 하락이 아니겠습니까?”
“반은 맞았소. 그것은 근심의 원인이지.”
세계 각지에서 각성능력자들의 힘을 에너지 공급망에 통합하는 사업이 성과를 거두기 시작함에 따라, 중동 국가들의 경제는 서서히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아직까진 그래도 화석연료의 수요가 많이 남아있다. 산업원료로서의 석유는 사실상 대체재가 없는 자원이기도 하고. 그러나 유가는 앞으로 장기간에 걸쳐 하강곡선을 그릴 게 분명하여, 중동 국가들 전반이 어두운 미래를 근심하는 중이었다.
“사람은 희망이 없을 때 둘 중 하나를 택하는 동물이오. 스스로 죽거나, 혹은 타인의 배를 갈라 제 배를 채우려 들거나. 그러므로 미래가 암담한 사회에선 반드시 사회의 질서와 공익을 해치는 이익집단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암담한 전망과 긴축재정에 짓눌린 중동 사회는 하루하루 불안과 소요를 더해가고 있다.
“사회지도층의 근심이로군요.”
“그렇소. 그대가 앞으로 성전을 이끄는 지도자로서 힘을 기울여야 할 비즈니스 모델이 바로 여기에 있소.”
눈을 깜박이던 샤히디가 말끝을 흐렸다.
“비즈니스 모델이라 하시면…….”
“지금 중동 국가들이 서구와 불편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이유는,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의 단합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반사회적 불만분자들의 주의를 바깥으로 돌리기 위함이오. 그러나 이건 일시적인 미봉책에 지나지 않지. 유럽을 상대로 정말 전쟁을 치를 순 없으니까.”
계속해서 서구 기독교 세계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다 보면, 언젠가는 그 증오가 국가지도자들을 겨냥한 화살로 돌아오게 되어있다. 저 사악한 이교도들에게 왜 더 강경한 태도를 취하지 않느냐고.
“그래서, 중동의 지배자들에겐 불순분자들을 걸러낼 다른 방편이 절실하오. 그대는 그런 수요를 공략하여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야 하는 것이지.”
“…….”
“혹시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를 들어봤소?”
“서구의 동화…… 아닙니까?”
“맞소. 그거요.”
대화가 여기에 이르자 샤히디의 눈엔 비로소 희미한 이해의 빛이 스쳤다. 나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그대가 목을 벤 공비(共匪) 수괴 마오쩌둥을 보시오. 그 교활한 빨갱이는 사상적 극단주의로 사회불안을 야기하던 홍위병들을 모조리 농촌에 처박아 해결한 전적이 있소. 지식인 계층과 노동자 농민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아름다운 명분을 내걸었기에, 홍위병들은 벅찬 마음으로 혁명을 노래하며 스스로 숙청의 웅덩이에 뛰어들었지.”
“저도 같은 일을 할 수 있겠군요.”
“그렇소. 지금 중동 사회에 불안을 자아내는 불순분자들은 백이면 백 알라의 영광을 노래하는 것들이오. 우두머리들의 속내엔 필시 사리사욕이 자리하고 있겠지만, 그들을 따르는 무리는 태반이 진심으로 종교적 열망에 도취되어 있소.”
이슬람 사회의 극단주의는 종교적 열망을 빼놓으면 성립 자체가 되지 않는다.
“현시점의 당신은 그 불순분자들이 기쁘게 숭배해마지 않을 성전 지도자요. 개별 집단의 우두머리들에게 충성서약을 받아내고 그들에게 명예와 물질적인 풍요를 제공하면, 그들은 지역사회의 선동가이자 모병관으로 전직하여 당신을 대신해 끊임없이 피리를 불어줄 거요.”
“저는 군자금과 함께 성전에 투신할 전사들을 공급받고, 중동 국가들은 사회 불안을 덜어내는 거래로군요. 그래서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덤으로, 사회에서 자발적으로 방출된 불순분자들은 죽든 살든 천국에 갈 권리를 얻겠지. 모두에게 이롭기만 한 사업이라 하겠소.”
국가지도자들은 이 유익한 사업에 기꺼이 인력과 자금을 댈 것이다. 얼마를 들이든, 정상적인 방법으로 사회를 안정시키는 데 들어갈 예산보다는 압도적으로 저렴할 게 분명하니까. 이런 식으로 꾸준히 압력을 빼준다면 사회 내부에서 불만이 폭발할 가능성이 크게 낮아진다.
국가권력의 지원을 받는 병력조달 시스템의 완성.
종교적 열의는 험난한 현실을 인내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피리 연주에 홀려 험지에 내팽개쳐진 전사들은, 그때부터는 신앙으로 자신을 속이는 수밖에 없을 터였다. 일단 성전에 뛰어든 이상 열악한 처우는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고, 거기에 실망해 돌아가려 든다면 신앙의 배신자로서 처단당해도 할 말이 없는 죄악이다.
이걸 요즘 젊은 세대의 표현으로는 ‘열정 페이’라고 하던가?
종교는 진실로 인민의 아편이다.
사실상 신앙의 형제들을 상품처럼 거래하는 계획이었으되, 샤히디는 일말의 반감도 없이 감탄할 따름이었다.
“스승님의 깊은 지혜에 경의를 표합니다.”
“자기 자신을 팔아넘기는 전사들을 믿음으로 옭아매고 약속으로 미치게 만드시오. 그런 쪽으로 전문성이 있는 내 참모들이 도움을 줄 거요.”
이제 샤히디 그룹이 독립적인 활동을 개시한다 해도, 그 곁에는 언제나 내가 감독역으로 파견한 부하들이 있을 것이었다. 이는 샤히디 그룹의 구성원들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인 사항.
무수히 팔려올 이슬람 전사들은 런던에 갈아 넣을 군세의 큰 축이다.
나는 샤히디의 눈을 들여다보며 담담하게 말을 끝맺었다.
“결과는 수단을 정당화한다. 이것이야말로 그대가 민족지도자로서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 할 한마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