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74화 (374/561)

#39. 천안문 의거 (5)

먼저 행해진 다른 의거들과 달리, 천안문 의거에 대한 샤히디 그룹의 성명발표는 사건 직후 곧바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앞선 의거들은 발표 영상을 사전에 제작해놓고 시간에 맞춰 공개할 수 있었지만, 이번엔 사정이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그 달라진 사정이란, 마오쩌둥의 부관참시를 영상에 포함시키기로 한 결정이었다.

당초 나는 마오쩌둥의 시신까지는 건드릴 마음이 없었다. 그것은 실질적인 이득이 없는 가필(加筆)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시신을 꺼내어 훼손하는 행위는 거의 모든 주요 문화권에서 질 나쁜 야만으로 간주된다. 이는 곧 지금까지 구축해온 샤히디 그룹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색을 덧칠하는 짓이었다. 포로 참수를 즐겨 행하는 극단주의 이슬람 테러리스트 그룹들과 비슷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아랍권의 독재자들에게도 알게 모르게 부정적인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었다. 국민들에게 자신을 숭배할 것을 요구하는 독재자들은, 그러한 숭배의 완성판에 가해지는 모욕을 좋게 느끼기가 어려울 테니까. 죽은 마오쩌둥에게 감정이입을 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이런 내 생각을 바꾼 건 거사를 일주일 앞두고 수연 녀석이 올린 조언이었다.

「마오쩌둥의 목을 치십시오.」

내가 이유를 묻자, 수연은 차분한 음성으로 이익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죽은 독재자의 목을 쳐서 살아있는 독재자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습니다. 반역자들에 대한 증오로 중국 국민들을 단결케 하고, 이번 프로젝트의 결과로 발생할 혼란 속에서 흑해자당이 과도하게 세력을 확장하는 일을 예방하는 것이지요.」

“흑해자당에게 뒤집어씌워라?”

「정확히는 흑해자당의 한 축을 이루는 마오주의자들에게 혐의가 돌아가야 합니다. 그들 중엔 마오쩌둥의 이념으로 마오쩌둥을 심판해야 한다고 믿는 극단주의자들이 포함되어 있잖습니까. 지금 그들 내부에서도 투쟁의 방향성을 놓고 파벌이 갈리고 있는 만큼, 이 한 방이 대분열을 일으키는 쐐기가 될지도 모릅니다.」

믿음이나 이념으로 뭉친 집단 내에선 반드시 극단주의자들이 나타난다. 수연이 언급한 극단주의 마오이스트(Maoist)들의 계보는 과거 문화대혁명 시기의 홍위병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

당시 날로 과격함을 더해가던 홍위병들은 사상의 아버지인 마오쩌둥까지 고발하기에 이르렀고, 위험을 감지한 마오쩌둥은 공산당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어 재앙의 붉은 쥐 떼들을 궁벽한 농촌으로 처박아버렸다. 학생과 지식인 계층의 봉사에 의한 농촌 현대화를 명분 삼아서.

그때부터 중화제국의 식민지는 거의 대부분이 고독의 도가니로 전락했다.

아무런 준비도, 지원도 없이 맨몸으로 벽지에 던져진 홍위병들은 살기 위해서라도 농민들을 착취하고 약탈하는 수밖에 없었고, 또 서로가 서로의 가진 것을 빼앗는 수밖에 없었다. 농민들 또한 도시에서 내려온 학생들을 죽이거나 노예로 부리는 일이 잦았다.

이 시기의 농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얼마나 많은 강간이 행해졌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일개 분파로나마 마오쩌둥을 증오하는 마오쩌둥주의자들이 있다는 건 조금도 이상히 여길 일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있어 마오쩌둥은 자신이 창시한 혁명이론을 스스로 배신한 권력의 망자다.

「혁명무죄, 조반유리.」

모든 혁명엔 죄가 없고(革命無罪), 모든 반란엔 이유가 있다(造反有理). 문화대혁명과 홍위병을 상징한다고 해도 무방할 경구.

이 말을 주워섬기며 죽은 마오쩌둥의 목을 친다면 괜찮은 구도가 연출될 것 같았다. 중공의 고위 귀족들은 뇌리에서 홍위병들의 망령이 스멀스멀 되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될 터였다.

‘그러고 보면 현 국가주석도 그때 농촌에서 토굴 생활을 했던 놈인데.’

산시성 산골짜기의 토굴에 7년이나 처박혀있었던 시○핑은 홍위병의 폐해를 몸으로 겪어봐서 아는 인간이다. 그 경험으로부터 학습한 마오쩌둥의 권력유지기술을 발전시켜 새 시대의 홍위병을 육성하는 데 써먹고 있기도 하고.

나는 생각했다. 이건 먹히겠구나, 라고.

수연이 이어서 말했다.

