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천안문 의거 (6)
「어제, 우리 동 투르키스탄의 전사들은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에서 침략자들의 군대를 크게 무너뜨렸다. 억압과 압제의 상징인 붉은 깃발 아래, 1만 5천의 장교와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고 눈물을 흘리며 삭은 갈대들처럼 무력하게 쓰러져 죽어갔지. 하늘에서는 항공기들이 떨어지고 땅에서는 탄도탄을 적재한 차량들이 불타올랐다.」
「그리하여 압제자 중공의 심장부는 붉은 피로 물들고 검은 연기에 가려진 지옥도로 화하였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뜻 아닌 것 없으니, 이는 불의한 공산주의자들이 우리 믿는 자들의 땅을 짓밟고 갖은 악행을 자행해온 응보를 받은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진실로 위대하시다. 응보의 주관자이시며 인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위구르 민족의 탄식을 들으시고서 나와 내 형제들을 당신의 철퇴로 삼아 내리치셨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강한 힘을 담아 내리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백성이자 그분의 철퇴인 우리에겐 조금의 깨어짐도 없었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이것이 은총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침략자 공산당은 들어라. 너희가 받을 응보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분노하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몇 번이고 다시 들어 내리치시리라. 우리가 다 깨어져 없어진다면 또 다른 전사들이 나타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것이다. 믿음의 백성들인 위구르 민족의 독립의지는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맑은 샘과 같은 까닭이다.」
「그러므로 너희 압제자들은 스스로 압제를 그치고 물러나기 전까지 끝없는 고통과 공포를 앓을 것이다. 너희가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고통도 공포도 너희가 선택한 너희의 악업으로 빚어진 것인데.」
「우리의 의거에 휘말린 민간인들의 죽음엔 깊은 유감을 표한다. 우리는 오직 군대만을 공격하였지만 부수적인 피해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찍이 경고하지 않았는가. “내 목소리를 듣는 중국의 인민들은 중국의 군대가 머물거나 행진하는 장소를 멀리하기를 바란다.”라고. 내가 경고를 남기고서부터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았고, 그동안 줄곧 여러 공격들이 이어졌음에도 많은 민간인들이 군대의 행진을 보러 나온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우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때문에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공격을 망설였다. 하나, 우리의 공격으로 발생할 부수적 피해보다 공산당의 압제가 빚어내는 무고한 희생들이 훨씬 더 크고 많으니 어찌 우리가 의거를 중단할 수 있었겠는가.」
내 부하들이 작성한 대본은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흐름을 틀었다. 서구세계가 공감할 영역을 넓히는 동시에 흑해자당을 엮어 넣는 흐름으로.
「우리가 말하는 무고한 희생은 비단 위구르 민족의 희생만을 뜻하지 않는다. 중국 공산당의 압제가 어디 우리 민족의 강역에만 있던가? 아니다. 압제는 티베트에도 있고 홍콩에도 있으며 자유를 잃고 노예로 전락한 수많은 중국인들의 머리 위에도 있다.」
「다만 노예 신세인 중국인들의 대다수가 전체주의와 국가주의의 마약에 취해 자신들의 처지를 깨닫지도 못하고 있을 뿐.」
「바로 그렇기에, 나와 내 형제들은 이번 거사를 계획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조력을 얻을 수 있었다. 89년의 슬픔을 기억하고 그때 스러져간 생령들의 정신을 계승하는 의로운 자들의 도움이었지.」
89년의 슬픔이란 당연히 천안문 사태를 의미했다.
「1989년의 초여름, 그 뜨겁고도 찬란하며 슬픔이 가득했던 계절에, 천안문 광장에서 인민의 자유를 부르짖었던 자들 가운데엔 위구르 사람 위르케시 될레트도 있었다. 그렇다. 그때의 천안문 광장엔 민족을 초월한 유대가 존재했던 것이다.」
「그 유대가 오늘날에 이르러 또 다른 협력을 싹틔우는 씨앗이 되었으니, 알라께서 주재하시는 인과의 오묘함이 이와 같다.」
「이제부터 너희가 볼 것은 우리를 도운 자들이 우리에게 특별히 요청하고 우리가 숙고하여 승낙한 바다.」
여기까지 말한 샤히디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호를 그리며 걸었다. 화면은 샤히디의 움직임을 따라 옆으로 미끄러졌다. 창문 하나 없는 방의 풍경이 샤히디의 걸음과 같은 속도로 흘러 지나갔다.
이제껏 카메라가 비추지 않던 사각지대엔 마오쩌둥의 유해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포승으로 팔다리를 단단히 묶어 자세를 만들고, 등 쪽으로 맺은 매듭으로부터 두 갈래로 줄을 길게 빼어 사람이 붙잡을 수 있도록 했다. 유해가 앞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한 조치였다.
