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천안문 의거 (4)
멈춰있던 중국 중앙 텔레비전 채널의 화면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샤히디 그룹으로 위장한 내 부하들이 방치되어있던 카메라를 확보한 것이다.
움직이는 화면은 천안문 광장과 중앙대로의 참상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었다. 카메라의 위치로 미사일이 날아올 위험을 고려하여 시간을 길게 잡지는 않았으되, 아직까지 TV 앞에 앉아있는 이들에게 충격을 주는 데엔 이삼십 초 남짓이면 거스름돈이 남았다.
‘과연 몇 명이나 보고 있으려나.’
위성으로 내려다보는 베이징의 주요 도로들은 도시를 빠져나가려는 시민들의 탈출행렬로 인해 총체적인 마비 상태에 빠져있었다. 중국 공산당이 하향평준화해놓은 중국인들의 민도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혼란을 키우는 좋은 양분이 되어주었다.
4환로(四环路) 안쪽의 사거리들은 차량 통행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 극심한 정체는 도로를 경유한 군 병력 접근의 가능성을 말소했다.
공포는 전염된다. 이제 1만구 이상의 시체들이 널린 지옥도가 전파를 탔으니, 도시의 혼돈은 한층 더 심해질 터. 베이징의 인구가 2천만에 달하므로, 내가 위구르인들에게 약속했던 “백만 인의 공포”는 한참이나 초과달성을 이룬 셈이었다.
「우우우우웅-」
중국군의 주력전차(99식)가 움직이며 발하는 육중한 기동음. 방송국 카메라의 초점이 광장으로 진입하는 전차에 맞춰졌다. 내 부하들이 약간의 탄약을 채워 탑승한 전차는 표준적인 이동속도를 유지하며 국기게양대와 인민영웅기념비 사이로 들어섰다. 최대속도를 내지 않는 건 이 장면을 접할 모든 이들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함이었다.
전차 차체의 후방 안테나엔 동 투르키스탄 제2공화국의 국기가 달려있었다. 하늘색 바탕에 백색으로 수놓인 초승달 안의 별. 이 깃발은 위구르 민족의 정체성과 이슬람의 정체성을 동시에 드러냈다.
시체들을 으깨며 무한궤도를 굴리던 전차는 인민대회당을 정면으로 마주보는 자리에서 정지했다. 방송국 카메라의 사각지대에선 관측드론 세 대가 날아다니며 여러 각도에서의 영상을 고해상도로 담아냈다.
「위이잉-」
포탑이 회전하고 주포가 올라간다. 조준하는 것은 인민대회당 정면에 걸린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장(中华人民共和国国徽). 금빛의 톱니바퀴는 산업노동자들을, 좌우로 원을 그리는 밀과 쌀의 낱알들은 농업노동자들을, 천안문 문양 위의 크고 작은 다섯 별은 공산당의 영도를 따르는 인민들의 단결을 상징한다.
전차가 인민대회당을 조준하는 구도는 93년 러시아 헌정위기의 한 장면, 의회포격사건(Расстрел Белого дома)을 꼭 닮아있는 것이었다. 일전에 경태가 언급했던 ‘소련 붕괴 이후의 혼란상’이 바로 이것.
러시아 헌정위기는 병신 같은 알코올중독자가 신생 러시아의 민주주의를 장례지낸 사건이라, 그 의의를 따진다면 사실 지금 같은 상황에 끌고 오긴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나.
‘프로파간다는 어떻게든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게 첫 번째란 말이지.’
대개의 사람들에게 이성은 매양 감성의 시종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머리로 의의를 따지기 전에 가슴으로 먼저 느끼는 충격 쪽이었다. 일단 감성이 경도되고 나면, 이성은 그 감성을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기 마련.
그럴듯한 해몽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 알아서 갖다 붙여줄 것이다.