「기왕 현장에 배후중상의 증거물들을 남기기로 하셨으니, 거기에 마오쩌둥의 부관참시를 더하면 현 주석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출구전략이 주어지는 셈입니다. 우리가 이슬람 세계에서의 명성은 명성대로 챙기면서 중국이 받을 타격은 적정선으로 줄이는 간단한 한 수지요.」

배후중상의 증거물이란 베이징에 버려두고 온 대공미사일 발사관과 미사용 전차포탄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찍힌 탄약비차편호(弹药批次编号/LOT 번호)를 역추적하면 흑해자당에 닿게 되어있는.

배후로부터의 중상은 예로부터 효용이 입증된 출구전략이다. 나치에게 공산주의자들과 유대인이 있었듯이, 중국 공산당에게는 흑해자당이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시체의 목을 치고 말 몇 마디 더하는 게 전부다. 수연의 말마따나, 이만큼 간단하고 경제적인 수를 찾기도 어려울 터였다. 내가 앞서 고려했던 사소한 부작용을 감수하기만 한다면.

“세 경감들에 대한 투자에서 불안정성을 덜어내는 조치로서도 유효하겠군.”

「그렇습니다.」

“이 건으로 흑해자당이 완전히 쪼개질 확률은 얼마나 된다고 보나?”

「현재로서는 다소 부정확한 예측밖에 할 수 없습니다만-」

“괜찮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너의 식견과 안목을 믿는다.”

「……적어도 절반 이상은 된다고 봅니다.」

“꽤 높게 보는구나.”

「그들의 상황이 상황이니까요.」

수연의 말처럼, 흑해자당은 이미 자체적으로 분열의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두고 장강수로를 약탈하며 유리한 환경에서의 방어전을 치르기로 한 것까진 좋았는데, 시간이 흘러도 도무지 방어전 이상으로 나아가지를 못하니, 지지부진한 혁명과업의 그늘에서 필연적인 불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초기의 열정이 사그라지고 나면 물과 기름 꼴이 나는 게 자연스러운 출신성분들이지.’

최소한의 정규교육조차 받은 자가 드물고, 뚜렷한 거처도 없이 일용직 노동자로서 하루하루 닳아가는 게 삶의 전부였던 농민공들. 그리고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인구로서 범죄와 가까운 생활을 했던 흑해자들.

흑해자당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이 저단인구(低端人口/하류인생)들이 대학물까지 먹은 엘리트 빨갱이들과 쉽게 섞이기는 어려운 법이다.

물론 진짜배기 엘리트 빨갱이들은 바보가 아니므로, 그동안 나름대로 의식화 교육과 혁명정신 주입에 힘써왔을 것이다. 그들이 광저우에서도 그러하였듯이.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농촌에 해방구를 건설하면서 처음으로 맛본 권력의 단맛. 그리고 산적질과 수적질로 얻는 물질적인 부의 차등적 분배. 이것들은 흑해자당의 하류인생들을 타락시키고도 남음이 있는 달콤함이다.

그들은 자문하고 있겠지.

‘내가 왜 굳이 힘들고 위험한 혁명과업에 매달려야 한단 말인가. 지금 이 상태만 유지해도 충분히 행복할 것 같은데. 혁명 따윈 그냥 입으로만 주워섬기며 지금의 생활에 안주하면 안 될 이유가 있나?’라고.

그렇기에 흑해자당의 정체(停滯)와 불화는 필연이었다. 여기에 시너지를 더하는 것이 생존을 위해 지리적으로 분산되어있는 무게중심들이었고.

나는 이 통화에서 한 가지를 더 확인했다.

“파슈툰 기술자들의 철수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 중입니다.」

일전에 북한 빨갱이들이 일으켰던 불미스러운 사건 이후로도, 고하르 라왈(Gohar Rawal)을 위시한 기술자들 다수는 여전히 흑해자당과 함께하며 계약을 이행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흑해자당 내에서 파슈툰 기술자들이 받는 대우는 처음만큼 좋지 못했다. 기술이전이 예상보다 빠른 성과를 거두면서, 이제 파슈툰 기술자들의 도움 없이도 흑해자당 스스로 무기제조라인을 돌릴 수 있게 된 탓이었다.

골수 마오이스트 빨갱이들은 중국이 대장간 망치질로 제트기를 복제하던 시절을 자랑스럽게 기억하는 것들이다.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마인드가 한국의 꼰대들보다 더 강하게 박혀있는 고로, 기술이전이 조기에 결실을 본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그러면 남은 건 토사구팽일 수밖에.’

중국 공산당이 천인계획으로 빼낸 해외 기술자들을 알맹이만 빼먹고 내다버리듯이, 마오이스트 빨갱이들 또한 단물이 빠진 기술자들에게 계약의 조기종료를 통보한 상태였다. 이미 대가를 지급한 만큼의 기한 동안만 더 일을 하고 떠나라고.