샤히디는 복면을 쓴 동료가 쿠션에 올려 내온 칼을 집어 들었다.
스릉-
완만하게 휘어진 곡도가 칼집에서 빠져나온다. 칼끝이 작게 두 갈래로 갈라져있는 줄피카르(Zulfikar) 기병도였다.
검신엔 「줄피카르 이외엔 검이 없고 알리 이외엔 영웅이 없다.」는 문구를 고전 아랍어로 음각해놓았다. 손잡이는 하얗고, 전체적인 형상은 미국 해병대 장교들이 예도로 쓰는 맘루크 검을 닮아있었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일곱 검 중 하나를 형식적으로나마 모사한 이 칼의 상징성은 전 세계의 무슬림들에게 이 싸움이 성전이라는 사실을 되새기도록 할 것이었다.
칼을 쥔 샤히디는 마오쩌둥 옆에 사형집행인처럼 자리했다.
「생김새를 보면 알겠지만, 여기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은 우리가 천안문 광장의 영묘에서 꺼내온 마오쩌둥의 유해다. 지금부터 나는 조력자들의 요청에 따라 이 우상의 참수식을 진행하고자 한다.」
포승줄을 잡고 있던 두 사람이 손을 살짝 당기자, 비스듬히 그늘져있던 마오쩌둥의 추한 상판대기가 확실하게 드러났다.
「처음 요청을 받았을 때 우리는 망설였다. 이슬람의 율법은 시체훼손을 금하니까.」
「그러나 묻노니, 여기 있는 이 역사의 죄인이 진정으로 죽었던 적이 있는가? 아니다. 이자의 망령은 사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압제자들의 정신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평범한 시체라고 할 수 없다. 여전히 생명이 남아있는 사악한 우상이지.」
「그래서 우리는 요청을 받아들였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상을 파괴하고, 인민의 이름으로 죄인을 처단하기로 한 것이다. 앞쪽은 우리의 의지요 뒤쪽은 우리가 대행하는 조력자들의 결의이다.」
「이제 죄인의 목을 치기 전에, 마지막으로 의로운 조력자들의 말을 전한다.」
샤히디는 칼을 높이 들어 올리며 중국어로 외쳤다.
「“인민은 잊지 않는다! 1989년의 천안문 광장을 기억하라! 혁명무죄, 조반유리!”」
서늘한 금속광이 부채꼴로 번뜩인다. 썩지 않는 우상의 목은 단칼에 잘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쿵 하는 둔중한 울림. 구르던 머리는 얼마 못 가 정지했다. 잘린 단면에선 피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이는 인간으로 의태하고 있던 괴물의 단면 같은 인상을 주었다.
이 영상을 의거 다음 날 공개할 수 있었던 것은, 간판인 샤히디가 이런 일에 제법 익숙해진 덕분이었다.
처음 상하이 군항을 공격할 때만 해도, 샤히디는 프롬프터(Teleprompter)로 띄워주는 대본조차 책 읽는 톤으로 읽어버리는 미숙한 배우였다. 때문에 첫 영상을 완성하는 데엔 꼬박 하루가 다 소모되었다.
그러나 배우의 기량은 베이다이허 테러와 다이샨 공군기지 테러를 거치면서 빠르게 상승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8분 남짓한 원 테이크 성명 영상을 제작하는 데 두어 시간의 연습과 리허설이면 충분할 정도로.
그래 봐야 프롬프터에 뜨는 글줄을 읽는 건 여전하니 연기를 업으로 삼는 자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동종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가히 독보적인 수준이라 할 만했다.
이슬람 무장단체의 수괴들이 그들의 홍보 전략에서 미디어 감수성의 현대화를 추구하기 시작한 건 제법 오래된 일이다. 허나 그 결과로 나오는 결과물들은 시간이 흘러도 일정 선 이상의 질적 발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투입하는 예산에 한계가 있을뿐더러, 전문인력을 육성하고 유지할 기반 또한 열악한 까닭이었다.
요컨대, 이슬람 세계는 내 부하들이 만들어 뿌리는 영상들만큼 현대적이고 세련된 감각의 지하드 컨텐츠를 접한 적이 없었다.
이슬람 세계의 반응은 광란 그 자체였다. 서구권의 언론들이 천안문 광장 테러 사건을 보도할 때 이슬람 세계의 열광을 빼놓지 않을 정도로. 영국 뉴스 채널은 성명 영상 속 샤히디의 모습을 방송에 내보내면서 이런 헤드라인을 달아놓았다.
「알림 샤히디 - 도덕적 테러리즘이 탄생시킨 슈퍼스타」
이슬람 국가들은 공식적으로는 테러를 규탄하고 중국에 위로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이건 국익을 고려한 정부 차원의 입장표명일 뿐. 언론과 대중은 테러 현장의 영상이 공개될 때마다 새로운 온도로 뜨겁게 끓어올랐다.