「그림 좋고……. 오케이, 쏴!」
나를 대리해 상황을 통제하는 경태의 명령. 전차 주포의 포구에서 밝은 주홍빛 섬광이 번뜩이고, 커다랗게 걸려있던 국장이 고폭탄의 폭발에 박살났다. 발포에 따른 충격파가 투르키스탄 공화국의 깃발을 세차게 한 번 흔들고 지나간다.
옛 소련의 기술을 베끼고 발전시킨 자동장전장치는 신속한 재장전을 가능케 했다. 내 부하들은 공축기관총 및 대공기관총 소사를 병행하며 아홉 발의 후속탄을 추가로 때려 박았다. 묵직한 포성이 울릴 때마다 폭발이 일고 콘크리트와 유리 조각이 비산했다.
인민대회당 본관의 정면엔 유리창이 많아 부수는 맛이 좋았다. 예광탄 섞인 기관총 사격이 시각적인 화려함을 더했다. 연달아 고폭탄이 작렬한 내부에선 운 좋게도 불이 번지기 시작했다. 바닥에 깔린 융단은 불씨가 몸을 불리기에 좋은 소재였다.
도로가 꽉 막혔으니 공안소방부대가 제때 도착하긴 글렀다. 중국 공산당의 상징 중 하나로 자리매김해온 랜드마크는 전소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석조건물인 만큼 뼈대는 남겠지만, 적어도 이듬해의 전국인민대표회의는 다른 장소를 알아봐야 할 것이다.
부하들은 자동장전장치에 의도적으로 기능 고장을 일으킨 후, ‘쓰지 못한’ 포탄을 남겨둔 채 전차를 버리고 철수했다. 첫 포격에서 철수까지 걸린 시간은 1분 49초. 최초 테러를 개시한 시점에서부터 시간을 재도 9분에 미치지 않았다.
마오쩌둥의 영묘로 들어갔던 녀석들은 보다 더 빠르게 복귀했다. 방부처리된 시체 하나 포장해서 염동력으로 들고 오는 게 전부였으니까.
다만 이 녀석들이 복귀하는 과정에 사소한 잡음이 한 번 끼기는 했다. 위구르인들을 위해 마련해주었던 브리핑 룸에서 관측용 드론들이 보내오는 화면을 들여다보던 마무르가, 별안간 통신 채널에 끼어들더니 예정에 없던 포로 확보를 요구했던 것이다.
「저 여자! 저 여자가 아직 살아있는 것은 알라의 선물이다! 반드시 산 채로 잡아와야 해요!」
마무르가 말한 ‘저 여자’는 광장의 피 웅덩이 한가운데 혼이 나간 표정으로 주저앉아있던 정복 차림의 여군이었다. 초점이 없는 두 눈에선 어떠한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 황금기의 눈으로 보는 뇌의 신경신호는 사고가 완전히 정지된 사람의 그것이었다.
‘급성 셸 쇼크(Shellshock)로군.’
극한의 공포에 노출되었을 때,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게 된 뇌가 더 이상의 외부자극 수용을 거부하고 자기 자신을 바깥세계와 분리해버리는 방어기제. 나타나는 증상은 분리되는 정도와 시간에 따라 다르다. 가볍게는 약간의 인지적 해리에 그칠 수도 있고, 무겁게는 외부자극에 일절 반응하지 않는 상태가 될 수도 있다.
왜 저 여자를 필요로 하느냐고 묻자, 마무르는 시간이 없으니 먼저 데리고 와달라고 떠들어댔다. 이유는 나중에 여유로울 때 말해주겠다면서.
나는 일단 마무르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넋 나간 인간 하나 기절시켜 들쳐 메고 오는 게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므로. 이 여자를 필요로 하는 이유가 시답잖을 경우엔 그냥 죽여서 치우면 그만이었다.
「왜애애애애앵-」
을씨년스러워진 도시 중심부에 때늦은 공습경보가 울리기 시작한다. 핏빛으로 물든 광장과 대로에 메아리치는 전자음은 듣는 이가 전혀 없는 공허한 소리였다.