만약 파슈툰 기술자들이 무방비한 상태였다면 전부 붙잡아 노예로 부릴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파슈툰 기술자들은 기술자인 동시에 지하드 전사인 자들.

이들은 불온한 기미를 느끼자마자 몸에 폭탄을 둘둘 감고 밤에는 불침번을 세우며 만약을 대비했다. 흑해자당에게는 북한 빨갱이들이 동료 기술자들을 납치한 일을 거론하며 “포로가 되느니 전사답게 산화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므로, 지은 죄가 있는 흑해자당은 기술자들의 폭탄조끼 착용에 항의하지 못했다.

이러한 대비는 적어도 계약의 종료일자까지는 안전을 보장해주는 것이었다. 단 한 푼도 손해를 보기 싫은 마오이스트 빨갱이들로서는 알라의 이름으로 계약을 준수하는 기술자들을 서둘러 묻어버릴 이유가 없었다.

기술자들에겐 다행스럽게도, 그들이 머무르는 곳은 대개 장강수로에서 멀지 않은 거점들이었다. 그래야 수로에서 약탈한 원자재를 운반해오기 편하고, 무기와 탄약을 전방으로 추진해주기도 편하니까.

즉, 우리가 꺼내오기에도 편한 위치에 있는 셈.

“해당 계획은 계속해서 너와 미주에게 일임하겠다. 조금 더 수고해다오.”

「예.」

“내 힘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요청하고.”

「알겠습니다.」

“일이 바쁘더라도 식사는 제대로 챙겨먹어라. 네 아래에 있는 녀석들에게 듣자니 요즘 끼니를 너무 간편하게 때우는 것 같던데. 음식은 결코 영양이 전부가 아니야. 내게는 항상 너에게 맡긴 일보다 네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예. 형님께서도 수면시간에 조금 더 신경을 써주십시오. 언제나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래, 알았다.”

이게 천안문 광장 의거로부터 이레 전, 오늘을 기준으로는 여드레 전에 오갔던 대화였다.

그리고 오늘. 샤히디가 발표할 성명은 이번에도 내 부하들의 첨삭을 받았다. 말이 첨삭이지, 9할 이상은 내 부하들과 메리옘이 작성한다고 봐도 무방했다. 샤히디가 의견을 제시할 순 있지만, 그 의견은 타당성을 따져 선택적으로 반영될 따름이었다.

그래서 샤히디는 성명을 발표할 때마다 못내 떨떠름한 기색이었으되, 이번만큼은 그런 기색을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스스로는 어떠한 의견도 내지 않고, 오직 나와 내 부하들의 뜻에 따르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면서.

무슬림들의 하루는 일출이 아니라 일몰을 기준으로 시작된다. 그렇기에, 완성된 성명의 업로드는 성지 메카의 일몰에 맞춰 이루어졌다. 의거 당시에 촬영된 영상들 역시 이때쯤 편집이 완료되어 함께 인터넷에 올라갔다.

영상 속의 샤히디는 정갈하게 옷을 입고 차분하게 경전을 낭독하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너희는 하나님의 대의 아래에서 침략자들에게 맞서 싸우라. 그리고 절대로 침략을 저지르지 마라. 하나님께서는 진실로 침략자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분이시다. 침략자들과 조우하는 곳마다 그들을 죽여 없애고, 침략자들이 너희를 쫓아낸 땅에서 그들을 몰아내라.」

도수 없는 안경을 쓴 채 책상 앞에 앉은 샤히디의 모습은 전사라기보다는 학자에 더 가깝게 연출되었다.

「보라. 하나님께서는 관대하시며 또한 은혜를 베푸는 분이시니라. 너희는 너희의 땅에서 더 이상 압제가 없고 모든 예배가 하나님께만 바쳐질 때까지 싸우라. 그러나 적들이 싸움을 그치려 하면, 죄가 있는 자들을 제외한 나머지에게서는 적대감을 거두라.」

「그들이 너희를 멀리하고 너희와 전쟁을 하지 않고 너희에게 평화를 주려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너희에게 그들과 싸울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니라.」

「만약 그들이 너희를 멀리하지 아니하며 너희에게 화평을 베풀지 아니하며 그릇된 손길을 그치지 아니하거든 어디에서든지 그들을 잡아 죽이라. 하나님께서는 너희에게 명확한 허락을 내려주셨도다.」

이상은 메리옘이 꾸란의 두 번째 장(수라 알 바카라)에서 주의 깊게 선별한 경구들이었다. 침략자에 저항하는 독립투사이자 알라의 뜻에 따르는 지하디스트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는 동시에, 무슬림이 아닌 청중들에게도 호소력을 발휘할 내용들.

자막은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의 주요 언어를 비롯해 표준 아랍어와 그 방언들(암미야)에 이르기까지 도합 24종이 준비되었다.

가만히 경전을 덮은 샤히디는 두 손을 모아놓고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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