이슬람 국가들- 특히 아랍권 국가들의 주요 언론이라는 게 대부분 관제언론임을 고려하면, 실은 국가원수들도 위구르인들의 의거에 지극히 호의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랍권의 중국 대사들은 언론의 독립성을 입에 담는 아랍 군주들을 어이없어했다.
샤히디의 SNS 계정들에 붙은 팔로워의 수는 합계 1억 2천만을 넘어섰다. 우리가 이용하는 소셜 플랫폼들이 비주류에 속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굉장히 큰 증가폭이었다. 1억 2천만 내에서 순수한 호감을 품은 집단의 비율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이나, 단순히 흥미본위로 팔로워가 된 자들이라도 일단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만큼 프로파간다의 투사범위가 넓어졌다는 뜻이니까.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실소유한 SNS 플랫폼의 본인 계정에 이런 멘션을 올렸다.
「가장 자유롭고 가장 미국적인 SNS 서비스의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난 것 같다!」
샤히디의 계정이 활동을 개시하기 전까지, 미국 대통령이 만든 SNS는 그의 열성적인 지지자들이나 이용하는 한심한 서비스였다. 평범한 지지자들은 굳이 사용하는 SNS를 바꿔가면서까지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언론에선 이 플랫폼을 두고 “봇(Bot)들에게 점령당한 보수적인 유령마을 같다.”고 평했을 정도.
그랬던 것이 채 한 달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세계적으로 3천만의 가입자를 새롭게 얻었고, 천안문 광장 테러를 기점으로 하루 만에 다시 수백만을 더 얻었으니, 원래부터 제정신이 아니었던 대통령 입장에선 뜻밖의 홍보 효과에 즐거움을 느낄 법도 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비열하고 편향적인 소셜 미디어 기업들”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빛이 보이고 있는 셈이었다. 새로 생긴 가입자들 태반이 외국인들이며, 그 외국인들의 과반이 무슬림과 무슬리마라는 사실은 중요치 않았다.
테러를 좋은 일이라고 표현한 데 대해 중국 대사관이 공식 SNS 계정으로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자, 미국 대통령은 다시금 능청스러운 멘션을 남겼다.
「테러? 또 그런 일이 있었나? 뉴스를 안 봐서 몰랐다. 미안하다!」
「요즘은 하루에도 너무나 많은 사건들이 일어난다! 유럽에서, 아랍에서, 그리고 아프리카와 중남미에서! 이런 와중에 극동 변방의 소식까지 내가 다 알고 있을 수는 없잖은가? 나는 중국이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이다!」
「1만 5천 명이 죽거나 다쳤다고? 중국 인구가 14억을 넘지 않나? 인구 비례로 따지면 프랑스에서만 올 들어 천 명 이상이 테러와 종교범죄에 희생당한 게 더 충격적인 일이다! 우리는 유럽의 종교 갈등 문제에 더 집중해야 한다! 유럽과 이슬람권의 갈등이 지금보다 심해지면 안 된다! 그것은 미국의 경제에 해롭다!」
미국 대통령은 이미 예전에 중국 국가주석을 극동 변방 빨갱이 집단의 우두머리라고 부른 전적이 있는 인간이다. 다시금 변방 취급을 받은 중국은 모욕감으로 들끓었다.
중국 대사관의 항의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의 계정이 샤히디의 계정을 팔로우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 항의를 받은 미국 대통령은 가볍게 응대했다.
「내가 핸드폰을 책상 위에 두고 잠깐 자리를 비웠는데, 그새 고양이가 올라가서 외교적 결례를 저질렀던 것 같다. 우리 미국의 고양이들은 대체로 공산주의를 싫어한다. 찾아서 혼내줄 테니 진정해라. 화를 내는 건 건강에 매우 좋지 않다. 한국의 주술사들도 화는 몸을 망치는 나쁜 불의 기운이라고 하더라.」
백악관에는 고양이가 없다. 작금의 미 대통령은 퍼스트 펫(First Pet)의 전통을 깬 최초의 대통령으로 유명했다. 대통령 계정의 팔로잉은 시간이 지나도 취소되지 않았다.
백악관 미치광이의 3단 능욕은 이번 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한층 더 강화해주는 장작이었다. 이로써 알림 샤히디는 「미국 대통령을 팔로워로 거느린 최초의 테러리스트」라는 초현실적인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샤히디는 자신에게 집중되는 이 모든 관심들을 도착적으로 탐닉했다.
샤히디가 나와의 독대를 청한 것은 중동의 여러 나라들을 거쳐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날 일정이 잡힌 다음의 일이었다. 내겐 더 이상 주도적으로 중국을 공격할 계획이 없었고, 샤히디 그룹은 이제 중동과 중앙아시아 지역을 기반으로 자신의 세력을 일궈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