6초간 높았다가 6초간 낮게 이어지는 패턴이 근 3분에 걸쳐 계속된다. 이 패턴은 공습이 임박했거나 현재진행형임을 의미하는 것.
땅 밑에서도 먼 울림들이 밀려왔다. 지저의 오래된 벙커들 가운데 아직까지도 방송 시스템이 살아있는 곳들이 있는 까닭이었다. 내가 머무르는 벙커는 선을 끊어놓았으므로 쓸데없이 귀 따가울 일이 없었다.
이제 와서 경보를 울리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긴 하나, 기만체 드론들의 편도비행이 끝나지 않았으니 의미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기만체 드론들은 미리 입력된 프로그램만을 따를 뿐 외부의 신호엔 반응하지 않는다. 그러니 일반적인 교란전파 따위로는 기만체 드론들을 멈추거나 떨어뜨릴 수 없었다.
한 번 끊어졌던 경보가 다시 시작될 즈음, 나는 뒤를 돌아보며 조용히 물었다.
“그래, 동 투르키스탄의 독립투사 여러분. 지금 기분들이 어떻소?”
내 뒤엔 조금 전부터 거친 숨소리를 내는 인간들이 서있었다. 지상으로부터 지하로 돌아온 샤히디 그룹의 전투원들. 브리핑 룸에 있다가 내 부하들의 인도로 옮겨온 마무르. 그리고 사악한 자들의 심장부에 ‘메시아(ٱلمهدي)의 진노’가 임하는 것을 목격한 메리옘 그룹의 일원들에 이르기까지.
개중에서 가장 숨이 거친 건 당연히 샤히디 그룹의 구성원들이었다. 하나같이 손을 덜덜 떨어대는 모습들이 마약중독자를 연상케 한다. 교감신경의 항진으로 말미암아 경미한 탈진 상태에 이른 인원도 눈에 띈다.
“당신은…… 당신은…….”
뭔가를 말하려던 샤히디는 말을 맺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온갖 감정이 북받치는 품새. 나를 바라보는 샤히디 그룹에게선 경외감과 압도감을 쉬이 읽어낼 수 있었다.
이런 샤히디 대신 소감을 내놓은 건 눈이 붉게 충혈된 지하디스트였다.
“정말로, 모든 순간들이 전율로 가득했던 개쩌는 성전이었어요. 이 마무르가 인정한다. 싸장님 당신은 세계 최고의 지하드 설계자이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립운동 컨설턴트예요.”
이러는 동안 내 부하들은 지하거점 곳곳에 시한신관을 장입한 폭탄과 소이탄들을 설치했다. 통로는 무너질 것이고 흔적은 불타오를 것이다. 나는 최종적인 철수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경태의 보고를 받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나갑시다. 이곳을 떠나고 나서도 해야 할 일들이 많소.”
베이징 외곽까지의 탈출은 지하경로를 이용해야 했다. 미로처럼 얽힌 더러운 수로를 통해 동쪽의 경항대운하(京抗大運河)로 나간 후, 북운하 감당갑문(北运河甘棠闸) 인근의 안가(安家)에서 재정비를 하고, 거기서부터는 뱃길을 타서 톈진까지 가면 끝이었다.
우리가 벙커를 나와 2킬로미터 남짓 이동했을 때, 베이징 상공엔 중국 공군의 섬격기(歼击机/전투기) 다수가 출현했다. 베이징과 가까운 공군기지들로부터 긴급출격으로 날아온 편대들이었다.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최초 테러 개시로부터 흐른 시간은 대략 15분 가량.
‘그런대로 나쁘지 않군.’
경태가 계산했던 ‘확실한 안전의 한계시간’ 9분은 가짜 빨갱이들이 테러가 터지는 즉시 긴급출격을 띄운다는 가정 하에 도출한 값이었다.
베이징에서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신속대응이 가능한 거리에 배치된 항공여단의 수는 10개. 긴급출격 명령이 떨어질 경우, 각 여단은 빠르면 5분, 늦어도 8분 이내에 출격을 완료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출격한 기체들이 초음속으로 베이징 인근 공역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다시 4분 30초 남짓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즉각적인 대응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높으신 분들의 의사결정이 시간을 잡아먹기 마련이니까.
이제야 나타난 섬격기 편대가 그 증거였다.
「쿠웅-! 쿠구궁-!」
천장과 벽면을 타고 진동이 전해지자 샤히디 그룹의 전사들이 살짝 긴장하여 눈알을 굴려댔다. 반면 내 눈을 믿는 내 부하들, 그리고 ‘구세주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메리옘 그룹은 어떠한 동요도 내비치지 않았다.
진동의 원인은 북경반점과 귀빈루반점, 그리고 북경 제161중고등학교에 뒷북을 치듯 작렬하는 항공유도탄들이었다.
남은 길을 마저 나아가는 와중에, 나는 마무르에게 포로로 잡은 장교의 용도를 물었다. 아직도 눈이 붉고 숨이 거친 마무르는 의외로 제대로 된 이유를 대었다.
“그 대위(상위/上尉)는 낭랑장미의 중대장입니다.”
“낭랑장미?”
“그래요. 그것은 인민해방군이 관상용으로 창설한 육해공 합동 여성 의장대의 별명이다. 중국 공산당은 매년 이 의장대의 아름다움을 애국심 고양과 선전선동의 무기로 삼는데, 그 무기를 우리가 역으로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유익한 일이겠습니까?”
요컨대 프로파간다에 쓰면 효과가 탁월할 포로라는 뜻.
마무르가 계속해서 떠들어댔다.
“싸움은 상대를 빡치게만 만들어도 절반은 이긴 것이다. 반대로, 싸움에서 이겼다고 해도 상대를 돌아버리게 만들지 못했다면 그것은 완벽한 승리라고 할 수 없어요. 완벽한 승리는 적의 분노와 열패감을 극대화할 때 비로소 달성된다. 나는 이것을 조실부모한 남조선 롤 버러지들에게서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경험들로 배웠어요.”
“남조선 롤 버러지?”
“내가 하는 게임 이야기예요. 게임 이름이 롤이다. 한국인들에게 사악한 도발과 모욕의 표현수단을 만들어준 불신자 세종대왕에게 알라의 분노가 있을진저.”
“…….”
“아무튼, 지금 잡아온 낭랑장미 중대장은 미인대회 우승자 출신에 학력도 훌륭해서 온라인상에서의 인기와 동경이 대단합니다. 이런 여자를 스톡홀름 증후군 환자로 전락시켜 위구르 독립운동과 지하드의 홍보탑으로 내세운다면, 중국인들- 특히 끓는점이 낮은 ‘작은 분홍색들’(소분홍/小粉紅)은 분에 겨워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 될 게 확실하다.”
“과연.”
이쪽이 절대적인 통제권과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이상, 애초에 전투병과조차도 아닌 장식용 여군 하나 전향시키는 건 쉬운 일이었다.
내가 작게 끄덕이자 마무르는 한층 더 신이 났다.
“이것을 업계 전문용어로는 유사 NTR 감성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동경의 대상을 NTR 당한 중국인들이 얼마나 다채로운 개꿀잼 반응들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것이에요. 빨갱이들의 분노는 무조건 다다익선이다.”
뜻을 문맥으로 유추해야 하는 낯선 표현들이 섞여있긴 했지만, 발상 자체는 괜찮았다.
이때 지상에서는 기만체 드론들이 마침내 전단지를 뿌려대고 있었다. 가장 윗줄에 「하나님 외에는 신이 없고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사자이다.」라고 적힌 전단지는 오늘의 의거에 찍히는 담백한 마침표와도 같았다.